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94화 (94/198)

#94. 에이스의 품격(5)

후우우웅!

“뻐킹!”

오클랜드의 3번 타자인 이스마엘 메나.

메이저리그에는 28시즌에 콜업된 그는 준수한 수비력과 뛰어난 장타력으로 주전 우익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 많은 홈런을 때리는 타자는 아니지만 2~3루타를 많이 생산하는 중장거리형 타자가 바로 이스마엘 메나였다.

그의 배트가 만들어내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투수들의 등을 축축하게 만든다.

그의 헛스윙을 본 몇몇 투수들은 가끔 도망가는 피칭을 하며 스스로 무너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스마엘 메나의 타격은 매서웠다.

하지만 그런 이스마엘 메나도 강송구의 앞에서는 시원한 선풍기일 뿐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높고 빠른 공.

그리고 이어서 날아드는 커브.

마지막으로 높은 코스와 낮은 코스를 타자에게 모두 보여주기 무섭게 너클볼을 던지며 마무리.

“Fxxk! 개자식!”

우지끈!

강송구에게 희롱당한 이스마엘 메나가 화를 참지 못하고 시원하게 자신의 배트를 허벅지로 부러뜨렸다.

하지만 그는 마운드를 향해 욕설을 내뱉지는 못했다.

-쫄았네.

‘음.’

-네 살인적인 얼굴을 보고 쫄았어.

우효가 ‘우히히!’하고 웃었다.

깔끔히 1회 말을 정리한 강송구.

마운드에 내려가는 그를 보며 조던 델가도가 빠르게 달려와 강송구를 보며 환히 웃었다.

“네 말처럼 떨어지는 공에 시원하게 헛스윙을 하는데?”

“앞선 두 경기에서 빠른 타이밍의 공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커브나 스플리터의 타이밍을 잘 못 잡고 있어. 그러니까 오늘 경기 초반은 커브랑 너클볼, 그리고 스플리터로 주도권을 잡고 끌까지 가져갈 거야.”

“오케이! 오클랜드 녀석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자고!”

낮게 떨어지는 공을 활용할 생각에 조던 델가도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악취미네……. 남이 화내는 거 보면서 싱글벙글하라니.

우효의 말에 강송구는 반응하지 않았다.

조용히 다음 타선을 생각할 뿐.

유행은 돌고 돈다.

예전 트라웃도 낮은 코스를 집요하게 노릴 정도로 메이저리그 전체가 낮은 코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 것처럼 이제는 다시 하이 패스트볼의 시대가 찾아왔다.

낮은 공의 시대가 끝났다.

당연히 지금 메이저리그는 빠른 구속과 뛰어난 구위로 높은 코스를 공략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강송구가 떨어지는 공을 집요하게 던지며 타자들의 타격 스탠스를 바꿔놨다.

낮은 코스만 노리도록.

낮은 코스가 신경 쓰이도록.

타자들은 적응되지 않는 낮은 코스의 공을 상대로 오늘 제법 고생할 것이다.

강송구가 더그아웃에 앉기 무섭게 이번에는 켄 크로윈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인상적인 커브였어. 오늘 낮은 코스로 공으로 시선을 끌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하이 패스트볼로 상대 타선을 끝장낼 생각이지?”

아마도 오늘 피칭이 퍽 인상적이었을까?

켄 크로윈의 두 눈이 반짝였다.

강송구는 고갤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 메켄지 고어의 2회 초 피칭이 끝이 났다. 순간적으로 흔들리며 2개의 안타를 허용했지만, 병살타를 유도하며 깔끔히 위기를 넘겼다.

다시 마운드에 올라갈 시간.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켄 크로윈을 뒤로하고 강송구가 천천히 마운드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 * *

“X팔! 죽여주는구먼!”

켈리.

26시즌에 라스베이거스에 메이저리그 구단이 생긴 뒤로 그는 빠짐없이 야구를 보러오는 열혈 야구팬이었다.

“기대하지 않으니까 딱 35시즌이나 36시즌쯤에 월드시리즈에 도달했으면 소원이 없겠네.”

그리고 그가 응원하는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팬이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는 신생팀이고 아마 이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려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켈리는 지난해부터 작은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라스베이거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 팀이라면 가능해! 이 팀이라면 금방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을 거야!”

라스베이거스 단장의 뛰어난 안목.

그리고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 나쁘지 않은 트레이드 수완으로 라스베이거스는 제법 빠르게 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모두가 충격에 받을 FA 영입과 트레이드를 성공시키며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특히나 성공적인 영입은 바로 한국에서 온 투수였다.

“K! K! K! K! K!"

그래, 이 투수는 정말 끝내줬다.

개막전에서 보여준 8이닝 무실점 호투.

그때 켈리는 충격에 빠졌다.

저런 투수도 있었구나.

두 번째 등판, 강송구가 노 히터를 기록했을 때는 경악에 빠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라스베이거스여! 월드시리즈에서 보자!”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강송구가 무참히 오클랜드의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열심히 ‘K! K! K! K!'를 외쳤다.

4회 말.

강송구가 오늘 경기 7번째 삼진을 잡아내자 제대로 삘을 받은 켈리가 윗옷을 벗고 출렁이는 뱃살을 흔들며 소리쳤다.

“커모오오오온! 멍청한 오클랜드여! 이게 라스베이거스가 품은 에이스의 품격이다!”

5회 말.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

강송구가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켈리의 믿음은 확고했다.

이제 그의 출렁이는 뱃살에는 오클랜드의 마스코트인 코끼리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는 강송구가 차근차근 아웃을 잡아낼 때마다 신나게 배에 그려진 코끼리를 때리며 자학했다.

주변에 있던 몇몇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이 그런 켈리를 보며 ‘저 미친 뚱땡이가 또 시작이군.’이라며 수군거렸다.

그리고 찾아온 5회 말의 투 아웃 상황.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강송구가 오늘 경기 9번째 삼진을 잡아내는 순간 켈리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를 내질렀다.

“멍청한 애슬레틱스 놈들! 이게 바로 캉이다! 이게 바로 웨스트스타즈의 에이스란 말이야!”

* * *

6회 말이 끝났다.

6이닝 무실점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강송구가 이번 이닝도 책임지기 위해서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경기 3피안타 2볼넷을 내주며 평소보다 조금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생각보다 투구수가 66구로 그 어느 경기보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 캉에게 9회까지 맡기지.”

미키 스토리 감독의 말에 벤치 코치가 고갤 끄덕였다.

사실 강송구가 9회 말까지 던지는 것이 좋았다.

앞선 1, 2차전에서 불펜이 제법 많은 공을 던지며 체력적으로 지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놀랍군.’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다.

아무리 한국에서 프로로 뛰었던 경험이 있던 선수라지만 그것도 고작 1년에 불과했다.

그런 선수가 지금까지 단 하나의 실점도 없이 라스베이거스를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감독으로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좌우 로케이션을 즐기던 강송구가 오늘 경기에는 상하 로케이션으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

높은 코스로 공을 던진 뒤에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져서 범타를 유도하거나, 낮은 코스에 공을 던지며 카운트를 쌓고 높은 코스에 구위가 뛰어난 공을 던져 삼진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강송구도 사람인지라 조금씩 피안타와 볼넷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단한 것이지.”

그러는 사이 7회 초의 마운드에 메켄지 고어가 성큼성큼 걸어서 올라갔다.

지금까지 5피안타 2볼넷을 허용하면서 자주 위기에 몰렸던 메켄지 고어도 7회 초까지 무실점을 버티며 에이스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강송구와 메켄지 고어의 차이점은 이번 이닝에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투구수 차이.

강송구가 6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66구를 던졌다면, 메켄지 고어는 지금까지 88구를 던지며 슬슬 한계에 도달해가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만큼 메켄지 고어는 지금까지의 무실점을 위해서 평소보다 조금 무리하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끈질기게 메켄지 고어를 괴롭히며 투구수를 늘렸다.

-이제 아웃 하나를 잡았지만……. 메켄지 고어의 표정이 썩 좋지 않습니다.

-네, 한 명의 타자를 잡으려고 너무 많은 공을 던졌습니다. 어쩌면 이번 이닝이 메켄지 고어의 마지막 이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조금씩 메켄지 고어의 피칭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다는 소립니다.

-체력이 많이 빠진 것처럼 보이네요.

중계진의 말처럼 메켄지 고어의 체력은 많이 빠져 있었다. 하지믄 그의 표정은 굳건했다.

‘더 버틸 수 있어.’

그래, 이런 위기도 많이 겪어봤다.

이 상황보다 훨씬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실점을 기록하며 이닝을 깔끔히 끝낸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7회 초의 흐름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녹록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후우……’

다시 나온 볼넷.

그가 던진 써클 체인지업에 바깥쪽으로 크게 빠졌다.

오늘 경기 벌써 3번째 볼넷이었다.

‘평소답지 않은 느낌이야.’

메켄지 고어가 얼굴을 굳혔다.

그는 강송구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이겨야 해. 내가 아직 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경기는 쉽지 않았다.

따악!

-떴습니다!

-계속해서 출루하는 라스베이거스!

-9번 타자 조던 웨스트버그가 볼넷으로 출루하고 그 뒤를 이어서 1번 타자 조쉬 마이어스가 해냈습니다! 역시 한 방이 있는 선수입니다!

-주자는 1사 1, 3루의 상황! 이제 타순은 돌아서 브랜든 마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좋지 않은 타이밍에서 메켄지 고어가 상대해야 할 타자는 상대 팀의 상위 타선이었다.

그것도 2-3-4로 이어지는 타선.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모자를 벗고 소매로 빠르게 이마의 땀을 닦은 메켄지 고어가 2번 타자 브랜든 마쉬를 노려봤다.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저 노장은 늙었다.

더는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메켄지 고어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초구부터 자신 있게 던졌다.

몸쪽에 정확히 파고드는 커브.

하지만 브랜든 마쉬가 노리던 것도 초구부터 날아든 커브였다.

아주 시원하게 떨어지는 커브.

브랜든 마쉬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악!

떨어지는 커브에 맞춘 스윙은 완벽했다.

그리고 높게 떠오르는 공.

브랜든 마쉬가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1루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높게! 높게! 높게에에에!

-넘어갑니다! 라스베이거스! 경기 후반이 가까워져서야 멋진 선취점을 때려냅니다!

-주인공은 브랜든 마쉬! 33살의 베테랑이 쓰리런을 때려내면서 라스베이거스를 무승부의 구렁텅이에서 깔끔히 구해냅니다!

-이제 점수는 3 대 0! 라스베이거스가 제법 큰 점수 차이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꽉 문 메켄지 고어.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은 타자를 상대로 깔끔히 아웃을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하지만 마운드를 내려가는 그의 표정은 강송구와 다른 의미로 절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찾아온 7회 말.

강송구가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며 마운드에 올라가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타석에는 오클랜드의 4번 타자인 마이크 슐라이허가 강송구를 보며 침을 삼켰다.

이윽고 시작된 피칭.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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