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한국시리즈(3)
-3회까지 두 팀 모두 무득점인 상황. 치열한 투수전 양상으로 흐르는 한국시리즈 1차전입니다.
-다만, 강송구 선수의 투구수는 34개, 김진수 선수의 투구수는 56개로 제법 큰 차이를 보입니다.
-두 선수 모두 각자 한 번의 병살타를 유도하면서 위기를 잘 넘긴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두 팀의 야수들이 집중해야 해요. 팽팽한 투수전의 흐름을 끊는 것은 타자들의 홈런이 아니라 야수들의 아주 작은 실수니까요.
한국시리즈 1차전의 4회 초.
김진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차분하게 한 구씩 자신이 던질 수 있는 모든 무기를 활용해서 이닝을 소화했다.
주자가 가끔 1루로 향하긴 했지만, 득점권까지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김진수의 장점이었고.
-그게 저 친구의 한계겠지.
우효의 말이 옳다.
그게 김진수가 국가대표 1선발이 되지 못한 이유이자 박태오에게 항상 밀려온 이유니까.
‘삼진을 잡아야 할 때 위닝샷으로 꺼낼 무기가 없다.’
그건 투수로서 심각한 결점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가 가진 제구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빈약한 구위를 어설픈 자세로도 때려낼 수 있는 타자 앞에서는 그 제구력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도 병살을 유도하며 이닝을 끝낸 김진수.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감이 드러났다.
‘김진수 선배는 곧 무너진다.’
강송구가 4회 말의 마운드에 올랐다.
별다를 것은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강송구도 제법 출루를 허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수와 다른 것은 삼진만큼은 누구보다 확실히 잡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효는 그 부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음만 먹는다면 스왈로스의 타자들을 상대로 9이닝 완봉을 깔끔히 할 수 있는 놈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기록하고 있는 성적을 보아라.
4이닝이 끝나는 동안 허용한 안타가 3개, 그리고 허용한 볼넷이 1개다. 여러 스킬과 특성을 갖춘 강송구가 거둘만한 성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4회 말에 병살타를 유도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이건 강송구의 피칭 스타일이 아니었다.
-느린 구속으로도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피칭을 하고 필요하다면 100㎞/h 짜리 공을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찔러넣을 수 있는 녀석인데…….
그래, 강송구는 그런 투수였다.
빠른 구속을 얻었음에도 강송구는 그 누구보다 기교파에 가까운 피칭을 하며 카운트를 쌓고 삼진을 잡아냈다.
누구보다 효율적인 피칭을 좋아하는 투수.
하지만 지금 보이는 강송구의 모습은 그냥 한국에서 제법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피칭과 다를 것이 없었다.
준수한 구위와 제구로 카운트를 잡고.
위닝샷으로 범타를 유도하거나 삼진을 잡는다.
그게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강송구가 그러니 이상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이상함을 스왈로스도 느끼고 있었다.
“전혀 다른 투수 같군.”
유정길 감독이 두 눈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강송구의 투구패턴을 세밀히 분석한 스왈로스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이러다가 너클볼이라도 던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투수코치의 말에 유정길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저건 코리안 비스트가 아니라 크레이지 비스트라고 불러도 될 거야. 저 친구가 너클볼을 던진다면 내년 개막식에 내가 팬티만 입고 시구를 하지.”
그러면서 껄껄 웃었다.
* * *
“6회 말에 너클볼을 던질 겁니다.”
“그래, 알겠다.”
사실 플레이오프에 너클볼을 써먹을 생각을 했으나 생각보다 데빌스의 타자들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덕분에 강송구는 너클볼을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너클볼은 한국시리즈의 다음 등판을 위한 미끼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5회 말.
다시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평소처럼 공을 던졌다면 스왈로스의 타자들에게 1~2점 정도 점수를 내줬을 것이 분명했다.
‘나를 정말 많이 조사했군.’
아무리 강송구가 대단한 선수여도 신이 아니었다. 그가 모르는 작은 약점이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피칭의 스타일을 바꾼 강송구를 상대로 스왈로스는 경기 초반에 제법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5회 말부터는 달랐다.
앞선 이닝과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달랐다.
스왈로스가 강송구의 피칭에 적응하고 있다.
안타도 만들고 제법 투구수도 소모하게 했다.
‘확실히 리그 최고의 팀이다.’
데빌스나 드래곤즈와 수준이 달랐다.
하지만 딱히 어렵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클린업 트리오를 제외한 타자들의 수준은 겨우 더블A의 수준이었으니까.
그 결과가 바로 5이닝 무실점이었다.
안타 하나를 더 내줬지만, 이번에도 병살타를 유도하며 순식간에 이닝을 끝낼 수 있었다.
6회 초.
김진수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2-3-4로 이어지는 타순.
이번 이닝의 선두 타자는 이호승이었다.
안타를 많이 허용한 김진수.
하지만 그만큼 병살타도 많이 유도한 그는 아직 단 하나의 점수도 호크스에게 내주지 않고 있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는 이호승.
플레이오프와 다르게 한국시리즈는 느껴지는 압박감이 차원을 달리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막막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모든 게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이 풀렸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그에 아니었으니까.
‘안타를 만들어도 그것뿐이었지.’
결정적인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내가 해결하자고.
‘멍청했지.’
두 번째 타석에서 병살타를 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는지도 몰랐다.
영웅스윙의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으니까.
클리닝 타임에 김효곤 선배가 했던 조언이 아니었다면 이호승은 이번 타석에서도 큰 것을 노리며 시원하게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자.’
평소처럼 하다 보면 결국에는 결과가 따라올 거니까.
그런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서니 아까보다 훨씬 시야가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착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인 부분이 경기력에 제법 영향을 끼치기에 이호승은 좋게 생각했다.
김진수는 신중하게 승부에 들어갔다.
좌우 로케이션으로 이호승을 흔들려고 했고, 적당히 필요한 순간에 스플리터를 던지며 타자의 배트를 유인하려 했다.
하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은 이호승의 눈을 속이기에는 김진수의 스플리터는 조금 밋밋했다.
따악!
“파울!”
4구째.
김진수가 던진 스플리터를 깔끔히 커트한 이호승이 길게 숨을 내뱉고는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 X팔……. 진짜 상황 X같네.’
로진백을 들어 올린 김진수.
그가 작게 눈썹을 찌푸렸다.
이호승이 생각보다 너무 끈질겼다.
‘차라리 볼넷으로 내보내더라도 이호승과 직접적인 승부를 피해 볼까? 어차피 김효곤 선배는 수비 시프트에 막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은 정리한 그가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고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그의 왼손에서 빠져나가는 제5구.
김진수의 공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바깥쪽의 애매한 코스.
조금 밋밋한 패스트볼이지만 일반적인 타자라면 쉬이 배트를 내밀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김진수의 눈에 이호승이 갑자기 번트 자세를 잡는 모습이 들어왔다.
‘아차!’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쏠리는 김진수.
그와 동시에 내야수들도 급히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하지만 이호승이 생각한 번트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이 투수의 키를 살짝 넘을 수 있도록 번트 자세를 한 상태에서 그대로 공을 살짝 띄워냈다.
도박이었다.
투수가 조금만 주의하고 있다면 폴짝 뛰어서 잡아낼 수 있는 높이였으니까.
문제는 앞으로 몸이 쏠린 김진수가 자신의 키를 넘어가는 공에 급히 글러브를 올려도 잡을 수 없었다.
글러브에 살짝 닿은 공이 튀어 오르며 투수의 시야가 보이지 않는 등 뒤로 떨어졌다. 당연히 김진수는 공을 찾아야 할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이호승을 살렸다.
-이호승의 번트으으으!
-투수의 키를 살짝 넘어간 공! 급히 공을 주워든 김진수가 그대로 1루로 송구를 하지마아아안! 그대로 세이프!
-저건 번트성 안타라고 불러야겠네요.
-이호승 선수가 출루에 성공합니다.
-아…….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플레이오프에서 그런 성적을 만들어냈으면 솔직히 욕심이 생기거든요? 그것도 젊은 선수가 장타를 빵빵 때렸단 말이죠. 그런데 그런 선수가 이런 플레이까지 한다면……. 호크스의 장래는 정말 밝다고 할 수 있겠네요.
1루에 안착한 이호승.
그가 숨을 크게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계속 출루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선배님들이 날 홈으로 불러주겠지.’
그러니까 지독하게 들러붙자.
투수가 싫어할 만한 타자가 되자.
슬쩍 마운드를 보니 김진수가 신경질적이게 마운드의 흙을 발로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는 김효곤.
호크스의 슈퍼스타인 그가 두 눈을 번뜩였다.
컨디션이 좋은 후배가 출루를 해줬다.
그렇다면 자신은 제대로 하나 만들어줘야 할 때.
번트를 허용한 김진수가 마음을 가다듬기 전에 김효곤이 초구를 노리고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쳤습니다!
-김효곤 선수의 안타!
-1루에 있던 이호승 선수가 2루로……. 2루에서 더! 더! 더! 3루까지 달립니다! 그대로 세이프!
-무사 1, 3루의 찬스! 김진수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두 번째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는 4번 타자 이진모.
그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희생타! 그거 하나만 하자.’
그 생각을 하며 자세를 잡았다.
스왈로스의 더그아웃은 움직이지 않았다.
‘포수도 마운드에 올라가지 않았어.’
그만큼 김진수를 믿는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이호승의 번트와 김효곤의 안타에 김진수의 멘탈이 이미 어느 정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진모는 김진수를 상대로 배트를 휘둘러 외야로 공을 보냈다.
빠악!
큰 타구음.
이호승은 타구를 보며 홈으로 뛸 준비를 했다.
중견수가 외야 담장까지 뛰어가 떨어지는 공을 글러브로 잡아내며 이진모를 아웃시켰다.
동시에 이호승이 홈으로 달렸다.
-그대로 홈으로 들어가면서 호크스가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이진모 선수의 희생플라이!
-드디어 호크스가 깔끔히 점수를 만듭니다. 오늘 같은 투수전에서 저 1점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을 것 같네요.
다음 타자는 박진수.
김진수는 연이어 어려운 타자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김진수가 흔들린다는 것을 깨달은 스왈로스는 빠르게 투수교체를 가져갔다.
에이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지금 치러지는 경기는 일반적인 경기가 아닌 한국시리즈였다.
조금이라도 이길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이윽고 필승조가 마운드에 올랐다.
스왈로스는 1점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점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끝이 난 6회 초.
호크스가 얻은 점수는 고작 1점이었다.
하지만 호크스의 선수들은 아까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찾아온 6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3-4-5로 이어지는 클린업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이닝임에도 강송구의 표정은 평온했다.
타석에는 3번 타자 한동혁이 들어섰다.
오늘 경기 강송구에게 모두 아웃을 헌납한 그는 이번 타석에서는 무조건 안타를 때리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다.
‘어떻게든 출루한다.’
6회 초에 스왈로스의 에이스인 김진수가 겪었던 일을 저 마운드에 있는 투수도 겪게 할 생각이었다.
초구는 바깥쪽에 파고드는 포심 패스트볼.
한동혁은 가만히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2구째는 몸쪽 싱커.
이번에도 그는 참고 기다렸다.
“볼!”
강타자인 그가 두 번이나 공을 지켜봤다.
그건 노리는 공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1-1의 상황에서 강송구가 조심스럽게 미끼를 꺼내 들었다.
‘너클볼.’
강송구의 사인에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클볼 전용 미트가 아니라 받지 못할 확률이 높지만 지금 상황에서 던지기에는 나쁘지 않은 공이었다.
‘타자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기에 충분하겠지.’
그리고 다음 등판에 너클볼 전용 미트와 함께 강송구가 등판하면 스왈로스는 머리가 더 아파질 것이다.
‘뭐 너클볼을 주력으로 쓸 생각은 없지만.’
이윽고 강송구가 너클볼 그립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와인드업 자세.
그리고 그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한동혁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배트를 꽉 쥐었다.
느린 공이 오면 보고 때리겠다고 다짐을 한 그는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떠난 공을 보며 생각했다.
‘느린 공이다!’
느린 공이라고.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공이 흔들렸다.
마치 술을 먹고 타석에 들어선 것처럼 공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떨어졌다.
‘어?’
그제야 깨달았다.
강송구가 던진 구종이 무엇인지 말이다.
“스-윙! 스트라이크!”
완벽한 헛스윙.
박진수가 몸을 날려 아슬하게 공을 잡아냈다.
하지만 그건 신경 쓸 것이 못 됐다.
109㎞/h의 느린 구속.
그리고 나비처럼 흔들리는 공.
저 공은 분명히 ‘너클볼’이었다.
한동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 혼자가 아니었다.
스왈로스의 더그아웃.
유정길 감독이 멍하니 마운드를 바라봤고, 옆에 있던 투수코치는 그런 유정길 감독을 보며 중얼거렸다.
“감독님. 진짜 팬티만 입고 시구하셔야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