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좌완 특급(2)
볼티모어 3연전에서 승리한 라스베이거스는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홈 경기장인 코메리카 파크 근처의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1차전이 있는 경기 전날.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은 큰 방에 보여 전력분석관이 분석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자료를 살폈다.
“이번 시리즈의 첫 번째 경기에 등판하는 투수는 메튜 에일란입니다. 준수한 패스트볼과 커브,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로 평균 구속은 94마일 정도 됩니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커브가 조금 유별나다는 점과 뉴욕 메츠에서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던 지난 시즌에 3승 10패 5.74라는 좋지 않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로우 시즌을 갱신했다는 점.
올해도 지난 시즌과 비슷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투자한 비용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력분석관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됩니다. 메튜 에일란이 던지는 커브는 아직도 그가 메이저리그에 남을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나 다름이 없는 구종이니까요.”
배리 지토가 2012시즌에 지느님이라고 불린 것처럼 메튜 에일란도 커브 하나로 2027시즌 뉴욕 메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한국에서는 ‘메튜갓’이라 불렸다.
“보시면 알겠지만……. 지난 경기에서부터 메튜 에일란의 커브가 2027시즌에 보여줬던 그 궤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팔의 각도도 예전처럼 다시 올라갔죠.”
메튜 에일란이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에 몇몇 선수들이 두 눈을 반짝였다.
‘2027시즌의 메튜 에일란이라면 조금 어렵겠는데?’
‘직접 상대해 보고 싶다.’
‘커브의 달인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원정 3연전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력분석관의 말처럼 메튜 에일란은 경기 초반부터 라스베이거스의 강타자를 상대로 준수한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특히 뚝 떨어지는 폭포수 커브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메튜 에일란! 또 삼진!
-오늘 커브가 춤을 춥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꼭 2027시즌 월드시리즈의 우승을 이끌었던 시절의 메튜 에일란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저게 전성기 시절의 메튜 에일란이야?”
“와……. 무슨 커브가 저렇게 떨어져?”
“저건 보고도 칠 수 없는 커브야.”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설마 했던 메튜 에일란이 전성기 시절의 폼을 보여주며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꽉 붙들었다.
덕분에 경기는 2 대 0으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경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커브가 정말 날카롭네.
그 우효도 감탄한 커브였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네.
‘그렇지.’
하지만 그 감탄도 잠깐일 뿐이었다.
메튜 에일란은 분명히 좋은 투수였다.
느려진 구속을 채우기 위해서 체인지업을 배웠고, 그 체인지업을 활용해서 꽤 쏠쏠한 활약도 보여줬다.
하지만 서른에 접어든 투수는 좋든 싫든 체력적인 부분에서 20대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5회 초까지 이어진 호투는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끈질기게 승부를 가져가자 흔들렸다.
따악!
-높게 떠오르는 공!
-넘어갑니다! 공이 넘어갑니다!
-11구 승부 끝에 승자가 결정 났습니다! 카디안 스타우트의 홈러어어어어어언으로 경기는 다시 원점!
-아, 좋은 투구였는데요……. 결국 92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5이닝 2실점.
메튜 에일란은 5이닝을 소화하기 무섭게 마운드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팀의 불펜 싸움.
다시 경기는 균형을 이루며 이어졌다.
그리고 9회 초에 나온 헤이든 존스의 이루타로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점수는 3 대 2가 되었다.
그리고 9회 말에 라스베이거스는 마무리 투수를 올리며 깔끔하게 첫 번째 경기를 가져왔다.
* *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연패! 12승 28패로 정확히 3할 승률을 기록하다!]
[21 대 3으로 패배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충격에 빠지다.]
[위기의 타이거스. 라스베이거스 3연전의 마지막 경기도 가져오지 못하면 2할 승률로 곤두박질쳐!]
[충격적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지루한 탱킹은 도대체 언제 끝나게 될 것인가?]
[예약된 연패? 홈 3연전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에 상대하게 될 투수는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송구 캉’!]
첫 번째 경기에서 3 대 2로 아슬한 역전승을 거둔 라스베이거스는 디트로이트 원정 두 번째 경기에서 21 대 3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수 차이로 대승을 거두었다.
상당히 거친 디트로이트의 홈팬들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디트로이트의 선수들을 욕했다.
“네 머리에 샷건을 날려버리겠어!”
“제프! 조심해! 거리를 걷다가 날 만나면 진짜 죽여 버릴 테니까! 알겠어? 어?”
“우우우우우우우!”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인데 홈팬들이 내뱉는 욕설에 잠깐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가 나오기도 했다.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너무 심한 욕설은 자제해 달라고.
하지만 만년 꼴찌의 설움을 가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홈팬들은 오히려 더 악에 받친 욕을 내뱉었다.
-와우……. 필리스보다 더한데?
‘거의 10년 동안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팀이다. 팬들이 저렇게 화를 낼 만하지.’
-우으…….
‘그래도 저 정도면 착한 팬이다. 진짜 악질이었다면 진즉 총기 난사가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야.’
강송구의 말처럼 디트로이트의 선수들은 누군가에게 총을 맞는 것보다 이렇게 욕을 먹는 게 더 났다고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야유.
그리고 조금 많이 비어있는 관중석.
‘내 왼손의 데뷔전으로 나쁘지 않은 환경이군.’
의욕이 꺾인 상대에게 왼손에서 나오는 100마일의 강속구만큼 좋은 무기가 없다.
1회 초.
상대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자비온 커리.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투수.
평균 94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의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주로 던지는 투수였다.
딱히 강점이 있는 투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약점도 없는 전형적인 4~5선발급 투수였다.
“디트로이트는 오늘 경기를 놔버린 건가?”
“캉을 상대로 저런 투수를 내보내?”
“너무하잖아. 진짜 2할 승률로 내려간다고!”
“개자식들! 너희는 프로가 아니야!”
홈팬들의 격정적인 야유가 흘러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비온 커리는 천천히 자신이 해야 할 피칭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강송구는 그런 자비온 커리를 잘 관찰했다.
-왜? 딱히 특색 있는 투수는 아니잖아.
‘하지만 시카고 컵스에 속해서 2029시즌 월드시리즈 반지를 가져간 투수이기도 하지.’
비록 지금은 땜빵으로 선발에서는 투수이지만, 자비온 커리는 시카고 컵스의 맴버로 월드시리즈라는 큰 경기에 등판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그리고 저런 베테랑은 종종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회광반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는 한다.
‘난 어쩐지 그게 오늘 경기일 것 같단 말이지.’
이윽고 시작된 자비온의 피칭.
강송구의 두 눈이 평소보다 더 깊어졌다.
* * *
자비온 커리.
시카고 컵스에서 뛰던 시절에 운 좋게 얻은 월드시리즈 반지가 하나가 있는 평범한 수준의 투수.
야구팬들은 그런 자비온 커리를 보며 하위권 팀만 전전하는 전형적인 AAAA급 선수라고 깎아내리지만, 전문가들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정확히 10년을 버틴 그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하위권 팀에서는 매 시즌 꾸준히 7~8승을 먹어주는 투수의 가치를 잘 아는 이들은 절대로 자비온 커리의 커리어를 비웃지 않았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10년을 버티며 통산 82승을 거둔 투수를 비웃을 선수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4점 후반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한다.
그래, 10년을 뛰며 통산 82승을 거두고 4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적어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자비온 커리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았는지를 잘 증명하고 있었다.
-깔끔히 땅볼을 유도하며 아웃을 잡아냅니다!
-선두타자를 출루시키며 흔들리는 가운데 정말 침착하게 다음 타자를 상대로 땅볼을 잘 유도했어요.
-1사 2루의 상황. 자비온 커리가 과연 1회 초를 깔끔히 막아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자비온 커리는 1사 2루의 상황에서 8구 승부 끝에 커브로 삼진을 잡아내며 2사 2루의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승부에서 안타를 맞고 2사 1, 3루의 상황까지 가며 다시금 흔들렸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은 흔들리는 자비온 커리를 상대로 점수를 빼앗을 수 없었다.
-그대로 아웃!
-자비온 커리가 내야 뜬공을 유도하며 이닝을 끝냅니다.
-위기를 정말 잘 넘겼습니다.
-라스베이거스는 아쉬울 것 같습니다. 모처럼 경기 초반부터 리드를 가져갈 기회였으니까요.
-그렇죠.
그렇게 끝이 난 1회 초.
자비온 커리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위태로운 이닝이었지만 그는 위기를 잘 넘겼다.
그리고 비어있는 마운드를 향해 누군가 몸을 움직였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수들이 그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친구가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이라고?”
“저번 경기에서 퍼펙트게임을 기록했다지?”
“존재감이 장난이 아니야.”
“우리가 저 괴물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
약한 소리를 내뱉는 디트로이트의 타자들.
그때 누군가 선수들에게 일갈을 내뱉었다.
“겁먹지 마!”
그제야 선수들이 오늘 경기 선발인 자비온을 바라봤다.
“자비온…….”
“오늘 꼭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잖아.”
그 말에 선수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래, 다른 경기는 몰라도 오늘 경기는 꼭 이겨야 한다. 췌장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전 그라운드 키퍼인 브랜든 씨를 위해서 말이다.
“그래, 꼭 이겨야지.”
“악착같이 달라붙자.”
“후우……. 해보자! 할 수 있어.”
그렇게 디트로이트의 타자들이 승부욕을 불태우기 시작할 때 갑자기 가죽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슈우우우욱 퍼엉!
그제야 모두가 마운드를 바라봤다.
“아…….”
“왼손? 왼손이라고?”
“1회 말부터 왼손을 꺼내다니……. 왜?”
당혹스러웠다.
경기 중간이나 마무리가 아닌 초반부터 왼손으로 던지는 것은 제법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휘어잡을 생각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쉽지 않겠어.”
어차피 강송구는 왼손으로 1이닝 이상을 던진 적이 없으니 말이다. 딱히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이윽고 시작된 승부.
강송구가 던지는 99마일짜리 패스트볼에 디트로이트의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아웃을 허용했다.
자비온 커리와 전혀 달랐다. 강송구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빠르게 아웃을 수집했다.
그리고 곧 1회 말을 깔끔히 막아냈다.
얼마 쉬지 못한 자비온 커리.
그가 다시 2회 초의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도 위태로운 승부를 이어가며 아슬아슬하게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낸 자비온 커리가 주먹을 불끈 쥐며 디트로이트의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2회 말.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
이제 디트로이트의 타자들은 강송구의 왼손을 머리에서 지우고 오른손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 뭐야?”
“왜 이번에도 왼손이야?”
“왼손? 왼손이라고?”
왼손으로 1이닝을 소화했음에도 강송구가 오른손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라고 생각했다. 2회 말이 끝나고 3회 말부터 오른손을 꺼낼 것이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3회 말의 마운드.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을 때.
모두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그가 왼손으로만 경기를 뛸 생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