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연패스토퍼 MK-2(1)
“소름이 돋는군.”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찰리 브라운 단장은 777 베가스 그라운드의 VIP석에 앉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스티븐, 도대체 저 선수를 어떻게 찾아온 거지?”
“별 것 없었습니다. 캉은 한국에서 뛸 때도 뭔가 성공의 기운을 타고난 선수였으니까요.”
“성공의 기운이라…….”
“저는 그저 캉이 메이저리그에 성공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했고,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는 확신을 해서 단장님께 추천을 드렸죠.”
스타우트 팀장인 스티븐 홍이 어깨를 으쓱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강송구가 8회 초를 깔끔히 막아냈다.
와아아아아아!
라스베이거스의 홈팬들과 인터넷과 TV로 오늘 경기를 지켜본 야구 팬들은 오늘 경기를 보며 깨달았다.
라스베이거스가 공들여 영입한 한국인 투수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곧 경기는 끝을 맺었다.
“좋았어! 으하하하! 드디어 우리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에도 에이스가 나타났어! 에이스가!”
황홀한 표정으로 필드를 바라보던 찰리 브라운 단장이 리포터의 옆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는 강송구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막전부터 첫걸음을 잘 디뎠어.”
그의 반응처럼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들도 강송구의 활약에 큰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충격적인 데뷔전!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8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펼친 강송구!]
[8이닝 17K! 소름 돋는 강송구의 삼진쇼!]
[시범경기와 전혀 다른 경기력을 보여준 강송구! 누가 그를 헐뜯고 욕했는가?]
[조던 웨스트버그, ‘놀라운 선수다. 캉이 마운드를 지키니 수비와 타격에서 모두 편히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주모오오오오오오! 샤따올려! 오늘 문 닫을 생각하지 마!
-캬……. 지렸다. 데뷔전을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레드삭스의 1선발인 알렉스 노바를 상대로 8이닝 17K 무실점 피칭이라니! 그냥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네.
-박태오랑 차원이 다르네.
-태오랑 비교하지 마라. 박태오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강송구만큼 해줄 수 있다.
-응, 현실은 국내용 투수.
-ㅋㅋㅋㅋㅋ 강송구 실패할 거라 고사 지내던 페가수스 팬덤들 입 싹 닫았쥬? 지들 눈엔 박태오가 최고겠지만 현실은 우리 강송구 형님이 최고지!
-와……. 제구력이 어나더 레벨이더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런 제구력 가진 선수는 손에 꼽을 것 같음.
-오랜만에 한국인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거 보니까 예전 강현준이 뛰던 시절이 떠오르네…….
-윽! 여기 냉동인간이 있었넼ㅋㅋㅋ
-언제적 강현준이냨ㅋㅋㅋ
한국은 완전 난리가 았다.
강송구의 소름이 돋는 피칭에 한국의 야구팬들은 다음 중계를 기다리며 기대감을 키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강현준이 은퇴한 뒤에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한국인 투수가 한동안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더 기대하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강송구는 그 기대만큼 활약했다.
물론, 한국에서만 그런 관심을 보인 게 아니었다.
MLB.com의 메인 화면은 8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한 뒤에 여유롭게 땀을 훔치는 강송구의 사진으로 채워졌다.
덕분에 짧은 시간.
강송구는 메이저리그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미키 스토리 감독은 개막전이 끝나고 많은 기자에게 둘러싸여서 강송구에 관한 인터뷰를 제법 길게 나누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캉의 피칭은 정말로 다채로웠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보자면 왼손으로 공을 던진 것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계속 왼손으로 피칭할 수 있게 놔둘 것인가?
“네, 캉은 이미 완성된 선수입니다. 거기다 누구보다 뛰어난 프로의식을 가진 선수로 만약에 스위칭으로 인한 슬럼프가 온다면 그는 빠르게 왼손을 포기할 수 있는 선수죠.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이 기대되는군요.”
-어떤 부분이 기대되십니까?
“아무래도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는 부분과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가장 기대됩니다. 거기다 한국에서부터 구속이 꾸준히 오르고 있기에 올해는 몰라도 내년에는 캉이 오른손으로 95마일의 공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미키 스토리 감독은 오늘 경기를 떠올렸다.
‘환상적이군.’
드디어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에 에이스라고 불릴만한 선수가 영입되었다.
그리고 그 선수가 개막전에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여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닝도 상당히 많이 먹어줬지.’
다른 구단보다 뎁스가 두텁지 못한 웨스트스타즈에게 강송구의 이닝이터 능력도 너무나 달콤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에이스의 모습이었다.
미키 스토리 감독이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동안 강송구는 아이싱이 끝난 뒤에 추가로 마사지까지 받으며 오늘 경기에서 고생한 육체를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101구.’
8이닝 동안 강송구가 던진 투구수.
‘만족스럽지 않다. 조금 더 투구수를 줄이면……. 긴 이닝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우효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 양심도 없네. 그 정도면 메이저리그에 막 데뷔한 투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활약 아니야?
* * *
개막전 시리즈 2차전.
라스베이거스의 선발 투수는 켄 크로윈이었다.
25살의 젊은 투수로 지난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고작 80이닝밖에 소화를 못 했지만, 29시즌에는 31경기 17승 9패 ERA 3.36을 기록하며 1선발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이번 시즌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2선발로 낙점이 되며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다.
“후우…….”
켄 크로윈이 천천히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평균 97마일의 좌완 파이어볼러로 데뷔 시즌에는 패스트볼과 커브만으로 10승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거기에 체인지업까지 던진다.
그것도 제법 뛰어난 공이었다.
제구력도 강속구 투수 치고는 준수한 편으로 마운드에서 크게 흔들리는 모습도 잘 보여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좌완 파이어볼러.
하지만 그런 켄 크로윈도 약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 체인지업을 던질 때 제대로 티가 났다.
덕분에 그의 체인지업은 누구보다 뛰어남에도 그 어떤 공보다 많이 공략을 당했다.
그나마 무브먼트가 좋은 공이기에 무작정 두들겨 맞는 편은 아니지만, 투구폼 때문에 그가 가진 체인지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두 번째는 큰 경기에 약한 투수라는 점이었다.
분명히 정규 시즌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포스트시즌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포스트시즌 통산 3경기에 출전.
총 8이닝을 소화했고.
그 과정에서 15실점을 기록하며 무너졌다.
정말로 처참한 기록이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는 분명히 대단한 투수였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켄 크로윈! 역시 대단합니다!
-보세요. 저 강력한 패스트볼과 과거 LA 다저스의 에이스였던 클레이튼 커쇼가 생각나는 커브를 말이죠.
-정말 커브가 기가 막히게 떨어지네요.
개막전 승리에 이어서 켄 크로윈의 호투까지 이어지자 777 베가스 그라운드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그렇지! 역시 켄이야!”
“켄! 보스턴 녀석들을 제대로 찍어 눌러!”
“이대로 연승을 이어나가자!”
팬들의 기대가 커졌다.
오늘 경기의 켄 크로윈은 대단했다.
물론,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5회 초에 던진 체인지업이 그대로 중앙의 담장을 넘어가는 장면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켄 크로윈은 무너지지 않았다.
‘캉보다 더 잘 막아야 해.’
그의 목표는 다름 아닌 1선발이었으니까.
활활 타는 눈으로 더 거센 공을 던진 그는 이번 개막 2차전에서 7이닝 1실점의 호투를 하며 다시금 팀의 승리를 이끄는 호투를 보여주었다.
-대단합니다!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출발이 그 어느 시즌보다 산뜻합니다!
-강력하네요. 특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선발진은 너무 강력합니다.
-캉-켄 크로윈-윌리 알비드레즈로 이어지는 상위 선발진은 그 어느 팀보다 탄탄해 보입니다.
홈에서 2연승을 가져간 라스베이거스.
하지만 이어지는 개막 시리즈 3차전.
윌리 알바레즈가 6이닝 4실점으로 애매한 성적을 거두며 생각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어서 마운드에 올라선 불펜진이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선을 억제하지 못하고 7 대 5로 첫 패배를 기록했다.
그렇게 홈에서 2승 1패를 기록한 웨스트스타즈.
그들이 다시 자신들의 홈으로 이번에는 아메리칸리그 북부지구의 강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그들의 홈으로 불러냈다.
* * *
“우우우우우우!”
야유를 내뱉는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찾은 홈팬들.
그들은 허무하게 역전을 허용한 선수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내뱉으며 화를 냈다.
-아……. 이걸 지켜내지 못합니다!
-여기서 역전 홈런이 나오면서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시리즈 1차전에서 역전패를 당하며 무너집니다.
-분명히 좋은 기회가 많았는데…… 묘하게 풀리지 않은 경기인 것 같습니다.
“음…….”
강송구는 조금은 가라앉은 더그아웃의 분위기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여기도 대전 호크스처럼 막장인 팀은 아니겠지? 이거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그 정도는 아니다.’
대전 호크스처럼 막장은 아니다.
그건 강송구가 확신할 수 있었다.
직접 뛰어봤으니까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선수들의 폼이 올라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는 지독한 슬로우 스타터라서 제대로 반등하는 시기는 5~6월부터지.’
그러니 4월의 성적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게?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팀이 침체에 빠지지 않게 내가 연패스토퍼가 되어서 막으면 되니까.’
그래, 이 팀은 그거로 충분했다.
대전 호크스라는 막장팀과 사정이 달랐다.
‘여기가 상황은 더 좋지.’
잘 터지는 유망주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베테랑들이 조화를 이루며 라커룸을 꽉 잡고 있었다.
그러니 걱정은 없었다.
‘난 그저 다음 등판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그래, 알아서 잘해주면 팀원들이 알아서 강송구를 따라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이윽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홈 3연전의 두 번째 경기의 흐름을 판가름낸 홈런이 터졌다.
따악!
이 타격음의 주인공은 이번 FA에 클리블랜드와 2년 계약을 맺은 선수였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LA 다저스로 이적하고 그 뒤에 29시즌에 시카고 컵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가진 베테랑.
무키 베츠.
그의 타격음이었다.
-높게 떠오르는 고오오옹!
-넘어갑니다! 무키 베츠!
-아……. 소름이 돋는 타격이었습니다. 누가 이 선수를 38살의 노장으로 보겠습니까?
-역시 대단한 선수입니다. 중간중간 슬럼프가 있었음에도 기어코 올해도 메이저리그에 살아남아서 이런 멋진 홈런을 보여줍니다. 이게 무키 베츠입니다.
모두가 감탄했다.
전성기를 한참 넘은 나이였음에도 무키 베츠의 타격은 너무나도 깔끔하고 파워풀했다.
그리고 그런 노장을 보며 강송구가 조용히 고갤 끄덕이며 자신의 손에 있는 자료를 정리했다.
‘좋지 않아. 개막 3연전의 마지막 경기를 시작으로 팀이 3연패의 늪에 빠졌다. 빨리 다음 경기에서 연패를 끊어야 앞으로의 일정에 큰 무리가 가지 않을 거야.’
곧 이번 홈 3연전의 두 번째 경기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승자는 클리블랜드였다.
그들이 웨스트스타즈를 상대로 2연승을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슬슬 연패를 끊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 아무리 슬로우 스타터라고 해도 샌드백처럼 신나게 두들겨 맞을 필요는 없었다.
조용히 눈을 뜬 강송구가 역전에 성공해서 기뻐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선수들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적어도 이번 시리즈에서 1경기는 꼭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