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26화 (126/198)

#126. 참교육(2)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1번 타자.

제레미 웰던은 강송구가 마운드에서 연습 투구를 끝내기 무섭게 타석에 들어섰다.

“제레미! 어떤 공을 줄까?”

조던 델가도의 능글맞은 물음에도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오직 강송구만을 뚜렷이 바라볼 뿐이었다.

동시에 경기 초반부터 왼손을 꺼내든 강송구를 보며 조던 델가도는 몸쪽 패스트볼을 요구했다.

‘시원하게 지르고 시작하자.’

그 사인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슈우우욱! 펑!

99마일의 표심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날아들었다.

제레미 웰던은 그 공을 지켜보기만 했다.

2구째.

이번에도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같은 코스.

이번에도 제레미 웰던은 지켜봤다.

그가 원하는 공이 아니었다.

3구째.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에도 같은 코스로 날아든 공.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코스만 같았지 던진 구종은 달랐으니까.

-스플리터였죠?

-정말 날카롭습니다. 제레미 웰던이 헛스윙하면서 캉에게 오늘 경기 첫 번째 삼진을 허용하는군요.

그렇게 간단히 첫 번째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

그의 표정은 묘했다.

‘저거……. 그거지?’

-그래, 그거지.

우효도 고갤 끄덕이며 심각하게 답했다.

‘태업이네’

-뭐지? 캔자스시티는 지금 와일드카드 1위 아니야? 그런데 왜 태업을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겠군.’

이어서 타석에 밀란 톨렌티노가 들어섰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그는 전형적인 좌타우투의 이루수로 지난 시즌에 0.274의 타율과 14개의 홈런을 기록한 타자였다.

2번 타순에 놓이기에는 타격이 조금 아쉽지만 밀란 톨렌티노보다 작전 수행능력이 뛰어난 타자는 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강송구가 메이저리그에서 아직도 2000년대 초반의 야구를 하는 인물을 향해 고갤 돌렸다.

페트릭 마쉬 감독이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감독이 좀 올드하네.

‘올해 일흔이 넘었으니까.’

시큰둥한 표정을 하던 제레미 웰던과 다르게 밀란 톨렌티노는 두 눈에 의욕이 가득했다.

-한 놈은 시체처럼 의욕이 없고, 다른 한 놈은 용암처럼 팔팔 끓어오르네.

‘둘 다 쉽게 잡을 수 있는 유형의 타자지.’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밀란 톨렌티노가 기습 번트를 하는 척하다가 다시 뒤로 슬쩍 배트를 뺐다.

“스트라이크!”

조던 델가도는 그런 타자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야진에게 사인을 보냈다.

조금은 앞으로 쏠린 라스베이거스의 내야진.

밀란 톨렌티노가 두 눈을 반짝였다.

2구째.

다시 번트 자세를 잡는 타자를 보며 강송구가 패스트볼 그립을 쥐며 자세를 잡았다.

와인드업.

곧 강송구의 왼손에서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홈플레이트로 날아들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다시 몸을 뒤로 뺀 밀란 톨렌티노는 번트를 시도하기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의 임무는 오늘 경기에서 최대한 상대 투수를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뿐이니까.

이윽고 강송구가 공을 던졌다.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밀란 톨렌티노는 시원하게 배트를 휘두른 뒤에 삼진을 허용하고는 타석에서 물러났다.

‘쉽지 않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밀란 톨렌티노.

그가 다음 타석의 주인공인 존 오넬에게 다가가서 강송구의 구종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뒤에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존 오넬이 타석에 들어섰다.

우우우우우우우!

썬 오브 비치!

킬 존! 킬 존! 킬 모어 존!

커모오오오온! 널 죽여버리겠어! 머저리!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존 오넬은 오만하게 웃고 있었다.

우효는 그런 존 오넬을 보며 고갤 흔들었다.

-아직 참교육을 당한 적이 없어서 저렇게 당당한가?

그 말에 강송구가 평소보다 더 두텁게 송진을 왼손에 바르는 것으로 답했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조던 델가도의 리드도 아까와 다르게 조심스러웠다.

어떻게든 삼진을 잡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강송구가 고갤 끄덕인 뒤에 자세를 잡았다.

슈우우우우욱! 펑!

와인드업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든 공.

존 오넬은 바깥쪽에 걸친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잠깐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그러고는 강송구에게 윙크를 보냈다.

마치, ‘네 공은 별거 아니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저 망나니가 투수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빈볼을 맞았는지 알 것 같군. 쯧쯧쯧!

우효가 가시를 부르르 털었다.

종종 언짢은 일이 있으면 가시를 부르르 털기도 했는데, 아마 존 오넬이 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송구는 빤히 타자를 바라봤다.

확실히 얼굴도 얄밉게 생기긴 했다.

‘확실히 쥐새끼처럼 생기긴 했군.’

물론, 강송구는 존 오넬의 도발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서만큼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강송구였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

이번에는 존 오넬이 배트를 내밀었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계창]

-뭐임? 벌써 시작함?

-ㅇㅇ 앞선 두 타자 모두 삼구삼진이고 지금 존 오넬을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 상황임.

-그래도 호언장담한 것과 다르게 제법 공에 배트가 따라가네?

-ㅋㅋㅋ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무슨 강속구만 던지면 삼진을 신나게 내주는 크보 타자들처럼 보이냐?ㅋㅋㅋ

-크보 타선을 상대로 딱 저 100마일짜리 패스트볼 90개만 던지면 9이닝 완봉 쌉가능임.

-ㅋㅋㅋㅋ ㅇㅈ합니다.

-크보가 죠스로 보이냐? 너무 조롱하지 마라.

-오! 이번에 볼 골라냈네.

-새끼……. 인종차별만 아니면 참 재미있는 캐릭터인데……. 특히 일본 애들 팰 때 재미있는 놈이라구.

-ㅋㅋㅋ 일본 투수한테 홈런 때리고 배트로 할복 퍼포먼스 보여줄 때 존나 웃었는뎈ㅋㅋ

존 오넬의 어그로가 제대로 통했을까?

평소보다 중계창이 훨씬 북적거렸다.

4구째.

강송구가 다시 스플리터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몸쪽 낮게 떨어지는 공.

존 오넬은 그 공을 참아냈다.

-제법……. 그런 난리를 필 정도의 실력은 있네.

‘스플리터는 잘 골라내는군.’

강송구도 고갤 끄덕이며 인정했다.

존 오넬이라는 타자의 자신감은 근거 없는 자만심이 아니라 잘 쌓아둔 실력에서 나오는 거라고.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5구째 던진 포심 패스트볼에 밀린 배트.

존 오넬은 겉으로 실실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곤란해하고 있었다.

‘제길…….’

투수가 좀 흔들리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했던 도발에 상대 투수는 마운드에서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뻐킹! 망할 원숭이.’

그리고 빠르게 날아든 강송구의 위닝샷.

오른손으로 던질 때보다 훨씬 날카로운 각으로 떨어지는 너클 커브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강송구가 삼진을 잡아내는 순간.

‘777 베가스 그라운드’가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캉! 캉! 캉! 캉! 캉! 캉!

강송구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

그리고 곧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은 존 오렐의 이름을 계속 외치며 삼진을 당한 그를 조롱했다.

존! 존! 존! 존! 존!

존! 사랑해! 넌 최고의 타자야!

그래, 정말 멋진 타자지!

[중계창]

-엌ㅋㅋㅋㅋㅋㅋ 존 오넬 삼진이구연ㅋㅋㅋ

-얼굴 빨개졌구만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오넬쉑 조빱이였구연ㅋㅋㅋ

-와……. 진짜 너클 커브 미쳤네;

-카이클이 떠오르는 공이었다.

-도대체 존 오넬은 무슨 생각으로 도발과 인종차별을 하며 강송구의 신경을 긁은 걸까?

-이렇게 처맞을 줄을 몰라서 그래.

-응, 아직 경기 안 끝남. 이제 1회 초임. 존 오넬 다음 타석에서 강송구 상대로 홈런 때림.

-와……. 놀랍네; 아직도 강까가 있음?

-ㅋㅋㅋㅋ 저거 컨셉임ㅋㅋㅋ

-한국은 대부분 강빠일걸?ㅋㅋㅋㅋ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라스베이거스를 응원해야지!

얼굴이 시뻘게진 존 오렐.

그가 이를 꽉 물었다.

그렇게 1회 초가 끝났다.

* * *

“개자식!”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더그아웃이 소란스럽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은 이미 체념했다.

‘또 시작이군.’

‘존 오넬이 항상 그렇지.’

‘아…….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나?’

존 오넬의 화풀이 대상이 된 배트를 파편을 휘날리며 사정없이 박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레미 웰던이 눈을 찌푸렸다.

“꼴사납게 삼진을 당했으면 좀 조용히 있지?”

그의 말에 존 오넬이 ‘엿 먹어 깜둥이 새끼야.’라는 말을 내뱉었고 제레미가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이 다른 선수들이 제레미 웰던과 존 오넬 사이로 파고들어 싸움을 말렸다.

“하루만 좀 넘기자! 응?”

“말려! 말려!”

“저 미친 새끼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끝났다.

그 모습을 반대편 더그아웃에서 바라본 우효가 혀를 차며 고갤 흔들었다.

-쯧쯧……. 팀이 완전 반으로 갈라졌네.

‘감독은 존 오넬을 감싼 것 같군.’

-존 오넬이 성적이 좋아서 그런가?

‘모르지. 감독이 인종차별주의자일 수도 있고.’

강송구의 시선은 페트릭 마쉬에게 향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

그만큼 많은 경험과 지혜가 쌓일 나이지만.

반대로 그 어떤 나이대보다 오만과 편견도 함께 쌓이기 좋은 나이였다.

-인종차별주의자?

‘봐, 반으로 갈라진 저 팀의 구성을 말이야. 제레미 웰던의 파벌은 대체로 흑인, 아시아인 등등……. 유색인종이 모였지만 존 오넬의 파벌은 백인들만 가득하지.’

-호오…….

‘거기다 페트릭 마쉬 감독은 마이너리그 시절에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더군.’

-거참 뭣 같네.

혀를 차던 우효가 입에 샤인머스캣 한 알을 밀어 넣었다.

오랜만에 먹은 새콤하고 달달한 과즙에 우효의 두 눈이 약쟁이처럼 살짝 풀렸다.

-우효호홋! 역시 이 맛이야.

우효가 낄낄 웃는 동안.

불편한 표정으로 필드로 향하는 로열스의 야수들.

마운드에 선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선발투수인 크리스 위버는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야수들을 바라봤고.

곧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신나게 두들겨 맞는 크리스 위버.

-높게 떠오르는 공!

-넘어갑니다!

-1회 말부터 홈런을 허용하는 크리스 위버! 오늘 경기 초반부터 캔자스시티는 험난한 출발을 보여줍니다.

-공수 교대가 일어나는 가운데 존 오넬 선수와 제레미 웰던 선수의 다툼이 있던 것 같은데……. 그게 투수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을까요?

-그게 홈런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보기에는 썩 좋지 않았던 장면이기는 했습니다.

“시즌 초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조던 델가도의 말에 강송구는 시즌 초에 7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두었던 로얄스와 경기를 떠올렸다.

‘확실히 시즌 초엔 저런 분위기의 팀이 아니었지.’

-그때 오렐 허샤이저의 59이닝 연속 무실점을 도전하다가 실패했었지? 홈런을 맞았잖아.

‘그래, 부상으로 빠진 존 오렐을 대신해서 콜업된 유망주에게 럭키 홈런을 맞았었지.’

차라리 그때의 캔자스시티가 훨씬 강했다.

-드디어 1회 말이 끝납니다.

-5점이나 나온 빅이닝이었습니다.

-지친 표정의 크리스 위버군요.

-1회 말에 5실점을 했다는 것보다 그 5실점 중에서 3실점이 야수들의 집중력 부족에서 나왔다는 점이 크리스 위버에겐 더 속이 쓰릴 겁니다.

터덜터덜.

혼이 빠진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가는 상대 투수.

강송구가 글러브를 챙겨 마운드로 향했다.

2회 초.

강송구의 호투는 계속 이어졌다.

1회 초와 다르게 오른손으로 공을 던진 강송구는 내야 뜬공으로 두 개의 아웃과 삼진 하나로 남은 아웃을 깔끔히 잡아내며 이닝을 빠르게 끝맺었다.

우효는 갑자기 평소보다 더 조용해진 그를 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너 무슨 꿍꿍이야?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답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서로 싸우는 놈들이 있으면 슬쩍 한쪽 편을 들어줘서 더 싸우게 하라고.”

-뭐?

“3회 초부터 병살타를 잡는 데 초점을 맞춰야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우효의 의아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강송구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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