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65화 (65/198)

#65. 퍼펙트게임(4)

5회 초.

마운드에 올라온 그는 4-5-6 타선을 상대하게 되었다.

5회 초의 선두타자는 레이몬드 스노우.

단단히 각오를 다진 그가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박진수가 초구 사인을 보냈다.

몸쪽 컷 패스트볼 사인.

‘굳이 좌타자를 상대로 커터를 아낄 필요는 없지.’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완벽한 피칭을 이어가고 있는 강송구 선수. 과연 이번 이닝도 잘 막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4회 말에 박태오 선수가 정말 멋진 투심 패스트볼을 보여주면서 깔끔히 이닝을 끝냈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초구!

-몸쪽 147㎞/h의 컷 패스트볼이네요.

-좋은 공입니다.

-그렇군요.

-강송구 선수가 점점 구속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져요. 평균구속도 계속 올라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전성기 시절에 보여줬던 무시무시한 강속구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구째는 바깥쪽 스플리터.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처럼 움직이는 스플리터에 레이몬드가 헛스윙을 빼앗겼다.

순식간에 몰린 카운트.

레이몬드는 무력감을 느꼈다. 도저히 강송구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낼 자신이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10K! 강송구 선수! 3구째 던진 컷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아내면서 깔끔히 아웃 카운트 하나를 적립합니다.

-좋은 커터입니다. 깔끔하네요.

터벅터벅.

다른 타자들과 다르게 뭔가 노림수를 준비한 임중민이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체인지업을 노리자.’

오늘 그가 노리는 것은 강송구의 체인지업이었다.

‘강송구의 체인지업은 그리 완성도가 높은 구종이 아니다. 공을 던질 때 미세한 투구폼의 변화가 있어.’

그 차이점을 영상자료와 끈질긴 씨름 끝에 찾아낸 임중민이 차분한 표정으로 강송구를 노려봤다.

‘체인지업을 던질 때 글러브가 조금 오므라든다.’

그걸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구분할 생각이었다.

확신은 있었다.

‘오늘 강송구는 체인지업을 전혀 던지지 않았다. 거기다 앞선 이닝에서 좌완으로 공을 던진 다음에 체인지업을 던지는 비중이 올라갔었다. 나한테도 분명 하나쯤은 던져줄 거야.’

초구는 몸쪽 하이 패스트볼.

147㎞/h의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 코스에 들어왔음에도 임중민은 배트를 내밀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박진수가 힐끗 임중민을 바라봤다.

‘반응이 없네.’

뭔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2구째로 싱커를 요구한 박진수가 미트를 들어 올렸다.

‘굳이 힘든 승부를 가져갈 필요는 없지.’

투구수의 여유는 충분했다. 왼손으로도 공을 던져서 오른쪽 어깨는 아직도 쌩쌩했다.

조금은 조심해서 피칭을 해도 나쁠 것은 없었다.

슈우우욱! 펑!

“볼!”

몸쪽으로 낮게 빠지는 싱커.

하지만 임중민은 반응하지 않았다.

‘싱커를 노리는 것도 아니군.’

강송구도 눈치챘다. 임중민이 지금 구종 하나를 노리고 타석에 들어섰다는 것을 말이다.

‘패스트볼 계열은 아니다.’

커브나 슬라이더 혹은 체인지업.

위 3가지 구종 중에서 하나의 구종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체인지업이었다.

‘최근에 던진 체인지업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은 체인지업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공이었지.’

C등급의 체인지업이니까.

‘조금만 더 애를 태워볼까?’

3구째는 바깥쪽 커브.

이번에도 임중민은 배트를 내밀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이제는 확신이 생겼다.

상대가 체인지업을 노린다는 확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체인지업이 아닌 다른 공을 던지며 삼진을 잡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임중민은 내 A등급의 체인지업을 보지 못했지.’

결단을 내린 강송구가 바로 사인을 보냈다.

몸쪽 체인지업.

박진수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트를 내밀었다.

그에 맞춰 강송구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렇게 그의 손에서 체인지업이 빠져나갔다.

* * *

체인지업.

패스트볼과 비슷한 투구폼으로 던지는 구종.

그러면서도 공의 비행속도가 떨어지는 구종.

투구폼뿐만 아니라 공의 회전 방향 역시 패스트볼과 비슷해서 여타 변화구와 다르게 동체 시력만으로 패스트볼과 분간하기가 정말로 힘든 구종.

스티븐 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강송구가 가진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구종이 체인지업이었다.

대체로 메이저리그에서 롱런하는 선발투수들은 체인지업을 서드 피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편이었다.

‘물론……. 강송구는 좋은 싱커와 스플리터를 가졌기에 체인지업이 썩 좋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

체인지업을 대신할 카드가 많은 강송구는 그런 부분에서 제법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체인지업을 종종 던졌다.

그만큼 강송구가 다양한 구종을 가진 투수가 가진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였다.

카운트를 어느 정도 다 쌓은 상황.

강송구의 손에서 공이 하나 빠져나왔다.

‘패스트볼이군.’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타석에 있는 임중민은 물론이고.

멀리서 경기를 지켜보던 스티븐 홍도 강송구의 손에서 빠져나간 공이 패스트볼이라고 생각했다.

“아!”

하지만 타석에 선 임중민은 깨달았다.

저 공은 체인지업이라고.

그것도 홈플레이트 근처에 와서 갑자기 공이 멈춰 서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좋은 체인지업이라고.

“스트라이크 아웃!”

허무하게 서서 삼진을 당한 임중민.

그가 타석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스티븐 홍이 감탄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150㎞/h의 옷을 입고 130㎞/h으로 날아오는 구종이 체인지업이지.”

그리고 그가 내뱉은 말에 가장 어울리는 체인지업이 방금 강송구가 던진 체인지업이었다.

체인지업은 ‘안녕? 난 변화구야!’라고 말하며 날아들면 삼류인 구종이다.

물론,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던지는 써클 체인지업이라면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그 마구는 그저 떨어지는 움직임만으로도 타자를 얼어붙게 만든 공이었으니까.’

강송구가 던진 체인지업은 그런 마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공보다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는 공이었다.

‘완벽한 체인지업이었지.’

이어지는 피칭.

임중민은 허탈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들어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서 마운드를 바라봤다.

“내가 알던 체인지업과 너무 다르잖아.”

그의 말을 듣고 다른 페가수스의 타자들도 입을 열었다.

“저 망할 놈은 무너질 생각을 않네.”

“진짜 미치겠다.”

“악마야. 악마. 모습은 무슨 곰 한 마리 때려잡을 것처럼 보여도 생각하는 건 우리 집 최고 권력자인 아들내미랑 똑같은 수준의 악랄함을 가지고 있어.”

“선배님 아들 올해 미운 4살이었죠?”

“그래, 그만큼 저 마운드에 있는 야수 놈도 밉다.”

이번 이닝도 강송구는 지독하게 페가수스의 타자들이 싫어하는 코스를 공략했다.

동시에 타자가 생각하지 못한 타이밍을 잡아서 그들의 타격감마저 뒤흔들었다.

그런 강송구의 모습을 보고 몇몇 페가수스의 원정팬들이 강송구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

“제발 무너져라!”

-와우! 정말 최고의 공을 던지시는군요!

“아! 진짜 더럽게 공을 던지네.”

-와! 정말 어떻게 이겨야 할지 잘 알고 있군요!

“아니, 저 구속의 공을 왜 못 때려?”

-와! 정말 뛰어난 구속이에요!

원정팬들의 비난을 번역해 준 우효가 킬킬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5회 초의 마지막 타자를 깔끔히 막아낸 강송구가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남은 이닝은 4이닝.’

경기는 이제 절반이 조금 넘었다.

* * *

6회 말.

투 아웃의 상황.

하위 타선의 타자들을 모두 잡아낸 박태오는 타순이 돌아서 다시금 타석에 들어선 호크스의 1번 타자인 김국도의 안타를 보며 두 눈을 찌푸렸다.

-이게 빠져나갑니다!

-아! 운이 정말 좋지 않네요. 원래라면 잡았을 코스였지만……. 워낙 애매한 곳에 공이 떨어져서 아무도 잡지 못했습니다.

-김국도 선수의 행운의 안타가 터집니다!

-오늘 2개의 안타를 허용하는 박태오!

이윽고 2번 타자 이호승이 타석에 들어섰다.

‘슬라이더…….’

앞선 타석에서 파울이 나오기는 했지만 박태오의 슬라이더를 때려낸 적이 있는 이호승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박태오가 던진 슬라이더의 궤적을 말이다.

-음……. 저 녀석 느낌이 좋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효와 강송구는 침착한 이호성을 보며 어쩌면 이호승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3구째.

바깥으로 빠진 포심 패스트볼에 배트를 휘두른 이호승이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깐 타석 밖으로 빠져나갔다.

따악!

“파울!”

끈질겼다.

7구째를 던졌음에도 이호승은 또 공을 때려냈다.

“파울!”

박태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런 박태오를 확인한 페가수스의 포수인 최성훈이 잠깐 타임을 요구하고선 빠르게 마운드로 다가갔다.

“태오야. 괜찮겠어?”

“괜찮아. 그것보다 혹시 내가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순간에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어?”

“아니, 딱히 없어.”

“후우…….”

“네 투심 패스트볼은 최고야. 저 녀석도 배트를 내밀었지만, 그저 커트하기 급급한 수준이잖아. 다른 변화구를 던져서 삼진을 잡아보자. 네 공은 오늘 정말 끝내주니까.”

“알겠어.”

박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8구째.

바깥쪽에 꽉 찬 투심 패스트볼을 던졌지만, 이호승이 배트를 내밀다 참아내며 볼을 받아냈다.

이제 풀 카운트가 된 상황.

이호승이 숨을 크게 내뱉으며 박태오를 노려봤다.

‘슬라이더.’

그는 바깥쪽으로 찔러주는 슬라이더를 원했다.

‘조금만 더 버티자. 어쩌면 이 승부가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처일 수 있으니까.’

이호승이 그렇게 생각하며 꽉 이를 물었다.

-이호승 선수! 끈질깁니다.

-잘 버티네요. 어떻게든 타석에서 버티며 박태오 선수의 투구수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습니다.

-좋은 플레이에요.

9구째.

박태오가 사인을 보냈다.

슬라이더로 끝내자고.

‘온다.’

이호승이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 슬라이더가 날아올 것이라고 예상을 한 이호승이 침착하게 마운드를 바라봤다.

바깥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박태오의 손에서 슬라이더가 빠져나가는 순간.

이호승은 그에 맞춰서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쳤습니다!

-꽤 큰 타구우우우우!

-우익수의 키를 넘어갔습니다!

-1루에 있던 김국도 달립니다! 2루로 향하는 동안 공을 담장을 맞고 그대로 필드에 떨어집니다!

-우익수가 공을 잡아서 중계!

-3루를 지나서 홈으로! 홈으로! 승부! 승부에요!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세이프으으으! 세이프!

-페가수스의 김주영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합니다. 아슬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장타를 때려낸 이호승이 2루에서 홈을 바라봤다.

흠에 들어온 김국도는 긴장 어린 표정으로 비디오 판독에 들어간 심파들을 바라봤다.

-어떨 것 같아? 아웃?

우효의 물음에 어깨를 잠바로 덮고 있던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니, 세이프.”

그리고 잠시 뒤에 강송구의 말처럼 주심은 그대로 김국도의 세이프를 인정했다.

드디어 득점이 터진 것이다.

-나왔습니다! 오늘 경기 첫 득점! 이호승 선수가 때려낸 큰 타구로 점수가 나왔습니다!

-슬라이더를 노리고 제대로 친 타격이었습니다. 대단하네요. 정말 환상적인 타격이었습니다.

이제 점수는 1 대 0이 되었다.

0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동시에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고작 1점이지만…….’

오늘 경기에서는 그 무엇보다 귀중한 득점이었다.

이윽고 범타로 물러나는 김효곤.

다시 바뀌는 공격과 수비.

박태오를 상대로 장타를 때려낸 이호승이 헤실헤실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글러브를 챙겨서 다시 필드에 나서려고 한 그 순간에 강송구가 그의 근처를 지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이스 배팅.”

그의 칭찬에 이호승이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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