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68화 (68/198)

#68. 준플레이오프 1차전(2)

지독했다.

아니, 정확히는 처절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인천 드래곤즈의 타자들이 2회 초까지 강송구를 상대로 뽑아낸 안타는 단 하나뿐이었다.

아직 경기 초반이기에 몇몇 이들은 ‘안타 하나면……. 뭐 강송구를 상대로 나쁘지 않은 거 아니냐?’라고 말을 하겠지만.

우습게도 안타를 하나 만들었음에도 드래곤즈의 더그아웃은 평소보다 훨씬 분위기가 무거웠다.

‘2회 초가 끝날 때까지 고작 13구만 던졌다고?’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다들 쉽게 배트를 내미는 거야? 차근차근히 공을 보기로 한 거 아니야?’

‘오늘따라 공이 되게 묘하네……. 칠만한 코스로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타이밍이 어긋나고 있어.’

-강송구 선수가 정규시즌에 퍼펙트게임을 했던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경기 초반에 제대로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대전 호크스의 5번 타자 박진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2회 말.

마운드에는 인천 드래곤즈의 선발투수인 데릭 하비가 인천 드래곤즈의 포수가 사인을 교환했다.

타석에 들어선 박진수는 쓱 눈을 굴려 야수들의 위치와 인천 드래곤드의 더그아웃을 잠깐 바라봤다.

“야, 너무한 거 아니냐? 왜 내가 타석에 들어서니까 갑자기 수비 시프트를 가져가냐? 응?”

박진수의 말에 인천 드래곤즈의 포수인 이중협이 눈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제발 조용히 좀 해주세요.”

박진수는 그런 이중협을 힐끗 보고는 씩 웃었다.

‘짜증이 잔뜩 났네.’

보통 이중협이 짜증 났을 때 타자의 머리 근처로 던지는 위협구를 잘 요구했기에 박진수는 살짝 홈플레이트에서 반걸음 정도 물러났다.

실투라도 나오면 그대로 걷어 올려서 장타를 하나 만들어볼 속셈이었다.

그리고 데릭 하비의 초구는 박진수의 예상처럼 몸쪽 높은 코스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실투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가 노리는 코스로 공이 몰리는 것을 보고는 박진수가 자신 있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쳤습니다!

-꽤 큰 타구! 박진수 선수가 때린 타구가 멀리! 멀리! 멀리! 나아갑니다!

-타구가 중견수의 머리를 넘어서……! 그대로! 넘어! 갑니다! 홈러어어어언! 박진수 선수가 홈런을 때리며 대전 호크스에게 선취점을 선물합니다!

-멋진 솔로홈런이네요! 대단합니다.

2회 말에 터진 솔로홈런.

안 그래도 칙칙했던 드래곤즈의 분위기가 이번에 나온 솔로포로 더욱 가라앉았다.

“집중해!”

임성균 감독의 목소리에 더그아웃에 있던 드래곤즈 선수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이윽고 홈런을 맞아서 분노한 데릭 하비가 엄청난 호투로 2회 말의 마지막 타자를 잡기 무섭게 임성균 감독이 수비를 끝내고 들어온 선수들을 모았다.

“아직 이닝은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상대는 로봇도 괴물도 아닌 한 명의 투수일 뿐이다. 겁먹지 마라.”

선수들은 그런 임성균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기운을 차렸다.

‘그래, 감독님의 말씀처럼 고작 1점이고 이제 2회 말이야……. 충분히 점수를 만들어낼 수 있어.’

‘최대한 공을 길게 보자.’

‘강송구도 결국에는 사람이야. 6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던 적도 있다고…….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다. 상대는 괴물도 로봇도 야수도 아닌 그냥 투수일 뿐이다.

하지만 3회 초의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는 선수들이 생각한 것과 차원이 다른 투수였다.

정규시즌에 그들이 만났던 강송구와 지금의 강송구는 전혀 다른 선수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럴 것이 스펙부터가 달랐으니까.

이어지는 3회 초의 마지막 타석.

경기가 끝나려면 기나긴 시간이 지나야만 하겠지만, 상대 타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타석에 들어섰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강렬한 공이 날아든다.

타자의 배트가 헛돌았다.

2구째는 깔끔히 떨어지는 스플리터.

이번에도 타자의 방망이가 헛돈다.

강송구가 던진 공을 보고 타자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미치겠네…….’

마무리는 바깥에 정확히 걸치는 체인지업.

“스트라이크 아웃!”

루킹 삼진.

3회 초가 그렇게 끝이 났다.

* * *

5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인천 드래곤즈의 선발인 데릭 하비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뻐킹!’

4이닝을 소화하면서 던진 공의 개수는 고작 39개였다.

문제는 5회 초.

눈 깜짝할 사이에 강송구가 공 5개로 두 개의 아웃을 잡아내면서 투구수를 절약했다.

-안타를 하나 허용했지만, 강송구 선수가 오늘 경기 두 번째 병살타를 유도하면서 2개의 아웃을 잡아냅니다.

-정말 효율적인 투구를 보여주고 있네요. 인천 드래곤즈의 타자들이 뭔가 꽉 막힌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말씀드리는 순간! 초구가 높게 뜹니다!

-그대로 유격수인 알렌 베이커가 공을 잡아내면서 강송구 선수가 고작 공 6개로 이번 이닝을 끝냅니다!

5이닝 동안 던진 공은 고작 45개.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가 누구보다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군. 생각보다 드래곤즈의 타자들이 내 생각처럼 움직여주고 있어.’

-며칠을 드래곤즈 타자들의 자료만 뒤적인 이유가 있구나. 솔직히 이제 난 네가 너무 무섭다.

준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전부터 강송구는 드래곤즈의 자료를 극한에 가깝게 뒤적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여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타자들이 싫어하는 코스는 물론이고, 여러 상황에 맞춰서 각 타자의 성향을 분석했다.

거기다 배트가 잘 나가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코스와 구종을 잘 선별해서 필요한 순간에 써먹으면서 이렇게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 덕분에 강송 구는 또 다른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987년 8월 25일 청보 핀토스 임호균 선수가 기록했던 73개의 공을 던져 완봉승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기록되어 있는 최소투구 완봉승이었다.

‘남은 투구수는 28개. 그리고 남은 이닝을 딱 4이닝.’

-한 이닝에 딱 7구로 정리하면 끝이겠네. 아, 마지막 이닝은 6구로 잡으면 신기록이겠어.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할 수 있겠어?

우효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못할 건 없지.”

* * *

드래곤즈의 더그아웃.

임성균 감독이 두 눈을 찌푸린 상태로 마운드에 천천히 오르는 강송구를 노려봤다.

‘처음 상대할 때 제대로 찍어눌렀어야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시간은 흘렀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6회 초의 첫 타자가 강송구가 던진 날카로운 슬라이더에 헛스윙하며 물러났다.

‘최대한 길게 공을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절대 저 괴물의 공을 때려낼 수 없다.’

정규시즌에 강송구에게 페가수스가 퍼펙트게임을 내어준 이유도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밀지 않아서였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밀어야만 저 괴물에게서 안타를 빼앗아낼 수 있다.

오늘 경기에서도 그랬다.

앞서 두 번의 병살타로 기회를 날리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타격으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따악!

-드디어 드래곤즈가 안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경기 강송구 선수에게서 빼앗은 세 번째 안타! 드래곤즈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타였지만 출루에 성공했다.

임성균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

저 괴물을 상대하려면 적극적인 타격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금 나온 병살타에 드래곤즈의 타선이 다시 막힌 변기처럼 답답하게 말려 버렸다.

중계진마저 탄식을 내뱉었을 정도였다.

-아! 오늘 경기 세 번째 병살타!

-드래곤즈! 정말 안 풀립니다.

-분명히 좋은 기회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되네요.

6회 초가 끝나고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를 보며 임성균 감독이 ‘끙…….’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카리스마 넘치던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임성균 감독이 아집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 틀리지 않았다.’

저 팔색조 투수를 상대로 공을 길게 보는 행동은 결코 좋지 못하다고, 공격적인 타격만이 저 괴물 투수를 무너뜨릴 최고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경기가 계속 이어질수록 드래곤즈의 타선은 더욱 침체에 빠질 뿐이었다.

그리고 임성균 감독이 자신의 아집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8회 초가 시작되고 있었다.

-8회 초! 강송구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대전 호크스의 에이스는 역시 다릅니다. 정규시즌에서 활약한 만큼 포스트시즌에서도 완벽한 활약을 이어나갑니다.

7이닝 동안 60구.

남은 2이닝을 13구 이하로 잡아내면 강송구는 최소투구 완봉승의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흐흐흐! 메이저리그에서는 58구 만에 완봉승을 거둔 기록이 남아 있지만 말이야.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일단은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해야지.’

좋은 경기력을 계속 보여주면 기록은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라던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 강송구가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왼손을 안 쓰네?

‘오른손으로 한계까지 던져보려고.’

그 말에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8회 초의 첫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강송구는 거침없이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몸쪽 높은 코스를 파고든 컷 패스트볼이 정확히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들었다.

드래곤즈의 4번 타자.

이민하가 눈을 찌푸렸다.

‘공이 정말 날카롭네.’

특히나 오늘따라 제구력이 더 빛나는 것 같았다.

거기다 구속도 결코 느린 편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는 파이어볼러가 더 어울리는 투수지.’

물론,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그저 그런 투수겠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기준으로 본다면 충분히 구속이 빨랐다.

타자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강송구는 자신의 머릿속에 담긴 타자의 정보와 지금까지 해왔던 투구, 그리고 구종에 따라서 달라지는 타자의 반응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드래곤즈의 더그아웃에서 보이는 반응까지 머릿속으로 정리해서 볼 배합을 정했다.

따악!

“아웃!”

그리고 타자가 배트를 내밀 수밖에 없는 위치에 타자가 치더라도 절대 장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공을 던졌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아웃이었다.

오늘 강송구는 자주 땅볼을 유도하며 아웃을 잡았고 조급한 드래곤즈의 타선을 상대로 재미를 봤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8회 초의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낸 강송구는 이어서 마지막 타자를 깔끔히 2구 만에 잡아내면서 완봉까지 단 3개의 아웃을 남겨놨다.

-딱 6구만 던져서 이닝을 끝낼 수 있겠어?

‘그건 운의 영역이지.’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말은 기록에 도전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강송구는 이번 기록은 운에 따른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타자가 배트를 내밀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흘러 9회 초.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미 기록과 관련된 건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저 깔끔히 이닝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9회 초의 첫 타자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래곤즈의 타자들은 타격에 적극적이었고, 덕분에 강송구는 단 1구 만에 9회 초의 첫 아웃을 잡아낼 수 있었다.

-뭐지?

우효가 뭔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드래곤즈의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이 팀이 와일드카드에서 수원 나이츠를 무너뜨리고 올라온 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늘 드래곤즈의 타격감은 최악에 가까웠다.

이어지는 다음 타자와 승부도 빠르게 끝났다.

단 2구 만에 끝난 승부.

이번에는 내야 뜬공으로 아웃을 잡아냈다.

아웃을 하나 남겨둔 상황에서 드래곤즈의 더그아웃이 조금 소란스러워짐은 느낄 수 있었다.

임성균 감독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타자들에게 뭐라 질책을 하는 것 같았다.

우효는 그 모습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쟤들 오늘 경기 끝나고 특타 하는 거야?

‘펑고도 같이할 수 있겠지.’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오늘 경기의 마지막 타자가 될 수 있는 드래곤즈의 9번 타자인 이정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강송구는 뜸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듯이 공을 던졌고 이정엽은 어떻게든 뭔가를 해보려고 번트를 가져갔다.

틱!

배트에 맞고 낮게 뜨는 공.

이정엽은 자신의 번트가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1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필드에 공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진수가 공을 주워 1루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일루심의 콜.

“아웃!”

환호성으로 물드는 대전 호크스 파크.

큰 목소리로 기뻐하는 호크스의 선수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는 드래곤즈의 선수들.

마운드에 선 강송구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

9이닝 11k 3피안타 무실점.

투구수 71개.

그가 또 하나의 기록을 다시 세우며 준플레이오프 1차전의 승리를 가져왔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우효가 중얼거렸다.

-진짜 1년 만에 여기까지 오다니……. 이러다가 올해 우승해서 내년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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