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퍼펙트게임(3)
3회 초가 찾아왔다.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
그가 다시금 오른손을 꺼내 들었다.
“진짜 지랄 맞게 던지네.”
“와……. 다시 오른손이야? 저러고도 어떻게 벨런스를 맞출 수 있지? 나갔으면 투구폼이 흔들릴 거 같은데 말이야.”
“야! 봤냐? 초구에 나온 너클 커브?”
“와…… 저건 진짜 답이 없네.”
“어떻게 저런 공을 쉽게 던질 수 있지?”
페가수스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보며 속닥였다.
그리고 선수들 사이에 앉아 있는 남자.
박태오가 대답했다.
“재능이겠지.”
그러자 조용해지는 페가수스의 더그아웃.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건 박태오가 이상한 말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재능을 가진 자를 시기하는 마음.
동시에 그 재능을 가진 자를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승부욕과 독기로 주변의 분위기가 날카로워진 것이다.
“저 녀석이 가진 게 진짜 재능이라는 거겠지.”
박태오의 두 눈이 번뜩였다.
승부욕이 절로 피어올랐다.
자신과 다르게 저 괴물은 19살에 메이저리그로 바로 직행할 수준의 잠재력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도 약점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대표 1선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어도 진정한 재능을 눈에 담으면 욕심이 생긴다.
“오늘……. 나 컨디션이 좋다.”
박태오의 말에 선수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딱 1점만 만들어주라.”
“…….”
“나 오늘 저 녀석을 꼭 이기고 싶다.”
그래, 욕심.
진짜 재능을 꺾고 싶다는 범재의 욕심.
3회 초가 깔끔히 끝나자 박태오가 자신의 글러브를 들고서는 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고 다부진 표정으로 마운드로 향했다.
페가수스의 선수들은 그런 팀의 에이스를 잠깐 바라보더니 모두 비슷한 타이밍에 필드로 향했다.
“야수라고 했지? 야수 사냥 한번 제대로 해보자.”
팀의 베테랑인 임중민의 발언에 야수들의 표정이 아까와 크게 달라졌다.
허탈함과 약간의 포기가 떠오르던 선수들의 표정에서 작은 독기와 승부욕이 피어올랐다.
* * *
-3회 말이 끝납니다!
-굉장합니다! 오늘 박태오 선수의 커브가 진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3회 말에 3명의 타자를 모두 커브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삼진을 잡아낸 박태오 선수입니다!
-오늘 정말 컨디션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 벌써 영점을 잡았네.”
“이제 점수 만들기 쉽지 않겠다.”
“컨디션 좋은 날에는 커브가 2~3이닝은 계속 떠오르는 느낌이라 걷어 올리기 쉬운데……. 이제는 그것도 못 하겠네.”
“모르지. 아직 노릴만한 구석은 남아 있으니까.”
“패스트볼.”
“그래, 결국은 패스트볼이지.”
호크스의 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유일한 박태오의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패스트볼의 구위를 노리면 해볼 만했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박태오의 약점은 패스트볼의 구속과 구위는 메이저리그에서나 약점이지 한국에서는 약점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김효곤과 박진수 같은 타자들에게는 충분히 노려봄 직한 약점이었다.
거기다 호크스의 타자들도 며칠 동안 박태오의 패스트볼과 똑같은 조건의 피칭머신으로 타격 연습을 가져왔다.
-그런데 뭔가 저쪽도 숨겨둔 카드가 있는 것 같은데?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기도 비장의 카드가 하나 남아 있겠지.’
강송구가 A등급의 체인지업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박태오도 아직 숨겨둔 발톱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이미 세운 계획대로 움직일 뿐이다.’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고갤 끄덕였다.
-너다운 말이네.
4회 초.
타순이 한 바퀴 다 돈 시점.
1회 초에 강송구에게 무참히 삼진을 허용한 페가수스의 1번 타자인 이운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이번에 우타석에 들어섰다.
‘내가 왼손을 꺼낸 것을 보고 바로 우타석으로 가는군.’
하지만 이번 이닝에 이운호가 강송구의 공을 때려낼 확률은 극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왜냐하면, 이번 이닝에 강송구는 모든 스킬을 쏟아서 이번 상위타선을 압도할 생각이었으니까.
모든 스킬을 사용한 강송구의 초구는 몸쪽 높은 코스로 날아드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슈우우우욱! 펑!
“으헉!”
급히 뒤로 물러나는 이운호.
우타자의 몸쪽 높은 코스로 파고든 강송구의 포심 패스트볼에 그가 기겁하며 전광판을 바라봤다.
-159㎞/h
160대에 가까운 구속.
왜 하필 지금에서야 강송구의 왼손에서 이런 구속의 공이 튀어나온 것일까?
‘괜히 기세 꺾이게 말이야…….’
아직도 이운호의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건 담대한 심장을 가진 프로임에도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현상이었다.
그만큼 160㎞/h가 가져다주는 구속의 폭력은 타자들이 질색할 만큼 무서웠다.
슈우우욱! 펑!
“하……. 진짜 돌겠네.”
박태오의 말을 듣고 어떻게든 강송구를 무너뜨리겠다고 다짐했던 이운호의 생각이 다시금 무뎌지기 시작했다.
강송구가 지금 던지는 공은 한국에서 칠 선수가 거의 없는 공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구가 되는 강속구를 어떻게 때려내냐고…….’
강송구가 3구째 던진 공에 이운호가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급히 배트를 휘둘렀지만 역시나 결과는 삼진이었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4회 초의 첫 타자를 깔끔히 잡아낸 강송구.
이어지는 2번 타자와 승부에서도 그는 빠른 구속과 고속 슬라이더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부우우웅!
“아오!”
중간에 스플리터가 섞여 들어가자 타자는 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타격에 임해야 했다.
좌타자인 2번 타자 김강일이 운이 좋게 슬라이더를 때려냈으나, 그대로 유격수 앞 땅볼로 아웃을 허용했다.
-강송구 선수! 깔끔히 아웃을 잡아냅니다!
-오늘 호크스의 야수들도 집중력이 좋습니다.
-맞습니다!
조규환을 대신해서 오늘 경기에 출전한 이호승이 3루에서 침을 꼴깍 삼키며 자세를 잡았다.
‘절대 놓치지 말자.’
느낌이 왔다.
오늘 강송구는 페가수스의 타선을 상대로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대단한 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 언급하기에는 한참은 남았지만…….’
그래도 계속 집중해야 했다.
만약에 자신의 실수로 강송구가 실점을 하는 상황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로 최악의 상황일 테니까.
‘이제 조규환 선배와 어느 정도 비슷한 위치까지 왔다. 내년에는 어쩌면 내가 더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어.’
이호승은 더 젊고 잠재력이 풍부했고.
조규환은 슬슬 에이징 커브가 올 시기였다.
그렇기에 더 잘해야 했다.
슈우우욱! 따악!
타격음이 들리기 무섭게 이호승이 짐승처럼 몸을 움직여 자신에게 날아든 공을 가볍게 잡아냈다.
“왔다!”
코스는 쉬웠으나 강습타구라 잡기가 조금은 힘든 타구였는데 이호승은 정말로 깔끔히 공을 처리했다.
이호승의 탄탄한 수비는 적어도 삼유간에서는 호크스가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주역이었다.
‘거기다 김효곤 선배와 이진모 선배도 솔직히 수비할 수 있는 지역이 적은 것이 문제지 수비력은 좋은 선수들이었으니까.’
적어도 호크스의 내야진은 수비력에서만큼은 한국프로야구 구단 중에서 상위권에 속한다고 평가해도 좋았다.
이윽고 4회 초를 깔끔히 막고 마운드를 천천히 내려가는 강송구가 이호승을 엄지를 추켜세웠다.
“나이스 캐치.”
이호승이 그런 강송구에게 같이 엄지를 들며 씩 웃었다.
“나이스 피칭입니다. 강송구 선배님.”
* * *
4회 말.
박태오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2번부터 시작하는 호크스의 타선의 선두 타자는 앞선 이닝에서 호수비를 보여준 이호승이었다.
‘좋아……. 패스트볼의 타이밍을 노리자.’
지금 이호승이 노릴만한 구종을 패스트볼뿐.
그는 침착하게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는 바깥쪽에 걸치는 커브.
“스트라이크!”
과감한 초구 커브에 이호승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잠깐 타석 밖을 나갔다가 바로 들어섰다.
‘저 커브는 보고도 못 치는 공이다.’
저런 공은 한국에서 강송구만 던질 수 있다.
아니, 솔직히 강송구의 커브가 박태오의 커브보다 훨씬 상대하기 어려운 공이지만……. 솔직히 타격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이호승에게는 두 선수의 커브가 똑같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어지는 피칭.
이번에는 박태오의 슬라이더가 날아들었다.
이 슬라이더도 쉽지 않았다.
따악!
하지만 자신 있게 배트를 휘두른 이호승은 생각보다 슬라이더의 타이밍이 쉽게 잡히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하다.’
이호승의 생각보다 훨씬 눈에 잘 들어왔다.
그래서 고민이 찾아왔다.
계속 패스트볼을 노릴까? 아니면 노선을 바꿔서 슬라이더를 노리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일까?
하지만 박태오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강송구처럼 망설이는 타자를 요리하는 데는 한국 최고나 다름이 없는 선수였으니까.
빠르게 날아드는 공.
그 공이 패스트볼 궤적임을 파악한 이호승이 조금은 늦게 반응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패스트볼의 타이밍은 내 배트가 조금 늦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박태오 선배의 패스트볼은 피칭머신과 영상자료, VR연습으로 질리도록 파악했어!’
이윽고 들려오는 타격음. 하지만 이호승이 생각한 시원한 타격음이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틱!
빗맞은 공이 높게 떠올랐다.
당황하는 이호승.
공은 그대로 이루수 정면으로 굴러갔고, 가볍게 이루수가 공을 잡아서 1루로 공을 처리했다.
“아웃!”
더그아웃으로 천천히 들어오던 이호승이 중얼거렸다.
“저게 투심 패스트볼이라고?”
싱커보다는 덜 가라앉지만, 횡적인 무브먼트가 굉장한 수준으로 꺾이는 공.
박태오의 투심 패스트볼은 심상치 않은 구종이었다.
그리고 그걸 본 강송구는 그제야 깨달았다.
‘박태오 선배가 준비한 무기가 투심 패스트볼이었군. 저번에 봤던 투심 패스트볼과는 전혀 다른 공이 됐어.’
자신이 체인지업을 준비한 것처럼 박태오 선배가 준비한 것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한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호크스의 김동식 감독도 턱을 쓸며 감탄했고, 더그아웃에 있던 호크스의 타자들도 눈을 찌푸렸다.
그만큼 박태오가 던진 투심 패스트볼은 단 1구만으로도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공이었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스카우트 팀장인 스티븐 홍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번 겨울에 거액을 주고 미국에서 그렉 매덕스에게 며칠을 배웠던 게 바로 저 투심 패스트볼이었나?”
국내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박태오가 준비한 깜짝 카드는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주변을 살피니 다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빛이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데려갈 만한 투수가 강송구를 제외하면 한 명 더 등장했다고 판단했겠지.’
물론, 박태오는 훌륭한 투수였다.
하지만 패스트볼의 구속과 구위가 약한 것이 문제였다. 그가 몇몇 악성 야구팬들에게 ‘국내용’이라는 말을 들었던가?
바로 그의 구위가 발목을 잡아서였다.
‘하지만 저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한 박태오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강송구와 비슷하게 솔리드한 3선발급으로 제법 돈을 투자해서 데려올 만한 가치가 있는 투수였다.
이윽고 깔끔히 4회 말의 피칭을 끝낸 박태오.
그가 승부욕이 가득한 눈을 하고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 말이다.
동시에 강송구가 움직였다.
박태오의 호투에 이번에는 그가 답가를 보낼 차례.
“나도 슬슬 보여줘야지.”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올랐다.
이제 A등급의 체인지업을 꺼낼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