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98화 (98/198)

#98. 이닝이터(1)

강송구는 앞선 이닝처럼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1번 타자 이스마엘 곤잘레스.

데뷔 이후로 단 1점만 내어주고 있는 투수의 존재감에 타자가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괴물이 하나 등장했구나.’

‘미치겠네……. 공략할 틈이 안 보여.’

‘도대체 라스베이거스는 이런 투수를 어디에서 찾아온 거야? 진짜 지옥에서 데려온 거 아니야?’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세상에 공략하지 못할 투수는 없으니까.

이스마엘 곤잘레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정말 대단한 투수인 건 인정하겠어. 한 달 동안 단 1실점만 잃었던 투수가 특별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겠지.’

거기다 상대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우승을 경험했던 투수였다. 아무리 작은 리그라도 우승을 경험한 투수와 그렇지 못한 투수의 기세와 능력은 다른 법이었다.

‘하지만 이제 쉽지 않을 거야.’

이제야 공에 눈이 익었다.

오늘 그가 강송구의 공을 상대해 본 것은 두 번이나 된다.

물론, 한 번은 100마일을 던지는 왼손을 상대한 것이지만, 90마일 초반의 구속에 충분히 눈이 익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힘으로 찍어누른다.’

일반적인 리드오프처럼 이스마엘도 홈런을 때려내는 파워가 조금 부족하고 타격 기술이 뛰어난 타자였지만, 9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지 못할 정도로 힘이 심각하게 부족한 타자는 아니었다.

‘초구를 노린다.’

바깥쪽에 날카롭게 걸치는 패스트볼을 던져도 대응할 수 있도록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었다.

몸에 맞는 공은 두렵지 않았다.

‘무조건 때려낸다.’

이스마엘의 각오가 드러나는 모습에 오늘 강송구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헤이든 존스가 사인을 먼저 보냈다.

‘캉, 몸쪽으로 찔러보자.’

고개를 끄덕인 강송구.

퍽퍽!

강송구가 와인드업에 들어가기 무섭게 이스마엘이 타자석 안의 흙을 앞발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송구의 초구가 날아들었다.

‘몸쪽!’

이스마엘이 두 눈을 부릅뜨고 배트를 휘둘렀다.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서 대응하기 어려운 몸쪽 높은 코스임에도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대했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휴스턴과 관계된 이들이 원하던 소리가 말이다.

빠각!

배트가 다시 비명을 지른다.

컷 패스트볼에 반으로 갈라진 배트가 필드에 떨어지기 무섭게 유격수인 카디안 스타우트가 깔끔히 땅볼을 처리해서 이번 이닝의 첫 번째 아웃을 잡아냈다.

허탈한 표정의 이스마엘이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게 사람이야?”

* * *

“맙소사…….”

“이 경기가 이렇게까지 온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0의 행진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8회 초부터 불펜을 가동하며 어떻게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불펜이 호투를 보여줬음에도 휴스턴의 타선은 강송구를 상대로 침묵을 이어갔다.

오늘 경기 피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제외하면 딱히 큰 이슈 없이 8회 말까지 온 강송구였다.

하지만 반대로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도 8회 말이 끝나는 순간까지 단 하나의 점수도 만들지 못한 사실에 조금은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팀의 에이스가 8회 말까지 단 하나의 점수도 내주지 않고 철벽처럼 막아주었다. 그렇다면 타자들이 1점 정도는 만들어줘도 좋지 않겠는가?

9회 초.

타석에 들어서는 카디안 스타우트는 오늘 경기 5번째 타석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4타수 2안타면 할 것 다 했지.’

그렇다. 오늘 경기에서 카디안 스타우트는 1인분을 제대로 하며 자기 할 일을 다 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이기는 게 기분이 더 좋을 테니까.’

쓱.

더그아웃을 힐끔 보니 딱히 별다른 사인이 나오지는 않고 있었기에 카디안 스타우트는 마운드에 올라온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마무리 투수 로드리고 가르시아를 지긋이 바라보며 생각했다.

‘초구를 노려볼까?’

싱커를 패스트볼처럼 던지는 로드리고 가르시아.

구속은 고작 90마일 초반이었지만, 패스트볼을 대신해서 던지는 로드리고의 하드 싱커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많은 타자에게서 땅볼을 빼앗아냈었다.

‘딱 몸쪽으로 떨어지는 각만 잘 맞추면 장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타격 자세를 잡은 카디안 스타우트는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싱커 궤적을 떠올리며 준비를 끝냈다.

때마침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로드리고 가르시아.

당연히 로드리고의 선택은 싱커였다.

자신이 생각한 궤적 그대로 날아드는 싱커를 본 카디안 스타우트는 본능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가 생각했던 그대로.

따악!

그리고 들려오는 타격음.

제법 높게 떠오르는 공을 보며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당혹감을 드러냈다.

정확히 들어간 싱커가 맞았으니까.

하지만 빠르게 베이스를 돌고 있는 카디안 스타우트도 겉과 다르게 속으로는 난감해하고 있었다.

‘3루까지는 못 갈 거 같은데…….’

홈런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생각보다 공의 힘이 조금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처럼 공은 중견수 머리를 넘긴 뒤에 담장에 맞고 필드로 떨어졌다.

3루까지 가기에는 조금 부족한 타이밍.

결국, 2루에서 멈춘 카디안 스타우트가 혀를 길게 빼며 고개를 흔들었다.

‘쉽지 않네.’

제대로 노리고 쳤음에도 공이 가진 힘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타구가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다.

많이 아쉬웠다.

이제 남은 것은 다른 타자들이 그를 홈까지 옮겨주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와 달랐다.

적어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 뭔가 한 방을 기대하게 하던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이 침묵한 것이다.

그렇게 끝이 난 9회 초.

연장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아진 상황에서 강송구가 9회 말을 깔끔히 막기 위해서 마운드에 올랐다.

* * *

-오늘은 유독 심하네…….

우효가 눈을 찌푸렸다.

귀여운 고슴도치가 눈을 찌푸려봤자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전 호크스 시절보다는 나쁘지 않군.’

사실, 오늘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은 기본적으로 상대 투수를 잘 공략하며 자주 출루에 성공했다. 그저 홈으로 주자를 불러들이지를 못해서 문제였을 뿐이다.

-자! 남은 이닝 유종의 미를 거둬보자고!

그래, 이제 남은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며 팀이 안전하게 연장전을 이어나갈 수 있게 깔끔히 이번 이닝을 막는 것이다.

물론, 강송구의 생각은 달랐다.

‘유종의 미라…….’

글쎄……. 오늘 경기는 꼭 이기고 싶었다.

팀의 분위기를 위해서도 그랬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라는 팀과 마이크 라모스라는 악동이 팀 동료인 앤디 요스트에게 저지른 잘못을 봐서도 더더욱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일단은 이번 이닝을 깔끔히 막고 생각해 봐야겠군.’

타석에 타자가 들어선다.

오늘 경기 4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스마엘 곤잘레스.

그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지난 시즌에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많은 기대를 받은 휴스턴의 리드오프가 오늘 경기에서는 그 어떤 팀의 하위타선보다 좋지 못한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후우우웅!

좋은 타격 능력을 갖췄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배트가 공기를 때린다.

공은 그런 배트를 비웃으며 피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제길…….”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갑자기 초구부터 너클볼을 던지더니 그다음에 몸쪽 높은 코스로 커터를 꽂아 넣는다.

그리고 마무리로 너클 커브.

단 3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믿을 수 없어!’

매 경기 안타는 못 만들어도 최소한 볼넷 하나씩은 가져가던 타자가 바로 이스마엘 곤잘레스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무것도 못 했다.

춤추는 너클볼.

좌타자 전용 킬러인 컷 패스트볼.

마지막으로 생각도 못 한 너클 커브까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 타석에 들어선 카일 터커를 상대로는 싱커와 스플리터를 연이어 던진 뒤에 50마일의 슬로우 커브를 던지며 헛스윙 삼진으로 두 번째 아웃을 잡아냈다.

9회 말.

그리고 투 아웃의 상황.

오늘 경기 유일하게 강송구에게 빈볼을 얻어낸 타자인 마이크 라모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전 타석에서는 허무하게 아웃을 내어주며 무너졌지만, 지금 상황은 아까와 달랐다.

‘홈런 한 방에 팀의 승리를 가져올 좋은 기회다.’

설마 지금 상황에서 볼넷으로 거르지는 않겠지.

마이크 라모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잠깐 바라봤다. 이제 화조차 낼 수 없었다.

그냥, 상대가 자신을 상대로 제대로 공만 던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운드로 뛰쳐나갈 힘도 없었다.

-독기가 쫙 빠졌구만.

우효가 그런 마이크 라모스를 보며 낄낄거렸다.

동시에 이번 승부도 김빠진 승부가 될 것이라 평가했다.

-독기가 빠진 주제에 대놓고 ‘나는 큰 타구를 노린다.’란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서다니…….

저런 상태로는 절대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우효의 예언처럼 강송구가 던진 초구에 마이크 라모스가 헛스윙하며 주춤거렸다.

‘어? 왜 이러지?’

마이크 라모스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라면 자신 있게 배트를 내밀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금 어설프게 들어온 코스에 마이크 라모스는 엉성한 타격으로 대응했다.

결과는 당연히 헛스윙이었고.

이어지는 2구째 피칭.

강송구가 던진 체인지업에 다시 헛스윙했다.

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몸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공에 배트를 내미는 타이밍이 조금씩 늦었다.

뿌드드득.

이를 꽉 무는 마이크 라모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우타자 바깥으로 절묘하게 빠져나가는 슬라이더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캉! 완벽한 슬라이더!

-오늘 경기는 연장전까지 갑니다!

중계진도 강송구가 삼진을 잡는 순간 오늘 경기에 제법 길어지겠다 생각하며 멘트를 정리했다.

동시에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강송구를 보며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최악이군……. 완봉을 한 투수가 승리도 못 가져가다니.’

‘오늘 경기는 정말 최악이야.’

‘캉이 실망을 많이 하겠군.’

‘어떻게든 10회 초에 점수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았다.

9회 말까지 무실점을 기록하며 완봉을 기록한 투수가 승리를 가져가지 못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런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순간 더그아웃에 자리를 잡고 앉은 강송구가 아이싱을 하지 않고 점퍼를 입었다.

그 순간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캉이 점퍼를 입었다고?’

‘설마……. 10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라갈 생각인가?’

‘무언의 항의 같은 건가?’

미키 스토리 감독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급히 강송구에게 다가간 투수코치가 물었다.

“캉, 설마 10회 말에도 마운드에 오를 생각이야?”

“물론입니다.”

“캉, 지금은 2030년대야. 데드볼 시대가 아니라고.”

“하지만 오늘 왼손으로 14구, 오른손으로 78구밖에 던지지 않았습니다. 1이닝은 더 던질 수 있습니다.”

그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오늘 강송구가 투구수를 그렇게 많이 소모하지 않았음을 말이다.

1이닝은 더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10회 말에 마운드에 올라서 한 명이라도 1루에 출루시킨다면 바로 마운드에서 내리셔도 좋습니다.”

“…….”

미키 스토리 감독을 바라보는 투수코치.

강송구도 담담한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봤다.

“팀메이트인 앤디 요스트가 모욕을 당했습니다. 팀의 에이스로서 휴스턴에게 제대로 비수를 꽂고 싶습니다. 오늘 경기…… 저는 꼭 이기고 싶습니다.”

깊게 고민하던 미키 스토리 감독은 그런 강송구를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딱 1이닝뿐이야.”

아마 지금의 선택을 두고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미키 스토리 감독을 두들길 것이다.

라이브볼 시대에 데드볼 시대처럼 에이스를 굴리는 감독이 있다며 맹비난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팀의 에이스가 저렇게 확고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키 스토리 감독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따라 그를 괴롭히는 더 편두통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