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83화 (83/198)

#83. 메이저리그 개막전(3)

3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7-8-9로 이어지는 타선.

보스턴 레드삭스의 7번 타자인 크리스티안 파체가 덤덤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매 시즌 많은 홈런을 만들지 못하지만 제법 많은 2~3루타를 양산하는 타자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뛰던 전성기 시절에는 홈런도 20개 이상을 만들어주던 중견수였다.

숨을 크게 내뱉는 강송구.

그가 초구를 던졌다.

이번에는 상당히 공격적인 피칭이었다.

우타자의 몸쪽으로 날아드는 공.

유려하게 휘는 싱커에 크리스티안 파체의 배트가 ‘부웅’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생각보다 칠 의욕이 넘치는 타자네?

‘성적이 중요할 시기지. 전성기가 끝나가는 시기에 FA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2구째는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에 제대로 걸친 슬라이더에 크리스티안 파체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걸 놓치다니…….’

전성기의 크리스티안이었다면……. 아마 저 슬라이더는 배트가 충분히 따라갈 만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나이는 서른둘.

아직 전성기라고는 하지만 파릇파릇하던 20대 후반과 관절이 조금씩 삐걱거리는 30대 초반은 차원이 달랐다.

‘후우……. 초구도 그렇고 이번 공도 그렇고……. 상당히 공격적으로 존에 공을 집어넣는군.’

필요하다면 유인구를 던질 줄 아는 투수였기에 조금은 공을 더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카운트가 몰린 이상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해야 했다.

‘존에 들어오는 모든 공을 노리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배트를 쥔 크리스티안 파체에게 강송구가 던진 3구째는 너클볼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Fxxk!”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올 타이밍에 너클볼이 튀어나왔다.

그의 욕설을 듣고 조던 델가도가 실실 미소를 지었다.

‘역시 크리스티안은 생각이 많아.’

저런 모습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다양한 무기를 가진 투수에게는 쥐약이 될 수 있었다.

이어지는 8번 타자와 승부.

지터 다운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보스턴에서 데뷔해서 지금까지 쭉 보스턴에서만 뛰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로, 26~28시즌에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주다가 29시즌부터 에이징 커브가 온 타자였다.

따악!

“파울!”

초구부터 강하게 타격하는 지터 다운스.

강송구는 지터 다운스의 타구를 잠깐 살피고는 고갤 끄덕이며 다음 공을 준비했다.

-그런데 보스턴은 왜 이렇게 양로원이 된 기분이지? 주전 대부분이 30대인 것 같은데?

‘그래도 선발진은 제법 어린 편이지.’

우효와 수다를 떨면서도 강송구의 집중력을 크게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2구째는 너클 커브.

“스-윙! 스트라이크!”

뜬금없이 튀어나온 너클 커브에 지터 다운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조던 델가도에게 물었다.

“설마 아직도 숨기고 있던 구종이 있었어?”

“왜? 팜볼도 보여줄까?”

“엿 먹어.”

3구째는 뚝 떨어지는 커브.

너클 커브 다음에 나온 커브를 지켜본 지터 다운스는 이어진 강송구의 다음 피칭에 헛스윙을 하며 삼진을 허용했다.

순식간에 2개의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9번 타자.

포수인 가브리엘 모레노를 5구 승부 만에 깔끔히 잡아내고는 누구보다 여유롭게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댓글란]

-왘ㅋㅋㅋㅋ 미쳤다. 오늘 강송구 돌았는데?

-소름이 돋네; 어떻게 3이닝이 끝날 때까지 출루한 선수가 없냐; 보스턴도 진짜 문제다.

-ㅋㅋㅋㅋㅋㅋ 이래서 송구까들이 문제임ㅋㅋㅋ 시범경기만 보고 까다가 지금 아닥션 했죠?

-응, 이제 시즌 시작이야. 설레발 ㄴㄴ

-근데 요즘 강송구 왼손으로 던진 적 있냐?

-없는데 왜?

-아니……. 오늘 쓸 거 같아서.

커뮤니티란이 떠들썩했다.

강송구의 등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어쩔 수 없었다.

코리안 몬스터인 강현준의 은퇴 이후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활약한 한국인 투수가 전혀 없었으니까.

거기다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구하려다 다쳐서 프로를 포기한 선수가 다시 복귀해서 약팀인 호크스를 데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고 메이저리그로 향한 스토리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 득점 지원 좀 해줘라!

-어떻게 호크스보다 더 안 터지는 느낌이지? 누가 이 팀의 장점이 시원시원한 홈런이라고 했냐?

-ㅋㅋㅋㅋ 웨스트스타즈의 선풍기들이 붕붕 배트를 휘둘러서 시원하게는 만들어주자넠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그랰ㅋㅋ 시원하기는 하넼ㅋㅋㅋ

3회 말.

웨스트스타즈의 공격.

7번 타자 조던 델가도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곧 마운드에 선 알렉스 노바의 초구가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알렉스 노바는 조던 델가도가 하위타선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타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날 너무 고평가하는 것 같은데…….’

얼마 호흡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알렉스 노바는 같은 팀원이었던 조던 델가도를 경계하고 있었다.

2구째는 바깥쪽 커브.

“볼!”

잠깐 알렉스 노바의 공을 지켜본 조던 델가도가 자신의 백업 포수였던 가브리엘 모레노를 힐끗 바라봤다.

‘이런 볼 로케이션을 가져간다고?’

알렉스 노바는 제구력이 좋은 투수가 아니다.

조금 더 패스트볼로 윽박지른 뒤에 카운트가 몰린 타자에게 유인구를 던져서 삼진을 잡는 것이 훨씬 투구수 절약에도 좋고 결과도 좋았다.

‘나야 뭐…… 나쁘지 않지.’

기다리면 알아서 풀 카운트를 가져가 줄 테니까.

그의 예상처럼 알렉스 노바는 7구째 승부까지 가며 풀 카운트를 만들어냈다.

‘조금만 더 커트하다가 애매한 공이 오면 때리자.’

조던 델가도가 그렇게 생각하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래도 슬슬 알렉스 노바의 옆에 ‘0’으로 박혀 있는 전광판에 ‘1’이라는 숫자를 만들고 싶었다.

8구째.

드디어 그가 원하던 공이 날아들었다.

슈우우욱!

살짝 몰린 패스트볼.

‘장타는 못 만들겠지만…….’

따악!

배트를 휘두름과 동시에 조던 델가도가 1루로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수비 시프트를 뚫는 타구.

알렉스 노바는 타구의 위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터졌습니다!

-조던 델가도가 오늘 경기의 첫 안타를 때리면서 1루에 안착합니다! 정말 깔끔한 타격이었죠?

-맞습니다. 하하하! 이러다가 조던 델가도 선수가 우리 강송구 선수의 도우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한국의 중계진이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과 다르게 웨스트스타즈의 더그아웃은 바삐 움직였다.

“상대는 보스턴의 에이스인 알렉스 노바다……. 흔들 수 있을 때 흔드는 게 좋겠지.”

8번 타자인 브랜든 마쉬가 미키 스토리 감독의 사인을 보고는 고갤 끄덕이며 타석에 들어섰다.

이어지는 승부.

알렉스 노바가 초구를 던졌다.

그와 동시에 브랜든 마쉬가 번트 자세를 잡았다.

-기습 번트!

-브랜든 마쉬가 제대로 1루 쪽으로 공을 굴립니다!

-2루까지 가는 조던 델가도!

-브랜든 마쉬는 그대로 1루에서 아웃!

깔끔한 희생번트에 미키 스토리 감독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깔끔하군.”

그리고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9번 타자인 조던 웨스트버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타자가 나타났군.

우효의 말에 강송구도 고갤 끄덕였다.

‘그래, 투수가 제일 싫어할 만한 상황이야.’

젊은 시절에는 유격수로 뛰었던 조던 웨스트버그는 몸의 근력이 개선되면서 스피드가 떨어져 3루로 전향했다.

하지만 3루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크게 흔들렸는데 26시즌에 라스베이거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수비도 안정화되었고 타격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특히나 매 시즌 10여 개 수준의 홈런을 때려내던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효율적으로 근력을 늘려 26시즌에 홈런을 54개나 때려내는 강타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26시즌에 그는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첫 홈런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력을 늘리고 타격법을 바꾸면서 생긴 단점 때문에 조던 웨스트버그는 28시즌 이후로 부진에 빠졌다.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타격 때문에 종종 구종을 판단하고 스트라이크 존을 컨트롤 하는 부분에서 약점을 드러낸 것이었다.

덕분에 29시즌에는 그의 장타율이 5할 다다랐음에도 타율이 고작 2할 1푼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렇게 조던 웨스트버그는 전형적인 공갈포 타자가 되면서 조금씩 타순이 뒤로 밀리게 되었다.

‘문제는 아무리 공갈포 타자라도 10번 중에서 1~2번은 큰 홈런을 만든다는 점이지.’

그래, 그게 문제다.

희생번트로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낸 투수에게 저 공갈포 타자는 껄끄러운 가시와도 같았다.

‘거기다 예전에 기록했던 ‘AL 홈런왕’이란 간판이 더욱 투수와 포수를 옥죄이게 된다.’

그게 작은 확률을 더 신경 쓰이게 만든다.

혹시나 큰 타구가 나오면 어쩌지?

따악!

-높게 떠오르는 공!

-와! 초구부터 파울 홈런이 나옵니다!

-역시 조던 웨스트버그! 정말……. 파워 하나만큼은 대단한 선수입니다! 초구부터 강한 타구가 나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 있게 던진 초구가 파울 홈런이 되는 모습을 감상하게 되었다.

이때 경험이 부족한 젊은 투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웃기게도 투수는 정면승부를 선택한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항상 과정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평가받으니까.

따악!

-다시 높게 떠오르는 공!

-와……. 이번에도 파울 홈런! 계속되는 조던 웨스트버그와 알렉스 노바의 힘 싸움!

-일단 카운트는 투수에게 좋습니다.

문제는 정면승부에 몰두해서 충분히 유인구를 던질 수 있음에도 여력을 남겨둔다.

그래, 이건 포수의 문제다.

그냥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지 않고 땅바닥까지 떨어지는 커브를 선택했다면 삼진이 나왔을 것이다.

조던 웨스트버그는 떨어지는 공에 무척 약하니까.

하지만 포수의 선택은 무릎 높이의 커브.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알렉스 노바라면 충분히 던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애매한 높이의 커브는 지금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거기다 알렉스 노바는 그리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도 아니었다.

따악!

아까보다 더 큰 타구음.

동시에 조던 웨스트버그가 화려한 배트 플립을 보여주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쳤습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조던 웨스트버그! 그대로 공이 넘어갑니다! 개막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때려낸 조던 웨스트버그! 그가 투런포를 때리며 선취점을 가져옵니다!

-아! 커브가 떨어지는 위치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필 여기서 밋밋한 커브가 들어갔어요!

-조던 델가도가 홈으로! 그리고 곧 조던 웨스트버그도 홈으로 들어갑니다! 두 명의 조던이 해냈습니다!

그래, 에이스를 너무 믿었다.

알렉스 노바는 신이 아니었다.

그는 제구력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냥 크게 빠지는 커브가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조던 델가도는 홈플레이트를 밟은 뒤에 힐끗 보스턴 레드삭스의 배터리를 바라봤다.

‘이걸로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군.’

아마 알렉스 노바는 금방 정신을 차릴 것이다.

오늘 웨스트스타즈의 득점은 이게 끝이겠지.

하지만 이 정도 차이라면 충분했다.

조던 델가도의 생각처럼 알렉스 노바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깔끔히 남은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이제 점수는 2 대 0의 상황에서 강송구가 좌완용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에 올랐다.

4회 초.

보스턴 레드삭스의 1번 타자인 토니 피버스가 그런 강송구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What the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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