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18화 (118/198)

#118. 커브 마스터(2)

커브는 그런 공이다.

역사가 오래된 구종.

그만큼 많은 발전이 있었고, 반대로 타자들이 그 어떤 구종보다 많은 연구를 한 구종.

모든 변화구 중에서 가장 각이 크고 구속이 느려서 타자를 속이기에 좋지만, 반대로 간파당하면 그 어떤 구종보다 손쉽게 타자들의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강송구는 오늘 경기까지 커브의 구사 비율을 줄이며 새롭게 얻은 커브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구종이라면 금방 써먹을 수 있었지만……. 커브만큼은 완숙에 도달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지.’

그래, 커브는 기본적인 변화구다.

동시에 가장 클래식해서 던지기 쉬운 구종.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완벽하게 익히기 어려우며 실전에서 써먹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종이었다.

그건 아무리 강송구가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도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좀 들였다.

-솔직히 이런 커브를 고작 보름을 투자해서 완벽히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지.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이윽고 1회 말의 두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난번 경기에서는 1번으로 나섰는데 이번 경기에서 2번 타자로 출전하는군.’

프레디 레노가 좌타석에 들어섰다.

-저런 유형의 좌타자는 조금만 힘이 붙으면 1번이 아니라 2, 3번에 놔도 제 몫을 해주지.

확실히 지난 시즌과 비교해서 프레디 레노의 장타율이 제법 오른 것을 강송구는 알고 있었다.

초구는 몸쪽 너클 커브.

깊게 들어오는 공을 프레디 레노가 조용히 지켜보면서 승부가 시작되었다.

“볼!”

2구째.

프레디 레노는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포스를 내뿜는 강송구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시즌 초반과 전혀 다른 느낌이군.’

2구째는 바깥쪽 커브.

강송구의 손에서 공이 떠날 때 프레디 레노는 그 공이 커브라는 것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배트를 내밀 수 없었다.

“스트라이크!”

날카로운 각으로 떨어지는 커브.

바깥쪽에 정확히 걸친 커브의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리던 프레디 레노는 이다음에 몸쪽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강송구의 악랄함을 보며 급히 배트를 휘둘렀다.

“스-윙!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원 볼.

타자에게 좋지 않은 카운트에 몰리자 프레디 레노의 머릿속이 아까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물론, 그 복잡한 머릿속은 금방 정리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프레디 레노는 메이저리그까지 콜업되어서 활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4구째.

몸쪽을 노리려던 프레디 레노는 강송구의 손에서 떠난 공을 보고 커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의 궤적을 머리에서 떠올린 그는 그 궤적에 맞춰 배트를 움직였다.

당연히 아까 강송구가 보여줬던 커브보다 더 떨어지는 위치를 노린 타격이었다.

커브로 노림수를 잘 만드는 투수들은 커브의 궤적과 떨어지는 낙폭을 조절해서 타자를 농락했기에 프레디 레노는 강송구가 무조건 아까보다 훨씬 떨어지는 커브를 던질 거라고 예상했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이 공은 알고도 칠 수 없는 공이었다.

예전 강송구가 던지는 커브가 20-80스케일에서 60~70점 사이의 커브였다면 지금은 80점의 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만큼 지금 강송구가 던지는 커브의 궤적과 폭은 프레디 레노가 잠깐 보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바깥쪽에 꽂힌 커브였다.

구속이 느리기에 그만큼 제구력이 중요한 변화구.

그게 커브이기에 강송구의 바깥쪽 제구력은 그야말로 커브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나 너클 커브와 함께 날아드는 커브는 타자의 눈을 속이기에 매우 훌륭한 볼 배합이었다.

[인디언스의 3번 타자! 무-키! 베-츠으으으!]

전반기와 다르게 후반기 초반에 조금 헤매고 있는 전설이 타석에 들어섰다.

첫 만남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투수를 보며 무키 베츠가 조용히 배트를 들어 올렸다.

“어째 시즌 초보다 더 괴물이 된 것 같네.”

“영감님이 봐도 그렇게 느껴요?”

무키 베츠의 혼잣말을 듣고 조던 델가도가 씩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초구만 좀 양보해줘.”

“그럴 순 없죠. 그랬다가는 제대로 홈런 하나 때릴 거 아닙니까? 레드삭스에서 가장 강력했고, 지금 클리블랜드에서도 가장 뛰어난 선수가 영감님이니까요.”

“쯧……. 엄살도 제대로 못 피우겠네.”

슈우우욱! 펑!

초구부터 날카로운 너클 커브가 꽂혔다.

2구째는 몸쪽 컷 패스트볼.

강송구의 오른손을 떠난 컷 패스트볼이 빠르게 무키 베츠의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가볍게 커트를 만들며 무키 베츠가 노장의 저력을 제대로 뽐내기 시작했다.

그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리빙레전드는 다르네.’

조던 델가도가 혀를 내둘렀다.

이어지는 강송구의 피칭.

다시 바깥쪽 커브.

무키 베츠 바깥쪽으로 향하는 커브의 궤적과 낙폭을 보며 두 눈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궤적과 낙폭이 상당하다. 거기다 살짝 뜨는 것처럼 보여서 이 공이 커브인지는 금방 알아낼 수 있는데, 공이 떨어지는 타이밍은 전혀 모르겠어.’

이런 커브는 리그 최상위 투수 중에서도 매우 극소수만 던질 수 있는 공이었다.

그런 공을 지금 강송구가 던지고 있다는 것이 무키 베츠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다가왔다.

‘곤란하군.’

안 그래도 상대하기 곤란한 상대가 더 발전해서 왔다. 물론, 복잡한 속과 다르게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이어지는 피칭.

강송구가 던진 커브에 다시금 배트가 나왔다.

궤적과 낙폭의 차이가 얼마만큼인지 파악하기 위해 배트를 휘두른 무키 베츠였다.

결과는 당연히 헛스윙 삼진.

하지만 무키 베츠는 방금 강송구가 던진 커브의 궤적과 낙폭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타석을 노려봐야겠어.’

노장의 두 눈이 평소보다 더 번뜩였다.

그렇게 1회 말 수비가 끝났다.

* * *

2회 초.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마이크 마조네를 상대로 역시나 고전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안타도 없었다.

그렇다고 볼넷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치겠네……. 마이크 마조네만 만나면 왜 이렇게 타격이 꼬이는 것 같이 느껴지지?’

‘답답하군.’

‘진짜 저 체인지업은 마구야! 마구!’

‘왜 하필 우리랑 상대할 때 작두에 탄 것처럼 공을 던지는지 모르겠네.’

마이크 마조네의 호투.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두 눈을 찌푸렸다.

-환상적인 체인지업! 마이크 마조네가 오늘도 그 날이 찾아온 것처럼 날뜁니다!

-체인지업이 정말 명품입니다. 저 체인지업만 계속 유지하면 마이크 마조네는 구속이 지금보다 훨씬 느려져도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롱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헛스윙 삼진!

-아……. 정말 감탄만 나오네요.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저 체인지업은 마구다.

우효도 저 공을 보고 인정했다.

-저 친구 연봉의 30%는 저 체인지업이 만든 지분일 거야. 진짜 환상적이네.

‘확실히 체인지업이 뛰어나군.’

강송구도 인정했다.

시즌 초반에 봤던 것보다 더 날카로웠다.

빠르게 라스베이거스의 공격이 끝났다.

다시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

그는 커브-너클 커브-패스트볼의 볼 배합에 ‘스플리터’를 섞으며 클리블랜드 타자들의 골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환상적인 스플리터!

-캉이 7구 승부 끝에 아웃을 잡아냅니다!

-유격수가 깔끔히 땅볼을 처리하는군요.

-오늘 경기 캉이 준비한 볼 배합의 중심은 패스트볼과 커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커브의 구사 비율을 크게 늘려서 타자들의 눈을 속이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군요.

2회 말이 끝났다. 강송구는 다시 내려갔고 3회 초에 마이크 마조네가 마운드에 올랐다.

7-8-9로 이어지는 라스베이거스의 하위타선을 상대로 그는 조금의 방심도 없었다.

“홀리 카우!”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날카로운 패스트볼을 몸쪽에 정확히 꽂아 넣는 마이크 마조네를 보며 오늘 경기 7번 타선에 배치된 조던 웨스트버그가 비명을 질렀다.

시즌 초반에 봤을 때보다 더 날이 섰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무기력하게 헛스윙을 하며 물러나는 조던 웨스트버그는 자신의 다음 타자인 조던 델가도에게 귀띔했다.

“체인지업은 절대 노리지 마.”

“그 정도야?”

“장담하는데 오늘 저 체인지업은 언터처블이야.”

조던 델가도는 ‘설마……. 그 정도 하겠어?’란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지만, 단 2구 만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체인지업을 노리고 노골적으로 기다리는데도 평소보다 훨씬 떨어지는 각이 큰 마이크의 체인지업에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미키 스토리 감독이 타격 코치를 불렀다.

“루이스! 도대체 왜 우리 타자들이 저 망할 투수의 체인지업을 제대로 때리지 못하는 건가?”

최근 팀 타선의 부진으로 표정이 좋지 않은 루이스 알레잇 타격 코치의 표정이 더 우중충해졌다.

“두 종류의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그……. 메켄지 고어처럼 말이죠.”

“음…….”

“보시면 알겠지만, 외계인이 생각날 수준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과 다르게 조금 형편없는 구위를 보이며 느린 패스트볼처럼 날아드는 체인지업이 있습니다.”

“그게 두 번째 체인지업이고?”

“네, 아마 스리 핑거 체인지업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개나 소나 체인지업을 두 개나 던지는군.”

미키 스토리 감독의 투덜거림에 루이스 알레잇 타격 코치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스리 핑거 체인지업을 노리고 기다린다면 충분히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

턱을 쓰다듬는 미키 스토리 감독.

하지만 썩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이크 마조네가 그걸 모를 투수가 아니니까.

그리고 미키 스토리 감독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그의 손에서 이제 슬라이더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환상적인 슬라이더입니다!

-아……. 정말 점점 완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마이크 마조네입니다. 슬라이더도 시즌 초반보다 훨씬 날카로워진 느낌입니다. 제대로 걸쳤네요.

3회 초.

두 개의 아웃 카운트가 순식간에 지워졌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도 마이크 마조네는 식어버린 호밀 수프를 마시듯이 깔끔히 잡아냈다.

루이스 알레잇 타격 코치의 표정은 더 썩어들어갔다.

지금의 피칭에서 저 슬라이더까지 섞이면서 마이크 마조네는 더욱 공략하기 어려운 투수로 변모했다.

미키 스토리 감독도 얼굴을 찌푸렸다.

“서부지구 1위를 탈환하는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 상상도 못 했군. 그것도 북부지구 4할대 승률을 자랑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하는데 말이야.”

그의 빈정거림에 루이스 알레잇 코치의 한숨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지금 그는 죄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의 지도가 후반기에 접어들어서 부진에 빠진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죄가 있으니 조용히 고갤 숙일 수밖에…….

반대로 투수 코치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는 오직 강송구의 컨디션만 살폈다.

그거 하나만 잘해도 미키 스토리 감독의 눈총을 받지 않고 편히 코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거기다 그의 밑에 있는 투수들은 모두 후반기에도 크게 무너지지 않고 제 몫을 해주고 있었다.

이윽고 끝이 난 3회 초.

다시 강송구가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로 향했다.

두 종류의 체인지업을 던지는 마이크 마조네에게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애를 먹듯이 클리블랜드의 타자들도 강송구가 던지는 두 종류의 커브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캉! 이번에도 헛스윙 삼진!

-소름이 돋는 피칭입니다. 캉이 오늘 제대로 각오를 하고 마운드에 오른 것 같습니다.

-7월에 기록한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의 신기록을 달성한 뒤로 한 경기에 잡아내는 삼진의 개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미키 스토리 감독과 라스베이거스의 타격 코치가 마이크 마조네의 체인지업에 울화통이 터지는 것처럼.

클리블랜드의 감독과 타격 코치는 강송구가 던지는 두 종류의 커브에 애를 먹고 있었다.

“Fxxk! 도대체 왜 저런 X같은 공을 때려내지 못하는 거야? 노골적이게 던져주고 있잖아! 거기다 공을 던질 때 커브인지 알 수 있다며? 그러면 적어도 안타 하나쯤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물론, 미키 스토리 감독보다 클리블랜드의 감독이 더 화가 가득 들어찬 것처럼 보였다.

클리블랜드의 타격 코치는 라스베이거스의 루이스 알레잇 코치보다 더 주눅이 든 표정이었다.

“알고도 치기 어려운 공이 어디 있어? 그런 공은 존재하지 않아! 그냥 너희가 타석에서 게으른 것이겠지.”

선을 넘는 망언까지 하며 화를 내는 클리블랜드의 감독을 보며 무키 베츠는 이번 시즌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올해에 제대로 된 성적을 남기지 못하면 경질이라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 히스테릭하군.’

어쩌겠는가.

이게 팀이고 이게 야구인데.

무키 베츠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닫았다.

이윽고 강송구가 3회 말의 마지막 타자를 잡아내기 무섭게 글러브를 들고 다시 필드로 향했다.

마운드에 올라선 마이크 마조네.

팀의 1선발 투수의 등을 보며 무키 베츠가 ‘팡팡!’ 글러브를 두들기고는 자세를 잡았다.

오늘 경기 최대한 자신 쪽으로 오는 공을 모두 처리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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