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연패스토퍼 MK-2(3)
조던 델가도의 말처럼 무키 베츠에게 날아드는 공 중에서 단 하나도 그가 좋아하는 코스로 들어오는 공이 없었다.
“쯧……. 글렀네.”
5구 승부 끝에 내야 플라이로 아웃을 헌납한 무키 베츠가 혀를 차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다음 타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3번 타자.
인디언스에서 가장 타격 능력이 뛰어난 선수.
앤드류 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데뷔한 그는 24시즌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간결하면서 파워풀한 스윙이 장점이며 배트 컨트롤 능력이 뛰어나서 매 시즌 준수한 타율과 20개 이상의 홈런을 자랑하는 선수다.
지난 시즌에는 0.251의 타율과 13개의 홈런을 때리며 부진했지만 앤드류 본은 무시할 수 없는 타자다.
‘이번 시즌은 폼이 좋은 것 같으니 조심해야지.’
조던 델가도가 쓱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패스트볼.
강송구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의 공을 요구했다.
좋아하는 만큼 위력적인 코스였기에 조던 델가도의 선택도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캉……. 깔끔히 잡고 이닝을 끝내자고.’
미트를 들어 올린 조던 델가도.
강송구는 그 미트에 정확히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며 앤드류 본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바깥쪽에 깔끔히 걸치는 강송구의 포심 패스트볼에 앤드류 본이 혀를 내둘렀다.
‘저 코스로 들어오는 공은 오래 보지 않는 이상은 절대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겠어.’
전성기의 트라웃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아마 시원하게 단타라도 하나 때려냈겠지.
하지만 그런 선수가 어디 쉽게 나타나겠는가?
앤드류 본은 트라웃이 아니었다.
따악!
“파울!”
2구째.
우타자의 몸쪽 낮은 코스에 파고든 스플리터에 배트가 나온 앤드류 본이 혀를 내둘렀다.
‘스플리터도 X같군.’
강송구의 스플리터는 절로 욕이 나오는 공이었다. 문제는 강송구가 저 스플리터와 비슷한 수준의 다른 구종을 제법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3구째는 커브.
4구째는 너클 커브.
5구째 체인지업.
따악!
“아웃!”
체인지업에 빗맞은 공이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고, 공을 유격수의 손을 거쳐서 그대로 일루수의 미트에 안착했다.
깔끔히 1회 초를 끝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2회 말.
고작 3연패였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의 젊은 타자들은 그 3연패를 겪는 동안에 타격감이 많이 죽었다.
그 결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1선발 투수인 마이크 마조네를 상대로 단 하나의 안타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후……. 돌겠네.”
“너무 안 풀리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사실 잘못된 것은 없었다.
그저 안타 하나가 터지면 자연스럽게 라스베이거스의 타선도 폭발하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그 안타 하나가 나오기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1선발인 마이크 마조네가 너무 뛰어난 투수였다.
-지난 시즌 14승 13패를 한 투수도 못 잡다니……. 너희 팀 타자들 수준이 너무 낮은데?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아니, 마이크 마조네는 뛰어난 투수다.’
그래, 그는 뛰어난 투수였다.
지난 시즌 14승 13패라는 성적만 보면 이 선수가 어떻게 사이 영 3위를 기록했는지 모를 수 있지만…….
그가 지난 시즌에 기록한 2.95의 평균자책점만 봐도 승패와 상관없이 마이크 마조네가 얼마나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강송구는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한 웨스트스타즈의 타선이 마이크 마조네를 상대로 안타 하나를 만들려면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오늘 딱 7이닝만 던지고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강송구의 예상처럼 웨스트스타즈의 타선은 마이크 마조네를 상대로 시원하게 선풍기를 돌렸다.
-마이크 마조네! 세 번째 삼진! 오늘 인디언스의 에이스가 정말 컨디션이 좋은 것 같습니다.
-날카롭네요. 그리고 그 어느 경기보다 구위가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타자들의 배트가 계속해서 조금씩 늦어지고 있는 게 저희의 눈에도 보입니다.
그렇게 찾아온 3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7-8-9로 이어지는 인디언스의 하위타선이 상대였기에 조금은 힘을 빼고 던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강송구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완급조절을 하고 있지만, 철저히 타자들의 수준에 맞춰서 자신의 피칭을 이어나갔다.
더그아웃에 붙어 있던 무키 베츠가 그런 강송구를 보며 옆에 있던 젊은 인디언스의 선수에게 물었다.
“저 친구는 어디 출신이야? 일본? 대만?”
“한국이라던데요?”
“한국?”
“네.”
“스물 후반에 저 정도 피칭이라니……. 분명히 자기 나라에서 알아주는 투수였을 거야.”
무키 베츠가 감탄사를 내뱉자 옆에 있던 젊은 선수가 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스물넷이랍니다. 우리 쪽으로 계산하면 스물셋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뭐? 저 얼굴이 스물셋이라고?”
무키 베츠가 당혹감을 드러내며 강송구를 바라봤다. 어떻게 저 액면가가 스물셋일 수 있을까?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능숙한 피칭과 완벽한 완급조절, 그리고 타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데 나이가 스물셋이라니…….
무키 베츠가 고갤 흔들었다.
“중국 출신이었다면 나이를 믿지 않았을 거야.”
“저도요.”
그러는 사이에 강송구가 아웃 하나를 가볍게 잡으며 3회 초도 깔끔히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캉! 이번에도 완벽한 피칭!
-정말 멋진 볼 로케이션입니다. 좌우로 타자를 흔들다가 배트가 나올 것 같으면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로 삼진을 훔치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왜 라스베이거스가 이 투수를 위해서 조던 델가도라는 포수를 큰 출혈을 감수하며 트레이드로 데려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윽고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강송구가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이닝을 끝냈다.
당연하다는 듯이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
하지만 덤덤한 표정과 다르게 속으로는 인디언스 타선의 탄탄함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쉽지 않네. 이번에 인디언스가 제대로 칼을 갈았나 봐. 하위타선도 쉬어갈 틈이 없네.
우효의 말처럼 인디언스의 하위타선은 쉽게 처리할 수 없는 타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당연히 강송구는 방심하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인디언스의 하위타선을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하위타선인 이유가 있었다.’
-그건 그렇지.
‘7번 타자는 제법 선구안이 좋지만, 배트 컨트롤이 그 선구안만큼을 따라가지 못했어.’
-그 친구는 구위로 찍어누르면 되겠군.
그가 고갤 끄덕였다.
‘8번과 9번은 낮게 떨어지는 공에 약했다.’
-그 친구들에게는 잘 떨어지는 변화구만 던져도 잡아낼 수 있겠지. 확실히 네 말처럼 우습게 볼 수 없는 타자들이지만 그렇다고 약점은 없지 않군.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그다. 한국과 다르게 모든 부분에서 쉽지 않겠지.’
강송구가 우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3회 말의 마운드에 오른 마이크 마조네가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타선을 꽉 틀어막았다.
-마이크 마조네! 엄청난 호투입니다!
-오늘 유난히 컨디션이 더 좋아 보입니다. 지난 시즌에 AL 사이 영 3위에 오른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단합니다. 특히 체인지업이 떨어지는 것을 보세요.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죽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헛스윙 삼진!
-타자가 싫어하는 코스는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날아드는 체인지업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투수가 타자를 상대로 완벽히 심리적 우위에 선 것처럼 보이네요. 라스베이거스에는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도대체 무슨 약이라도 한 것일까?
마이크 마조네가 작두에도 올라탄 것처럼 소름이 돋는 피칭을 보여주며 3회 말을 끝냈다.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은 경기 초반보다 더 가라앉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키 스토리 감독이 눈을 찌푸렸다.
‘좋지 않아…….’
하필 3연패를 하는 상황에서 상대 투수가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렇게 공을 던지니 당연히 타격감이 가라앉은 타자들이 더 죽을 쑤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뭔가 방법이 없었다.
마이크 마조네가 경험이 부족한 투수도 아니며 갑자기 제구력 난조로 무너질 투수도 아니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투수뿐인가?’
미키 스토리 감독이 마운드를 바라봤다.
4회 초의 마운드를 올라가는 팀의 에이스.
강송구의 등이 유난히 더 크게 보였다.
* * *
-그냥 싱커를 던지는 게 어때?
‘음…….’
-내가 봤을 때 오늘은 무조건 네가 혼자서 9이닝을 소화해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우효의 말처럼 오늘 경기의 느낌이 묘했다.
아무래도 진짜 9이닝을 다 던져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송구는 고갤 흔들었다.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야구에는 ‘무조건’이란 것은 없다.
혹시 알까?
마이크 마조네가 어느 순간 무너질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야구의 신도 모르겠지.
다시 타순이 돌았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1번 타자인 프레디 레노가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아까처럼 허무하게 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짐한 프레디 레노.
하지만 그 다짐은 강송구가 던진 하나의 공 때문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아! 여기서 너클볼이 나옵니다!
-캉이 너클볼도 던질 수 있었죠?
-맞습니다. 대체로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가끔 사용하는데……. 이게 전문적으로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와 비교해서 전혀 공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2구째는 몸쪽 패스트볼!
-아……. 너클볼을 본 뒤에 저렇게 날아드는 91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은 마구일 겁니다.
중계진의 말처럼 프레디 레노는 너클볼 뒤에 날아든 포심 패스트볼의 타이밍을 읽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X같은 상황이야…….’
절로 입에서 욕이 나올 수 있는 상황.
프레디 레노가 이를 꽉 물었다.
하지만 다음에 날아든 공에 멍하니 삼진을 당하면서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루킹 삼진!
-홀리카우! 믿을 수 없습니다! 캉이 50마일짜리 커브를 던졌습니다! 슬로우 커브에요!
-이건 정말 허를 찌르는 피칭입니다. 그대로 서서 삼진을 당하는 브레디 레노를 보세요. 누가 저 상황에서 50마일의 커브가 나오겠거니 하겠습니까?
“Fxxk!”
욕설을 내뱉으며 배트를 반으로 쪼갠 프레디 레노가 씩씩거리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타이밍에 나온 공이었다.
-와……. 저건 진짜 나도 화가 날 것 같은데?
우효도 혀를 내둘렀다.
너클볼-포심 패스트볼-슬로우 커브.
두둥실 떠가며 무작위로 흔들리는 공을 던졌다가 갑자기 몸쪽으로 빠른 공을 던지고 완전히 느린 공을 바깥쪽에 던진 강송구의 로케이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조금만 공이 가운데로 몰렸다면 결과는 아마도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이었을 것이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오늘 경기 가장 주의해야 할 타자가 싱긋 웃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무키 베츠.
위대한 노장과 오늘 경기 두 번째 대결을 앞두고 강송구의 두 눈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