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92화 (92/198)

#92. 에이스의 품격(3)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리베라가 던지던 커터가 100마일에 날아들면 타자는 어떤 심정을 느낄까?

리베라의 커터는 특별했다.

포심 패스트볼 그립에서 나오는 커터.

덕분에 투구폼으로 구종을 판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리베라의 커터였다.

그런데 그 공이 100마일로 날아든다?

“X같네.”

에릭 롱마이어가 내뱉은 욕설이 100마일로 날아든 리베라의 커터를 본 타자의 심정을 대변했다.

초구는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2구째는 99마일의 커터가 날아들었다.

깔끔히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강송구.

그런 강송구를 보며 우효가 물었다.

-100마일 넘는 커터를 던질 수 있는데 왜 포심 패스트볼이랑 구속을 맞추는 거야?

‘리베라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성적이 좋아진 특이한 유형의 투수지. 그리고 그 비결 중 하나가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의 구속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야.’

똑같은 투구폼.

똑같은 릴리스 포인트.

그리고 똑같은 구속.

그런데 날아드는 공의 궤적은 다르다.

그게 리베라가 마흔이 넘어서도 공략이 어려운 투수가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리 위력적인 공이라도 읽히는 순간 홈런을 맞는 게 여기 메이저리그지.’

그렇기에 커터를 던질 때 103마일 근처까지 던질 수 있음에도 강송구는 구속을 조절했다.

힘을 조금 아낀 만큼 그 효과가 좋았으니까.

지금도 그랬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포심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춘 에릭 롱마이어가 횡적 움직임을 보이며 떨어지는 커터에 삼진을 허용했다.

같은 투구폼에서 같은 구속으로 나오는데 구종은 전혀 다른 공이 타자의 눈앞으로 날아든다.

심지어 공을 받는 조던 델가도도 조금인 긴장 어린 표정으로 미트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큼 강송구가 던지고 있는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이어지는 승부.

에인절스의 2번 타자인 데이비드 플레처가 침을 삼키며 타석에 들어섰다.

1회 말 타석에 들어설 때와 전혀 다른 표정.

강송구는 이번에 좌완 정통파 투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데이비드 플레처를 상대로 보여줬다.

-깔끔히 꺾이는 커브!

-놀랍니다! 캉! 이번에도 멋지게 삼진을 잡으며 계속해서 위력적인 피칭을 이어나갑니다!

마지막 타자인 벤 린드를 상대로 조금 긴 8구 승부 끝에 범타로 유도하며 이닝을 끝냈다.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

그를 보며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을 가득 채운 에인절스의 팬들이 거친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우우!

제발 무너지라고.

이제 안타나 홈런을 내줄 때가 되지 않았냐고.

그건 저주에 가까운 소음이었다.

투수가 자신들의 야유에 흔들리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저주가 아니고서야 뭐라 불릴 수 있을까?

하지만 강송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더그아웃에서 시원한 물을 들이켠 강송구.

그가 다시 마운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짐가방에서 인터넷이 되지 않는 가벼운 태블릿 PC를 꺼내서 뭔가를 필기하기 시작했다.

‘상대 상위타선은 중에서 강속구에 빠르게 반응한 타자는 벤 린드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공 중에서 벤 린드가 때려낸 공이 몇 번째 공인지를 세세히 적어놨다.

‘세 번째 타석은 위험하겠어.’

90마일이든 100마일이든.

상대 타자가 그의 포심 패스트볼에 적응했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첫 번째 승부에선 90마일짜리 우완 기교파. 두 번째 승부에서는 100마일의 좌완 정통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승부에서는 너클볼러가 나온다면 정신이 없겠지.’

에인절스는 상위 타선만 조심하면 된다.

그렇기에 상위 타선을 상대로는 승부마다 전혀 다른 투수처럼 보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지금까지는 강송구가 준비한 모든 것이 차근차근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과감히 공을 던지면서도 강송구는 주변의 상황과 에인절스의 더그아웃 분위기를 살폈다.

아직 경기는 반이나 남았으니까.

* * *

5회 말.

볼넷이 나왔다.

그건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

상대 타자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는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였다.

하지만 실책이 나올지는 몰랐다.

1사 1, 3루의 위기 상황.

메이저리그에서 첫 위기를 맞이한 강송구.

하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리고 실수를 한 선수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이어진 승부에서 깔끔히 내야 플라이를 처리하며 아웃을 하나 처리했다.

그리고 깔끔히 삼진으로 5회 말의 마지막 타자를 잡아낸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점수를 만들 기회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 에인절스의 선수들에게 몇몇 홈팬들이 욕설과 야유를 보냈다.

-확실히 쉽지 않아.

우효도 고갤 끄덕였다.

한국과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여긴 메이저리그니까.

한국에서는 딱히 위기랄 것도 없었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종종 강송구의 턱 끝까지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고작 시즌 3번째 경기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6회 말.

다시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에는 안타를 하나 내줬다.

그리고 무사 1루의 상황에서 다시금 상위 타선과 마주한 강송구는 이번에는 너클볼러처럼 공을 던졌다.

1루에 있던 주자가 2루로 달려도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1점을 내줘도 이기고 있는 팀은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였다.

2 대 1로 쫓기는 것이 부담되겠지만.

솔직히 강송구는 그런 부담감을 대전 호크스 시절에 무수히 많이 겪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주자가 3루까지 도루했음에도 결국 모든 타자를 깔끔히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벤 린드는 강송구가 던진 너클볼을 보며 조금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가 주심에게 경고를 받았다.

6이닝 무실점.

6회 말까지 깔끔히 막아냈지만, 아직 강송구의 투구수는 80구 근처밖에 되지 않았다.

-딱 7이닝에서 8이닝까지 던지겠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마무리 투수인 C.J 포스터가 최근에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으니 슬슬 경기력을 위해서 마운드에 올릴 때가 됐지.’

전문적인 마무리는 아니지만, 지난 시즌에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38경기 11승 6패 8세이브 ERA 3.56을 기록한 C.J 포스터는 이번 시즌에도 선발 경쟁에 밀려 불펜에 자리를 잡았다.

뛰어난 패스트볼과 싱커를 주로 던지며, 필요하다면 평균 수준의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는 투수였다.

주로 강력한 싱커를 주 무기로 썼는데.

라스베이거스의 더블A 투수 코치와 메이저리그 투수 코치가 싱커를 잘 가르쳐 대체로 라스베이거스 팜에서 콜업된 투수 유망주는 모두 수준급의 싱커를 다루는 편이었다.

C.J 포스터도 그런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선발진에 구멍이 생길 때 가장 먼저 선발진에 합류할 선수로 주목을 받는 선수였는데, 올해는 마무리 투수로 크리스 울프와 함께 경쟁하게 되었다.

7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라 깔끔히 이닝을 끝냈다.

상위 타선도 어찌하지 못한 강송구를 상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운 좋은 안타가 나오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8회 말.

2루타를 하나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다시금 깔끔하게 이닝을 끝낸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8이닝 무실점의 호투.

그 뒤에 올라온 것은 C.J 포스터였다.

그는 강송구가 지킨 2점을 사수했다.

그렇게 LA 에인절스와 원정 4연전의 두 번째 경기도 라스베이거스가 승리를 거두고 경기가 끝을 맺었다.

* * *

강송구의 호투가 팀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그가 8이닝 무실점으로 에인절스 원정시리즈 두 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 날에 2선발인 켄 크로윈이 에인절스와 시리즈 세 번째 경기에서 8이닝 2실점의 호투를 보여주었다.

-놀랍습니다!

-켄 크로윈! 커브가 살아서 움직입니다!

-여기에 체인지업까지 오늘 제대로 걸치면서 정말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승리를 가져갈 수 없었죠?

-어제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했던 C.J 포스터가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3 대 2로 에인절스가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물론, 호투했음에도 팀의 승리를 지켜낼 수 없었지만 켄 크로윈은 딱히 그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에인절스 원정시리즈의 마지막 경기에서 윌리 알비드레즈도 앞선 두 선발의 활약에 자극을 받았는지 8이닝 1실점의 호투를 보여주었다.

물론, 경기는 11회까지 가는 연장전 끝에 LA 에인절스가 이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선발진의 활약에 몇몇 전문가들은 라스베이거스가 예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매덕스-글래빈-스몰츠’와 비슷한 수준의 선발 트로이카를 얻은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쯧쯧 어디서 이런 야알못이 전문가라고 나대는 거야? 어디 매덕스, 글래빈, 스몰츠가 X으로 보이냐?

우효는 그런 기사를 보고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송구는 비행기 좌석에 몸을 기대서 열심히 손에 들린 자료를 보고 있었다.

다음 상대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3년 동안 신나게 탱킹을 하며 다시금 유망주를 긁어모으기 시작한 그들은 산 호세로 이전을 하지 못하며 슬프디슬픈 암흑기를 걷고 있었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탱킹을 끝내고 천천히 리빌딩을 하며 팀의 중심이 될 에이스로 뉴욕 메츠의 선발이었던 메켄지 고어를 4년 7천만 달러에 데려오며 ‘오클랜드가 미쳤어요!’라는 말을 듣는 행보를 보여주고는 있었다.

물론, 누군가 투자한 만큼 메켄지 고어가 시즌 초반에 잘해주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오클랜드의 팬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1승 3패라는 성적과 5점대의 평균 자책점이 적힌 기록지를 보여주겠지만 말이다.

“잘 던지던데?”

그때 자료를 보며 생각에 잠긴 강송구에게 켄 크로윈이 맥주를 들고 다가왔다.

그의 등장에 강송구는 자료를 내려놓고 가만히 켄 크로윈을 바라봤다.

“맥주 좀 마시면서 하라고.”

그가 건넨 맥주를 받은 강송구가 조용히 고갤 흔들고는 맥주를 자신의 옆으로 치워놨다.

“오늘은 날이 아니군.”

켄 크로윈은 그런 강송구를 보며 웃더니 비어 있는 옆 좌석에 앉으며 그가 들고 있는 자료에 관심 있게 바라봤다.

“상대가 오클랜드인데 상당히 조사를 많이 하네. 그 녀석들 지금 리그 최하위라 상대하기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야.”

“그런 오클랜드도 2002년에 기적의 20연승을 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낸 적이 있었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팀의 분위기가 어떻다고 생각해?”

“나쁘지 않지.”

켄 크로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나쁘지 않았다.

매 시즌 4월만 되면 크게 가라앉던 분위기도 이번 시즌에는 나쁘지 않은 성적과 함께 반등하고 있었다.

“사실 라스베이거스는 4월에 그 어느 팀보다 강하단 사실을 알고 있나?”

“뭐?”

켄 그로윈은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며 물었다.

강송구는 3년 동안 라스베이거스가 4월에 기록한 성적을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보면 알겠지만 4월의 라스베이거스는 전형적인 도깨비 팀이야. 각 지구의 강팀을 상대로는 5할 7푼의 승률을 자랑하며 좋은 성적을 자랑하지만…….”

“약팀을 상대로는 3할대의 성적을 기록했군.”

“그래, 지난 시즌에는 우리와 같은 지구의 꼴찌팀인 오클랜드를 상대로는 4월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으면서 같은 지구 1위 경쟁팀인 에인절스를 상대로는 3승 1패. 거기다 각 지구의 강팀을 상대로도 시리즈마다 위닝시리즈를 기록했지.”

“음…….”

켄 크로윈이 고갤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딱히 방법은 없어. 지금 선수들 사이의 분위기를 보면 오클랜드를 상대로 무조건 이길 거란 자만심이 넘치니까. 이런 분위기를 통제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지.”

“…….”

켄 크로윈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강송구는 그런 켄 크로윈을 보며 오클랜드 타자들의 장점과 약점이 잘 정리된 자료를 건네주었다.

“그러니 이번 오클랜드와 경기에서 방심하지 마. 조금만 주의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니까.”

“이걸로 바뀌는 게 있을까?”

“적어도 루징 시리즈가 될 이번 원정시리즈를 2승 2패의 동률로 마무리할 수는 있겠지.”

강송구의 대답을 들은 켄 크로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효가 파인애플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저걸로 되겠어?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라스베이거스가 구단 역사상 첫 지구 우승과 첫 디비전 시리즈 진출을 이뤄내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해. 고작 저런 종이쪼가리로 많은 것이 바뀌지 않지,’

하지만 저런 작은 변화부터가 시작이었다.

팀의 역사가 쓰이기 시작하는 변화.

그래, 저런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강송구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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