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너 삼진 몇 개나 해봤냐?(4)
속이 탔다.
미키 스토리 감독의 속은 까맣게 탔다.
‘미치겠군.’
하필이면 왜 지금 조던 델가도가 그런 실수를 했을까?
돔구장의 에어컨도 막을 수 없는 더위 때문에?
아니면 케오니 카바코의 큰 스윙에 시야가 가려서?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지만…….’
강송구가 더그아웃으로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에이스가 괜찮다니 안심이지만……. 오히려 강송구를 제외한 모두가 방금 상황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다.
‘1사 1, 3루 타석에는 라이언 제퍼스.’
좋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달라질 것은 없었다.
치면 파울이 될 확률이 높은 코스로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밀어 넣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라이언 제퍼스는 자신의 손에 찌릿하게 전해지는 강송구의 구위를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경기 후반까지 이런 구위가 유지되다니…….’
2구째는 몸쪽 너클 커브.
라이언 제퍼스는 재능의 차이를 느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채울 수 없는 간극.
아마, 사람들은 저 괴물을 보며 ‘천재’라 할 것이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로 몰린 그가 잠깐 타임을 걸고 타석 밖으로 빠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삼진을 잡으려 하겠지?’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기록을 앞두고 있다.
자신이라도 삼진을 잡는 피칭을 위할 것이다.
하지만 강송구는 기록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3구째 우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싱커를 던졌다.
“볼!”
움찔!
‘여기서 싱커?’
삼진을 잡아야 하는 투수가 우타자를 상대로 땅볼유도에 유리한 싱커를 던졌다.
‘카운트를 잡으려는 공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범타를 유도하려는 공이었다.
라이언 제퍼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경기 최다 탈삼진까지 5개가 남았잖아! 그러면 지금쯤 머릿속이 삼진으로 가득 차야 하는 거 아니냐고!’
4구째.
다시금 몸쪽 싱커.
따악!
“파울!”
강송구의 연이은 싱커를 보고 라이언 제퍼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마운드를 바라봤다.
‘진짜 기록은 상관없이 팀의 승리를 바라는 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바라본 라이언 제퍼스의 앞으로 강송구가 5구째 공을 던졌다.
싱커가 잔상에 남은 그의 앞에 날아드는 공.
‘아!’
배트를 내밀어 커트하려는 그에게 쉽게 대응할 수 없는 공이 바로 날아들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캉! 20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큰 위기를 넘깁니다! 캉의 위닝샷은 역시나 80마일 중반의 너클 커브였습니다!
-오늘 특히 저 구종으로 재미를 많이 보고 있거든요? 미네소타 트윈스의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 20번째 삼진을 잡아낸 강송구.
하지만 아직도 이닝은 끝나지 않았다.
2사 1, 3루.
위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1사 1, 3루랑 2사 1, 3루랑 차원이 다르지.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아웃 카운트 하나 차이지만 느끼는 부담감의 차이는 전혀 달랐다.
타석에는 1번 타자 알렉산더 볼가르.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가 될 수 있는 그가 다부진 얼굴을 하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도 좌타석에 서는군.’
마이너 시절과 메이저리그 첫 시즌에는 스위치 히터로 활약했던 알렉산더 볼가르였다.
‘오늘 경기 변수라면 알렉산더 볼가르가 우타석에 서는 것이었는데……. 그 부분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초구는 좌타자 바깥으로 크게 빠지는 싱커.
알렉산더 볼가르는 처음 타석에 설 때와 다르게 이번 타석에서는 거침없이 초구부터 배트를 휘둘렀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경기 초반과 다르게 급히 휘두른 배트.
조던 델가도와 강송구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이어지는 2구째도 다시 바깥쪽 공.
이번에는 9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따아악!
“파울!”
2구째에도 배트를 내민 알렉산더 볼가르.
경기 초반과 다르게 상당히 공격적으로 배트를 내미는 타자를 보며 조던 델가도가 사인을 보냈다.
이런 타자를 상대로는 낮게 떨어지는 공이 효과적이니까.
‘너클 커브? 나쁘지 않지만…….’
과연 알렉산더 볼가르가 너클 커브에 속을까?
강송구가 모자챙을 만진 뒤에 사인을 보냈다.
아까처럼 낮게 원바운드하는 너클 커브.
조던 델가도의 두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고는 씩 웃었다.
아까 자신이 했던 실수가 떠올랐다.
‘그만큼 날 믿는다는 뜻이겠지?’
조던 델가도가 고개를 끄덕이고 미트를 내민 것을 확인한 강송구가 바로 공을 던졌다.
“볼!”
그리고 아까와 다르게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내는 조던 델가도를 보며 그가 고갤 끄덕였다.
동시에 알렉산더 볼가르가 원하는 공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공에는 공을 내밀지 않을 생각이군. 바깥쪽을 최대한 커트하면서 낮은 공은 거른다?’
몸쪽.
상대가 노리는 것은 몸쪽으로 쭉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패스트볼을 노리는 상대에겐 뭐다?
‘체인지업이지.’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의 배트를 아슬하게 피해서 포수의 미트에 완벽히 틀어박히는 강송구의 체인지업.
알렉산더 볼가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삼진! 오늘 경기 21번째 삼지이이인!
-캉의 도전은 계속 이어집니다! 대기록까지 남은 삼진은 3개! 그리고 남은 아웃도 3개입니다. 광고 보고 오시죠.
터벅터벅.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 0 vs 0 미네소타 트윈스]
-실시간 중계방-
-주모오오오오오오! 여기 21번째 국뽕 추가요!
-이제부터 K는 삼진이 아니라 국뽕의 K다.
-미쳤네; 오늘 진짜 날 잡은 듯;
-일단 메이저리그에서 0점대 평균자책점이 도른거지; 진짜 이번 시즌 폼 미쳤네;
-와……. AL 최강 타선 두 팀 꼬락서니 봐랔ㅋㅋㅋ 어떻게 지금까지 두 팀 모두 0점이지?
-오늘 강송구의 왼손은 완벽하다.
-9회 초에 삼진 3개만 잡으면 대기록이지?
-ㅇㅇ 23개가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이면서 9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으니까.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까지 남은 삼진은 3개, 아웃 카운트도 단 3개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
8회 말.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이 정적에 휩싸였다.
‘캉이 위기까지 넘기며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데……. 아직도 점수는 0대0이 계속 이어지고 있네.’
‘어떻게든 이번 이닝에 점수를 만들어야 해.’
‘오늘 같은 경기에서 캉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하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최악일 것 같은데…….’
그리고 그들의 염원처럼 8회 말 2사 2루의 상황에서 대타자로 들어선 아르투로 맨데즈가 우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때려내면서 더그아웃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넘어갑니다아아아아아!
-드디어 나온 점수! 드디어 라스베이거스가 8회 말에 2점을 거머쥐며 앞서나갑니다!
-여기서 라스베이거스의 대타 작전이 성공합니다.
-아르투로 맨데즈가 우타자면서 좌완을 상대로 정말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거든요?
-우투수를 상대로 0.174의 타율과 다르게 좌투수를 상대로는 0.293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죠.
그렇게 8회 말이 끝났다.
0 대 0의 팽팽한 균형이 깨졌다.
이제 점수는 2 대 0으로 강송구가 9회 초를 깔끔히 막으면 라스베이거스가 승리한다.
그리고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9회 초.
라스베이거스의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가득 채운 홈팬들이 숨을 죽이고 마운드를 바라봤다.
-캉이 오늘 경기의 마지막 이닝이 될 수 있는 9회 초를 막기 위해서 마운드에 오릅니다.
-전반기에 벌써 약 140이닝을 넘게 던졌는데……. 이런 기세로 가면 이번 시즌 거의 230이닝을 넘게 소화할 수 있다는 자료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투수입니다. 특히 캉이 많은 이닝을 소화해도 혹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왼손과 오른손으로 모두 공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라이브볼 시대에 나타난 데드볼 시대의 에이스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왼손에 글러브를 낀 강송구.
오늘 경기의 마무리는 오른손이 할 것이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타자들은 그런 강송구를 보며 어쩌면 이번 이닝이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볼 만하다.’
‘100마일의 공을 본 뒤에 나오는 90마일 초반의 공이야. 충분히 잡아낼 수 있어.’
‘아무리 제구력이 뛰어나도 실투가 한 번쯤은 나올만한 시간대야. 실투만 잘 노려보자.’
타석에는 미네소타의 2번 타자.
헤스턴 커스태드가 들어섰다.
오늘 경기 강송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그가 단단히 기합을 넣으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초구는 몸쪽 낮은 코스로 빠지는 스플리터.
“볼!”
헤스턴 커스태드는 초구를 지켜봤다.
이어지는 2구째에 강송구가 본격적으로 바깥쪽 코스로 공을 찔러넣으며 시동을 걸었다.
“스트라이크!”
절묘하게 바깥쪽 존에 걸치는 컷 패스트볼.
헤스턴 커스태드는 90마일의 컷 패스트볼을 보며 이번 승부도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확실하게 변수를 줄인다.’
강송구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제3구.
낮게 깔린 체인지업이 타자의 바깥쪽에 낮게 떨어지며 헛스윙을 제대로 유도했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의 헤스턴 커스태드.
강송구는 그런 타자의 표정을 살피더니 바로 사인을 보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슈우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경기 22번째 삼진!
-캉이 이제 2개의 아웃과 2개의 삼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방금 삼진을 잡은 공은 커브였죠?
-71마일의 커브였습니다. 상당히 낙차가 큰 커브에 헤스턴 커스태드가 당했습니다.
K! K! K! K! K! K! K! K!
홈팬들이 외치는 K 시그널.
타석에 들어선 미네소타의 3번 타자.
딜런 카터가 라스베이거스 홈팬들이 내뱉는 외침에 질린다는 표정으로 배트를 들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Fxxk…….”
초구는 너클 커브.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 배트를 휘두른 딜런 카터가 낮게 떨어지는 공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이어진 2구째 피칭에서는 타자의 속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너클볼이 튀어나왔다.
“스트라이크!”
거기다 너클볼이 제대로 걸쳤다.
아니, 걸쳤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공은 당연히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빠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23번째 삼진을 잡았다.
이제 대기록과 타이를 기록.
남은 것은 하나의 아웃과 삼진뿐이었다.
타석에 들어서는 미네소타의 4번 타자인 올랜도 에스피노자가 반쯤은 포기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물론, 강송구는 방심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은 사냥꾼이다. 저런 표정 뒤에 그가 던질 실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절대 방심은 금물이지.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동시에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그의 오른손.
“스트라이크!”
좌타자 몸쪽으로 파고든 컷 패스트볼에 에스피노자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엉성한 공 하나만 던져주면 안 되나?’
물론, 저 괴물이 그런 공을 던져줄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공을 던져주면 의심해야지.
2구째.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에스피노자가 배트를 참았다.
“볼!”
하지만 3구째 바깥쪽에 절묘하게 걸친 커브에 배트를 내밀었다가 본전도 뽑지 못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이제 남은 스트라이크는 단 하나.
순간 에스피노자는 번트까지 생각했다.
‘그런 예의 없는 짓거리는 할 수 없지.’
그리고 강송구의 마지막 공이 날아들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순간 777 베가스 그라운드가 들썩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팬들의 함성으로 요동치는 경기장.
동시에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이 오늘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