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01화 (101/198)

#101. 좌타킬러(2)

“키야! 주모오오오오오!”

777 베가스 그라운드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한국말.

어색할 수 있으나, 최근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이유? 그건 당연히 강송구 덕분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강송구를 보기 위해서 미국까지 오는 팬들은 비싼 거금을 들여 라스베이거스의 호텔과 경기장을 찾는다.

거기다 강송구가 다른 메이저리그 진출을 한 선수들과 다른 인기 요인도 있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이라 팬 서비스가 별로일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 어떤 선수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좋은 미담을 많이 남겼다.

볼티모어의 선수들은 꽉 들어찬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보며 작게나마 승부욕을 불태웠다.

‘캉을 무너트리고 승리한다.’

‘아주 박살을 내주지.’

‘실투 하나만 던져라……. 제발.’

볼티모어의 선수들이 기도했다.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가 실수하기를 말이다.

아무리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라도 1경기에 2~3번의 실투가 나오는 편이었다.

그건 강송구도 마찬가지였다.

몸쪽으로 공을 찔러넣을 때 종종 강송구도 가운데로 몰리는 공을 던지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기도와 다르게 강송구는 3회 초까지 단 하나의 실투 없이 깔끔히 이닝을 끝냈다.

특히 오늘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찾은 좌타자들은 강송구가 던지는 컷 패스트볼에 애를 먹고 있었다.

따악!

높게 치솟는 타구.

좌익수인 루이스 메토스가 달려가 가볍게 공을 잡아내면서 4회 초의 시작을 알린 데이비드 코르테스를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냈다.

-볼티모어! 타순이 한 바퀴 돌았지만, 오늘 캉이 던지는 컷 패스트볼에 속수무책입니다!

-정말 날카롭네요. 리베라가 떠오르는 컷 패스트볼입니다. 그만큼 오늘 캉의 커터는 다른 투수와 격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타석에는 라이언 클리퍼드가 들어섭니다. 아직 안타가 하나도 없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타석에 들어서기 전.

“아! 오늘 진짜 못 때려낼 것 같은데?”

라이언 클리퍼드는 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던 데이비드 코르테스를 떠올렸다.

작게 한숨을 푹 내쉰 그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오늘 마운드에 올라선 투수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수준의 선수인 것 같았다.

슈우우욱! 펑!

초구부터 날아드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분명히 예상할 수 있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강송구가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은 쉽게 때려낼 수 없는 코스로만 날아들었다.

큰 벽을 앞에 둔 것처럼 라이언 클리퍼드는 무력하게 투 스트라이크를 내주며 구석으로 내몰렸다.

저 컷 패스트볼도 문제였다.

‘패스트볼과 구분할 방법이 없다.’

저 컷 패스트볼과 패스트볼의 사이에 하나씩 등장하는 체인지업도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타자의 타이밍을 속이는 들쭉날쭉한 인터벌.

거기다 같은 폼에서 나오는 3가지 구종.

필요하면 완급조절을 하며 구속을 줄이는 피칭까지.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강송구의 오른손은 구속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졌다.

“하…….”

답답함이 몰려오는 라이언 클리퍼드가 고개를 흔들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마운드에 선 강송구는 그런 타자를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음 타자와 승부를 준비했다.

‘코리 시거.’

또 다른 살아있는 전설이다.

첫 턴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에는 그의 발목을 잡은 잦은 부상이 문제였지만, 결국 언젠가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이라고 평가를 받는 레전드였다.

거기다 잦은 부상임에도 어떻게든 서른 후반의 나이까지 꾸준한 성적을 거둔 것은 그가 가진 경험과 포텐셜이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의 코리 시거와 지금의 코리 시거는 다르다.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코리 시거보다 성적은 좋지 않으나 훨씬 젊고 승부욕이 넘치는 라이언 클리퍼드가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노장 특유의 경험으로 여기까지 버티는 것일 뿐.

코리 시거를 상대로 강송구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초구부터 89마일의 커터가 날아들었다.

따악!

“파울!”

초구를 보는 순간 코리 시거는 이번 타석도 쉽지 않게 돌아갈 거라는 판단이 들어섰다.

하지만 쉽게 무너질 생각도 없었다.

‘아직 2년은 더 현역으로 뛸 생각이니까.’

이어진 2구째 피칭.

코리 시거가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파울!”

-코리 시거! 이번에도 공을 커트해냅니다.

-지난 시즌에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던 코리 시거가 올해에도 그 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 경기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3구째.

-깔끔한 커브입니다. 하지만 코리 시거! 캉의 유인구에 속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볼이 됩니다.

-4구째.

-좋네요. 깔끔한 싱커였습니다. 코리 시거가 배트를 내밀었고 이번에도 파울이 되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코스였는데……. 코리 시거가 이번에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습니다.

-타이밍을 놓쳤네요.

-타이밍이요?

-네, 타자들이 캉의 피칭을 어려워하는 이유. 그 모든 게 결국은 타이밍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캉은 다른 투수들과 다르게 타자들이 싫어하는 타이밍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짜증이 나는군.’

83마일의 하드 싱커.

솔직히 조금만 빠른 타이밍에 꺾였다면 파울이 아닌 안타가 되어 출루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공이 떨어지는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다니……. 다른 구종처럼 싱커도 조금 주의를 해야겠어.’

그 타이밍이 코리 시거의 머릿속에 잠깐 잔상으로 남는 순간을 강송구는 놓치지 않았다.

같은 코스.

그리고 같은 구속으로 날아드는 공.

하지만 이번에 날아든 공은 스플리터였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결과는 헛스윙 삼진.

싱커의 잔상이 머리에 남아있던 코리 시거에게 싱커와 다르게 종으로만 떨어지는 스플리터는 그야말로 최악의 타이밍에 날아든 마구와도 같았다.

그렇게 끝이 난 4회 초.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언제부터 대기록을 의식할까?

투수가 5이닝을 소화한 순간?

아니면 6이닝? 그것보다 훨씬 빠른 4이닝부터?

모두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포수인 조던 델가도는 마운드에 선 강송구가 던지는 초구를 받는 순간부터 오늘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느꼈다.

그냥, 막연한 느낌이었다.

‘아, 오늘 캉이 뭔가 대단한 기록을 하나 달성하겠구나. 어쩌면 노 히터를 하나 더 기록할 수도 있겠다.’

4회 초가 끝나고 강송구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조던 델가도는 빠르게 그런 강송구에게 붙었다.

“어때? 오늘 공이 아주 날카롭던데.”

“나쁘지 않았다.”

강송구의 고저 없는 대답.

조던 델가도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강송구의 목소리에 오히려 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그 볼티모어라고.’

AL 동부에서 최고의 타격감을 자랑하는 타선.

일반적인 투수가 이 타선을 상대로 4이닝 동안 퍼펙트를 보여주고 있다면 더그아웃에 들어서자마자 적잖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송구는 달랐다.

그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4이닝을 퍼펙트하게 막아냈음에도 그의 표정은 그저 하나의 이닝이 끝났다는 사실만 드러날 뿐이었다.

“조던.”

“어……. 왜?”

“오늘 저 친구들……. 묘하게 스윙이 커.”

“스윙이 크다고?”

그제야 조던 델가도가 묘한 눈으로 상대 더그아웃을 보며 앞선 이닝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코리 시거는 물론이고 다른 타자들도 오늘따라 스윙을 조금 크게 가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스윙이 조금 컸지.”

“5회 초에는 스플리터의 비중을 조금 더 올릴 거야. 커터는 6회 초까지 봉인하고 싱커와 커브를 주고 던지면서 카운트를 쌓도록 하지. 특히 커브를 많이 던질 생각이야.”

“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

조던 델가도가 고갤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4회 말이 끝났다.

부상으로 이번 등판을 거른 1선발 대신에 올라온 볼티모어의 젊은 유망주가 4회 말까지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며 생각 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침묵에 빠진 더그아웃.

강송구는 그런 더그아웃을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빠져나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러다가 이번 경기도 연장까지 던지는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거다.’

강송구는 확신하고 있었다. 상대 젊은 유망주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 젊은 친구의 구속이 조금 줄어들었어.’

-뭐? 벌써? 이제 4회 말이잖아.

‘아마 1회 말부터 4회 말까지 전력으로 던졌겠지.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5회 말이나 6회 말쯤에 점수가 나올 수 있겠네. 팀의 타자들이 최근에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도 체력이 빠진 애송이를 상대로 안타를 만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렇지.’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5회 초.

볼티모어의 선두 타자.

팀의 4번 타자이자 제법 뛰어난 홈런타자인 호세 알바라도를 상대로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따악!

큰 스윙에서 나오는 큰 타구음.

하지만 공은 높게만 떠올랐지 멀리 떠나가지는 못했다.

그대로 내야에서 처리된 타구.

초구로 상대 강타자를 잡아낸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다음 피칭을 준비했다.

5월 중순임에도 슬슬 사막기후의 열기가 느껴지는 경기장에서 강송구가 소매로 땀을 훔쳤다.

개폐식 돔구장임에도 더위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야 한국에서 사막기후보다 훨씬 무더운 찌는 듯한 더위를 경험해봤지만, 상대 젊은 투수는 이 무더위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이닝을 빠르게 끝내면 상대 투수는 5회 말에 무조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선을 돌리니 땀범벅인 상대 투수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 타자는 볼티모어의 5번 타자.

따악!

큰 스윙을 자랑하는 이번 타자도 강송구가 던진 싱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고작 2구 만에 두 개의 아웃이 만들어졌다.

-캉! 이번 이닝을 정말 효율적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운도 좋았지만, 스윙이 커지고 있는 볼티모어의 타선을 상대로 쉽게 범타를 유도해 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5회 초의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볼티모어의 6번 타자인 루이스 메디나. 지난 시즌에 0.216의 타율과 0.722의 OPS를 기록한 타자입니다.

-지난 시즌이 커리어 로우 시즌이었습니다. 루이스 메디나에게 있어서 작년은 기억하기 싫은 시즌일 겁니다.

-말씀처럼 지난 시즌에 13개의 홈런밖에 만들지 못했던 루이스 메디나 선수가 올해는 벌써 18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기대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 루이스 메디나가 기록한 성적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그가 더 높은 상위 라인업에 놓여야 한다고 보는 볼티모어의 팬들이 많죠?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좌타자였다.

하지만 강송구는 딱히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C.J 포스터에게 커터를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피칭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 커브.

자신의 타석부터 볼 로케이션이 바뀐 것을 확인한 루이스 메디나가 두 눈을 찌푸렸다.

‘바깥쪽 패스트볼을 노렸는데…….’

마치, 자기 생각이 읽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2구째는 몸쪽 컷 패스트볼이었다.

그는 몸쪽 공을 건들지 않았다.

다른 좌타자들이 강송구가 던진 몸쪽 컷 패스트볼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지켜봤으니 말이다.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하지만 루이스 메디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캉을 상대하라면 투 스트라이크에 날아드는 유인구를 노려야 한다. 아마 스플리터나 체인지업처럼 타자의 범타를 유도하는 공이 날아들 거야.’

바깥쪽 낮은 공.

그가 노리는 것은 떨어지는 공이었다.

하지만 강송구의 선택은 달랐다.

루이스 메디나를 상대로 다시금 몸쪽 컷 패스트볼을 던지며 그가 원하는 코스에 공을 밀어 넣지 않았다.

따악!

존에 들어오는 공에 루이스 메디나가 어쩔 수 없이 배트를 휘둘렀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웃!”

내야 뜬공.

그대로 아웃이 된 루이스 메디나가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끝이 난 5회 초.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의 왼쪽 어깨에 올라탄 우효가 상대 더그아웃을 보며 웃었다.

-야! 저 애송이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데?

5회 말의 마운드에 오르는 볼티모어의 젊은 유망주가 흘리는 땀을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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