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58화 (58/198)

#58. 아 꼬우면 너도 슬라이더 던지라고!(2)

슬라이더.

횡적으로 움직이는 구종.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변화구로서 피치 밸류가 2007년 이후로 단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구종.

스플리터가 처음 등장하고 몇 년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는 했지만, 그 유행이 지나고 다시금 슬라이더가 그 자리를 되찾으며 1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컷 패스트볼도 슬라이더의 아성을 위협했지.

하지만 슬라이더는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만큼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삼진을 잡아내고, 가장 많은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구종이라는 뜻이었다.

투수가 자신과 같은 손 타자를 상대할 때 그 어떤 무기보다 상대하기 좋은 최고의 무기이기도 했다.

슈우우욱! 펑!

“나이스 볼!”

그 공이 강송구의 왼손에서 나왔다.

공을 받아주는 불펜 포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강송구를 보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왼손으로 저런 공을 던질 수 있는 거지?”

같이 강송구의 피칭을 살피던 김동식 감독의 말에 옆에서 구경하던 박진수도 동의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모르죠. 원래 왼손잡이가 아니었을까요?”

“음…….”

“아무튼……. 슬라이더는 죽여주네요.”

“그것도 왼손과 오른손 모두.”

“그렇죠.”

“내일 경기에서 왼손을 꺼낼 생각이라고 하던가?”

“네, 자신 있게 말하던데요?”

“그래?”

김동식 감독이 조용히 강송구를 바라봤다.

슈우우욱! 펑!

강송구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패스트볼이 그대로 포수가 내민 미트에 정확히 파고들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아.”

사실,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좌완 파이어볼러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송구가 던지는 공의 빠르기와 구위가 상당했다.

“구속이 더 빨라졌어.”

“신기할 정도죠.”

“그래, 여기서 더 기분 좋은 소식은 원래 이것보다 더 빠른 공을 던졌던 녀석이라는 거야.”

“내일이 기대되네요.”

“음…….”

“서울 데빌스의 친구들이 고생을 좀 하겠어요.”

“그럴지도 모르겠어.”

김동식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서울 잠실 경기장.

리모델링을 하면서 경기장의 낡은 부분을 많이 개선했음에도 역시 세월의 흔적을 완벽히는 지우지 못했다.

덕분에 낡았으면서도 조금은 세련된 느낌이 드는 것이 지금의 잠실 경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잠실 경기장이 꽉 들어찼다.

-역시 주말이라서 그런가? 사람이 많네.

찹찹찹.

신나게 포도를 먹던 우효가 가득 들어찬 관중들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강송구를 바라봤다.

-그래서 그 랜디 존슨과 존 스몰츠는 무슨 뜻이야? 솔직히 아직 강속구 투수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하잖아.

“그렇기는 하지.”

당연했다.

아직 강송구의 구속은 리그 평균 수준이니까.

“하지만 제구력과 뛰어난 구위가 나한테 있지. 마지막으로 슬라이더가 A등급이 되었다는 부분이 가장 크고.”

-슬라이더가 왜?

“오늘 경기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삼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난 두 전설이 가진 주무기를 고루 던질 수 있는 능력 있는 투수고.”

-오늘따라 왜 그렇게 자화자찬이야?

평소에는 덤덤히 자기 할 말만 하던 강송구가 아니었다. 뭔가 오늘은 평소보다 말도 많고 얼굴도 환해 보였다.

남들이 본다면 딱히 큰 차이는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제법 오래 강송구를 본 우효에게는 그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모르지.”

조금은 들뜬 걸지도 몰랐다.

과거의 자신이 가진 재능을 시스템 덕분에 제법 많이 되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정 없이 반응하기란 힘든 법이니까.

우효가 그런 강송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길 자신은 있고?

“그건 당연한 거야.”

조금은 오만할 수 있는 말.

하지만 우효는 지금까지 강송구가 보여준 능력을 알기에 조용히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시간이 다 되었다.

국민의례를 하는 두 팀의 선수들.

이윽고 국민의례가 끝나고 젊은 여성이 마운드로 올라가 시구를 하기 시작했다.

-또 아이돌인가 봐.

인기는 모르겠다. 강송구는 딱히 음악이나 방송을 즐기거나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효는 달랐다.

-초!록!유!리! 매!실!걸!

“이름이 매실걸이야?”

-매실 음료 광고로 뜬 아이돌이거든.“

“그렇군.”

그렇게 둘이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시구가 끝나고 누군가 마운드에 올랐다.

사뮤엘 힉맨.

그가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나타났다.

서울 데빌스의 1선발.

140대 후반의 포심 패스트볼이 2미터를 조금 넘는 키를 가진 그의 팔에서 뿜어져 나오면 타자가 헛스윙하면서 허무하게 삼진을 허용하거나 범타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런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을 도와주는 공이 바로 폭포수처럼 꺾이는 커브였다.

마지막으로 이 두 구종들 사이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까지 던지는 좌완 정통파 투수.

서울 데빌스의 1선발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 능력에 어울리는 성적을 거두고 있는 선수였다.

-거인 대결이네!

우효는 강송구와 샤뮤엘 힉맨의 큰 덩치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

확실히 투수의 구위가 제법 좋았다.

슈우우욱! 펑!

호크스의 1번 타자인 김국도가 높은 위치에서 낮은 코스로 꽂아 들어가는 사뮤엘의 포심 패스트볼을 쉽게 공략하지 못하고 스트라이크를 헌납하기 시작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마무리는 뚝 떨어지는 커브였다.

김국도가 삼진을 허용하는 것을 보고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호크스의 타자들이 고갤 절레 흔들었다.

“커브의 각이 장난이 아니네.”

“저런 커브는 알고도 못 치는 거야.”

“저 큰 키에서 내리꽂는 패스트볼이 정말 위력적이네. 거기다 커브에 체인지업이라니…….”

이어지는 2번 타자 조규환이 타석에 들어섰다.

최근 이호승에게 조금씩 자리를 빼앗기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조규환은 이번 경기에서 자신의 포지션 경쟁자인 이호승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은 한물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걸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다.

‘절대 쉽게 물러날 수 없지.’

그리고 그런 조규환의 의욕은 타격 자세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마운드에 있는 사뮤엘은 그런 조규환을 잠깐 지긋이 바라보더니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고 공을 던졌다.

빠악!

“파울!”

몸쪽 낮은 코스로 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을 때려낸 조규환이 두 눈을 찌푸렸다.

원하는 코스에 왔는데 공의 구위에 밀린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뮤엘은 조규환이 큰 것을 하나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심리를 이용해서 빠르게 카운트를 쌓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커브.

날카로운 커브에 조규환이 알고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마무리는 체인지업.

따악!

내야 땅볼이 나왔다.

-사뮤엘 선수가 깔끔히 1회 초의 두 타자에게 아웃을 잡아냅니다. 좋은 체인지업이었죠?

-네, 패스트볼을 기다리는 조규환 선수에게 체인지업을 던지며 범타를 유도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순식간에 두 명의 타자가 아웃을 헌납했다.

다음 타석은 김효곤.

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전적으로는 김효곤이 사뮤엘을 상대로 제법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상황.

그리고 예전 기록처럼 이번 타석에서 김효곤은 멋진 2루타를 만들며 오늘 경기 호크스의 첫 안타를 만들었다.

“나이스!”

“김효곤 선배! 나이스입니다!”

“좋아! 천천히 하나씩 만들어보자.”

이어서 4번 타자 이진모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붕붕 배트를 휘두르며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마운드에 있는 사무엘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이진모를 상대로 사무엘은 패스트볼을 던진 뒤에 연이어 던진 세 번의 커브로 삼진을 잡아냈다.

와아아아아!

환호성으로 울리는 잠실 야구장의 관중석.

그와 동시에 강송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벅처벅.

천천히 마운드로 향하는 강송구.

최근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잠실을 찾아온 호크스의 원정팬들이 제법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마운드에 오르는 호크스의 토종 에이스이자 오랜만에 보는 확실한 1선발 투수.

강송구를 보며 호크스의 원정팬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격한 환영을 해주었다.

-강송구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번 시즌에 호크스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투수죠? 크게 다치고 사라졌던 그가 다시 마운드로 돌아와 예전 코리안 비스트 시절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예요. 존경스럽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1회 말의 첫 타석에 서울 데빌스의 1번 타자인 민진규가 들어섭니다.

타석에 들어서는 민진규.

그를 보면서 강송구가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오늘 강송구와 호흡을 맞추는 박진수가 차분히 사인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인 교환을 끝낸 두 사람.

강송구가 천천히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초구는 좌타자의 바깥쪽 코스.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포심 패스트볼이 빠져나갔다.

142㎞/h의 포심 패스트볼이 강송구가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파고들었다.

바깥쪽에서는 톰 글래빈이 부럽지 않은 제구력을 보여줬기에 카운트를 쌓기에 바깥쪽만큼 좋은 코스가 없었다.

슈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를 본 민진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컨디션이 좋은 건가? 오늘따라 공이 더 빠른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어지는 승부.

강송구는 이번에 좌타자 몸쪽에 바짝 붙는 컷 패스트볼을 던지며 간을 보기 시작했다.

“볼!”

위협구에 가깝게 몸쪽으로 붙는 공.

민진규가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제스처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시금 타격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다시 바깥쪽 공.’

좌우로 민진규를 흔들기 시작하는 강송구.

3구째로 던진 커브가 민진규의 헛스윙을 유도하면서 순식간에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어냈다.

오래 공을 지켜보려던 민진규는 생각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피칭하는 강송구의 모습에 슬쩍 데빌스의 더그아웃을 보며 이대로 지켜볼지 사인으로 물었다.

‘아마도 지켜보라고 하겠지.’

강송구는 서울 데빌스의 이중일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오늘 경기를 지켜보라 지시했는지 이해했다.

‘최대한 내 투구수를 소모하고 싶겠지.’

호크스가 1, 2차전에 제법 불펜을 많이 소모했다. 여기서 강송구가 일찍 마운드를 내려가면 체력을 많이 소모한 불펜이 마운드를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는 몰랐다.

-이닝을 많이 잡아야 할 경기라는 뜻이군.

‘투수는 항상 완봉을 생각하고 마운드에 오르지.’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도 충분히 완봉할 자신이 강송구에게는 있었다.

슥 사인을 보내는 박진수.

강송구는 그 사인에 맞춰서 공을 던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좌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바깥쪽 싱커.

첫 타자를 기분 좋게 잡은 강송구의 다음 상대는 서울 데빌스의 2번 타자인 신용택이었다.

선구안이 좋아서 볼넷을 잘 걸러내는 타자이자 이번 시즌에 서울 데빌스에서 출루율이 가장 높은 타자였기에 강송구는 이번 승부는 단숨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힘겹게 승부에 들어가서 볼넷을 거저 줄 수는 없지. 차라리 안타를 맞더라도 공격적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

그리고 슬라이더를 꺼내도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일찍 꺼내도 재미를 보기에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초구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공격적인 강송구의 피칭에 신용택이 뭔가를 고민하더니 다시금 타격 자세를 잡고 타석에 들어섰다.

‘타격 능력도 좋은 타자라 내 공을 커트하면서 어떻게든 투구수를 늘리고 싶은 것 같군.’

-그래서?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밀거나, 최대한 지켜보는 타자들을 상대로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아야지.’

사인을 내니 박진수가 고갤 끄덕이고 미트를 움직였다.

우타자의 바깥으로 빠지는 슬라이더가 드디어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튀어나왔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C등급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슬라이더.

꺾이는 각과 타이밍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A등급의 슬라이더를 본 신용택이 놀란 표정으로 잠깐 박진수의 미트를 바라봤다.

‘우연인가?’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실투에서 마구가 튀어나오고는 하니까.

하지만 신용택의 생각과 달리 강송구의 손에서는 다시금 아까 봤던 슬라이더가 그대로 튀어나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허무하게 삼진을 허용한 신용택.

그가 삼진을 허용하는 순간 깨달았다.

‘저 슬라이더는 우연이 아니다.’

강송구가 던진 저 슬라이더.

자신이 영상자료에서 봤던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던 슬라이더가 아니었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마운드의 강송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슬라이더를 어떻게 공략해?”

그 말을 들었는지 포수 마스크를 정리하던 박진수가 씩 웃으며 신용택을 골려주었다.

“아! 꼬우면 너희 투수도 이런 슬라이더를 던지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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