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한국시리즈(4)
8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6회 말을 이후로 강송구는 단 하나의 안타는 물론이고 볼넷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타자들의 타이밍이 엉망이 되었네.
‘경기 초반에는 자기들이 생각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공을 던져줬으니까. 그리고 타순이 한 바퀴 돈 뒤에는 타이밍이 계속 어긋나는 공을 계속 던지니 타격이 심각하게 꼬일 수밖에 없지.’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엉망인 타격감이 다른 경기에도 영향을 끼치겠네.
‘그렇지.’
8회 말의 첫 타자를 상대로 범타를 유도한 강송구가 이어지는 승부에서 삼진을 잡아냈다.
순식간에 2개의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
그가 마지막 남은 타자를 상대로 초구를 던졌다.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박진수는 미트에서 공을 꺼내 다시 강송구에게 던져준 뒤에 사인을 보냈다.
2구째는 바깥쪽 커브.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상황.
3구째는 몸쪽 깊게 파고드는 싱커.
4구째는 바깥쪽에 살짝 빠지는 체인지업.
5구째에 던진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
8회 말의 마지막 타자까지 잡아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오늘 그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 * *
[호크스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
[강송구 8이닝 무실점! 호투!]
[2 대 0으로 승리를 거둔 호크스! 탄탄한 선발진이 왜 필요한지를 증명한 경기.]
[2차전 선발은 데니스 카밀 vs 토리 파커!]
[호크스의 기세는 계속 이어질 것인가?]
[코리안 비스트 충격! 이제는 너클볼까지?]
[몇몇 전문가들 너무 많은 구종을 던지는 강송구의 피칭 스타일을 지적하다.]
-최!강!호!크!스!
-1차전은 당연히 가져오는 거였지.
-강송구 진짜 개사기네;
-솔직히 강송구는 한국에서 뛸만한 선수가 아님.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음. 솔직히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안타 맞는 게 이상한 수준임.
-그러게 이번 1차전은 유난히 안타를 많이 허용하기는 했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었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 8이닝 무실점이면;;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얼마나 잘 던진다는 거야?
-저 괴물은 최소 5년에서 최대 7년까지 봐야 한다고?
-다른 팀들 야구 볼 맛은 날지 모르겠넼ㅋㅋㅋ
-진짜 호크스가 우승한다고? 진짜?
-고작 1차전임. 벌써 우승 운운 ㄴㄴ염.
-부산 티탄즈 팬들 억장이 무너지겠넼ㅋㅋㅋ 호크스의 에이스는 한국시리즈고 부산 티탄즈의 에이스는 일본에 가서 어깨 수술하곸ㅋㅋㅋㅋㅋ
-부산 티탄즈 울겠다. 그만 놀려라!
-그래! 바보 놀리는 거 아니다.
-개새끼들……. 그만 놀려라. 언젠가 부산 티탄즈도 한국시리즈 진출해서 우승각 나온다.
-엌ㅋㅋㅋ붓싼ㅋㅋ티탄즠ㅋㅋ한국시리즠ㅋㅋㅋ진출ㅋㅋㅋㅋ 우승ㅋㅋㅋㅋ엌ㅋㅋㅋ
1차전의 승리.
호크스가 분위기를 탔다.
그리고 그 좋은 분위기는 2차전까지 이어졌다. 스왈로스의 홈에서 펼쳐진 2차전의 주인공은 김효곤이었다.
6이닝 4실점으로 조금은 아쉬운 피칭을 했던 토리 파커에게 패전을 면하게 해준 홈런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토리 파커는 옆에 있던 통역사랑 함께 방방 뛰었다.
-역전 만루우우우우우 홈런!
-김효곤이 해냈습니다! 호크스의 슈퍼스타가 기어코 팀의 승리를 가져오는 만루 홈런을 때립니다!
-7회 초에 나온 기분 좋은 만루 홈런!
-점수는 이제 5 대 4가 됩니다!
그리고 점수는 이대로 굳어져서 9회 말까지 갔고 1차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곽민준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서 1점 차 상황을 잘 막아내며 다시금 세이브를 하나 더 기록했다.
이제 호크스의 우승까지 단 2승이 남았다.
반대로 스왈로스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홈 2경기에서 모두 진 상황에서 원정인 3~4차전이 이어진다는 것은 스왈로스에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스왈로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3차전이 시작될 대전 호크스 파크.
당연히 원정에서 2연승을 거둔 호크스는 좋은 분위기를 그대로 3차전에서도 이어나가고 있었다.
다만, 스왈로스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이 경기가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호크스가 확실하게 압도하는 그림이었는데요. 7회 초에 타격이 폭발하면서 점수는 이제 9 대 7까지 따라붙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곽민준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3차전에도 마운드에 오른 마무리 곽민준.
그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호크스가 2점을 앞선 상황.
강한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아낸 곽민준이 특유의 불같은 피칭으로 삼진을 잡기 시작했다.
1차전부터 타격감이 엉망이 된 스왈로스는 3차전까지 올라온 곽민준의 강속구를 때려내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씩 타격감을 되찾아가는 것 같은데?
우효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솔직히 3차전은 위험했어.’
조금만 더 타격감이 빠르게 올라왔다면 9 대 7이 아니라 10 대 9로 스왈로스가 이겼을 경기였다.
슈우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순식간에 투 아웃을 잡아낸 곽민준이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내며 경기를 끝내는 순간.
호크스의 선수들이 주먹을 움켜쥐며 환호를 내질렀다.
-경기 끝났습니다!
-호크스가 3차전까지 가져가면서 3연승을 기록합니다! 이제 호크스는 단 1승! 4차전에서 승리하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게 됩니다!
-스왈로스……. 이렇게 무력한 팀이었나요? 1차전의 영향 때문인지 타선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저희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야구 알 수 없네요.
이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단 1승이 남은 상황.
제 몫을 해주는 선발진.
적어도 2이닝은 확실히 막아주는 필승조.
필요한 점수는 꼭 만들어주는 타선까지.
호크스는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충분히 챔피언의 자리에 어울리는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선수들이 모두 나와 환히 웃고 있다.
강송구는 조금 멀러 떨어져서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드디어…….’
한 선수의 목표였고.
한 아이의 꿈이었던 한국시리즈.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꼭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일 경기의 종지부를 찍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강송구가 김동식 감독을 찾아갔다.
그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 * *
-3일 쉬고 등판이라니……. 2000년대 초반에도 그렇게 무식한 방식으로 등판을 한 투수는 없었다.
우효가 투덜거린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부는 경기장.
그 어느 날보다 긴장되는 날.
덤덤한 표정의 강송구가 스트레칭을 끝냈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 호크스는 이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호크스의 선발투수는 강송구.
스왈로스는 김상준이라는 젊은 투수였다.
“힘들면 말해.”
마운드에 오르기 전 박진수의 말에 강송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기장을 쭉 둘러봤다.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꽉 채우기 시작한 호크스의 홈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찐따 같던 호크스가……. 이렇게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1승을 남겨두고 있다니!
우효가 감격하며 오늘 경기를 위해 남겨둔 샤인머스캣 한 알을 꺼내 입에 쑤셔 넣었다.
찹찹찹찹!
강송구는 그런 우효를 뒤로하고 마운드를 바라봤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가는 것 같았다.
벌써 가을야구도 그 끝을 보이니까.
어릴 때는 1시간이 3시간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1시간이 10분처럼 짧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가을답지 않게 오늘 날씨는 따뜻했다.
아이와 약속을 지키기에 딱 좋은 날인 것 같았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여자 아이돌이 마운드에 올라가서 시구한 뒤에 강송구가 마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타석에는 스왈로스의 1번 타자가 들어섰다.
그리고 박진수가 자리를 잡고 주심이 보호구를 쓴 뒤에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플레이 볼!”
강송구는 평소보다 훨씬 어깨가 가볍다고 느꼈다.
분명히 3일밖에 못 쉬고 마운드에 오른 상황인데 그 어느 경기보다 어깨가 가벼웠다.
거기다 스트라이크 존도 돋보기로 보는 것처럼 눈에 너무나 잘 들어왔다.
덤덤히 로진백을 들어 올리는 강송구.
그가 스왈로스의 1번 타자인 김형필을 잠깐 바라보다가 박진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강송구가 자세를 잡았다. 숨을 가다듬은 그가 투수판을 밟고 빠르게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의 오른손을 빠져나가는 초구.
147㎞/h의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스에 완벽히 걸치며 초구부터 시원하게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스트라이크!”
제2구는 몸쪽 낮은 코스의 너클 커브.
김형필은 강송구의 피칭을 최대한 오래 보려고 배트를 내밀지 않고 지켜봤다.
“볼!”
이어지는 3구째.
강송구의 손에서 커터가 튀어나왔다.
“스트라이크!”
어느 공이든 쉽지 않았다.
1차전에 안타를 만들었던 것이 기적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강송구의 공은 타자가 치기 어려운 코스만 노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양한 구종이 타자가 공략하기 어려워하는 코스를 노리고 파고들며 삼진을 잡아냈다.
첫 타자를 깔끔히 삼진으로 잡아낸 강송구.
그가 이어서 스왈로스의 2번 타자를 상대로 피칭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강송구는 묵묵히 공을 던졌다.
1차전의 강송구와 지금의 강송구는 달랐다.
분명히 가지고 있는 스펙이나 무엇인가 변한 것은 없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어려웠다.
분명히 몇몇 공을 때려볼 만한 공이 튀어나왔다.
3일을 쉬고 나온 강송구였으니까.
항상 완벽한 공을 던질 수 없으니까.
그런데 3회 초까지 완벽했다.
강송구는 자신의 오른손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왈로스의 타선을 상대로 선보였다.
패스트볼부터 너클볼까지.
그가 가진 모든 구종이 무브먼트와 구속의 조절이 되어서 다양한 코스와 움직임을 가지고 날아들었다.
스왈로스의 타자들은 과장되게 표현해서 강송구가 던지는 공을 모두 다른 구종처럼 느끼고 있었다.
“X팔……. 저걸 어떻게 때려?”
수비하던 김효곤이 이런 말을 내뱉을 정도로 오늘 강송구가 던지는 공은 환상적이었다.
원정까지 따라온 스왈로스의 팬들이 내지르는 몇몇 불평과 울분이 마운드에까지 조금씩 들려왔다.
“아니! 무슨 리그 1위 팀이 투수 하나를 공략하지 못해서 이렇게 쩔쩔매냐!”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제발 1점만 만들어라! 1점! 왜 강송구를 상대로는 1점도 못 만드냐고!”
“하……. 10년 만의 우승은 개뿔……. 우리도 호크스처럼 30년은 우승하지도 못하겠네.”
뿔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지옥의 클린업이라며 겨울에 FA로 데려온 선수들이 강송구의 앞에서는 얌전한 강아지가 되었으니까.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큰 환호성이 들려온다.
아직 3회 초임에도 마운드에서 존재감을 내뿜는 강송구를 보며 우승이 가까워져 온다는 것을 팬들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더 집중했다.
자신의 실수로 우승이 날아가는 것을 좋아할 프로선수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아마 없을 것이다.
거기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한다면…… 저 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탄식과 비난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꽉 물고 집중했다.
따악!
“아웃!”
그렇게 끝이 난 3회 초.
압도적인 모습으로 이닝을 끝낸 강송구를 보며 호크스의 선수들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작은 실수도 하면 안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