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빅게임 피처(1)
[강송구! 또 9이닝 완봉승!]
[벌써 시즌 16승! 강송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지구 선두를 유지한 라스베이거스!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스윕을 가져가며 2위와 2.5경기 차이까지 벌리다!]
[강송구, ‘느낌이 좋았다. 특히 커브가 잘 긁혀서 그걸 중심으로 새롭게 볼 배합을 만들었던 것이 승리의 요인인 것 같다.’]
[강철같은 남자 강송구! 여성 리포터의 은밀한 대쉬에도 그야말로 목석같이 서 있다.]
-역시 라스베이거스! 고자들의 도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강송구 폼 미쳤네.
-???: 개객끼... ㅠㅠ
-와……. 그런데 커브가 미쳤던데……. 원래 그렇게 던질 수 있었던가? 소름 돋았음.
-원래 던지던 커브보다 훨씬 각이 다양하고 낙폭의 조절도 쉽게 하는 것처럼 보였음. 근데 더 웃긴 건 그런 커브에 너클 커브까지 같이 던졌다는 거지.
-그런데 왜 라스베이거스는 팀 멸칭이 고자팀임?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음?
-한창 잘 나가는 할리우드 배우인 라나 그리피스가 1년 전 어느 파티에서 라스베이거스 선수들에게 은근히 다가가서 유혹했다가 다 퇴짜맞고는 ‘이 새끼들은 다 고자들이다!’라고 언론에 찡찡거려서 생긴 밈임.
-라나 그리피스 미치게 이쁜데…… 왜?
-몰라……. 그것보다 우리 송구형도 정말 목석같네…….
-ㅋㅋㅋ 인터뷰 영상 봄ㅋㅋㅋ 리포터가 진짜 대놓고 이것저것 유혹하는 몸짓을 보여주는데 표정 변화 없이 ‘네, 아니오.’만 대답하는 거 실화냐구?ㅋㅋㅋㅋㅋ
-진짜 노골적이긴 했음.
“…….”
캐롤 웰링턴이 한 여성 리포터가 강송구를 유혹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이를 꽉 물었다.
그녀의 눈은 그 어느 순간보다 차가웠다.
“미친년.”
그녀가 회사 내부의 적들을 가볍게 정리할 때 보여줬던 눈빛보다 더욱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을 뿐.
강송구의 9이닝 하이라이트가 나올 때는 다시 소녀의 눈으로 돌아가 멍하니 동영상을 바라봤다.
-여기서 잡아냅니다!
-대단합니다! 오늘 캉의 커브는 정말 날카롭습니다. 왜 이 선수가 이번 시즌에 큰 관심을 받고 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깔끔하게 들어가는 초구!
환히 웃는 캐롤 웰링턴.
아무리 봐도 마운드 위의 강송구는 정말 멋졌다.
“평생 라스베이거스에서만 뛰었으면 좋겠는데…….”
그래,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좀 투자해야 했다.
사실, 야구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야구단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었다.
‘캉이 우리 팀에만 계속 뛰어준다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주처럼 개인재산을 털어서 투자까지 할 마음은 충분하지.’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부회장님. 출발할 시간입니다.”
그때 그녀의 비서가 들어왔다.
이제 다시 일해야 할 시간.
강송구를 라스베이거스에 오래 붙잡아두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서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그녀의 두 눈에 의욕이 가득 들어찼다.
* *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원정 3연전이 끝났다.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휩쓴 라스베이거스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으로 움직였다.
클리블랜드 원정 3연전이 기폭제였던 것 같았다.
타자들의 폼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넘어간다!”
“미쳤어! 미쳤다고!”
“조더어어어언!”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 3연전의 첫 번째 경기에서 조던 웨스트버그가 펜웨이 파크의 그린 몬스터를 넘기는 엄청난 비거리의 홈런을 때려냈다.
-넘어갑니다! 그린 몬스터를 넘깁니다!
-와우! 조던 웨스트버그! 366피트의 비거리를 가진 홈런을 때립니다! 그가 그린 몬스터를 넘었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이 폭발했다.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은 보스턴 레스삭스의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르는 족족 무너트렸다.
결과는 당연히 14 대 2로 승리.
보스턴 레드삭스는 폭발적인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첫 경기를 내줬다.
[라스베이거스 연승을 이어나가다!]
[다시 폭발한 라스베이거스의 타선!]
이어지는 2차전.
기세를 잡은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는 이번 경기에서도 매섭게 보스턴 레드삭스를 몰아붙였다.
특히, 전반기 내내 0.190의 타율로 부진하던 앨빈 하인리히가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
차근차근 후반기에 타율을 쌓아 올리던 그는 오늘 경기에서 3번의 홈런을 때려내며 다시금 0.280의 타율로 돌아왔다.
“후우……!”
오늘 경기에서 세 번째 홈런을 때려내며 타율을 어느 정도 복구한 순간 앨빈 하인리히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전반기 때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어떻게 다시 여기까지 왔네?”
조던 델가도가 앨빈 하인리히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점수는 더 크게 벌어졌다.
우효는 입에 파인애플 과육에 잘 적신 밀웜을 입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팀의 분위기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군!
‘고작 7월의 부진으로 망가질 팀은 아니었지.’
강송구의 말처럼 이 팀은 쉽게 무너질 팀이 아니었다. 팀의 중심을 잡은 선수들의 폼이 7월에도 떨어지지 않았기에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었다.
‘타선에서는 카디안 스타우트가 마운드에선 내가 계속 지금의 폼을 유지했던 게 주요했지.’
-와……. 재수 없어.
우효가 먹던 밀웜을 내려놓고 강송구를 바라봤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팀이 7월의 짧은 부진에 빠진 동안 두 선수는 계속해서 자신의 폼을 유지했으니 말이다.
따아악!
“또 넘어간다!”
“오늘 왜 이렇게 홈런이 많이 나와?”
“이번 경기도 ‘E.a.s.y’ 하네!”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이 시끌시끌해졌다. 카디안 스타우트가 시즌 29호 홈런을 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타선의 힘으로 라스베이거스는 2차전에서도 8 대 3으로 승리를 거두며 위닝시리즈를 가져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경기에서도 라스베이거스는 8회 초에 역전 2점 홈런을 때려내며 4 대 3 승리를 가져갔다.
[라스베이거스 또 스윕!]
[6연승을 시작한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속 2.5경기 차이를 유지하다.]
[라스베이거스의 다음 상대는 시애틀 매리너스! 지구 1위를 두고 두 팀이 다시 마주하다!]
[강송구 vs 크리스 피셔! 두 젊은 투수가 맞붙다!]
[16승 4패 ERA 0.62 vs 13승 9패 ERA 3.81]
[과연 크리스 피셔는 강송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시애틀로 향하는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
T-모바일 파크 원정의 첫 번째 경기.
강송구의 상대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젊은 투수인 크리스 피셔였다.
그렇게 시애틀에 도착한 강송구는 모처럼 하루 쉴 시간이 있었기에 우효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답했다.
“밀웜맛 돈까스를 먹으러 간다.”
-밀웜맛 돈까스?
우효의 두 눈이 반짝인다.
하지만 잠시 뒤에 우효가 본 것은 병원이었다.
그래, 동물병원.
-밀웜맛 돈까스를 사준다며! 여긴 병원이잖아!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너! 날 고자로 만들 셈이야? 거짓말이지……. 중성화 수술이라고? 내가? 이 나이에?
우효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강송구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저 잠깐 따끔할 뿐이다.’
-네가 당하는 일 아니라고 막말하지 마!
부르르.
우효가 몸을 떨었다.
고슴도치 계에서 최고 미남인 자신이 고자가 된다고?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절대 안 돼!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방법은 강송구가 손으로 잡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강송구의 몸에 붙어 있을 때는 투명화가 불가능했으니까.
-아……. 아아아!
패닉에 빠진 우효.
하지만 강송구는 무덤덤했다.
‘사실은 중성화가 아니라 건강검진을 위해 찾아온 거지만……. 가만히 놔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우효는 겁에 질려 부르르 떨다가 결국 수용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잠시 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우효가 강송구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나왔다.
-건강검진이었다니…….
중성화를 넘긴 우효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빨빨거리며 강송구의 근처를 빙글빙글 돌았다.
‘딸기를 사달라는 신호군.’
이미 우효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강송구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딸기를 샀다.
-우효오오옷! 딸기 갯또다제!
호텔 방에 들어와서 딸기를 신나게 흡입하는 우효.
강송구는 그런 작은 고슴도치를 보다가 슬쩍 호텔 창문 밖에 비치는 시애틀의 전경을 바라봤다.
8월에도 시원한 시애틀의 날씨.
내일 경기는 아무래도 뭔가 시원스럽게 풀릴 것 같았다.
* * *
크리스 피셔.
2028시즌에 메이저리그에 데뷔.
6월에 콜업이 되어서 3승 3패 ERA 4.81을 기록하며 첫 시작은 그리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애초에 가지고 있던 포텐셜이 워낙 좋았던 선수였기에 29시즌에는 4선발로 기회를 잡았고, 18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9승 13패 ERA 4.84를 기록했다.
그리고 30시즌 13승 13패 3.06의 ERA를 기록하며 포텐이 터지기 시작했고, 이번 시즌도 3점대 중후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애틀의 3선발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정도 기록을 보면 일반적인 야구팬들은 ‘그냥 솔리드한 3선발급 투수가 아니냐?’라고 물어보겠지만, 종종 큰 경기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활약과 조금씩 나아지는 성적을 보면 그저 솔리드한 3선발이라 평가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시애틀의 내부 코치진들은 이번 시리즈의 첫 경기에서 어쩌면 크리스 피셔가 강송구를 상대로 일 한번 내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크리스 피셔의 잠재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가 중요한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절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스 피셔는 누구보다 확실한 ‘빅게임 피처’였으니까.
지구 1위가 바뀔 수 있는 중요한 시리즈의 첫 번째 경기에 그런 크리스 피셔가 등판한다.
거기다 상대는 이번 시즌 AL 최강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강송구였다.
당연히 시애틀 팬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아니, 다른 야구팬들의 관심까지 쏠릴 수밖에 없었다.
“나이스 볼!”
시애틀 매리너스의 불펜 포수인 오마르는 크리스 피셔의 공을 받아주며 고갤 끄덕였다.
‘오늘 크리스의 컨디션이 좋군.’
컨디션이 좋은 날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패스트볼을 자주 던지는 크리스 피셔다.
그런데 불펜에서부터 그런 떠오르는 듯한 느낌의 공의 회전수가 상당한 패스트볼을 연이어 던지고 있었다.
오마르는 확신했다.
‘어쩌면 오늘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을 무너트릴 다윗이 크리스일 수 있겠군.’
역시, 큰 경기에 강한 선수는 남달랐다.
상대가 강할수록 더 빛나는 피칭을 한다.
거기다 집중력과 제구력도 상당했다.
2분할 수준의 제구력을 가진 크리스 피셔는 오늘은 불펜에서부터 상하좌우로 4분할까지 나누며 공을 던졌다.
포수의 미트가 있는 방향으로 정확히 날아드는 공을 보며 불펜코치와 다른 투수들의 눈도 반짝였다.
‘오늘 정말 일을 내겠군.’
‘크리스 피셔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괴물이다. 상대가 그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이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마운드를 오래 지켜줄 거다.’
‘어쩌면 이번 시리즈에서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지구 1위 자리를 되찾을 수도 있겠는데?’
이윽고 몸을 모두 푼 크리스 피셔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오마르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씩 웃었다.
“어때……. 오늘 완투할 수 있겠어?”
그 물음에 크리스 피셔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며 답했다.
“완봉도 해보겠습니다.”
그 대답에 오마르가 고갤 끄덕였다.
“좋아, 올라가라고.”
이윽고 T-모바일 파크의 불펜 문이 열리고 크리스 피셔가 당당히 마운드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T-모바일 파크를 가득 채운 팬들.
크리스 피셔는 기분이 더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경기…….’
이상하게도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