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93화 (93/198)

#93. 에이스의 품격(4)

메켄지 고어.

그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항상 잘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FA 영입되기 전 2027시즌 뉴욕 메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에이스이자, 매 시즌 10승 이상을 꼬박 달성해 주던 선발투수였다.

파드리스에 있던 시절에도.

메츠에 있던 시절에도.

그는 정통파 좌완의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하는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매 시즌 190이닝을 소화하는 강철 체력과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은 그가 2023시즌에 사이 영 어워드를 수상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에이스로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래.

그는 에이스였다.

그것도 제법 품격이 있는 에이스.

하지만 지금의 메켄지 고어는 오클랜드에서 썩 좋지 못한 시즌 출발을 보여주고 있었다.

2030시즌에 11승 7패 ERA 3.23을 기록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무너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평균 96마일에 달하는 포심 패스트볼은 지금 최고 95마일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으며, 그가 자랑하는 슬라이더는 예전보다 그 각이 밋밋해졌다.

하지만 그는 패배자의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고 여기서 새롭게 변화하는 방법을 기어코 찾아냈으니까.

그 새로운 변화 덕분에 지난 등판에서 7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두 종류의 체인지업을 활용할 생각입니다. 예전과 다르게 저는 압도적인 좌완 파이어볼러도 아니며, 슬라이더의 각도 예전처럼 위력적이지 않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체인지업과 써클 체인지업.

두 종류의 체인지업을 활용한 피칭.

그게 메켄지 고어가 찾아낸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번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와 경기에서 증명하고 싶어 했다.

자신은 아직 에이스로 군림할 수 있다.

메켄지 고어는 한 팀을 이끌 에이스다.

아직 죽지 않았다.

“에이스의 품격이 무엇인지 보여주겠습니다.”

그가 환히 웃었다.

이번 경기.

메켄지 고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 * *

강송구가 대한민국과 메이저리그에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알리는데 필요한 경기는 단 한 경기였다.

그 경기 이후로 모두가 강송구를 이번 시즌 누구보다 확고한 라스베이거스의 에이스라고 평했다.

혹여 누군가 그 사실을 깎아내리거나 작은 의문을 보내도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이 보여주는 강송구를 향한 팬심을 확인한 순간 그런 생각조차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꽉 찼군.”

라스베이거스는 빅 마켓도 아니며, 그렇다고 스몰 마켓이라기에는 상당한 자금력과 열정적인 팬이 있는 구단이었다.

양키스, 컵스, 다저스, 레드삭스 등등.

어마어마한 팬을 가진 구단과 비교해서 홈구장을 찾는 팬들의 숫자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레드삭스처럼 원정까지 열정적으로 따라오는 팬들의 숫자는 절대 뒤지지 않았다.

덕분에 26시즌에 라스베이거스가 메이저리그에 합류한 뒤로 오클랜드의 원정 경기에는 제법 많은 라스베이거스의 원정팬들이 가득 자리를 차지했다.

오클랜드의 홈팬들은 ‘이게 오클랜드의 홈인지……. 아니면 라스베이거스의 홈인지 헷갈린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제법 많은 숫자의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이 몰렸다.

어쩔 수 없었다.

라스베이거스는 26시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와일드카드에 도전할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고, 동시에 화끈한 공갈포와 팬들이 화딱지가 나지 않는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팀이었다.

거기다 라스베이거스라는 유흥의 도시에 걸맞은 홈구장 근처의 테마파크 시설까지 존재했다.

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

그게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였다.

“멋진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푸하하! 우리 원정팬들 진짜 죽여주네.”

조던 델가도는 오클랜드의 홈에서 저런 현수막을 들고 환호성을 내지르는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을 보며 킥킥 웃었다.

반대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달랐다.

산 호세로 이전도 실패.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로도 이전 실패.

지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스몰 마켓의 한계도 문제였고.

애슬레틱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 스포츠팀들이 떠나면서 주민들의 스포츠에 관한 관심이 식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총체적 난국.

그게 오클랜드였다.

아무튼.

그런 오클랜드의 적은 홈팬들이 이번 경기만큼은 어떻게든 이기라며 바득바득 소리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슬레틱스의 몰락을 초래한 것이 바로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가 창단되면서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아마 지금쯤 라스베이거스 애슬레틱스로 바뀌었을 것이다.

“꼭 이겨!”

“저 망할 라스베이거스 놈들을 죽여!”

“커모오오온! Fxxk! 비치!”

“우우우우우우우!”

덕분에 필리건에 빙의한 애슬레틱스의 팬들이 내지르는 야유가 원정팀 더그아웃까지 들려왔다.

창단부터 지금까지 쭉 구단에 있었던 노장 조던 웨스트버그가 해바라기 씨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에인절스와 경기할 땐 그 나름의 쫄깃함이 있는데, 오클랜드와 경기할 때는 또 묘한 경쟁심이 있지.”

이런 이야깃거리가 있기에 지금의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가 메이저리그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신생구단인 오스틴 아이소톱스는 나쁘지 않은 연고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탬파베이 수준의 관중 동원율을 기록하며 아직도 리그 꼴찌를 탈출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오클랜드 원정 4연전의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팀의 선발투수는 각각 대니 아비티아와 산티아고 플로레즈라는 젊은 선발을 내보냈다.

라스베이거스의 4선발인 대니 아비티아는 포심,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주로 던지는 젊은 선수였다.

커터와 슬라이더가 플러스급 구종이라 평가를 받지만, 체인지업은 평균에 못 미치는 구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덕분에 5이닝까지는 대체로 잘 버티는 대니 아비티아였지만, 경기가 절반만 넘어가면 타자에게 읽힌 커터와 슬라이더가 난타를 당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대니 아비티아도 충분히 상위 선발에 들어갈 포텐셜이 있는 투수였다.

문제는 오늘 대니 아비티아가 자신이 가진 장단점을 모두 보여주며 무너졌다는 점이었다.

-5.2이닝 6실점……. 오늘 대니 아비티아가 오클랜드의 타선을 막지 못하고 결국 6회 말에 무너집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저 체인지업이 어느 정도 손에 익어야 지금보다 훨씬 좋은 피칭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금방 한계에 도달할 겁니다.

선발이 무너진 라스베이거스.

하지만 오클랜드가 괜히 지구 꼴등이 아니었다.

6회 말에 만들었던 6점을 순식간에 따라잡히며 경기는 12회 말까지 이어졌고 결국 7 대 6이라는 점수 차이로 오클랜드가 이번 시리즈의 1차전 승리를 가져갔다.

기대하고 오클랜드까지 찾아온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이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그건 오클랜드를 향한 야유였지만, 동시에 부진한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을 향한 야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시리즈 2차전.

라스베이거스는 강송구가 예상한 것처럼 이번에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연패에 빠졌다.

충격에 빠진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

그런 선수단을 보며 강송구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 * *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클랜드와 라스베이거스의 원정시리즈 세 번째 경기! 오클랜드의 앨러메다 카운티 콜로세움에서 이번 시리즈의 향방이 정해집니다.

-이번 원정 4연전에서 꼭 승리가 필요했던 라스베이거스는 2경기 연속 패배하면서 지구 3위까지 떨어졌습니다.

-시애틀이 2위로 치고 올라왔죠?

-사실 시애틀이 치고 올라왔다기보다는……. 라스베이거스가 자기 발에 자기 자신이 걸려 넘어졌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그렇죠.

-그렇기에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번 경기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그들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가 오늘 마운드를 올라갑니다.

-송.구.캉! 올해 라스베이거스의 1선발 자리를 꿰찬 이 젊은 한국 출신의 투수가 과연 오늘 경기에서도 한국에서 불렸던 ‘미스터 제로’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피칭을 해줄지 기대됩니다.

-하하하! 믿어도 좋습니다! 캉은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기 무섭게 노 히터를 기록한 어메이징한 투수니까요.

-상대인 오클랜드는 예전 뉴욕 메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에이스였던 메켄지 고어입니다!

-지금은 애슬레틱스의 에이스죠. 그리고 이번 달은 썩 성적이 좋지 않았던 메킨지 고어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난 경기는 좋았죠?

-네, 조금씩 오클랜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더 발전하는 듯한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메켄지 고어가 마운드에 올랐다.

195㎝의 큰 키.

그리고 그 큰 신장에서 나오는 역동적인 투구폼과 레그킥이 그의 상징인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메켄지 고어는 이제 오클랜드의 에이스로 마운드를 밟고 있었다.

-저기 너랑 비슷한 놈이 한 명이 더 있네.

‘난 저렇게 우락부락하지 않다.’

강송구의 단호한 대답에 우효가 ‘그게 무슨 개소리야?’라는 눈빛으로 슬쩍 그를 노려봤다.

그러는 사이 메켄지 고어가 피칭을 시작했다.

“슬라이더는 역시 예전만 못하네.”

“2028시즌에 얻은 부상 후유증이겠지?”

“그렇지. 하지만 저 정도 슬라이더도 타이밍만 잘 맞으면 카운트 잡는 용도로는 쓸만하겠어.”

“구속도 조금 줄었네.”

“그래도 내 눈에는 아직도 빨라 보여.”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며 카운트를 쌓고 두 종류의 체인지업을 섞어 타자를 속였다.

따악!

오클랜드의 엉망진창인 내야수가 잡기 편한 코스로 타구를 유도해서 첫 아웃을 잡아낸 메켄지 고어는 이어서 라스베이거스의 두 번째 타자인 브랜든 마쉬를 상대로 깔끔히 삼진을 잡아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때?”

“커브는 언터처블. 다른 구종은 솔직히 조금 더 지켜보면 공략할 만한 느낌?”

선두타자인 조쉬 마이어스의 말에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체인지업을 노려볼까?”

“그러다가 패스트볼만 3개 연속으로 날아들면 답이 없지. 그냥 감으로 때려야 한다니까?”

“아니,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타석에 들어가야지.”

철저히 감각에 의존하는 앤디 요스트와 게스히팅을 즐기는 헤이든 존스가 티격태격하는 동안에 1회 초가 끝났다.

쉽지 않은 승부를 겨루며 메켄지 고어에게 11개의 투구를 뺏어낸 카디안 스타우트.

그가 글러브를 가지고 필드로 나가는 사이에 모든 준비를 끝낸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마운드로 향하는 강송구.

그를 보며 라스베이거스의 원정팬들이 거대한 환호성을 내지르며 ‘캉! 캉! 캉!’을 계속 외쳤다.

그러는 사이 2미터에 가까운 거인 강송구가 마운드에 도착해 로진백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선두타자는 미셸 우라비나.

오클랜드의 좌익수이자 최근 그들이 자신들의 절망적인 팜에서 겨우 끌어올린 보물이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콜업이 된 그는 마운드에 선 강송구를 보며 강한 승부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불린 별명이 미스터 제로라고?’

저 새하얀 도화지에 낙서하고 싶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힐 홈런을 말이다.

꽉 배트를 잡은 미셸 우라비나.

제법 준수한 힘과 타격 능력을 갖춘 그는 1번 타순에 배치되었음에도 지난 시즌에 트리플A에서 31개의 홈런을 때릴 만큼 대단한 포텐셜을 갖춘 타자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지.’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의욕이 넘치는 우타자를 상대로 초구부터 던지면 좋은 공은 당연히 슬라이더였다.

부우우웅!

초구부터 시원하게 선풍기가 돌아갔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의욕을 드러냈음을 깨달은 미셸 우라비나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래, 천천히 하자.’

급할 것 없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었다.

1회 초의 1번 타자가 해야 할 일.

최대한 투수와 많은 경합을 하며 투수가 가진 정보를 수집하고 체력을 빼놓는 것이 중요했다.

미셸 우라비나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공을 최대한 보면서 큰 걸 노리자.’

하지만 그런 생각 사이로 ‘혹시……?’라는 작은 희망이 타자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당연히 강송구는 그걸 파악하고 타자의 몸쪽 높은 코스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싱커를 던졌다.

“볼!”

날카로운 공.

코스를 조금 벗어났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저 높이의 싱커를 본 순간 타자는 조금씩 확신을 두고 타격을 시작한다.

‘어? 이 정도 높이로 다시 싱커가 날아들면 제대로 걷어낼 수 있겠는데? 홈런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타자가 그런 생각을 가지기 무섭게 강송구가 다시 바깥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제대로 걸친 슬라이더.

미셸 우라비나의 두 눈이 흔들렸다.

다시금 강송구가 가진 무기가 떠올랐다.

‘어떤 구종이 날아들어도 쉽지 않겠지. 하지만…… 그 싱커가 아까 그 궤적으로 떨어진다면…….’

이미 미셸 우라비나의 머릿속에는 강송구의 실투를 받아치고 베이스를 도는 자신의 모습이 가득했다.

미셸이 씩 웃었다.

물론, 그 웃음은 매우 짧았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강송구에게 홈런이나 점수를 뺏어가는 것은 정말로 헛된 망상일 뿐이었으니까.

우효가 어색히 웃던 미셸 우라비나를 보며 어느 소설에서 나오는 명대사를 내뱉었다.

-형님. 저 새끼 웃는데요?

“내버려 둬. 상상 속에서 홈런을 때렸나 보지.”

강송구가 그렇게 대답하고 다음 타자를 바라봤다.

오클랜드의 유격수인 로버트 파슨.

그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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