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여름의 시작(1)
우효는 요즘이 너무 좋았다.
강송구가 알아서 척척 잘하고 있었기에 이 작은 고슴도치에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생겼다.
거기다 강송구가 무한히 제공하는 다양한 과일과 견과류는 물론이고 고소한 밀웜을 보며 그야말로 여기가 현실에 존재하는 천국과 다른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효는 요즘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깐이었다.
-으…… 으음!
놀고. 먹고. 자고.
백수처럼 생활한 끝에 얻은 ‘살’.
0.7㎏이었던 이 작은 고슴도치가 이제 1㎏이라는 것을 깨달은 강송구가 처음 보여줬던 그 표정은 우효도 처음 보는 당혹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우효의 다이어트 전쟁이 말이다.
-훅! 훅! 훅!
두 다리로 일어난 우효가 두 앞발을 매섭게 휘두르며 비닐봉지와 톱밥으로 만들어진 샌드백을 두들겼다.
뽁! 뽁! 뽁!
매서운 주먹.
미니 샌드백이 흔들린다.
우효의 두 눈은 차가웠다.
슈우우욱! 파바바바밧!
이어지는 콤비네이션.
작은 고슴도치의 몸에서 무하마드 알리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처럼 두 주먹에서 유성이 뿜어져 나왔다.
파바밧! 파바밧! 파밧!
이윽고 흔들리던 미니 샌드백이 ‘펑!’ 하고 터지며 비닐봉지 사이로 톱밥이 흘러나왔다.
-후후후……! 이 몸의 주먹도 녹슬지 않았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우효.
이 정도면 동물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쉽게 0.8㎏까지는 뺄 수 있겠어. 우효호홋! 슉! 슈슈슉! 이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야! 내 앞발에서 나오는 소리지! 슉! 슈슈슈슈슉!
자신감이 넘치는 우효.
하지만 강송구의 생각은 달랐다.
‘무조건 동물병원에 데려가야겠군. 중성화를 시켜서 조금 조용히 만들어야겠어.’
움찔. 부르르르르.
때마침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부르르 몸을 떤 우효가 주변을 황급히 둘러봤다.
-뭔가……. 뭔가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는데?
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우효.
그런 우효를 멀리서 지켜보던 강송구가 다시 한번 중성화의 의지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양키스 원정 첫 번째 경기에서 강송구의 9이닝 호투로 승리를 거둔 라스베이거스는 그 기세를 타 다음 경기에서도 6 대 0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부상에서 복귀한 켄 크로윈의 복귀전이었던 이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양키스의 투수가 빠르게 무너진 것도 원인이었지만, 재활을 깔끔히 끝내고 마운드에 오른 켄 크로윈도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를 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진 양키스와 3연전의 마지막 경기도 앞선 두 경기가 비슷하게 흘러가며 라스베이거스가 스윕을 가져갔다.
완벽한 승리.
라스베이거스는 37승 26패로 AL 서부지구 2위와 차이를 더 벌리며 조금씩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장점이라면 강한 타격 능력입니다. AL 홈런 1위, AL OPS 1위, AL 타율 4위를 기록한 타선은 항상 기대 이상의 타격 능력을 보여주죠.
-맞습니다. 그렇다고 라스베이거스의 마운드가 약한가? 그렇게 묻는다면 아닙니다.
-네, AL에서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은 팀이며 불펜도 AL에서 평균자책점이 4위나 되죠. 그 외 다양한 지표에서도 AL 최고의 팀은 라스베이거스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6월 중순이고…….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았기에 낙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라스베이거스는 어쩌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디비전 시리즈는 물론이고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쓸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은 라스베이거스의 약진을 두고서 ‘드디어 모아둔 유망주들이 다 터졌구나!’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유망주들은 홈으로 찾아온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사막기후 맛을 보여주며 왜 라스베이거스가 요즘 잘 나가는지를 증명했다.
-캉! 이번 경기에서도 완봉승을 기록하면서 어마어마한 페이스를 이어나갑니다!
-대단합니다! 라스베이거스! 지구 2위인 LA 에인절스와 4경기 차이를 벌리며 앞서나갑니다!
-이번 승리로 탬파베이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는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입니다!
탬파베이 레이스와 마지막 경기에서 등판한 강송구가 다시금 완봉승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NL의 신생팀인 오스틴 아이소톱스가 아직도 지구 꼴찌로 허우적거리는 것과 전혀 다른 행보였기에 라스베이거스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강송구 시즌 12승 기록! 라스베이거스 AL 서부의 최강자로 등극하는가?]
[8이닝 3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낸 강송구!]
[다음 상대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8이닝 2실점의 호투를 기록한 켄 크로윈! 팀은 6 대 3 승리!]
[오클랜드 3연전의 두 번째 경기에서도 승리를 가져가며 위닝 시리즈를 확정 지은 라스베이거스!]
이어진 오클랜드와 경기에서도 라스베이거스는 AL 서부지구 강팀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며 승리를 쌓았다.
그리고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문제가 터졌다.
배트 플립이야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제 모든 투수가 배트 플립을 아니꼽게 보지 않았으니까.
투수도 마운드에서 포효도 하고 삼진 세레머니도 가능했기에 딱히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카디안 스타우트가 홈런을 친 뒤에 공을 오래 지켜본 것이 원인이었다.
그 부분은 아직도 불문율이었다.
그래서 빈볼이 나온 것이었다.
당연히 결과는 벤치 클리어링이 있었다.
강송구는 빠르게 더그아웃을 튀어나갔다.
“캉을 막아!”
“상대를 죽일 거야! 캉이 상대를 죽일 거라고!”
“Fxxk! 덩치도 큰 주제에 발이 왜 이렇게 빨라?”
“캉! 진정해! 진정해!”
하지만 그 야수와 같은 모습을 보고 오히려 놀란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이 강송구를 붙잡느라 고생을 조금 했다.
2미터 가까운 거인이 누구보다 빠르게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선수 몇몇이 몸을 움찔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물론, 강송구는 주먹을 휘두를 생각이 없었다.
그냥, 벤치 클리어링이니 뛰쳐나간 것뿐이었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이 끝나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치른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는 패배했다.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6월.
점점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은 젊다.
그만큼 체력적인 여유가 넘친다.
하지만 길고 긴 정규시즌을 소화하기에는 아무리 젊은 선수들이라고 해도 체력적으로 부족함을 느낀다.
그 첫 번째 고비가 바로 무더운 더위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애틀 원정은 정말 땡큐야.”
랜디 에드워즈의 말에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 몇몇이 고래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라스베이거스의 홈은 너무 더웠다.
오클랜드를 홈으로 불러서 치른 3연전의 평균 기온은 37도였고, 최고 온도는 40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사막기후였다.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은 땀을 뻘뻘 흘리며 라스베이거스의 사막기후와 싸워야 했다.
그에 반해 시애틀은 달랐다.
평균 기온은 19도.
최고 기온은 21도로 그야말로 라스베이거스와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만큼 시원했다.
“돔구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진짜 쪄 죽었을 거야.”
“레인저스처럼?”
“그렇지. 그러니 신께 감사하라고! 아메리카의 땅을 이렇게 넓게 만들어준 것에 대해서 말이야.”
“뭐……. 다 좋긴 한데 땅덩이가 너무 넓어서 원정 다니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
시끌시끌 떠드는 선수들 사이로.
오늘 경기의 선발 투수인 강송구가 나타났다.
‘날씨가 제법 쾌적하군.’
-라스베이거스와 비교할 수 없네. 역시 시애틀이야. 기온이 확실하다니까?
우효도 고갤 끄덕이며 모처럼 몸에서 땀이 흐르지 않는 것에 작은 감사함을 느꼈다.
‘6월도 이렇게 더운데 7~8월에는 라스베이거스는 그야말로 찜통이 되겠군.’
-그래도 사막기후라서 습도가 없어서 다행이야. 한국이나 일본처럼 습기가 가득한 무더위였어봐라. 아마 지금보다 땀을 더 뻘뻘 흘리며 고생하고 있었을걸?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때마침 오늘 강송구와 함께 호흡을 맞출 조던 델가도도 상큼한 표정으로 라커룸에 들어왔다.
그는 대충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에 강송구의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에게 다가왔다.
“몸은 어때?”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아서 나쁘지 않군.”
“다행이네.”
지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경기에서 강송구가 상대 타선에 3실점을 허용한 이유도 라스베이거스의 무더위 때문에 잠을 조금 설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애틀은 달랐다.
정말 편히 잠을 잤다.
“그런데 에어컨은 잘 사용 안 하나 봐?”
“감기에 걸릴까 봐 잘 때 에어컨을 틀어놓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그때가 기온이 이상해서 그렇지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제법 시원한 편이라서 선풍기로도 충분해.”
“그렇긴 하지.”
조던 델가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곧 마운드에 오를 시간이 다가왔다.
* * *
시애틀 매리너스의 앤디 맥티그 감독은 AL 서부지구 순위표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AL 서부지구 순위표]
1,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 41승 28패
2, 시애틀 매리너스 38승 32패
3, LA 에인절스 37승 33패
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33승 37패
“라스베이거스는 더 앞서나가는군.”
AL 서부지구는 역시 쉽지 않았다.
동부지구가 양키스와 보스턴의 부진으로 볼티모어와 블루제이스의 2파전으로 변한 것과 다르게 AL 서부지구는 팽팽한 3파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오클랜드도 마냥 쉬운 팀이 아니다.’
2위인 시애틀과 5경기 차이.
이 차이는 제법 큰 것처럼 보여도 순식간에 줄어들 수 있는 차이였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피 말리는 순위싸움 덕분에 앤디 맥티그 감독은 스트레스로 생긴 위염 때문에 요즘 약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마운드로 돌렸다.
1회 초를 무실점으로 가뿐히 막아낸 매리너스의 투수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어서 1회 말의 마운드에 오른 상대 팀 투수.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한국에서 데려온 괴물.
강송구가 연습구를 던지고 있었다.
슈우우욱! 펑!
앤디 맥티그 감독은 위가 더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오늘 시작은 왼손인가?”
“입이 바짝 마르는군.”
“저 공을 어떻게 때려내지?”
시애틀 매리너스의 타자들도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그런 강송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앤디 맥티그 감독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저 괴물을 어디서 데려온 거야?’
저런 투수는 처음 봤다.
아니, 어린 시절 직접 두 눈으로 봤던 랜디 존슨도 있었으니 두 번째라고 보는 게 옳았다.
‘하……. 랜디 존슨이라니.’
고작 메이저리그 1년 차 투수였다.
그런 투수에게서 전설을 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았다.
당연한 비교였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 괴물은 메이저리그의 전설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강송구가 연습구를 끝냈다.
그렇게 시작된 1회 말.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그와 동시에 T-모바일 파크에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살랑이기 시작했다. 앤디 맥티그 감독은 시원한 바람 속에 담긴 여름의 향기가 느껴졌다.
“지독한 무더위가 찾아오겠군.”
그는 제발 그 무더위가 7~8월에 작은 변수를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마운드를 바라봤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때마침 강송구가 삼진을 잡아내고 있었다.
앤디 맥티그 감독은 다시 위가 조금씩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