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참교육(3)
이노우에 코타.
올해 서른이 된 좌익수이자, 지난 시즌에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4년 2400만 달러로 계약을 맺은 NPL 최고의 좌익수이다.
그는 뛰어난 수비력과 컨택트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매 시즌 35개 이상의 홈런을 때린 강타자였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와서는 그 홈런 개수가 2시즌 뛰며 통산 3개로 쪼그라들었지만……. 그의 뛰어난 컨택트 능력은 줄지 않았기에 캔자스시티의 한쪽 외야를 맡을 만했다.
따악!
-쳤습니다!
-코타 이노우에! 쳤습니다!
-오늘 경기 캉에게서 빼앗은 첫 번째 안타입니다.
이노우에 코타는 1루에 안착하고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빗맞은 타구가 운이 좋아서 수비 시프트를 뚫었다.’
동시에 그는 다시 한번 한숨도 내뱉었다.
‘요즘 따라 파벌 다툼이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파벌 다툼 때문에 내 자리도 위태위태해…….’
감독은 유색인종을 싫어한다.
물론, 노골적이진 않다.
하지만 비슷한 실력의 동양인과 백인이 있으면 아마 감독은 그 백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이 그렇지.’
그가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옆에 있는 앨빈 하인리히가 ‘얘는 안타 치고 1루로 나와놓고는 무슨 한숨을 5초에 한 번씩 내뱉는 거지?’라며 바라봤음에도 이노우에 코타의 한숨을 끊기질 않았다.
이윽고 타석에 8번 타자가 들어섰다.
스티브 셀디버.
뛰어난 파워 툴을 갖춘 유격수.
하지만 타율은 멘도사 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다.
수비력과 장타력을 제외하면 모든 부분이 솔직히 파멸적인 친구라 별 기대가 없었다.
‘사실 이 친구보다 더 뛰어난 유격수가 있지만…….’
백인이 아니니 스티브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나이는 스티브 셀디버가 더 어리니 감독은 ‘젊은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뿐이다.’라며 말한다.
거기다 캔자스시티는 성적도 나오고 있었다.
비록 남부지구 1위는 아니지만, 와일드카드의 한 자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감독에게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때였다.
따악!
절묘한 병살타 코스.
‘싱커에 당했군.’
2루로 뛰면서도 이노우에 코타는 아웃을 직감했다.
유격수가 공을 잡고 이루수에게로.
그리고 이루수가 2루 베이스를 밟고 그대로 1루로 공을 송구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아웃! 아우우우웃!”
-아! 좋은 흐름을 끊는 병살타입니다!
-스티브 셀디버! 좋지 않습니다. 여기서 병살타라뇨?
-순식간에 아웃이 두 개나 추가됩니다.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스플리터를 던져 깔끔히 삼진을 잡아낸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노우에 코타가 흙을 털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니 존 오넬이 제레미 웰던을 보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반대로 제레미 웰던은 병살타를 친 스티브를 보며 뭔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빨리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라도 되고 싶다.’
이런 팀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오늘따라 의욕이 더욱 떨어졌다.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 * *
4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너무 위험한 짓 아니야?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병살타를 유도하다가 실점해도 문제는 없다. 팀의 타선이 만들어준 점수는 8점이나 된다. 내가 9이닝 7실점을 기록해도 팀은 승리하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캔자스시티는 와일드카드 팀이다. 그리고 바뀐 메이저리그의 룰로 각 리그에서 가을야구를 치르는 팀은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는 4팀 + 와일드카드 2팀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리고 와일드카드에 진출한 두 팀은 4개의 지구 우승팀 중에서 승률이 낮은 두 팀과 맞붙는다.
와일드카드전은 3판 2선승이다.
그 3판 2선승의 룰에서 지구 우승팀에게 1승이 주어지고 지구 우승팀의 홈에서 와일드카드가 치러진다.
와일드카드 진출팀은 지구 우승팀의 홈에서 2연승을 해야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었다.
우효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이미 AL 최고승률팀은 정해졌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7할 승률을 넘을 팀이 없어.’
-아! 설마……. 너 미리 캔자스시티를 분열시켜서 와일드카드에서 만나는 걸 대비하는 거구나?
‘그래, 분열된 팀만큼 가을야구에서 뜯어먹기 좋은 먹잇감은 없지. 뭐, 이번 경기가 끝나고 팀이 크게 흔들려 와일드카드에서 멀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과고 말이야.’
이대로 가면 라스베이거스는 와일드카드전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만날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런 팀이 알아서 흔들려준다는데 오늘 경기에서 병살타를 유도하다가 나오는 실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타석에는 제레미 웰던이 들어섰다.
그리고 승부가 이어졌다.
제레미 웰던은 빨리 아웃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강송구가 던진 먹음직한 공을 보고 배트를 휘둘렀다.
그건 야구선수라면 당연히 반응했어야 하는 공이었다.
1루에 안착하는 제레미 웰던.
-제레미 웰던! 안타입니다!
-실투를 잘 노린 타격이었습니다. 그것보다 오늘 조금 묘하네요. 캉이 저런 실투를 다 던지다니……. 물론, 투수에게 있어서 실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죠.
-하하하! 캉도 사람입니다. 실수할 때가 있죠.
‘뭐지?’
의아한 표정의 제레미 웰던.
방금 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로 들어오는 전형적인 밋밋한 슬라이더였다.
저 괴물이 그런 슬라이더를 던지다니.
‘뭐……. 사람이니 그런 실수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상했다.
3회 초에 나온 안타도 그랬다.
꼭 일부러 안타를 맞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이어지는 승부.
강송구가 공을 던진다.
밀란 톨렌티노가 번트를 데려고 시도하다가 그대로 아웃을 당하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철저하군.’
밀란 톨렌티노가 배트를 데기 어려운 코스로 공을 던지면서 1루에 있는 자신이 움직일 수 없게 아웃을 잡아냈다.
제레미 웰던은 이번 이닝도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존 오넬을 바라봤다.
‘개자식…….’
확 병살타나 치고 욕이나 처먹어라.
그런 생각을 하며 제레미 웰던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 순간 존 오넬이 강송구가 던진 싱커에 타격했고 그의 생각처럼 공은 유격수 앞으로 튀어 올랐다.
“Motherfxxker!”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2루로 뛰었다.
아무리 태업을 한다고 해도 승부욕이 없는 건 아녔다. 그가 이를 악물고 그대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은 부드럽게 연결되었다.
“아웃!”
그대로 병살타가 되며 끝나는 4회 초.
존! 존! 존! 존! 존!
역시 믿고 있었다! 최고다 존!
넌 최고의 웨스트스타즈 선수야!
존! 병살타 고마워!
믿고 있었어! 역시 존이야! 나중에 라스베이거스로 놀러 와! 내가 끝내주는 엑스터시 하나 선물해 줄게!
조롱에 가까운 응원.
홈팬들의 외침이 존 오넬의 귓가에 박히자 그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제레미는 몸에 잔뜩 묻은 흙을 털며 중얼거렸다.
“망할 레드넥 새끼! 희생플라이만 해줬어도 내가 2루에 갈 수 있었잖아…….”
* * *
휘유!
조던 델가도가 휘파람을 불었다.
5회 초에 병살타가 또 나오기 무섭게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더그아웃이 탄식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환상적인 더블플레이!
-아! 오늘 캔자스시티는 무겁습니다. 뭔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어요!
-오늘 모처럼 캉이 흔들리고 있는데……. 이상하리만큼 타격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캉이 맞춰 잡는 데 집중하는지 알 것 같군.’
아까보다 상대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더 살벌하다.
병살타를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바비 위트.
그에게 더그아웃에 있던 후이 산소비노가 ‘망할 레드넥’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문제는 그 욕설이 자신의 귀까지 들려올 정도로 제법 큰 목소리였다.
바비 위트는 후이 산소비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캔자스시티의 더그아웃은 더 시궁창에 빠졌다.
‘팀의 리더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를 유망주 넷하고 바꿔먹은 결과가 저거라니……. 내가 로열스의 팬이라면 당장 단장이 있는 사무실로 달려가서 돌을 던질 거야.’
실제로 그 트레이드가 있던 날에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단장실에 최루탄이 날아들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비밀이었다.
조던 델가도는 포수 장비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그것보다 새로 설치한 에어컨 성능이 좋은데?’
6월에 있던 이상기온 덕분에 새로운 에어컨을 추가로 설치한 ‘777 베가스 그라운드’는 8월임에도 평소보다 훨씬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악!
다시금 들려오는 타격음.
점수는 이제 11 대 0으로 벌어져 있었다.
더 신나게 환호성을 내지르는 홈팬들.
그의 시선은 다시 상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굳은 표정의 선수들.
그리고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뉜 파벌.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가 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끝이 난 5회 말.
다시 포수 장비를 착용한 조던 델가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6회 초.
이노우에 코타가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에서 행운의 안타를 때렸던 그는 이번 타석에서는 쉽게 출루하기 어렵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안타가 아니었다.
“베이스 온 볼스!”
볼넷.
안타나 홈런보다 볼넷을 적게 내주는 강송구가 이번 승부에서는 볼넷을 내주었다.
묘한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보는 이노우에 코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그가 1루 베이스를 밟고 배팅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돌려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뛰라는 지시는 없군.’
항상 그랬다.
발이 빠른 자신과 몇몇 유색인종 선수들에게 감독은 도루를 지시하지 않는다.
‘내가 더 도루 능력은 뛰어난데…….’
백인이며 발이 빠른 밀란 톨렌티노만 자유롭게 도루를 시도할 수 있는 그린라이트가 있을 뿐.
그렇기에 이노우에 코타는 리드를 크게 가져가지 않았다.
이윽고 들려오는 타격음.
따악!
-스티브 셀디버! 이번에도 내야 땅볼입니다!
-그대로 달려드는 조던 웨스트버그! 삼루수가 공을 잡아서 2루로! 그리고 자시 1루로!
-병살타! 이전에도 병살타입니다! 한 경기에 4번의 병살타가 나오면서 순식간에 2개의 아웃이 채워집니다!
-대단합니다! 오늘 우리 강송구 선수가 맞춰 잡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타선이 강송구 선수를 상대로 단 하나의 점수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한 경기 최다 병살타 기록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중계진이 신나게 떠들었다.
벌써 4번째 병살타가 나왔다.
당연히 인터넷 중계창도 시끄러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병살 실화냐?ㅋㅋㅋㅋ
-마! 느그가 프로가?
-와……. 진짜 캔자스시티도 심각하네;
-유격수인 카디안 스타우트 유니폼을 좀 봐라; 흙투성이에 입에도 흙이 들어가서 신나게 침 뱉고 있다.
-캔자스시티 쉑들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우리 카디안 행님 똥개훈련 시키는 거 아니냐고?
-한 경기 최다 병살까지 얼마 남음?
-3개 남았을걸? 한 경기 최다 병살이 7개니까.
2018년에 나온 피츠버그전에서 시카고 컵스가 저지른 더블플레이만 7번이다.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으로 1942년에는 뉴욕 양키스였고, 1969년에는 휴스턴이 똑같이 7개의 더블플레이를 허용하며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었었다.
아무튼.
6회 초에 두 개의 아웃을 깔끔히 잡아낸 강송구를 캔자스시티의 타자들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대체로 얼굴이 어두운 쪽은 존 오넬의 파벌이었다. 제레미 웰던의 파벌은 오늘 경기에서 출루를 한 번씩은 하며 자기 몫을 모두 수행한 것과 다르게 존 오넬의 파벌에 속한 타자들은 신나게 병살타와 삼진만 퍼주고 있었다.
당연히 기세가 산 쪽도 제레미의 파벌이었다.
존 오넬은 더그아웃의 벤치에 앉아 이를 꽉 물었다.
‘Fxxk!’
이윽고 6회 초의 마지막 타자도 깔끔하게 삼진을 잡아낸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때 존 오넬의 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타자들은 다 안타를 치거나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했는데 영웅심에 취한 누구 때문에 다 말아먹었네……. 쯧쯧”
그 순간 존 오넬의 두 눈이 획 돌았다.
그러고는 그 말을 내뱉은 니콜라스에게 달려들었다.
“개자식이! 고작 안타 하나 쳤다고 어디서 위세야!”
멱살이 잡힌 니콜라스.
그가 존 오넬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놔! 이 망할 레드넥 새끼야! 그리고 사실이잖아? 네가 조금 더 컨택트에 집중했으면 적어도 1점은 만들었을걸?”
더 붉어진 존 오넬의 얼굴.
서로의 주먹이 날아들기 전에 그사이를 파고든 다른 선수들 덕분에 상황은 더 악화하지 않았다.
“그만! 그만! 아직 경기 중이야!”
“말려! 이제 공수교대인데 뭐 하는 짓이야?”
“미친 새끼들 싸울 거면 경기가 끝나고 하라고!”
경기 초반에 보여줬던 다툼이 또 일어났다.
타석에 들어서던 카디안 스타우트는 공수교대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상대 선수들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X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