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좌완 특급(4)
자비온 커리의 등판은 5회 초까지였다.
5이닝 4실점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간 자비온.
일반적인 팀에서 3선발이 5이닝 4실점의 경기력을 보였다면 상당히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파멸적인 선발진 사이에서는 제법 준수한 성적이었다.
다시 찾아온 5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셔튼 아포스텔이 자세를 잡았다.
빠르게 사인을 교환한 강송구와 조던 델가도.
곧바로 강송구의 와인드업이 이어졌다.
“스-위잉! 스트라이크!”
5회 말의 첫 타자.
셔튼 아포스텔이 이를 꽉 물었다.
강송구가 던진 커브에 배트가 헛나왔다.
‘오늘 캉은 컷 패스트볼과 커브만 던지고 있다. 다른 구종도 주의해야 해. 언제 던질지 모르니까.’
잠깐 타석에서 물러난 셔튼 아포스텔.
그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엉망진창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수라도 메이저리그 선수였다.
이제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에 충분히 적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을지 모르는 날카로운 변화구가 문제였다.
‘거기다 캉의 구위도 문제야. 조금만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배트가 밀려서 내야 뜬공으로 끝나겠지.’
강송구의 두 번째 공도 커브였다.
후욱!
그의 팔이 휘둘러지기 무섭게 높은 위치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는 연이어 셔튼 아포스텔을 속였다.
아까보다 훨씬 더 떨어지는 커브.
“스-윙!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투 아웃이 되었다.
중심이 무너진 셔튼이 혀를 내둘렀다.
‘커브도 무리야.’
쉽지 않았다.
거기다 저 커브는 오늘따라 더 날카로워 보였다.
아마도 저 동양인 투수의 강속구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이반 로드리게스 감독이 눈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타이밍을 완전히 뺏겼군.”
“패스트볼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 내내 캉은 패스트볼로 윽박지르는 피칭을 계속 보여줬으니까요.”
“연이어 커브를 던질 거라는 예상을 못 했던 건가?”
그의 질책 섞인 말에 투수 코치가 셔튼을 두둔했다.
“선발 투수의 패스트볼이 좋은 날에는 타자들이 투수의 패스트볼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온종일 그 패스트볼만 떠올리죠.”
“…….”
“그리고 오늘 캉의 왼손에서 나오는 평균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은 정말 날카롭습니다.”
그래, 투수 코치의 말이 옳았다.
오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타자들은 강송구의 패스트볼을 때려내며 파울을 만들었지만, 변화구를 제대로 때려내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니까.
“패스트볼과 커터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
“타자들의 머릿속에는 지금 캉의 포심과 다양한 변형 패스트볼이 아른거릴 겁니다.”
“좋지 않군.”
이반 로드리게스 감독이 두 눈을 찌푸렸다.
두 번의 커브를 던진 뒤.
강송구를 바라보는 셔튼이 이를 꽉 물었다.
‘이제 패스트볼을 던지겠지.’
3연속 커브?
이제 커브를 던진다면 때려낼 자신이 있다.
어느 정도 눈에 익었으니까.
하지만 강송구가 선택한 것은 다른 구종이었다.
부우우웅!
셔튼 아포스텔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마구.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헛스윙 삼진.
강송구가 던진 승부구는 패스트볼을 노리는 타자들에게 치명적인 무기였다.
-캉이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아냅니다!
-완전히 타이밍을 빼앗았죠?
-맞습니다.
-5회 말의 첫 타자를 깔끔히 잡아내면서 오늘 경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타선을 꽁꽁 묶어두고 있는 캉입니다.
셔튼 아포스텔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여기서 갑자기 체인지업이라고?’
허탈했다.
셔튼이 터벅터벅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동안에 다음 타자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타석에는 디트로이트의 5번 타자인 헤이든 던허스트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장타를 때려내는 힘이 있는 타자입니다. 지난 시즌 고작 93경기에 출전해서 많은 22개의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포수로서의 가치도 상당하죠?
-맞습니다. 지난 시즌도 그렇지만 부진한 디트로이트에서 유일하게 돈값을 하는 선수입니다.
포수 헤이든 던허스트가 타석에 들어섰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조던 델가도와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받으며 우승을 노리는 컨텐더팀에서 활약하고 있었겠지만, 그의 발목을 잡는 잦은 부상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장기 계약을 하며 주저앉았다.
그는 야구에 큰 의욕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재능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 시즌 제한된 출전 시간 동안에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슈우우욱! 빠악!
-삼유간을 빠져나가는 타구!
-캉이 오늘 경기 첫 번째 안타를 허용합니다!
패스트볼을 제대로 때려냈다.
1루를 지나 2루까지 닿을 만큼 충분한 타구였다.
강송구는 2루까지 나아간 헤이든 던허스트를 힐끔 본 뒤에 다음 타자에 집중했다.
-퍼펙트가 깨졌네. 좀 아쉽겠어?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전혀 아쉽지 않다. 퍼펙트는 투수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제 고작 5회 말이다. 김칫국을 들이켜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그건 그렇지. 그래도 2경기 연속 퍼펙트게임을 기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니었나?
2경기 연속 퍼펙트게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뭐 계속 야구를 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강송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타자에 집중할 때.’
-다음 타자는 6번 타자 미카엘 시아니!
무던한 타자였다.
약점은 없지만 뚜렷한 장점도 없는 타자.
지난 시즌 0.244의 타율과 11개의 홈런을 기록한 30대 초반의 우익수를 보며 강송구가 자세를 잡았다.
와인드업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드는 초구.
“스트라이크!”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타석에 선 미카엘 시아니가 몸을 움찔 떨었다.
‘공이 더 빨라진 느낌인데?’
그는 배터 박스 뒤쪽으로 살짝 물러났다.
바깥쪽에 공이 들어왔으니 이제 몸쪽으로 변화구가 들어올 타이밍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송구는 그런 미카엘 시아니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다시금 바깥쪽에 컷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다.
“스트라이크!”
복잡한 표정의 미카엘 시아니.
‘또 바깥쪽이라고?’
그가 묘한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투 스트라이크의 상황. 캉이 미카엘 시아니를 상대로 완전히 코너로 몰았습니다.
-오른손만큼은 아니지만 캉의 왼손도 바깥쪽 제구가 훨씬 더 잘 잡히는 느낌입니다.
선택지는 많았다.
지금 상황에서 커브나 체인지업을 던져도 좋았다.
하지만 강송구의 선택은 패스트볼이었다.
그것도 몸쪽 높은 코스.
하이 패스트볼.
그립을 고쳐잡은 강송구의 3구째 피칭.
미카엘 시아니는 몸쪽 높은 코스로 날아드는 강송구의 포심 패스트볼에 배트를 내밀었다.
하지만 배트가 많이 늦었다.
슈우우욱!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경기 9번째 삼진.
주심의 경쾌한 콜과 함께 미카엘 시아니가 혀를 내두르며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캉! 오늘 경기 정말 대단합니다!
-오른손과 다르게 캉의 왼손은 정말 터프합니다! 평소의 캉이라면 다양한 변화구로 상대를 속였겠지만……. 왼손을 꺼내든 캉은 그야말로 패스트볼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5회 말의 마지막 타자.
2루에 발이 묶인 헤이든을 뒤로하고 강송구는 윽박지르듯이 패스트볼 6개를 연이어 던지며 내야 뜬공으로 아웃을 잡아냈다.
* * *
“나이스 피칭.”
이닝을 끝내고 마운드로 내려온 강송구에게 C.J 포스터가 마른 수건과 스포츠음료를 가져왔다.
“고마워.”
강송구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더그아웃의 의자에 앉아서 숨을 골랐다.
6회 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불펜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자비온 커리처럼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상대로 호투를 하며 지금의 점수 차이를 지켜내지는 못했다.
-높게 떠오르는 공!
-넘어갑니다!
6회 초에 2점을 가져왔고.
7회 초에는 4점을 가져왔다.
점수는 이제 10 대 0이 되었다.
7회 말.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
그가 아직도 매서운 패스트볼을 던지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타선을 꽁꽁 묶고 있었다.
하지만 5회 말을 기점으로 강송구도 조금씩 안타와 볼넷을 내어주고 있었다.
물론, 강송구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캉! 오늘 경기 14번째 삼진!
-환상적입니다! 완봉 페이스를 이어나가는 캉입니다.
8회 말.
다를 것은 없었다.
모두 내야 뜬공으로 아웃을 잡아냈으니까.
디트로이트의 선수들이 그때부터 완전 울상이 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듣기로는 저 친구들 췌장암에 걸린 은퇴한 그라운드 키퍼에게 오늘 경기 승리를 안겨주고 싶어 했다던데?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그게 왜?’
-조금 우리가 악당같이 느껴져서.
‘프로 경기에 선과 악이 어디 있어?’
강송구가 굳건한 표정으로 타자를 바라봤다.
“승자와 패자뿐이지.”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16번째 삼지이이이인!
-캉이 8회 말도 깔끔히 막아냅니다!
-대단합니다!
이제는 9회 말.
디트로이트의 타자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시간.
강송구는 그런 타자들을 상대로 지치지 않고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계속 던지며 아웃을 잡아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미 경기장을 찾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팬들이 벌써 절반이나 경기장을 떠나고 있었다.
포기한 것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타이거스의 타선이 강송구를 상대로 점수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윽고 두 개의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
그가 오늘 경기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내면서 9이닝 17K 완봉승을 거머쥐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캉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9이닝 동안 단 하나의 점수도 내주지 않고 승리를 가져옵니다!
-9이닝 17K 무실점! 완벽한 완봉승이었습니다!
기뻐하는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
강송구는 몇몇 선수들과 완봉승의 기쁨을 나눈 뒤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 관계자를 찾았다.
의아한 표정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 관계자에게 강송구는 자신의 사인이 새겨진 유니폼을 주며 말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전 그라운드 키퍼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어느 야구 기자에게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그분에게 이 유니폼을 전해주시겠습니까? 훌륭한 역사를 가진 그라운드 키퍼와 마운드를 가진 코메리카 파크에서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 말을 뒤로하고 강송구가 라커룸으로 향했다.
* * *
[강송구 17K 완봉승!]
[퍼펙트게임 다음에 17K 완봉승!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에게 불가능은 없다.]
[AL 서부지구 1위를 굳건히 지키는 라스베이거스! 그 뒤를 맹추격하는 에인절스와 매리너스!]
[캉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전 그라운드 키퍼에게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전해준 까닭은?]
[강송구, ‘유니폼을 전해준 까닭? 메이저리그의 긴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한 인물에게 존경을 표한 것이다. 선수들이 안전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구장 직원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디트로이트 관계자, ‘캉은 대단한 선수다. 그의 인품에 반했다. 구단주도 캉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반했다. 거액을 동원해서라도 캉을 영입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