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59화 (59/198)

#59. 코리안 비스트(1)

“강송구가 저런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었던가?”

“모르겠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좋은 게 아닐까요?”

“그러기엔 각도가 너무 좋은데?”

데빌스의 이중일 감독이 눈을 찌푸렸다.

전력분석관이 조사한 자료와 정보가 다른 투수가 지금 마운드에 올라와 있다.

이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구속도 더 빨라진 것 같군.”

“경기 초반부터 140대 초반의 구속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입스를 극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구속이 오르는 투수라……. 부상 전에 160㎞/h를 가뿐히 던지던 코리안 비스트가 가진 포텐셜을 생각하면 조만간 지금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질 수도 있겠군.”

“올해 초에 강송구 선수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정말 아쉽게 느껴집니다.”

“어쩌겠어. 프런트에서는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아예 접촉조차 하지 않았는데.”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1회 말의 마지막 타자까지 삼진으로 잡으며 3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중일 감독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컨디션이 저렇게 좋은 강송구를 상대로 투구수를 많이 소모할 수 있을까? 저런 슬라이더에 구속도 늘어난 강송구를 상대로 말이야.”

“일단은 이대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제 고작 1회 말이 지났습니다.”

“그래, 이제 고작 1회 말이 끝났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난 강송구가 오늘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음…….”

“느낌이 좋지 않아.”

이중일 감독이 들고 있는 자료집을 의자 옆에 놓은 테이블에 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사뮤엘이 무너진다면…….”

아마 오늘 경기에서 데빌스가 이기는 일은 거의 0%에 가까워질 수도 있었다.

* * *

우리는 야구를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아! 너무 투구수 낭비가 심합니다. 이럴 때는 효율적으로 맞춰 잡는 피칭을 해서 투구수를 줄여야 하거든요?

중계진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를 보면서 내뱉는 ‘맞춰 잡는 피칭으로 투구수를 줄여야 한다.’라는 말.

그 말 때문에 일반적인 야구팬들은 맞춰 잡는 피칭보다 삼진을 잡는 피칭이 더 투구수의 낭비가 심하다고 알고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론에 어울리는 피칭을 한 투수는 메이저리그에 몇 존재하지 않았다.

그렉 매덕스가 가장 대표적인 투수일 것이다.

강력한 구위의 투심으로 존을 공격적으로 공략해서 아웃 카운트를 인플레이로 잡는 비율이 높은 투수.

놀란 라이언과 톰 글래빈은 BABIP을 컨트롤 할 수 있었던 투수로 평가를 받는데, 이런 전설들도 맞춰 잡는 피칭으로 유명한 투수들이었다.

현대까지 이르면 이런 맞춰 잡는 유형의 투수로는 카일 헨드릭스가 있다.

하지만 맞춰 잡던 삼진을 잡던 소모되는 투구수는 의외로 제법 비슷했다.

오히려 투구수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존에 공을 잘 넣고 볼넷을 줄일 수 있는가?’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경기에서 강송구는 굳이 유인구를 던지지 않고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고 있었다.

가끔 필요하면 공격적으로 변형 패스트볼인 커터와 싱커를 스트라이크존에 꽂아 넣으면서 카운트를 잡아냈고.

덕분에 3회 말까지 잡은 삼진만 7개였다.

-강송구 선수! 오늘 정말 날을 잡은 것 같습니다. 3회 말이 끝난 지금까지 잡은 삼진만 7개! 안타 하나를 내준 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건 저 슬라이더의 각과 꺾이는 타이밍이에요. 보세요. 홈플레이트 근처에 적당히 왔을 때……. 저렇게 꺾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도 크게 꺾이죠. 저러면 타자가 쉽게 칠 수 없습니다. 특히 우타자들에게는 지옥이에요.

-말씀드리는 순간 마운드에 사뮤엘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오늘 사뮤엘 선수도 정말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 있죠?

-1회 초에 안타 하나를 내준 것을 제외하면……. 강송구 선수처럼 정말 깔끔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커브가 아직은 잘 먹히고 있습니다.

4회 초.

선두타자는 호크스의 2번 타자인 조규환이었다.

이를 꽉 물고 타석에 등장한 그가 마운드에 있는 사뮤엘 힉맨을 노려봤다.

1회 초의 타석처럼 허무하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기세를 탄 사뮤엘의 피칭을 공략하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저 2미터의 큰 키에서 내려찍는 것 같은 패스트볼과 더 큰 낙차를 보이는 커브의 조합은 정말 무서울 정도네요.

-말씀드리는 순간 조규환 선수가 쳤습니다! 하지만 내야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타구!

-그대로 유격수가 잡아서 1루로!

-아웃! 사뮤엘 힉맨 선수가 범타를 유도하며 4회 초의 선두타자인 조규환 선을 잡아냈습니다.

이어지는 승부.

앞선 타석에서 안타를 만들었던 김효곤이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사뮤엘 힉맨은 아까보다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타석에 있는 김효곤을 잠깐 바라봤다.

-안타 또 나올까?

‘김효곤 선배가 사뮤엘을 상대로 상성이 좋아. 내가 봤을 때 김효곤 선배가 큰 타구를 하나 만들 거야.’

-홈런?

‘그건 모르지. 또 2루타일 수도 있고.’

그때 큰 타구음이 들렸다.

따악!

-왔다!

우효는 홈런을 예상한 것처럼 펄쩍 뛰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타구음이 정말 컸다.

강송구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고도 못 친다는 사뮤엘의 커브가 김효곤 선배에게는 너무 쉽게 공략당한단 말이야.’

자신도 그런 천적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까?

강송구가 그런 부분을 조금은 곰곰이 생각했다.

반대로 우효는 반짝이는 눈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으하하하! 넘어갔다! 이거지! 좋았어! 역시! 우리 김효곤 형님이야! 떡상 가즈아아아!

그대로 담장을 넘어간 공.

김효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부상에서 복귀하고 나서 최근 장타력이 상당했다.

덕분에 후반기에 들어서 호크스에서 가장 많은 타점을 생산하고 있는 타자 중 한 명이었다.

“와! 장난 아니네!”

“역시 김효곤 선배님입니다.”

“야! 오늘 내가 쏜다! 끝나고 가볍게 회식하러 가자. 아! 물론 이번 회식에 술은 없다.”

“좋죠!”

김효곤이 다른 선수들과 홈런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제 그의 곁에는 베테랑뿐만이 아니라 젊은 선수들도 같이 모여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이어지는 4번 타자 이진모의 타석.

홈런으로 흔들리는 사뮤엘을 상대로 9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아쉽게 삼진을 허용했다.

-아쉽네. 점수를 더 만들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야. 고작 1점은 너무 아쉬운데…….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이 정도 득점 지원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오늘 경기에서 데빌스의 타선을 상대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것보다 4회에 왼손을 꺼내야겠어.”

-그렇게 빨리?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원래 충격요법은 빠를수록 효과적인 법이라고.”

-그 아버지 시리즈는 그냥 딱히 할 말 없을 때 아무 말이나 지어내서 내뱉는 말이지?

우효의 의심 가득한 눈빛.

하지만 강송구는 그런 우효의 말을 무시하고 덤덤히 좌완용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 * *

터벅터벅.

강송구가 마운드로 향했다.

4회 초에 나온 홈런으로 1 대 0으로 지고 있는 서울 데빌스의 타자들이 그런 강송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괴물을 상대로 1점을 빼앗기도 쉽지 않겠지?”

“평균 자책점이 0.3이야. 9이닝 던져서 1실점도 거의 하지 않는 투수라는 뜻이지.”

“미치겠네. 갑자기 그 슬라이더는 뭐야?”

“4회 말에도 그 슬라이더를 던지겠지?”

“다른 구종도 너무 잘 던져. 그나마 부족한 구종이라면 체인지업이 있기는 하지만…….”

“수준급의 커터, 싱커, 커브, 너클 커브, 스플리터, 슬라이더를 가진 투수가 그저 그런 체인지업을 함부로 던질까?”

“나 같아도 체인지업을 빼고 다른 구종만 신나게 던질 것 같은데? 굳이 체인지업을 던질 필요가 없잖아.”

그러는 사이에 강송구가 손을 들어 올려 로진백을 만졌다. 그제야 서울 데빌스의 타자들이 이상함을 느꼈다.

“어?”

“뭐야? 왜 왼손에 로진백이……?”

“저거 좌완용 글러브잖아.”

“저게 뭐야?”

당황한 데빌스의 선수들.

주심도 당황해서 포수인 박진수에게 물었다.

“혹시 글러브를 잘못 들고 온 거 아닌가?”

“아닙니다. 왼손으로 던진답니다.”

그 말을 듣고 4회 말의 첫 타자인 데빌스의 2번 타자 신용택이 이를 꽉 물고 강송구를 노려봤다.

‘누구를 호구로 보고!’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한 번도 마운드에서 던져본 적이 없는 왼손으로 마운드에 올랐단 말인가?

괘씸했다.

동시에 그런 마음 한구석에 작은 의심도 들었다.

그 대단한 투수가 갑자기 왼손을 꺼냈다?

혹시……. 뭔가 준비한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다양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어…… 강송구 선수 좌완용 글러브를 들었습니다.

-이건…… 또 뭔가요? 실수일까요? 그러기에는 강송구 선수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왼손에 송진을 바르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왼손이라니…….

중계진도 당황했다.

당연히 오늘 경기를 보러온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스카우트 팀장인 스티븐 홍도 당혹 어린 시선으로 강송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왼손을 준비했다는 건가?”

하지만 스티븐은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송구는 아마 어느 정도의 완성도가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왼손을 꺼내 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완성도였다.

“140대 근처의 구속에 오른손과 비슷한 수준의 변화구를 몇 개만 던질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카드지.”

하지만 주력이 될 수는 없었다.

메이저리그에 스위치 투수가 거의 없는 이유를 스티븐 홍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흥미롭게 지켜는 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조금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강송구는 그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딱 30구지만 내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완벽히 보여줄 수 있겠군. 왼손으로 던지는 거지만 말이야.’

‘좌완 파이어볼러’의 영향으로 왼손으로 30구.

그것도 오른손으로 던지는 것보다 5㎞/h나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지금 강송구가 왼손으로 던질 수 있는 최고 구속은 151㎞/h가 된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The end of a Innings’을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에 1이닝 동안 구속을 10㎞/h나 증가시켜주는 스킬까지 적용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드디어 내 전성기 시절의 구속을 되찾았다. 비록 1이닝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161㎞/h를 던지는 좌완 파이어볼러의 등장이었다.

드디어 코리안 비스트가 완벽히 돌아왔다.

우효도 그런 강송구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모두가 마운드의 강송구를 바라봤다.

4회 말이 시작되기 전에 급히 미트 안에 포수 장갑을 하나 더 착용한 박진수가 침을 삼켰다.

방금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가 말해줬다.

이번 이닝에 코리안 비스트라 불리던 시절의 구속으로 공을 던질 것이라고 말이다.

‘저 로봇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긴장됐다.

솔직히 160㎞/h에 가까운 공을 처음 받아보는 박진수였기에 사인도 한가운데밖에 낼 수 없었다.

아니면 공을 다 놓쳐 버릴 것 같았다.

미트를 내밀기 무섭게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강송구.

그의 왼손에서 드디어 야수의 이빨이 빠져나왔다.

슈우우욱! 뻐엉!

그리고 강송구의 초구를 보는 순간.

주심은 물론이고 타석의 타자도 굳었다.

“스…… 스트라이크!”

조금은 늦은 콜.

하지만 누구도 주심에게 신경 쓸 수 없었다.

경기장을 찾은 모두가 전광판을 봤으니까.

[161㎞/h.]

멍하니 전광판을 보는 타자 신용택.

급히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는 중계진.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떨어뜨리는 데빌스의 이중일 감독과 갑자기 바삐 움직이는 데빌스의 타격코치.

웅성거리는 데빌스의 홈팬들과 큰 환호성을 내지르며 좋아하는 호크스의 홈팬들, 마지막으로 슬쩍 미트를 벗고 얼얼한 손을 만지며 얼굴을 찡그린 박진수까지.

모두가 강송구의 구속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강송구의 160대의 포심 패스트볼을 지켜봤던 스티븐 홍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코리안 비스트가 돌아왔어.”

대한민국 최고의 재능을 가진 유망주이자, 코리안 비스트라고 불렸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기대되는 파이어볼러가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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