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연패스토퍼 MK-2(4)
무키 베츠는 생각했다.
저 투수의 약점은 뭘까?
‘그나마 구속?’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살짝 부족한 구속.
그걸 빼면 또 다른 약점은 무엇일까?
‘메이저리그의 경험? 아니면 구위?’
경험은 문제없을 것이다.
상대는 한국이라는 리그에서 최고의 성적을 만들어낸 뒤에 메이저리그로 온 투수다.
경험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구위도 좋았다.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조금 떨어지는 구속이지만, 강송구가 던지는 모든 공은 구위가 제법 좋았다.
‘사실 이것도 상대적인 것이겠지.’
전성기 시절의 그라면 강송구의 공 중에서 하나라도 때려낼 수 있었을까?
그건 또 모르는 일이겠지.
따악!
“파울!”
-무키 베츠! 끈질긴 승부!
-벌써 7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패스트볼 계열의 공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빠르게 날아드는 포심과 커터에 배트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습니다.
-아! 쳤습니다! 배트가 부러지면서 공이 내야를 빠져나가지를 못합니다!
무키 베츠의 배트에 맞고 힘없이 굴러온 공을 강송구가 잡아서 여유롭게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1루로 뛰던 무키 베츠가 그 모습을 보고 부러진 배트와 함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대기 타석에 있던 인디언스의 3번 타자인 앤드류 본이 그런 무키 베츠를 보며 물었다.
“어때요?”
“쉽지 않네. 패스트볼 종류도 아닌 것 같아. 다른 구종을 노려봐. 오늘 느낌이 좋지 않아.”
그러는 사이에 강송구는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역시 전설은 다르군. 쉽게 물러가지 않았어.
우효의 감탄에 강송구도 고갤 끄덕였다.
8구까지 가는 승부였다.
만약에 몸쪽으로 집어넣는 공 중에서 조금만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나왔다면 안타가 됐을 것이다.
이어지는 앤드류 본과 승부.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가 될 수 있는 그의 위치를 살핀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었군.’
-바깥쪽을 노려볼 생각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떨어지는 공을 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조던 델가도가 사인을 보냈다.
몸쪽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커브.
아무래도 조던 델가도는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천천히 알아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커브 그립을 쥔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몸쪽 낮게 미트를 가져가는 조던 델가도.
강송구가 그에 맞춰서 커브를 던졌다.
조금 붕 뜨다가 떨어지는 커브.
앤드류 본은 조용히 공을 지켜봤다.
“볼!”
몸쪽을 노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초구 커브를 지켜보는군. 몸쪽으로 들어가는 공을 노릴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
조던 델가도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번에는 바깥쪽 커브 사인이 나왔다.
몸쪽 낮은 코스로 던진 것보다 더 떨어지는 코스로 던져달라는 사인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그 떨어지는 공에 맞춰 이번에는 앤드류 본의 배트가 시원하게 허공을 갈랐다.
부우우우웅!
“스트라이크!”
카운트는 1-1의 상황.
3구째 던진 공은 슬라이더였다.
그것도 우타자 바깥으로 빠지는 환상적인 슬라이더.
이번에도 앤드류 본의 배트가 시원하게 허공을 갈랐다.
조던 델가도는 그런 앤드류 본을 보며 확신했다.
‘타자가 제대로 감도 못 잡고 있다.’
그렇지않으면 이렇게 투수가 자신 있는 바깥쪽 코스로 승부를 걸어와 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끈질기게 바깥쪽 공을 던지면서 괴롭혀야지.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너클 커브.’
붕 뜬 커브와 횡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보여줬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다시금 타자의 배트를 유인할 완벽한 위닝샷이 필요했다.
그리고 조던 델가도는 지금 상황에서 강송구가 가진 너클 커브가 가장 좋은 공이라고 생각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당연히 그 생각은 적중했다.
시원하게 헛스윙을 하는 앤드류 본.
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갤 흔들었다.
“진짜 지랄 맞은 공이야.”
* * *
6회 말.
땀에 젖은 마이크 마조네가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경기 2개의 안타와 1개의 볼넷을 제외하면 마이크 마조네는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다.
완벽히 긁히는 체인지업.
그리도 뛰어난 구속을 자랑하는 패스트볼.
마지막으로 두 구종 사이를 받쳐주는 슬라이더까지.
오늘 그는 통곡의 벽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도 루킹 삼진!
-벌써 9번째 삼진! 마이크 마조네가 오늘 정말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거죠. 이게 마이크 마조네 아니겠습니까? 좌투수의 손에서 나온 슬라이더가 우타자의 몸쪽에 정확히 들어가면…… 정말 치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칭찬은 잠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7회 초의 마운드에 오른 한 명의 투수에게 쏠렸으니 말이다.
그 사실이 마이크 마조네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디어 캉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오늘 경기 단 하나의 볼넷만 허용하고 있는 캉! 인디언스의 타자들이 모두 압도되고 있습니다.
-과연 캉이 계속해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며 9회 초까지 이어나갈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래.
저 투수가 문제였다.
5회 초에 바깥쪽에 절묘하게 걸친 공이 볼넷으로 판정만 받지 않았다면 그는 퍼펙트를 이어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 같은 마운드를 공유하는 상대 투수의 컨디션은 자신보다 좋아 보였다.
그래서 불안했다.
볼넷을 하나만 내줬다는 뜻은 지금 상대는 ‘노 히터’에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거기다 자신보다 훨씬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마이크 마조네는 6이닝을 소화하며 89구의 공을 던졌다. 하지만 강송구는 고작 71구였다.
조금 초조했다.
그러나 그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도 한 팀의 에이스였다.
그리고 이 정도 부담감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25살의 젊은 에이스가 감당할 수 있는 부담감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걸 알기에 인디언스의 타선은 조급했다.
저 부담감은 점수가 나오는 순간 줄어들 테니까.
따악!
-아! 높게 떠오르는 공!
-쉽지 않습니다! 무키 베츠가 노린 공이 높게 떠오르면서 그대로 내야 플라이 아웃!
-이번에는 스플리터였죠?
-맞습니다. 스플리터를 노리고 배트를 더 낮게 던진 것 같았는데……. 이번에 캉이 던진 스플리터는 아까와 다르게 구속이 7마일이나 느린 공이었습니다.
-완벽한 완급조절이네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강송구의 호투.
0 대 0의 균형의 계속해서 이어졌다.
벌컥 스포츠음료를 들이켜는 마이크 마조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팀 타선의 중심인 앤드류 본이 이번에도 강송구에게 삼진을 허용하며 허무하게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오늘 경기 12번째 삼진!
-캉! 오늘 정말 엄청납니다! 고작 메이저리그 두 번째 등판 만에 자신의 가치를 완벽히 증명하는 캉!
7회 초의 마지막 타자.
4번 타자 로베르토 캄포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전체적인 타격 능력은 떨어지지만 파워 하나만큼은 그 어떤 타자보다 뛰어난 타자.
아무리 강송구의 구위가 좋아도 애매한 공 하나만 던지면 바로 담장을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무서워할 필요는 없었다.
-선구안이 저렇게 좋지 않아서야……. 절대 네 공을 칠 수 없지. 저건 일반적인 공갈포보다 더 심한 공갈포다.
우효가 고갤 절레 흔들었다.
부우우우웅!
“스트라이크!”
강송구가 던진 초구에 시원히 헛스윙.
시작부터 좋지 않은 로베르토 캄포스는 연이어 강송구가 던진 변화구에 속아 헛스윙을 허용했다.
따악!
오우우우우!
그러다가 우연히 나온 타구가 파울 홈런이 되기는 했지만, 강송구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확률은 낮으니까.
그 확률을 믿으면 된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 이렇게.
-아웃!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캉이 이번에도 삼진을 잡아냅니다! 오늘 경기 13번째 삼진을 잡으며 대기록을 계속 이어나갑니다!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런 투수가 갑자기 메이저리그에 나타났을까요?
-경기는 이제 7회 말로 넘어갑니다!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를 보며 마이크 마조네가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로 향했다.
* * *
7회 말.
미안했다.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강송구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것은 그런 감정 때문이었다.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가 이렇게 호투를 이어가고 있는데 점수가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문제는 9회 말까지 가도 쉽사리 점수를 만들기 힘들 것 같다는 점이 더 타자들의 가슴을 옥죄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오늘 제대로 작두를 타고 있는 상대 투수는 그들의 마음이라도 읽는 것처럼 타자가 원치 않는 타이밍에 너무나도 완벽한 체인지업을 꽂아 넣고 있었다.
“Fxxk! 아주 X같이 공을 던지네!”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라스베이거스의 4번 타자 토미 리브즈가 헬멧을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그러다 수건을 뒤집어쓴 강송구를 확인하고는 눈치를 보며 자신이 집어던진 헬멧을 조심스럽게 주워 정리했다.
조던 델가도는 그런 더그아웃의 분위기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도 할 말이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그의 성적은 볼넷 하나가 전부니까.
‘토미는 완전 이성을 잃었고, 맨데즈는 오늘 타격감이 심할 정도로 바닥을 기고 있다.’
상위 타선에서 그나마 믿어볼 만한 타자는 유격수인 카디안 스타우트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 유일하게 마이크 마조네를 상대로 장타를 만들어낸 것도 카디안 스타우트뿐이었다.
그리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아마 카디안 스타우트는 9회 말에 마지막 타석을 가질 것이다.
조던 델가도는 그때가 승부처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8회 말에 투수를 바꾸겠지만……. 인디언스의 감독은 선발의 긴 이닝을 최대한 보장하는 스타일이었지?’
어쩌면 9회 말에 힘이 빠진 마이크 마조네를 상대로 카디안 스타우트가 점수를 만들어낼지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시원하게 선풍기를 돌리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조던 웨스트버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글렀어. 오늘 저 체인지업은 언터처블이야.”
하지만 한 명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뚫어지라고 마운드의 투수를 바라보던 카디안 스타우트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 끝이 난 7회 말.
수건을 뒤집어쓴 강송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은 그런 강송구의 모습을 보며 슬슬 눈치를 보며 필드로 향했다.
-아주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인데?
우효가 낄낄 배를 잡고 웃었다.
‘상관없다. 점수는 언젠가 나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래, 점수는 언젠가 나온다.
그전까지 강송구는 버티면 된다.
8회 초.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가 불펜을 힐끗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늘 경기에서 크리스 울프가 마운드에 오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싱커를 던지려고?
‘그래야 할 것 같아. 어쩌면 10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야 할지도 모르니까.’
체력적 여유는 있었다.
9회 초까지 110구 안에 끝낼 수 있었다.
거기다 아직 왼손으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
충분히 10이닝을 소화할 자신이 있었다.
‘나쁘지 않군.’
그래,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 10이닝 동안 던져서 노 히터를 기록했던 투수가 있었나?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나도 모른다. 그리고 굳이 10회 초까지 공을 던지고 싶지도 않고……. 딱 정규 이닝만 던지고 끝내야지. 그래야 타선도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 것과 다르게 우효의 생각은 달랐다.
‘느낌이 연장까지 갈 것 같은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경기는 절대 정규 이닝만 딱 던지고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