#128. 참교육(4)
6회 말.
우영진이 마운드에 올랐다.
모처럼의 코리안 매치.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우선 팀이 지고 있는 것도 한몫했고, 조금 전 존 오넬과 니콜라스의 다툼도 문제였다.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좋지 않은 분위기를 끊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우영진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다.
그래도 베테랑답게 카디안 스타우트를 상대로 외야 플라이로 아웃을 잡으며 좋은 출발을 보여줬다.
‘가장 큰 산을 넘었으니……. 이번 이닝은 어떻게든 잘 넘길 것 같은데……. 문제는 이게 아니지.’
좋지 않았다.
팀의 리더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가 단 한 명이 빠졌다고 팀이 이렇게 변했다.
오늘 한 경기 지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팀 분위기 그대로 와일드카드에 진출하면 그냥 개박살이 날 것이다.
투수조의 선수들은 딱히 파벌이 갈라지지 않았기에 존 오넬이나 제레미 웰던의 파벌과 두루두루 친했다.
투수조마저 반으로 갈라졌다면…….
아마 캔자스시티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근데 나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네.’
우영진은 무력함을 느꼈다.
자기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래도 6회 말을 깔끔히 지우며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캔자스시티의 무실점 이닝을 만들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서니 다른 선수들이 반겨줬다.
“굿 피칭.”
“영진! 고생했어.”
“하나씩 따라가자고!”
몇몇 선수들의 파이팅 넘치는 외침에 우영진도 고갤 끄덕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래,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자.’
그렇게 다짐을 한 우영진.
하지만 7회 초.
바뀌는 것은 없었다.
다시 타선이 돌아 1번 타자인 제레미 웰던이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특히나 존 오웰의 파벌에 속한 선수들은 제레미 웰던이 타석에서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베이스 온 볼스!”
그리고 그가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했음에도 존 오웰의 파벌들은 박수를 치거나 관심을 주지 않았다.
“치졸한 새끼들.”
“레드넥 새끼들 수준이 그렇지.”
“오늘 경기에서 신나게 병살타만 치는 놈들에게 뭘 바라는 거야? 저 친구들은 짐 덩어리라니까?”
제레미의 파벌에 속한 선수들의 중얼거림을 듣고 발끈한 존 오웰 파벌의 선수들이 매섭게 그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다시금 들려온 타격음에 모두가 고갤 돌렸다.
-아! 또 병살타!
-오늘 경기에서 5번째 병살타가 터집니다!
-오늘 캔자스시티는 안 풀립니다. 더그아웃의 분위기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데……. 경기력까지 썩 좋지 않아요.
-좋은 기회를 자주 놓치고 있는 캔자스시티…….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면 와일드카드 진출도 힘들 수 있습니다.
7회 초에 쌓인 두 개의 아웃.
존 오웰은 두 눈을 찡그리며 타석에 들어섰다.
저 망할 동양인을 상대로 오늘 꼭 출루해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그가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었다.
“그렇게 붙었다가는 후회할 텐데…….”
“엿 먹어.”
조던 델가도의 조롱에 존 오웰이 두 눈을 부라리며 배트를 그 어떤 순간보다 꽉 쥐었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따악!
“파울!”
쳐도 좋은 타구가 나오기 힘든 코스로 날아든 공에 배트를 내민 존 오웰이 더욱 이를 꽉 물었다.
“사장님 나이스샷!”
조던 델가도는 씩 웃으며 존 오웰을 살살 긁었다.
그럴수록 존 오웰의 얼굴을 토마토보다 더 붉어지기 시작하며 더욱 표정을 읽기 편해졌다.
‘짜식……. 그러니까 네가 3할을 못 넘는 거야.’
재미가 쏠쏠했다.
표정이 드러나는 존 오웰을 보며 조던 델가도가 다시금 바깥쪽 코스의 공을 요구했다.
슈우우욱! 틱!
“하울! 켁!”
빗맞은 공이 주심에게 날아들었다.
다행히 마스크에 맞았지만 주심은 혀를 씹은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조던 델가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으니 주심이 잠깐 무릎을 잡고서는 고갤 끄덕였다.
반대로 존 오웰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빨리 좀 합시다.”
그 순간 조던 델가도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성질도 급한 주제에 눈치도 더럽게 없네.’
주심의 눈빛이 곱지 않다.
아마 어처구니없는 공도 잡아주지 않을까?
조던 델가도가 쓱 고개를 돌려 눈치를 봤다.
주심의 눈이 날카롭다.
물론, 존 오웰은 그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마운드의 강송구를 매섭게 노려볼 뿐.
그때 강송구가 마운드에서 뭔가를 했다.
존 오웰은 그걸 보는 순간 눈이 돌아버렸다.
-아! 캉이 손가락을 하나 듭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존 오웰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삼진까지 딱 1구 남았다고요.
-아! 그런 의미가 될 수 있겠군요.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존 오웰의 두 눈은 활활 타올랐고.
‘777 베가스 그라운드’는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캉! 캉! 캉! 캉! 캉!
모두가 강송구의 이름을 외친다.
존 오웰은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행동으로 보여줬다.
-하하하하! 존 오웰도 퍼포먼스에서 지기 싫은 것 같습니다. 그가 홈런을 예고합니다!
-저런 퍼포먼스가 존 오웰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죠. 물론, 지저분한 성질머리는 꼭 고쳐야 합니다.
이번에는 거친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우!
예고 홈런이라니.
그것도 강송구를 상대로.
라스베이거스의 홈에서.
홈팬들의 눈빛이 날카롭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나온 야유도 심해졌다.
물론, 그들만 성난 것은 아니었다.
바다 건너 한국팬들도 난리였다.
-존 오웰쉑……. 붉은 돼지 주제에 좀 나댄다?
-ㅋㅋㅋㅋㅋ 예고 홈런은 무슨ㅋㅋㅋ 그냥 예고 삼진 좀 당하고 빨리 더그아웃으로 꺼졐ㅋㅋ
-참교육 당하겠네.
-존 오웰은 영원히 캔자스시티에서 종신하길…….
-ㅋㅋㅋㅋㅋ누가 저딴 놈을 트레이드로 데려가겠냐? 내 생각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쭉 뛰다가 FA 때 미아 돼서 일본이나 한국 와서 돈 좀 땡기다 음주사고 내고 깜빵간다.
-자신감이 너무 과하넼ㅋㅋ
-강송구는 그럴 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지 넌 뭔데 붉은 돼지 새끼야.
-ㅋㅋㅋㅋㅋㅋ 존 오웰 수듄ㅋㅋ
-붉은 돼지쉑 코리안 바비큐되겠넼ㅋㅋ
-참교육 가즈아아아아아아!
3구째.
존 오웰의 두 눈은 활활 불탔다.
어떤 공이 날아들던 자신 있었다.
강송구의 왼손이면 몰라도 지금 강공수는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90마일 초반의 구속이라면 어떤 공도 다 때려낼 수 있다. 아주 박살을 내주지!’
와인드업.
이윽고 강송구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그리고 존 오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을 잡습니다! 존 오웰에게 던진 마지막 위닝샷은 너클볼이었습니다! 하하하!
-대단하네요. 저기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위닝샷으로 너클볼을 던지다니…….
-존 오웰이 판정에 불만인 것 같습니다.
-네, 주심과 잠깐 설전이 이어지는 것 같네요.
존 오웰이 주심을 바라보며 외쳤다.
“주심! 솔직히 바깥으로 빠진 코스였잖아요! 그런데 왜 이게 삼진이에요?”
“존, 도널드 씨에게 예의를 갖춰.”
“넌 엿 먹어 망할 도미니칸 새끼야.”
“난 파마나 출신이야. 병X아.”
존 오웰의 거친 말에 조던 델가도는 ‘쯧쯧…….’하고 혀를 차며 고갤 절레 흔들었다.
존 오웰의 말은 더 거칠어졌고.
주심은 단호히 삼진이라고 말을 하며 존 오웰에게 빨리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결국, 존 오웰은 허벅지로 배트를 반으로 박살을 내고는 화를 내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XXX같은 XX놈.”
그 말이 문제였다.
주심은 바로 존 오웰에게 퇴장을 지시했다.
-아! 존 오웰! 퇴장입니다!
-뭐죠? 굳이 주심과 저렇게 판정의 문제를 두고 화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존 오웰은 바깥으로 빠지는 공이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는데……. 주심은 조금 후하게 봐줬죠? 하지만 딱히 판정에 문제가 있던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죠.
머리를 부여잡은 페트릭 마쉬 감독이 주심에게 다가와 존 오넬의 퇴장과 관련된 항의를 하다가 그도 주심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는 퇴장을 당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경기장.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퇴장당하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코미디가 따로 없네.”
* * *
9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존 오넬과 페트릭 마쉬 감독이 퇴장을 당한 뒤부터 강송구는 무리해서 병살을 노리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하면서 아웃을 잡아낸 그는 곧 남은 이닝을 깔끔히 무실점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3개의 아웃 카운트.
9회 초의 선두 타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대타자이자 9번 타자인 크리스 벨코였다.
‘선구안과 타격 능력은 좋으나 장타력의 생산은 지지부진한 전형적인 똑딱이.’
그렇다고 선구안과 타격 능력이 약점인 장타력을 가려줄 정도로 출중한 것도 아니었다.
-9회 초가 찾아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완투를 밥 먹듯이 하는 투수의 가치가 드러난 경기라고 볼 수 있네요.
-그렇죠. 라스베이거스는 지난 경기에서 불펜을 제법 소모했는데……. 이렇게 안정적으로 이닝을 많이 소화해 주는 선발이 있으니 불펜 운영이 정말 편할 것 같습니다.
-라스베이거스의 불펜이 조용합니다. 캉에게 오늘 경기를 온전히 맡길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잡은 병살타만 5개! 오늘 경기의 캉은 정말 노련한 베테랑처럼 보였습니다.
조금은 무른 마운드를 발로 잘 다진 강송구.
그가 어느 정도 마운드의 정리가 끝난 뒤에 조던 델가도에게 사인을 보냈다.
‘끝내지.’
조덜 델가도가 고갤 끄덕인다.
캔자스시티와 경기를 이제 끝내야 할 때.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8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스에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스트라이크!”
공을 지켜본 크리스 벨코가 혀를 내둘렀다.
‘이런 코스로 공을 던지면 어떻게 때려내라고?’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강송구의 손에서 또 공이 날아든다.
이번에는 몸쪽 싱커.
“스트라이크!”
크리스 벨코는 쉽게 배트를 내밀 수 없었다.
이번 공도 때려냈다가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타구가 날아갈 확률이 상당히 높은 코스였다.
‘후우…….’
그리고 마무리를 위해 던진 바깥쪽 커브.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크리스 벨코는 허무하게 헛스윙하고는 빠르게 타자석에서 벗어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와아아아아!
큰 함성.
9회 초의 첫 번째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를 향해 홈팬들이 큰 환호를 보냈다.
이어지는 1번 타자 제레미 웰던과 승부.
이제 굳이 병살타를 유도할 필요는 없어졌다.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죽여주네!
우효의 말처럼 이미 상대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그 어떤 팀보다 험악해졌으니까.
슈우우욱! 펑!
거기다 제레미 웰던은 의욕이 떨어져 보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캔자스시티는 와일드카드 진출도 상당히 힘들지 몰랐다.
‘효과가 너무 좋았군.’
강송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레미 웰던도 삼진으로 잡아내며 9회 초의 두 번째 아웃을 잡아냈다.
이제 남은 아웃은 하나.
타석에 로열스의 마지막 타자가 들어서기 무섭게 강송구가 거침없이 공을 던졌다.
따악!
와아아아아아아아!
높게 뜨는 공.
강송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운드에서 내려와 조던 델가도와 가볍게 포옹했다.
9이닝 무실점으로 끝난 경기.
강송구가 이번 시즌 11번째 완봉승을 완성했다.
* * *
[강송구 캔자스시티전 완봉승!]
[또 완봉승! 강송구 월터 존슨의 한 시즌 11완봉에 도달하며 모두를 놀라게 하다!]
[피트 알렉산더의 ‘한 시즌 16 완봉승’에 단 5개만 남았다!]
[라이브볼을 넘어 데드볼 시대의 기록에 도전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13 대 0의 대승! 라스베이거스! 캔자스시티를 찍어눌렀다!]
[심상치 않은 캔자스시티의 분위기! 내부관계자의 발언으로는 파벌싸움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밝혀져.]
[존 오넬! 주심과 언쟁으로 퇴장! 거기다 팀 동료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밝혀지며 어쩌면 10경기 이상 출장정지를 당할 수 있는 상황!]
[미키 스토리 감독, ‘캉은 경이로운 투수! 항상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9월부터는 어느 정도 캉의 이닝을 조절할 것! 우리의 목표는 월드시리즈다!’]
강송구가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존 오넬은 빠르게 SNS를 비공개로 돌렸으며.
우영진은 자신의 SNS에 ‘한국이 그립다.’라고 올렸고.
-말도 안 돼! 과일 금지라니! 과일 금지라니! 야구의 요정이 충치가 생길 이유가 없잖아!
마지막으로 우효는 충치가 생겨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