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86화 (86/198)

#86. 연패스토퍼 MK-2(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0년대 중반부터 매년 중부지구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밥 먹듯이 한 강팀이자, 2020년 중반에 접어들어서는 낙후된 도시와 스몰마켓의 한계를 이겨내고 깔끔한 운영과 준수한 유망주 육성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뤄내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북부지구의 철밥통이다.

이번 시즌은 ‘윈나우’에 들어가며 팜에 있는 유망주와 젊은 선수들을 모두 털어서 살벌한 트레이드를 성공시킨 미네소타 트윈스에 밀려서 시즌 초반부터 지구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는 그런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2패를 기록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2승 3패……. 지구 2위.”

슬로우 스타터 성향이 강한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시즌 초 성적치고는 제법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 같은 지구 라이벌인 LA 에인절스가 전승으로 지구 1위로 치고 올라갔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번 시즌만큼은 다른 시즌과 다르게 지구 1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고 싶었으니까.

-포인트가 되게 적네.

‘어떻게 보면 메이저리그가 진짜 본경기가 아닐까? 한국은 튜토리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그래도 1년에 HoF 에디션 카드를 최소 1번에서 최대 2번 정도밖에 못 뽑잖아.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다.’

지금 그가 가진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둘 수 있기에 꾹 입을 닫았다.

거기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족한 구속도 차근차근 쌓여서 오른손으로도 100마일, 160㎞/h를 던질 수 있게 될 테니 딱히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나는 야구를 못 할 뻔했다. 그런 내가 시스템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고작 포인트를 적게 준다고 시스템을 욕하는 건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지.’

강송구가 꾸욱 손을 쥐었다.

강한 악력에 악력기가 비명을 지른다.

느낌이 좋았다.

“아! 캉! 여기 과일 사 왔습니다.”

때마침 클러비가 라커룸에 들어와 사 온 과일을 강송구에게 건네주었다.

강송구는 그런 클러비에게 팁과 사인을 적인 야구공을 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왔구나!

우효는 강송구가 사다 놓은 과일을 보며 엉덩이를 씰룩쌜룩 움직이며 기쁨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이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할당량은 포도 한 알과 파인애플 한 조각뿐이야. 나머지는 내일 먹자.’

쿠궁!

순간 우효의 몸이 굳었다.

끼기긱거리며 고갤 돌리는 우효.

초롱초롱한 고슴도치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왜?

‘너 지금 고슴도치가 아니라 가시 달린 돼지야. 수의사한테 물어보니까 비만이라고 하더라.’

-뭐? 비만? 내가 비만이라고?

‘그러니까 오늘은 딱 이것만 먹어. 난 오늘 경기 준비하러 가본다. 살 좀 빠지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포도 한 알과 파인애플 한 조각을 우효에게 쥐여주고는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강송구가 라커룸을 빠져나갔다.

황망한 표정의 우효는 자신의 앞에 놓인 조금의 과일을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남아 있는 과일을 소중히 두 앞발로 쥐고는 허겁지겁 과일을 물어뜯었다.

-찹찹찹!

누가 훔쳐 갈 수 없게 말이다.

* * *

“더그아웃 분위기가 영 아니군.”

미키 스토리 감독이 눈을 찌푸렸다.

이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3연전이 끝나면 이어서 뉴욕 양키스와 3연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초의 이 홈 9연전에서 최대한 승리를 쌓아야 전반기에 경기를 풀어나가기 쉬울 텐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까지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물론, 고작 5경기가 지나간 상황이고, 고작 시즌 초반 다섯 경기로 시즌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도……. 이번 시즌은 달라야 해.’

스몰마켓과 빅마켓, 그 사이에 있는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가 이번 시즌에 제법 큰 돈을 투자한 이유.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지구 1등과 와일드카드를 넘어서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팬들의 기대도 대단했다.

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솔직히 시즌 초반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래도 오늘 경기는 걱정이 없었다.

가장 기대하고 있는 투수가 마운드에 오른다.

“캉의 컨디션은 어떻지?”

그의 물음에 투수코치가 씩 웃었다.

“최곱니다.”

“좋아.”

“특이 사항은 따로 없나?”

“할이 팔꿈치 고통을 호소해서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결과는 오늘 중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대신해서 올라올 투수는?”

“단장님이 정해서 올려주겠다더군요. 아마 트리플A에 있던 하비 가르시아나 딘 아메로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두 친구는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투수니까요.”

강한 구위와 구속으로 1이닝을 빠르게 지워주는 셋업맨이 팔꿈치 통증을 느끼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라스베이거스는 투수 유망주만큼은 다른 구단보다 튼실한 편이라서 걱정은 없었다.

“야수들은 어때?”

벤치 코치가 고갤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좋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키 스토리 감독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지난 시즌에 한참 순위 경쟁을 할 때 타선의 중심이던 앨빈 하인리히가 빠지면서 위기에 빠졌던 적이 있었기에 미키 스토리 감독은 더욱 부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막전에 9이닝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강송구를 8이닝만 소화하게 하고 내리게 했다.

원래라면 7이닝만 소화하고 내릴 생각이었지만, 왼손 피칭까지 하는 강송구였기에 1이닝을 더 소화하게 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선수들은 항상 승부가 기울고 난 뒤에는 과감히 교체해서 휴식을 주는 편이었다.

그런 판단이 가끔 발목을 잡았지만, 솔직히 지금까지 라스베이거스가 무난히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던 것도 이런 미키 스토리 감독의 조심스러운 관리 덕분이었다.

몇몇 팬들은 승부를 봐야 할 때 너무 조심스러운 미키 스토리 감독의 성향 때문에 와일드카드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내뱉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경기 시각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홈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3연패에 빠진 팀의 분위기를 바꿔줄 투수가 불펜에서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었다.

슈우우욱! 펑!

“나이스 볼!”

불펜 포수의 호쾌한 외침이 들려온 뒤에 다시금 강송구가 빠르게 오른팔을 휘둘렀다.

슈우우욱! 펑!

“굿잡!”

절로 감탄이 나올 구위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조던 델가도가 고갤 끄덕이고 있었고, 최근 그와 함께 붙어 다니는 불펜투수인 크리스 울프도 두 눈을 반짝이며 강송구의 피칭을 지켜봤다.

이윽고 몸을 다 푼 강송구가 불펜 마운드에서 내려온 것을 확인한 조던 델가도가 그에게 향했다.

“컨디션이 더 좋은데?”

“시즌 초니까.”

“오늘 인디언스의 무키 베츠 영감도 네 변화구 앞에서는 쉽게 배트를 내밀지 못할 거야.”

조던 델가도의 칭찬에도 강송구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우습게도 그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듬직함을 느끼는 조던 델가도와 크리스 울프였다.

“오늘 몸을 풀 때 싱커는 안 던지던데 왜 그런 거야?”

“오늘 싱커를 던질 생각이 없으니까.”

“왜? 개막전에서는 정말 끝내줬는데 말이야.”

“내 싱커 궤적과 크리스의 싱커 궤적이 비슷해. 그리고 오늘 감독님 성향상 난 7이닝 정도 소화하고 마운드를 내려갈 확률이 상당히 높지.”

“그렇군. 만약 네가 싱커를 던지면 그 궤적에 익숙해진 인디언스의 타자들이 크리스의 싱커를 신나게 두들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그래. 대체로 내 뒤를 이어서 마운드에 오를 확률이 높은 투수가 크리스니까.”

거기다 이번 경기에서 짧게 이닝을 소화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다음 등판에서 만날 확률이 높은 같은 지구 라이벌인 LA 에인절스의 경기를 제대로 준비하고 싶었으니까.

특히 에인절스의 1선발인 다리우스 킬슨과 경기에서 확고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7이닝을 완벽히 막아낸 강송구의 뒤를 이어서 남은 이닝을 크리스 울프가 확실히 막아줘야 했다.

큰 걱정은 없었다.

‘확실히 싱커와 슬라이더만 던지는 투수이지만 크리스 울프는 뛰어난 구위를 가진 투수다. 캉의 말처럼 적어도 1이닝을 던질 때만큼은 노장인 무키 베츠도 쉽게 배트를 내밀지 못할 거야.’

조던 델가도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이번 경기에서는 싱커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다른 구종으로 찍어눌러야겠군.”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싱커 하나를 던지지 않는다고 강송구에게 큰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강송구는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였다.

싱커를 대신해서 스플리터나 체인지업으로 충분히 삼진이나 땅볼을 유도할 수 있었다.

“캉! 준비해! 마운드에 오를 시간이야.”

불펜 코치의 말에 그가 고갤 끄덕였다.

* * *

국민의례가 끝나고 시구도 끝났다.

시구자는 라스베이거스의 팬인 13살의 아이였는데, 그 아이의 왼손에는 화상으로 큰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듣기로는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구하러 불길에 뛰어 들어갔다가 생긴 흉터라고 했다.

다행히 여자아이를 구할 수 있었고 아이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사랑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거기다 아이의 영웅적인 행보가 SNS에 알려지면서 이렇게 라스베이거스의 홈까지 와서 시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이는 시구를 하기 전에 마운드에 조금 떨어져서 시구를 지켜보던 강송구를 보며 두 눈을 반짝였는데 아무래도 그의 팬인 것 같았다.

강송구는 시구가 끝나고 마운드에 오르며 경기가 끝난 뒤에 자신의 팬인 아이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잠깐 고민했다.

이윽고 타석에는 인디언스의 1번 타자.

프레디 레노가 타석에 들어섰다.

“플레이 볼!”

주심이 경기의 시작을 아리기 무섭게 경기장을 찾은 라스베이거스의 홈팬들이 큰 함성을 내질렀다.

엄청난 열기.

동시에 팬들 사이에서 점점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강송구의 피칭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당연히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강송구의 사인에 맞춰 조던 델가도가 조심스럽게 미트를 바깥쪽 코스로 가져갔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날카로운 제구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강송구를 보며 프레디 레노가 두 눈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더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다.’

바깥에 저렇게 완벽히 걸치는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타자는 힐끗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별다른 사인은 없었다.

‘일단은 더 지켜봐야겠네.’

다시 날아드는 공.

2구째 던진 공은 커터였다.

그것도 몸쪽으로 꽉 찬 공.

타자에게는 좌우로 완벽히 로케이션 된 코스여서 더욱 치기 어려웠다.

“스트라이크!”

거기다 컷 패스트볼이었다.

좌타자인 프레디 레노가 배트를 내밀었다면 아마 배트가 부러졌거나 범타로 허무하게 기회를 날렸을 것이다.

‘커터는 거르자.’

저 컷 패스트볼은 칠 것이 못 된다.

그렇게 파악한 프레디가 숨을 골랐다.

‘몸쪽을 노려보자.’

바깥쪽보다는 몸쪽 제구가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바깥쪽보다 부족한 것이지 강송구의 몸쪽 제구도 메이저리그 평균 이상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몸쪽으로 들어오는 어설픈 공.

그런 공이 들어오길 빌었다.

물론, 그런 공을 쉽게 던져줄 강송구가 아니었다.

따악!

“파울!”

3구째는 몸쪽 체인지업.

프레디 레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조금만 배트 컨트롤이 좋았다면 제대로 안타를 하나 뽑아낼 수 있던 기회였는데……!’

타자에겐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그리고 기회를 놓친 타자를 상대로 아웃을 잡아낼 기회를 얻은 강송구는 놓치지 않고 깔끔한 위닝샷을 던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첫 타자를 깔끔히 잡아낸 강송구.

그와 동시에 그는 바짝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인디언스의 2번 타자 무키-베츠!

구장 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나오기 무섭게 홈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황혼기의 끝을 향하는 위대한 노장을 위한 헌사였다.

강송구도 슬쩍 모자를 벗어 존경심을 표현했다.

무키 베츠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씩 웃었다.

이윽고 시작된 승부.

조던 델가도가 사인을 보냈다.

최근 무키 베츠가 바깥쪽 낮은 코스에 떨어지는 공에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초구부터 바깥쪽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요구했다.

그 사인에 시원하게 고갤 끄덕인 강송구가 스플리터 그립을 쥐고 빠르게 팔을 휘둘렀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자신의 약점을 무섭게 파고든 공을 본 무키 베트가 조던 델가도를 힐끗 바라봤다.

“다 늙은 선수에게 너무한 거 아니야?”

그의 엄살에 조던 델가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다 늙었다는 선수가 지난 시즌에 34개의 홈런 때립니까? 절대 좋은 공 줄 생각 없으니 단념하세요.”

그 말이 끝나고 바로 날아드는 공.

그가 싫어하는 코스에 정확히 들어오는 공을 보며 무키 베츠가 고갤 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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