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스프링 트레이닝(3)
올해도 ‘윈 나우!’를 외치며 우승을 위해 많은 금액을 FA시장에 푼 뉴욕 양키스는 역대급 로스터를 갖췄다며 올해 지구 우승과 월드시리즈 우승을 천명했다.
우선 리키 하워드.
드래프트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지명을 받은 그는 2027시즌에 메이저리그 콜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7시즌에 8승 14패 4.56이라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하위선발로서 준수한 성적을 거뒀으나 2028시즌에 팔꿈치 부상과 부진으로 0승 5패 7.62라는 평균자책점을 거두며 한 시즌을 통으로 날렸다.
팔꿈치 수술을 한 뒤로 깔끔히 재활을 끝냈지만, 장점이던 커브의 각도가 애매해졌고, 주로 사용했던 커브를 대신할 구종을 찾지 못하면서 2029시즌에는 트리플A까지 오가며 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30시즌에 접어들기 전에 일본 출신의 투수코치에게 배운 포크볼을 성공적으로 장착하면서 2030시즌 16승 9패 3.6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고, 뉴욕 양키스가 탐욕스럽게 그런 리키 하워드를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가빈 럭스.
LA 다저스의 슈퍼 유망주.
게임은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어마어마한 포텐셜을 보여주던 그는 다저스에서 6번의 올스타와 4번의 실버슬러거를 기록하며 확고한 이루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올해 FA로 나와서 5년 150M이라는 거액의 금액으로 양키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 외 수많은 선수를 영입하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양키스는 아직도 선수 영입과 관련돼서 배고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양키스의 관심을 받는 투수가 바로 오늘 상대하게 된 라스베이거스의 1선발인 강송구였다.
그레이프푸르트 리그.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와 뉴욕 양키스의 시범경기.
찰리 브레이크 파크에 제법 많은 인원이 몰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사이로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트 몇 명이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를 보며 수첩을 들어 올렸다.
“드디어 올라왔군.”
“조금씩 컨디션이 올라오는 것 같죠?”
“어, 첫 등판에 3이닝 5실점, 두 번째 등판에서 3이닝 4실점, 마지막 등판에서 2이닝 2실점을 기록했었지?”
“네, 그러면서 세부 지표도 좋아졌죠.”
“그래, 캉은 절대 실패하지 않은 선수지. 시범경기에서 어느 정도 적응기가 끝나면 준수한 성적을 보여줄 거야.”
“그런데 저 선수가 양키스에 어울릴까요?”
젊은 스카우트의 물음에 중년의 스카우트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확신하고 있지. 캉은 1선발급 선수는 아니지만 2선발에서 쏠쏠히 활약해 줄 선수라고. 양키스에 온다면 아드리안 모레혼과 리키 하워드와 함께 상위 선발진의 품격을 더해줄 거야.”
뉴욕 양키스의 베테랑 스카우트는 강송구의 가치를 준수한 2선발로 평가했다.
솔직히 말해서 1선발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구속이 너무 느렸으니까.
‘딱 저기서 5마일만 빨랐다면…….’
그랬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아! 시작하네요.”
젊은 스카우트의 말에 그가 마운드를 바라봤다.
벌써 초구를 던진 강송구.
바깥쪽에 걸친 패스트볼이었다.
“캉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제구가 잘 잡혀 있어. 특히 바깥쪽으로 던질 때는 톰 글래빈 수준의 제구력을 보여주지.”
“대단하네요.”
“하지만 그것뿐이야.”
“네?”
“톰 글래빈처럼 쉽게 주심을 속일 수 없게 되었단 소리지. 예전과 다르게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고, 다양한 부분에서 주심을 보조해 줄 좋은 도구들이 나오면서 주심의 눈을 속이려면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으니까.”
“그렇군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승부.
3구째는 바깥쪽 싱커.
4구째는 바깥쪽 체인지업.
5구째는 다시 바깥쪽 커브를 던졌다.
순식간에 풀 카운트가 된 상황.
그제야 두 사람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캉이 저런 수준의 컨트롤 능력이 있었나?”
제구력이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톰 글래빈처럼 섬세한 제구력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고작해야 패스트볼과 체인지업만 그 정도 수준이라고 봤지. 나머지 구종의 제구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어.’
거기다 풀 카운트 상황에서 강송구가 꺼내든 공은 모두의 예상을 깬 어처구니없는 공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바깥쪽으로 흔들리며 떨어지는 너클볼.
바깥쪽 코스에 절묘하게 걸친 공을 잡아낸 조덜 델가도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강송구에게 다시 공을 던져줬다.
선두 타자는 어벙한 표정으로 잠깐 강송구를 본 뒤에 타석에서 물러나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그저 오늘 운이 좋았겠거니 생각했다.
바깥쪽으로 던진 모든 구종이 환상적이었으니까.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별명을 붙였어도 어색할 것이 없었다. 그만큼 수준 높은 제구를 보여줬다.
“운이겠지.”
양키스의 젊은 스카우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승부에서 강송구는 다시금 자신의 우월한 바깥쪽 제구력을 뽐내며 삼진을 잡아냈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물론이고 주심도 조금씩 바깥쪽 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1회 초의 마지막 타자.
올해 FA에서 영입된 3번 타자인 가빈 럭스.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 * *
‘겉으로 보기엔 별다를 것이 없는데 말이야.’
왜 앞의 두 타자가 아웃을 당했을까.
가빈 럭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묘한 경계심이 생겼다.
‘뭔가 있어.’
그래, 저 투수에게 무엇인가 있다.
그걸 읽어낸다면 충분히 안타를 때려낼 수 있겠다고 판단한 그가 초구를 지켜봤다.
바깥쪽에서 살짝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
배트를 내민다면 파울이 될 공이었기에 그는 배트를 내밀지 않고 초구를 지켜봤다.
‘어차피 볼이 되겠지.’
하지만 주심의 판정은 달랐다.
“스트라이크!”
가빈 럭스가 슬쩍 주심을 본 뒤에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는 생각보다 주심의 존이 넓다고 생각했다.
‘오늘 바깥쪽 존이 넓은 편인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찡그린 그가 숨을 길게 내뱉고는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노려봤다.
‘조금 더 봐야겠어.’
뭔가 있었다.
반대로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묘한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와……. 박진수도 진짜 좋은 포수였는데 조던 델가도라는 녀석은 더 대단하네.
우효의 말처럼 대단한 포수였다.
특히 공을 받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 차원을 달리했다. 박진수가 준중형 승용차라면, 조던 델가도는 흔들림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최고 수준의 리무진처럼 느껴졌다.
“스트라이크!”
-정말 대단해……. 난 프레이밍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갖는 쪽이었는데……. 조던 델가도가 보여주는 수준이라면 프레이밍 신봉자가 되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조던 델가도의 프레이밍은 마법이었다.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마법.
앞서 양키스의 젊은 두 타자가 저 마법에 속아서 시원하게 삼진을 허용했었다.
따악!
“파울!”
‘특히 저 프레이밍과 내 바깥쪽 제구의 궁합이 좋다.’
내셔널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가빈 럭스가 이렇게 애를 먹는 것을 보면 조던 델가도의 프레이밍과 강송구의 제구가 보여주는 시너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솔직히 2회 초까지 가야지 주심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저 프레이밍 덕분에 1회 초부터 조금씩 주심의 바깥쪽 존을 넓힐 수 있었다.
5구째 승부.
따악!
“파울!”
가빈 럭스는 이번 강송구의 공을 보면서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가 지금 톰 글래빈을 오마주하며 주심을 제대로 속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제는…….’
막을 수 없었다.
주심에게 잠깐 투덜거리는 것도 잠깐이었다.
조던 델가도의 프레이밍이 볼을 스트라이크로 둔갑시키면서 주심에게 강송구의 바깥쪽 코스를 확신하게 했다.
‘Fxxk!’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6구째.
그라면 절대 휘두르지 않을 코스로 들어오는 공에 헛스윙하며 삼진을 허용했다.
깔끔히 끝난 1회 초.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를 보며 가빈 럭스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오늘은 글렀군.”
* * *
‘저 친구가 아드리안 모레혼이군.’
1회 말에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양키스의 1선발이자 지난 시즌에 2.4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음에도 고작 10승만 거둔 불운의 상징인 아드리안 모레혼이었다.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큰 경기에서는 그 어떤 투수보다 확실한 활약을 해주는 투수.’
그렇기에 양키스가 가을에서 누구보다 확고하게 1차전에 들이밀 수 있는 선발이 바로 아드리안이었다.
아직 3월 중순인 상황에도 아드리안의 손에서 나오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96마일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압도적인 스터프.
그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 다음에 나오는 구종은 플러스-플러스 등급을 받은 커브와 두 종류의 체인지업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저건 쉽게 공략할 수 없겠는데?
우효의 말처럼 아드리안의 플러스-플러스 등급을 받은 두 종류의 체인지업은 굉장했다.
그야말로 언터처블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마구.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빠르게 삼진을 허용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특히 기회 한 번이 소중한 마이너리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끝나버린 1회 말.
강송구는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어지는 2회 초 승부.
“스트라이크!”
양키스의 타자들은 한없이 무력했다.
“무슨 바깥쪽 존이 저렇게 넓어?”
“미치겠네……. 이게 말이 돼?”
조금씩 넓어진 바깥쪽 존은 이제 타자가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종잡을 수 없는 강송구의 피칭 스타일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나비처럼 날아든 너클볼.
다른 위력적인 구종을 던지는 선수가 중간에 소름이 돋는 수준의 너클볼을 던졌다.
너클볼러도 아닌 주제에 전문적인 너클볼러보다 훨씬 무서운 공을 던지고 있었다.
거기다 그 너클볼이 중요한 타이밍에 나와서 모두 바깥 코스로 정확히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너클볼은 제구가 되지 않던데 아니었나?
그런데 왜 저 투수는 제구가 되지?
그런 알 수 없는 당혹감이 양키스의 젊은 타자들 얼굴에 절로 떠올라있었다.
-아! 꼬우면 너희도 너클볼을 던지는 톰 글래빈이랑 조던 델가도 수준의 포수를 데려오던가!
우효가 놀리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다섯 타자 연속 탈삼진.
강송구의 어마어마한 모습에 이때까지 강송구를 물어뜯었던 한국기자들이 입을 꾹 닫을 것이다.
그만큼 소름이 돋는 피칭이었다.
공을 받는 조던 델가도.
그도 짜릿함을 느끼고 있었다.
‘규격을 넘어선 괴물이군.’
저런 괴물은 예전에 딱 한 명 봤다.
유리 몸이지만 공만 던지면 그 어떤 투수보다 괴물 같은 공을 던지는 시카고 컵스의 1선발 투수인 이안 엘런.
그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캉과 상당히 비슷하군.’
평균 93마일의 구속.
하지만 소름이 돋는 수준의 제구력과 커터, 체인지업, 스플리터, 포크볼, 써클 체인지업 등등.
다양한 구종을 익혀서 상대의 혼동을 주는 피칭을 가져가는 23살의 젊은 투수가 이안 엘런이었다.
지난 시즌에 시카고 컵스를 월드시리즈까지 이끈 것도 이안 엘런의 호투 덕분이었다.
‘다른 점은 캉은 우완, 이안 엘런은 좌안이라는 것과 캉은 2m에 가까운 키를 갖췄고, 이안 엘런의 고작 177㎝라는 단신이라는 것일 뿐이지.’
그렇기에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
만약에 두 투수가 맞붙는다면 어떤 경기가 나올까?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여섯 타자를 상대로 모두 삼진을 잡아내는 강송구를 보며 조던 델가도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광경을 보고 싶다면 어떻게든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이끌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