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죄는 미워하되 휴지통은 미워하지 말라(2)
휴스턴 애스트로스.
2031년까지도 ‘휴지통’이라는 멸칭을 듣고 있으며, 아직도 어린 선수들이 가기 가장 싫어하는 구단이라는 악명을 가지고 있는 구단이자, 상도덕을 넘는 탱킹과 과감한 윈나우로 2025시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시 거머쥔 희대의 악당팀.
그게 현재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가진 명성이며, 그 어떤 구단도 흉내 낼 수 없는 사건·사고가 많이 산적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우승을 막았으며, 휴스턴은 2025시즌 이후로 지구 우승은 물론이고 월드시리즈에 도달하지도 못하는 만년 하위 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거기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5시즌에 거머쥔 월드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온전히 챙길 수도 없었다.
낙인이 찍힌 것이다.
-너희 19시즌에도 사인 훔치기를 했는데 25시즌에도 이거랑 비슷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거 아니야?
당연히 25시즌에 새로운 휴스턴을 구성하던 선수들은 팔짝 뛰며 그런 이슈를 부정했다.
억울할 만도 했다.
앞선 19시즌에 그들의 선배급 선수들이 저지른 부정으로 인한 여러 불이익과 좋지 않은 시선을 25시즌에 새롭게 구성된 선수단이 받는 것이다.
휴스턴의 에이스인 데이비스 로코세는 그런 상황에 답답한 심정을 SNS에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는 19년도에 뛰던 코치도 선수도 없다. 심지어 보드진도 2023시즌부터 싹 바뀌며 19시즌에 있었던 사인 훔치기 스캔들의 주모자들은 모두 우리 구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나는 온전한 챔피언이다.’
아무튼.
휴스턴을 향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제법 골이 깊어져 2031시즌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휴스턴이 가진 과거의 악명이 떨어져 나가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동시에 몇몇 선수들이 저지르고 있는 작은 악행이 쌓이고 있었다.
특히 악동이라 불리는 타자.
마이크 라모스가 저지른 가정 폭행과 학대의 재판 결과가 나와서 징계를 받았음에도 휴스턴의 단장이 인터뷰에서 ‘무슨 잘못을 해도 야구만 잘하면 괜찮은 거 아니냐?’란 발언을 해서 큰 공분을 사기도 했으니까.
뭐,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이크 라모스는 같은 구단 동료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며 또 한 번 모두의 공분을 샀으니까.
그리고 그 구단 동료였던 선수가 지금 라스베이거스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강송구가 상대할 구단이 바로 휴스턴 애스트로스였다.
-오늘 공이 더 날카로운데?
우효는 오늘따라 살벌한 강송구의 연습 투구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이스 볼!”
불펜 포수가 다시 공을 던져주기 무섭게 강송구가 다시 빠르게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슈우우욱! 펑!
유난히 몸쪽으로 공을 많이 던지는 강송구.
그걸 보며 우효가 두 눈을 반짝였다.
-흐으음……. 이 냄새는 벤치클리어링의 냄새군. 오늘 누굴 맞출 생각이야?
‘마이크 라모스.’
-꽤 거물을 노리는구먼. 휴스턴의 악동이라니……!
우효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앤디 요스트의 전처와 바람이 났었던 놈이니까.’
사실 라스베이거스가 휴스턴을 만나면 연례행사처럼 투수들이 마이크 라모스의 엉덩이에 공을 꽂았었다.
당연히 엉덩이를 맞은 마이크 라모스를 마운드로 뛰쳐 올라와 주먹을 휘두르고 선발 투수와 마이크 라모스는 퇴장을 당하면서 경기를 시작한다.
그게 라스베이거스와 휴스턴의 경기 패턴이었다.
오늘은 강송구의 차례였다.
거기다 오늘 경기 보복구를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일까지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다.
-캬! 고놈 참! 입이 매끈해.
우효도 그 기사를 떠올리며 고갤 끄덕였다.
조금 거친 어조로 마이크 라모스가 내뱉은 인터뷰의 내용을 줄이자면 ‘앤디, 네 전처가 쬐끔 맛이 좋았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이 발작을 일으킬만했다.
앤디 요스트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이크 라모스는 가랑이 사이에 지저분하고 쓸모없는 휴지통을 가지고 있다. 아! 19시즌이었다면 조금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사인을 훔쳐 신나게 두들겨야 하니까.
이런 인터뷰를 남기며 19시즌 휴스턴과 악동인 마이크 라모스를 모두 디스했다.
휴스턴과 마이크 라모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앤디 요스트의 인터뷰는 당연히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은 두 팀의 분위기.
슈우우욱! 펑!
“나이스 볼!”
그 덕분일까? 강송구가 불펜에서 던지는 연습 투구가 오늘따라 더 살벌했다.
* * *
마이크 라모스.
악동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온갖 쓰레기 짓을 마다하지 않는 선수이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25시즌 우승을 이끈 최고의 펀치력을 갖춘 타자였다.
올해 초반에는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슬럼프에 빠졌지만, 기어코 4월 말부터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3할대 타율과 7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많은 전문가가 올해도 그가 30개가 넘는 홈런을 때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가 가진 재능은 대단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
그는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
“뭐? 캉? 그 고릴라 같은 놈은 내가 시원하게 때린 배트에 바로 홈런을 맞고 노란 원숭이가 될 거야. 기대하라고.”
더그아웃에 앉아서 환히 웃는 마이크 라모스.
그와 같이 웃으며 동조하는 몇몇 선수들은 다른 파벌의 휴스턴 선수들이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래, 현재 휴스턴은 파벌 싸움 중이었다.
에이스 투수인 데이비스 로코세의 파벌과 악동 마이크 라모스의 파벌이 갈라져 있었다.
당연히 이런 휴스턴의 분위기는 경기력에 제법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 전에 마이크 라모스는 라스베이거스의 주전 일루수이자, 전 동료였던 앤디 요스트를 조롱하며 다시금 자신의 ‘악동’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윽고 경기 시각이 찾아왔다.
마운드에 올라선 데이비스 로코세.
마이크 라모스도 그에 맞춰 자신의 글러브를 챙겨 유격수 자리로 움직였다.
건들건들한 마이크 라모스.
하지만 첫 타구가 자신에게 날라오자 동물적인 감각을 보여주며 멋지게 공을 잡아냈다.
유격수로서 최고의 수비를 보여준 마이크 라모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1회 초가 끝나기 무섭게 라스베이거스의 에이스가 마운드에 올라섰다.
강송구.
4월에 가장 뜨거웠던 투수이자, 라스베이거스가 자랑하는 투수로 오늘 경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투수이자 쉽지 않은 능력을 갖춘 상대였다.
특히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거구의 몸과 일반인이 밤에 마주치면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외모는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특히.
오늘따라 눈가에 바짝 칠한 검은색 아이패치가 전투를 앞둔 인디언의 모습처럼 보였다.
‘꿀꺽.’
마이크 라모스는 순간 침을 삼켰다.
그래, 겉모습만 저러겠지.
고개를 흔들었다.
의외로 겉모습이 멀쩡한 놈치고 깡다구가 없는 놈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 겁먹을 필요 없지.’
하지만 강송구의 왼손 글러브를 본 순간 묘한 싸늘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휴스턴의 1번 타자.
이스마엘 곤잘레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단 4구 승부 만에 물러났다.
소름이 돋는 것은 101마일까지 나오는 커터였다.
체감 구속 105마일짜리 커터가 자신의 엉덩이를 노리고 날아든다면 무사할 수 있을까?
더 무서운 것은 강송구가 무표정한 얼굴로 휴스턴의 2번 타자인 카일 터커를 상대로 몸쪽에 계속 100마일 근처의 공을 던져 넣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대기 타석에서 봐도 소름이 돋는 피칭.
마이크 라모스가 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봤자 100마일짜리 공이다.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겠어? 그리고 공에 맞으면 바로 마운드로 달려가서 한 방 먹여주면 그만이야. 제대로 박살을 내주지.’
이를 꽉 문 마이크 라모스.
그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 * *
-오케이! 자! 선수 입장!
우효가 한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명언을 내뱉으며 입에 밀웜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마치, 팝콘을 밀어 넣는 것처럼.
챱챱챱챱챱챱!
강송구는 조용히 마이크 라모스를 바라봤다.
그가 천천히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강송구의 왼손에서 빠져나온 공을 본 마이크 라모스가 두 눈을 찌푸리며 마운드를 노려봤다.
‘뭐지? 날 맞출 생각이 없는 건가?’
이어지는 2구째 승부.
강송구는 연이어 101마일의 컷 패스트볼을 던지며 어느 때보다 빠르게 카운트를 쌓기 시작했다.
3구째는 바깥쪽 체인지업.
4구째는 다시 몸쪽 커브였다.
카운트는 순식간에 2-2가 되었다.
생각보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승부에 마이크 라모스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바라봤다.
‘진짜 날 맞출 생각이 없는 건가?’
그제야 조금 안심을 한 마이크 라모스가 배트를 꽉 쥐고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좋아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 하나 때려주마.’
자신감이 넘치는 마이크 라모스.
그제야 강송구가 두 눈을 번뜩이며 오늘같이 호흡을 맞추게 된 헤이든 존스에게 하나의 사인을 보냈다.
몸쪽 바짝 붙는 싱커.
조금만 컨트롤이 흐트러지면 타자의 엉덩이에 맞는 코스를 요구한 것이었다.
헤이든 존스가 고갤 끄덕이며 미트를 들어 올렸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강송구가 던지는 95마일의 싱커가 타자의 엉덩이를 향해 날아갈 것을 알았기에 헤이든 존스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벤치클리어링을 기다렸다.
이윽고 강송구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싱커.
마이크 라모스는 몸쪽으로 날아드는 공을 보고 때려볼 만하다고 판단하기 무섭게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궤적과는 너무나 달랐다.
갑자기 타자의 몸쪽으로 휘며 떨어지는 싱커.
그제야 마이크 라모스는 깨달았다.
‘아! 이거 빈볼이다!’
문제는 공의 휘는 궤적이었다.
우타자 엉덩이 쪽으로 휘는 공은 마이크 라모스가 배트를 휘두르며 드러낸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
퍼억!
“아아아아아악!”
소중한 곳을 부여잡고 쓰러진 마이크 라모스.
하지만 배트가 이미 홈플레이트를 넘어갔기에 주심의 판정은 빈볼이 아닌 삼진이었다.
오우우우우……!
미닛메이드 파크를 가득 채운 휴스턴의 홈팬들은 소중한 곳을 잡고 쓰러진 마이크 라모스를 보며 아찔한 탄식을 내뱉었다.
중계진도 끔찍하다는 듯이 고갤 흔들었다.
-으으! 너무 좋지 않은 곳을 맞았습니다.
-마이크 라모스!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네요.
-앤디 요스트가 말했던 휴지통이 터졌겠는데요?
-악동의 휴지통이 터졌군요. 하지만 정말 끔찍합니다. 정말 아파 보여요.
공에 맞아도 아픔을 참는 불문율이 있는 메이저리그임에도 마이크 라모스는 눈물까지 보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가운데 강송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었다.
이미 깔끔히 모자를 벗고 사과까지 했기에 강송구가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저 상대가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다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우효와 포수인 헤이든 존스는 묘한 식은땀을 흘리며 강송구를 바라봤다.
-무서운 새끼…….
우효는 침을 꼴깍 삼켰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헤이든 존스는 개신교 신자인 것을 드러내며 ‘하나님……. 저 어린양을 구원해 주소서.’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았는지 마이크 라모스가 부축을 받으며 휴스턴의 더그아웃으로 사라졌다.
헤이든 존스가 포수 장비를 벗으며 앤디 요스트의 옆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는 미워하되 휴지통은 미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저러다가 저 친구 가랑이 사이에 있는 휴지통이 터지겠어.”
그의 말을 듣고 앤디 요스트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조금은 휴지통이 불쌍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