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퍼펙트게임(5)
7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조용하네.’
-그러게 홈인데도 고요해.
도서관보다 훨씬 조용할 것 같은 대전 호크스 파크의 분위기를 느낀 강송구가 천천히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박진수가 던져준 공을 받은 그가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힐끗 바라봤다.
‘6이닝 동안 퍼펙트.’
이제 남은 이닝은 3이닝 정도.
아마도 호크스의 홈팬들이 조용한 이유는 강송구의 퍼펙트게임 도전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것 같았다.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타석에는 페가수스의 1번 타자.
이운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다시 좌타석에 들어선 그는 배트를 짧게 잡고는 마운드에 선 강송구를 노려봤다.
강송구는 그런 타자를 슬쩍 본 뒤에 초구부터 포심 패스트볼을 바깥쪽에 깔끔히 꽂아 넣었다.
몸쪽 코스를 노리는 이운호와 반대로 강송구는 이번 승부에서 끈질기게 바깥쪽에 공을 찔러넣었다.
따악!
“아웃!”
그리고 바깥쪽에 걸치는 체인지업으로 범타를 유도하면서 7회 초의 첫 아웃 카운트를 깔끔히 잡아냈다.
-범타를 유도해서 잡으려고?
‘삼진을 잡으려고 기를 쓰는 것보다 탄탄한 내야 수비진을 믿고 던질 필요도 있는 법이지.’
강송구의 대답에 우효가 혀를 내둘렀다.
일반적인 투수라면 지금 상황에서 수비를 믿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처리하려고 구속을 끌어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강송구는 반대였다.
깔끔한 완급조절.
강송구는 오히려 구속의 차이를 주며 타자에게서 너무나 쉽게 아웃을 빼앗아냈다.
아무튼, 우효의 반짝이는 눈빛을 받는 강송구는 겉모습과 다르게 속으로는 제법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덤덤한 인물임에도 퍼펙트게임이 주는 압박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어지는 승부.
2번 타자 김강일이 타석에 들어섰다.
‘실투만 조심하자.’
초구는 바깥쪽 싱커.
따악!
“파울!”
강송구의 싱커에 김강일이 타석에서 ‘아오!’라고 소리 지르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아……. 정말 꽁꽁 묶이네요.
-이런 부분이 강송구 선수의 장점입니다. 필요한 순간에 피칭의 스타일을 바꿀 수 있거든요. 삼진을 잡다가…… 이렇게 변형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지면서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투수가 솔직히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렇죠. 그리 많지 않죠.
-말씀드리는 순간 2구째는 몸쪽 커브입니다.
-아……. 김강일 선수의 표정을 보세요. 커브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납니다.
3구째는 바깥쪽으로 아예 빠지는 공.
4구째는 낮게 제구한 컷 패스트볼을 김강일이 간신히 때려내며 파울이 나왔다.
이어지는 5구째 승부.
강송구가 선택한 것은 너클 커브였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아웃!
-깔끔한 너클 커브였습니다. 몸쪽에 정확히 들어갔네요.
-강송구 선수가 7회 초의 마운드에 올라서 순식간에 2개의 아웃을 잡아냅니다.
다음 승부는 3번 타자.
강송구가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문득, 지난번에 기록했던 노히트노런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며 긴장감이 사르르 사라졌다.
‘편하게 생각하자. 안타만 안 맞으면 퍼펙트게임에 실패해도 한 시즌에 3번의 노 히터를 기록한 최초의 투수가 되는 거니까.’
그러니 덜덜 떨며 공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실투가 나올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강송구는 중요한 공을 던질 때마다 틈틈이 ‘스나이퍼’ 스킬도 사용했다.
“아웃!”
7회 초의 마지막 아웃은 포수인 박진수가 가볍게 움직여 높게 떠오른 공을 처리했다.
-강송구 선수가 7회 초의 마지막 타자를 잡아냈습니다! 대전 호크스 파크의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강송구! 이제 대기록까지 남은 아웃은 단 6개입니다!
모두의 기대를 뒤로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모자를 고쳐 썼다.
* * *
[제목: 야! 강송구 돌았는데?]
-내용: 저 투수 몸값이 얼마라구요?
[댓글]
-와……. 미쳤네.
-얼굴 봤냐? 어떻게 대기록을 앞두고 로봇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냐? 진짜 안드로이드 아님?
-진짜 개쩌네;
-1군 평균 연봉으로 메이저리그급 선수를 부려먹는 구단이 있다? 뿌슝빠슝!
-데빌스는 호크스보다 먼저 스카우트까지 보냈으면서 왜 호크스에게 코리안 비스트를 뺏겼냐?
-계약 조건이 별로였나 보지.
-티탄즈 새끼들은 저런 투수 보고도 왜 못 데려오는 거냐? 언제까지 하위권에 있을래?
-응, 너희 보드진은 ‘안경성애자’가 많아서 그래.
-티탄즈쉑들ㅋㅋㅋㅋ 양심이 없네? 안경 쓴 에이스들 어깨 갈아서 우승하고 처우도 쓰레기같이 해주면서 뭐? 우승? 절대 못하쥬우우우우우! 안경의 저주다! 안경의 저주!
-잡았다! 아웃 잡았다!
-미쳤네! 와! 저 상황에서 73㎞/h짜리 슬로우 커브를 던진다고? 그것도 저 코스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강송구는 곧 무너질 선수다. 아마 후반기에 원래의 성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ㅋㅋㅋㅋ 기레기들 다 틀렸쥬?
-8회 초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못 만드는 페가수스의 타자들 수준……. 진짜 역겹다.
-페가수스의 타선이 역겹다면, 강송구만 만나면 신나게 털려주는 더블스타즈의 타자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8회 초.
투 아웃의 상황.
페가수스의 6번 타자 김준형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이제 퍼펙트게임까지 남은 아웃은 단 4개.
그 하나의 아웃이 될 김준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강송구의 초구에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파울!”
다시금 피칭을 이어나가는 강송구.
그의 오른손에서 141㎞/h의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었고, 김준형은 바깥의 절묘한 코스에 걸치는 공을 바라보며 탄식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미치겠네!”
3구째.
아까보다 훨씬 빠지는 체인지업.
“볼!”
4구째도 비슷한 코스로 빠지는 커브.
“볼!”
볼카운트는 2-2의 상황.
강송구가 간 보기를 멈추고 박진수에게 몸쪽 낮은 코스로 들어가는 싱커 사인을 보냈다.
따악!
“아웃!”
삼루수인 이호승이 가볍게 자신을 향해 날아든 공을 처리하면서 그대로 8회 초의 마지막 아웃을 잡아냈다.
-8회 초의 마지막 아웃이 잡혔습니다.
-이제 대전 호크스 파크는 거의 침묵에 가까울 만큼 조용하고 고요해지고 있습니다.
-감탄만 나오네요. 정말 대단한 피칭입니다.
8회 말.
오늘 단 1실점을 제외하면 호크스의 타선을 잘 막아냈던 박태오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빠르게 3개의 아웃을 잡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호크스의 타자들이 타석에서 쉽게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기록까지 3개의 아웃을 남겨둔 상황에서 수비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누가 타석에서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있겠어? 나라면 타석에서 머리를 비우고 수비만 생각할 거야.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살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러겠지.’
동시에 그런 강송구를 보며 호크스의 몇몇 선수들은 마음속으로 짧게나마 감탄하고 있었다.
‘퍼펙트게임을 앞두고 저렇게 태연할 수 있나?’
‘웃어? 와……. 진짜 대단하다.’
‘나 같으면 긴장 때문에 더그아웃에서 아무런 행동도 못 할 텐데……. 저렇게 물도 마시고 박진수 선배랑 이야기도 나눌 정도로 여유로울 수 있다니. 그냥 감탄 만나오네.’
‘저 모습이 어떻게 퍼펙트게임을 앞둔 투수야?’
따악!
8회 말의 마지막 타자가 아웃을 당했다.
오늘 경기에서 8이닝 1실점의 호투를 보여준 박태오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도 패배를 예상하였다.
오늘 단단히 준비하고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는 페가수스의 타선이 공략하기 힘든 투수였으니까.
하지만 피칭을 끝내고 페가수스의 더그아웃에 들어온 박태오는 아이싱을 하지 않았다.
작은 확률이라도 9회 말에 오를 때를 대비해서 어깨가 식지 않게 점퍼를 입고 마운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9회 초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야.
‘왜? 뭔가 문제가 있나?’
-아니, 그……. 그러니까……. 그냥 부담가지지 말라고……!
‘싱겁군.’
강송구가 덤덤히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이마의 땀도 쓱 소매로 닦고 타석을 바라보니 페가수스의 7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강송구 선수가 오늘 경기의 마지막 이닝을 끝내기 위해서 마운드에 올라섰습니다.
-타석에는 최성훈 선수가 들어섭니다.
짧게 숨을 내뱉었다.
‘꼭 이겨야지. 이번 시즌 20승이 걸려 있는 경기이기도 하고, 퍼펙트게임도 걸려 있으니까.’
박진수와 조심스럽게 사인을 교환하는 강송구.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퍼펙트게임을 앞두고 그가 선택한 초구는 컷 패스트볼이었다.
초구부터 강하게 배트를 휘두르는 타자.
‘페가수스의 포수인 최성훈은 몸쪽으로 붙는 변형 패스트볼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
덕분에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손쉽게 잡은 강송구가 이어서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던졌다.
틱!
-아! 강송구 선수의 스플리터!
-빗맞은 타구! 그대로 투수가 공을 잡아서 그대로! 그대로! 1루로! 1루로! 가볍게 아웃!
-강송구 선수가 스플리터로 범타를 유도하면서 9회 초의 첫 번째 아웃을 잡아냅니다.
떨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호크스의 내야진과 자신의 수비능력을 믿었기에 강송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피칭을 이어나갔다.
이어지는 페가수스의 8번 타자와 승부.
강송구는 차분하게 공을 던졌다.
-강송구 선수! 공 하나로 아웃을 잡아냈습니다!
-몸쪽 높은 코스로 찔러넣은 145㎞/h의 포심 패스트볼에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는 8번 타자 강호윤!
-이제는 정말……. 정말 하나 남았습니다.
-아……. 이 경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경기의 마지막 타자가 될 수 있는 페가수스의 9번 타자인 김공문이 타석에 들어섰다.
호크스의 홈팬들이 강송구가 마지막 남은 아웃 카운트를 손쉽게 잡아내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시작된 마지막 승부.
강송구의 초구는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스트라이크!”
2구째는 몸쪽 낮은 코스로 파고드는 싱커.
“스트라이크!”
그리고 3구째는 타자가 반응조차 하지 못한 낮게 떨어지는 깔끔한 커브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강송구가 마지막 아웃을 잡아내는 순간.
대전 호크스 파크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대한 함성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박진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는 빠르게 마운드로 달려갔고, 동시에 호크스의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도 모두 마운드를 향해 달려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아웃을 삼진으로 잡아낸 강송구는 모처럼 흥분한 표정으로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으랏차아아아아!”
한국 프로야구 첫 퍼펙트게임을 성공시킨 강송구를 향해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미쳤어! 미쳤다고!”
“으아아아아아! 우리 구단에서 한국 프로야구 첫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투수가 나오다니……!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다고!”
“으하하하하하! 이거지!”
“돌았어! 돌았어!”
정신없이 강송구의 등을 두들기는 선수들.
[정말 축하드립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퍼펙트게임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HoF 에디션 카드’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송구는 그 상황에서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알림창을 바라보고는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며 환히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