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19화 (119/198)

#119. 커브 마스터(3)

마이크 마조네.

그는 마이너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의 그는 커브를 던졌다.

훌륭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지만, 마이너리그의 타자들을 상대로 아웃을 잡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구종이라고 평가를 받고는 했다.

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

위 세 가지의 구종을 가진 정통파 좌완투수가 될 가능성이 큰 어린 유망주.

그게 마이크 마조네가 받던 기댓값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커브가 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내내 그의 커브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너클 커브, 슬로우 커브, 파워 커브.

다양한 그립과 다양한 릴리스 포인트를 실험하며 자신의 손에 맞는 커브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커브는 발전하지 않았다.

구단 내부 스카우트들의 반응도 좋지 않았다.

‘마이크의 커브는 40점짜리 커브야.’

‘딱 50점만 되도 쓸만한데……. 저런 커브는 메이저리그에서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도 못 써먹지.’

‘커브만 좀 던질 줄 안다면 무조건 메이저리그 콜업인데……. 슬라이더가 정말 끝내주잖아.’

‘슬라이더밖에 없어서 불펜으로 돌리는 게 좋지 않을까?’

‘구속이 너무 느려 최고 93마일이잖아.’

슬라이더 하나만으로 콜업되기에는 마이크 마조네의 재능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만난 것이 더블A의 한 투수 코치였다.

그 만남이 마이크 마조네의 인생을 바꾸었다.

-커브는 감각이고, 체인지업은 기술이다.

그 코치는 그런 말을 하며 커브에 집착하고 있는 마이크 마조네에게 체인지업을 먼저 익히는 것이 어떻겠냐면서 벌칸 체인지업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곧 마이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커브는 감각의 영역이고 자신은 그런 감각이 없기에 절대 좋은 커브를 익힐 수 없다고 말이다.

동시에 체인지업에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종 슬라이더도 익히며 커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정말 큰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이 지금의 마이크 마조네를 만들었고.

결국, 그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1선발이 되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 며칠 전에 막 26살의 생일을 맞이한 젊은 투수가 한 팀의 중심이나 다름이 없는 에이스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거기다 올해 후반기에 그는 더 발전했다.

스리 핑거 체인지업까지 익히며 두 종류의 슬라이더와 두 종류의 체인지업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아직 스리 핑거 체인지업은 실투가 잦은 편이지만, 그 정도 실투를 무시할 만큼 효과는 쏠쏠했다.

사실 마이크 마조네는 스리 핑거 체인지업을 내년에 꺼내 들 생각이었다.

아직 제대로 완성된 구종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시즌 초.

라스베이거스에 똬리를 튼 아시아의 괴물을 상대한 뒤로 그는 생각을 바꿨다.

지금 상태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없다고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는 그 괴물을 마주했다.

웃기게도 그 괴물은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다른 투수가 되어서 마운드에 올랐다.

4회 초.

마운드에 오른 마이크 마조네가 슬쩍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갤 돌렸다.

프로그레시브 필드를 가득 채운 홈팬들이 자신을 보며 팀이 승리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꼭 이긴다.’

저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었다.

그는 클리블랜드의 에이스였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마이크 마조네! 또 삼진을 잡습니다!

-오늘 정말 날카롭습니다! 라스베이거스만 만나면 마이크 마조네의 제구력이 더 날카롭게 빛나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4회 초의 마지막 타자까지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면서 이번 이닝도 깔끔히 막아냅니다.

주먹을 꽉 쥔 마이크 마조네.

확신이 생긴 표정을 지은 그가 홈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다시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찾아온 4회 말.

야유와 함께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 * *

5회 초.

점수는 아직도 0 대 0.

우효는 어째서 강송구가 등판하는 경기만 상대 투수가 저렇게 악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땅볼을 유도합니다! 그대로 삼루수인 데이비드 도넬 리가 공을 잡아서 1루로오오오오! 아웃!

-이번에도 체인지업이었죠?

-상당히 깔끔하게 아웃을 잡아냅니다.

마이크 마조네는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시즌 초처럼 강송구를 상대로 9이닝을 모두 무실점으로 소화하며 버틸 생각이었다.

‘시즌 초에 치렀던 맞대결에서 9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다. 이번 경기에서도 못할 이유는 없다.’

거기다 아무리 강송구가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사람인 이상 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 팀 타자들이 1점만 만들어낼 때까지 버티면 돼.’

따악!

실투가 나오기 무섭게 안타가 나왔다. 하지만 마이크 마조네의 두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남은 아웃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잘 버틴 그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마이크 마조네! 5회 초 1사 2루의 상황을 2개의 삼진으로 잘 막아냅니다!

-대단한 투수전입니다. 시즌 초에 보여줬던 투수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강송구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5회 말.

마이크 마조네가 두 종류의 체인지업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을 괴롭히고 있다면, 강송구는 두 종류의 커브로 클리블랜드의 타자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다고 클리블랜드의 타선이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악!

운이 좋게 타이밍이 맞아 안타를 친 4번 타자 앤드류 본이 고갤 절레 흔들었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었다면 무조건 아웃이었어.’

그만큼 강송구의 커브는 알고도 치기 어려운 마구에 가까운 공이었다.

‘아무튼, 캉을 무너뜨릴 좋은 기회가 왔어.’

앤드류 본이 배팅 장갑을 벗고 주루코치에게 장갑을 건네준 뒤에 천천히 리드를 넓혔다.

그리고 타석에 클리블랜드의 5번 타자가 들어섰다.

무사 1루.

타석에 선 로베르토 캄포스가 번트 자세를 잡았다.

‘희생 번트군.’

조던 델가도가 빠르게 내야수의 위치를 조정했다.

내야수들의 위치가 조금은 앞으로 쏠렸다.

이윽고 강송구의 초구가 날아들었다.

몸쪽 포심 패스트볼.

슈우우욱! 틱!

그 공에 제대로 가져가 번트를 굴린 로베르토.

내야수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2루로 뛴 앤드류 본이 손쉽게 베이스를 밟았고, 로베르토는 1루를 밟기도 전에 아슬하게 아웃을 당했다.

이제 1사 2루의 상황.

다음 타자인 루이스 캄푸사노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경기 첫 번째 타석에서 너무 손쉽게 아웃을 내준 그는 이번 타석에서는 진루타라도 때려서 2루에 있는 앤드류 본을 최소 3루까지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강송구가 셋 포지션을 가져갔다.

초구는 바깥쪽 커브.

오늘 경기에서 강송구가 유난히 초구 커브를 던지는 경향이 있었기에 루이스 캄푸사노도 그 타이밍에 맞춰서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하지만 그의 생각보다 훨씬 떨어지는 타이밍이 빠르고 낙폭이 커서 배트가 허공을 헛돌았다.

‘아직 제대로 적응은 못 했군.’

강송구가 그런 타자를 보고 고갤 끄덕였다.

‘몸쪽 컷 패스트볼.’

이번에는 배트를 내밀지 않고 참은 루이스 캄푸사노는 날카롭게 몸쪽으로 파고든 컷 패스트볼에 혀를 내둘렀다.

‘커브만 생각할 게 아니었어.’

커브의 임팩드가 강렬해서 그렇지, 강송구가 던지는 다른 구종도 수준급을 자랑했다.

커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3구째.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었군.’

-바깥쪽을 노리나 보네.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일단 간을 좀 봐야겠군.’

슈우우욱! 펑!

“볼!”

바깥쪽에 살짝 걸치는 스플리터.

루이스 캄푸사노가 배트를 내밀다 멈췄다.

4구째는 몸쪽 낮은 코스로 빠지는 커브.

“볼!”

이번에도 루이스 캄푸사노는 참았다.

‘낮은 코스를 노리는 게 아니군.’

높은 코스.

그것도 몸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하이 패스트볼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조던이 보통 이런 상황에서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을 종종 요구하기는 했지.’

아마, 그것을 노리는 걸 거다.

그렇게 확신한 강송구가 사인을 보냈다.

몸쪽 높은 코스?

원한다면 던져준다.

하지만 패스트볼은 아니다.

이어지는 5구째.

몸쪽으로 공이 날아들자 루이스 캄푸사노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슈우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공은 빠르게 브레이크가 걸리며 꺾였다.

“아! 너클 커브!”

루이스 캄푸사노가 탄식을 내뱉었다.

떨어지는 공을 던진 뒤에 종종 높은 코스로 패스트볼 계열의 공을 던진다는 것을 파악한 루이스 캄푸사노는 제 생각이 읽혔다는 사실에 혀를 찼다.

‘내가 너무 뻔히 접근한 것 같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기회는 지나갔는데.

이제 상황은 2사 2루가 되었다.

다음 타자는 7번 에릭 오크스였다.

앞선 루이스 캄푸사노와 달리 별다른 장점이 없는 타자이기에 조던 델가도는 초구부터 몸쪽 공을 요구했다.

‘실투가 나와도 다른 타자와 다르게 에릭 오크스는 제대로 때려내지 못할 거다.’

거기다 몸쪽에 약하다는 약점도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것이 신기할 정도로 부족한 것이 많은 타자였기에 강송구도 편히 승부에 임했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윽고 3구 만에 삼진이 나왔다.

2루까지 안착했던 앤드류 본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루용 장갑을 벗으며 고갤 절레 흔들었다.

“진짜 지랄 맞은 녀석이야.”

* * *

6회 초.

마이크 마조네가 마운드에 올랐다.

땀에 젖은 이마를 소매로 급히 훔치고는 로진백을 들어 왼손에 충분히 송진을 발랐다.

“후- 후!”

왼손에 과하게 붙은 송진을 입으로 불어서 털어버린 그는 타석에 들어서는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를 보며 다시금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번에도 루킹 삼진! 마이크 마조네가 삼진을 잡아내며 이번 이닝의 첫 타자를 잡아냅니다!

-정말 환상적인 투수전입니다. 두 투수 모두 지금까지 단 하나의 안타만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마이크 마조네……. 오늘 정말 놀라운 피칭을 보여줍니다. 특히 종 슬라이더와 평소 던지던 체인지업보다 6마일 더 느린 체인지업으로 많은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안타 하나를 더 내줬지만.

마이크는 이번 이닝도 깔끔히 막아냈다.

무실점을 지켜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점점 힘이 부치기 시작했으니까.

‘후우…….’

이상하게 시즌 초에 강송구와 붙었던 경기가 절로 머릿속에서 떠오른 마이크 마조네였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주먹을 꽉 움켜쥔 마이크 마조네.

때마침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도 6회 말에 볼넷 하나를 내줬지만, 금방 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이번 이닝도 아웃 하나를 남겨뒀다.

‘지긋지긋하네.’

마이크가 두 눈을 찌푸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두 투수의 호투.

0의 행진이 계속 이어진다.

투수로서 조금은 답답할 수 있는 상황.

벌컥벌컥 스포츠음료를 들이켠 마이크 마조네가 땀에 젖은 유니폼 상의를 갈아입었다.

그 사이에 강송구가 이번 이닝의 마지막 아웃까지 잡아내면서 결국 이번 이닝도 깔끔히 막아냈다.

-대단합니다! 캉! 그가 이번에도 무실점을 이어나가면서 점수는 계속 0대0의 균형을 지킵니다!

-쉽지 않습니다. 오늘 캉의 커브는 언터처블합니다! 아무도 때려내질 못하고 있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제 경기는 7회 초로 넘어갑니다!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

새로 상의를 갈아입으며 전의를 다지던 마이크 마조네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마운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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