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55화 (55/198)

#55. 바깥양반! 제발 안으로 공 좀 던져!(3)

1회 말이 끝나고.

부산 티탄즈의 타자들은 오늘 강송구를 상대로 준비한 모든 준비가 엉망이 됨을 느꼈다.

그리고 주심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하지만 주심도 어쩔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야구에서도 간단한 VAR 판독심이 따로 생기는 추세였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주심의 재량껏 스트라이크 존을 잡는 편이었다.

VAR 판독심이 주심의 인이어 이어폰으로 ‘조금씩 존이 넓어지는 것 같다. 조금 주의해라.’라는 말을 하며 주의를 시켰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심이 존을 설정하려고 노력했지만…….

크게 소용이 없었다.

그건 강송구가 전반기에 보여준 제구력의 신뢰도와 오늘 경기 1회 말에 보여준 6구 덕분이었다.

강송구하면 ‘제구력이 좋은 팔색조 투수’가 절로 떠오르게 되면서 강송구가 바깥쪽에 조금 벗어난 공을 던져도 ‘강송구라면 아슬하게 걸치는 코스에 던졌겠지.’라는 믿음 때문에 주심이 조금은 후하게 판정을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바깥쪽으로 후한 판정이 2회 초에 마운드에 오른 황규찬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이 되었기에 우선은 부산 티탄즈의 더그아웃은 지켜볼 생각인 것 같았다.

2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렸다.

타석에는 부산 티탄즈의 4번 타자.

강두일이 좌타석에 들어섰다.

뛰어난 장타력을 자랑하는 거포.

큰 기복만 아니라면 충분히 홈런왕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타격 능력과 파워가 있는 타자였다.

초구는 좌타자 바깥쪽으로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

“볼!”

주심이 볼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강송구는 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천천히 시간을 보낸 강송구가 차분히 2구째를 던지며 강두일의 간을 보기 시작했다.

“볼!”

이번에도 볼.

‘하! 염병하는군!’

강두일이 두 눈을 찌푸렸다.

아까보다 조금 더 들어오는 코스로 정확히 제구된 공.

‘원래 이 정도로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아니었는데…….’

분명히 제구력이 좋지만, 이렇게 엄청난 제구력을 보여주는 투수는 아니었다.

다시 날아드는 공.

이번에는 몸쪽으로 오겠지.

그렇게 생각한 강두일에게 강송구는 얄밉게도 다시 바깥쪽 코스로 공을 던지며 그를 약 올렸다.

“스트라이크!”

그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

그것도 잘 때려낼 수 있는 바깥쪽 코스로 공이 제대로 들어왔음에도 배트를 내밀지 못했다.

다시금 이어지는 4구째.

강송구는 계속 바깥쪽을 노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

빠지는 공이었음에도 성급히 배트를 내민 강두일이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강송구는 바깥쪽 체인지업을 꺼내 들었다.

그것도 제법 타자와 먼 거리의 코스로.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딱히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았음에도 타자가 알아서 무너지고 말았다.

강두일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강송구는 아직도 몸쪽 공을 하나도 던지지 않고 있었다.

* * *

“귀신에 홀린 기분이군.”

“집요해……. 진짜 집요해.”

“어떻게 3회 말까지 다 바깥쪽이야! 투구수가 57개까지 늘어나도 몸쪽으로 던질 생각을 하지 않네?”

“또라X 같은 새끼.”

3회 말에 안타 하나와 볼넷 두 개를 허용했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너무나 손쉽게 이닝을 끝내자 부산 티탄즈의 더그아웃에 그야말로 침통에 빠졌다.

압도적인 공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충분히 칠 수 있는 공을 상대하고 있다.

그런데 점수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부산 티탄즈의 조창혁 감독이 눈을 찌푸렸다.

‘정말 톰 글래빈처럼 공을 던지는군.’

오늘이 무슨 날일까?

톰 글래빈이 보여주던 제구력을 강송구가 지금 마운드에서 보여주며 부산 티탄즈의 타자들을 물 먹이고 있었다.

‘칠 수 있는 수준의 공만 던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을 완급조절하며 타자들의 타격감을 헝클어트려 놨다.’

과거와 다르게 카메라나 VAR 같은 시스템이 생기며 주심의 존이 쉽게 넓어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톰 글래빈도 메츠 이적 이후 투구추적장비인 퀘스텍으로 심판의 고과를 측정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자 4점대 평균자책까지 오르며 1년 정도 고생을 했지.’

하지만 강송구는 달랐다.

매 이닝 계속해서 주심과 대화를 한다.

존이 다시 좁아졌다?

그래, 그러면 다시 천천히 넓혀보자.

그런 방식으로 주심의 눈을 피로하게 했고, 지금 4회 말에 와서는 완전히 주심의 눈을 속이고 있었다.

‘문제는 구위가 약한 것도 아니다.’

톰 글래빈처럼 구속이나 구위가 부족하면 그런 부분을 잘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강송구는 구속은 모르겠지만, 구위만큼은 예전과 다르게 굉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유니콘즈의 타선을 상대로 등판한 경기에서 보여줬지. 적어도 힘으로 찍어누를 수 없는 투수라는 사실을 말이지.’

티탄즈의 조창혁 감독이 눈을 감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바깥쪽에서 많이 벗어난 공임에도 타자는 어쩔 수 없이 배트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배트를 내밀지 않으면 루킹 삼진이었다.

-강송구 선수! 오늘 정말 집요할 정도로 바깥쪽 코스로 공을 던지며 부산 티탄즈의 타선을 흔듭니다.

-아……. 놀랍네요. 오늘 강송구 선수가 선동열 전 감독의 49.1 연속 무실점 이닝의 대기록을 깨려고 나온 것 같아요. 정말 단단히 준비하고 나온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부산 티탄즈의 5번 타자! 짐 카터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앞서 강송구 선수와 첫 승부에서는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던 짐 카터 선수입니다.

짐 카터.

부산 티탄즈의 용병 타자.

뛰어난 수비력과 장타력을 갖췄지만, 선구안이 그리 좋지 않아서 삼진을 당하는 개수가 제법 많은 타자였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한 번씩 터트려주는 홈런을 기대해 볼 만한 타자였다.

쌔리라! 쌔리라! 카터! 쌔리라!

쌔리라! 쌔리라! 카터! 쌔리라!

사직 구장을 찾은 홈팬들의 간절한 응원.

짐 카터가 배트를 꽉 쥐며 강송구를 노려봤다.

-슬슬 몸쪽 공도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어?

‘슬슬 눈에 익을 시간이기는 하지.’

바깥쪽만 던지던 톰 글래빈도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가까운 2005년에 몸쪽 공을 섞어보라는 릭 패터슨 코치의 조언에 따라 볼넷 비율을 줄이는 데 성공하며 다시금 반등했었다.

강송구도 오늘 경기에서 계속 바깥쪽만 던질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순간에 몸쪽으로 틀어박히는 컷 패스트볼이나 싱커를 던지며 상대 타자의 기세를 꺾을 생각이었다.

우효의 말처럼 슬슬 자신의 바깥쪽 공을 때리며 타이밍을 맞춰나가기 시작하는 티탄즈의 타자들.

‘좋아. 이번 타석부터 조금씩 몸쪽 공을 섞어야겠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차분히 카운트를 쌓는 강송구.

연이어 날아드는 바깥쪽 공을 조용히 지켜보던 짐 카터가 아까보다 조금 배트를 길게 잡았다.

그걸 확인한 강송구가 사인을 보냈다.

‘우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싱커.’

박진수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씩 웃었다.

‘잔인한 새끼.’

짐 카터는 모를 것이다.

갑자기 몸쪽으로 싱커가 날아들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와인드업에 들어간 강송구.

그가 있는 힘껏 싱커를 몸쪽에 꽂아 넣었다.

슈우우욱! 펑!

“스크라이크 아웃!”

루킹 삼진.

짐 카터가 몸쪽 싱커에 몸이 그대로 굳으며 허무하게 루킹 삼진을 허용하고 말았다.

오늘 처음으로 던진 몸쪽 공.

부산 티탄즈의 더그아웃은 다시 떠들썩해졌다.

“다시 몸쪽으로 공을 던진다고?”

“우릴 가지고 노는 거야 뭐야?”

“장우야! 그냥 쌔리삐라!”

4회 말의 마지막 타자는 지명 타자인 김장우.

그가 굳은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제부터 다시 몸쪽으로 던지려나? 아니면 바깥쪽을 다시 집요하게 던질 생각일까?’

생각이 복잡했다.

그리고 생각이 복잡한 타자를 상대로 강송구는 인터벌을 빠르게 가져가며 카운트를 쌓았다.

“파울!”

연이은 승부에 바깥쪽 공에 익숙해진 김장우가 연이어 공을 커트하기 시작하자 강송구가 바로 사인을 보냈다.

이번에는 몸쪽으로 뚝 떨어지는 커브.

패스트볼만 생각하던 타자에게 강송구가 던진 커브는 스파게티 속에서 튀어나온 단무지처럼 어색한 공이었다.

당연히 배트는 허공을 헛돌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4회 말을 깔끔히 끝낸 강송구.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그때 오늘 경기 3루 수비를 보고 있는 이호승이 강송구에게 다가와 엄지를 척 내밀었다.

“강송구 선배님. 나이스 피칭이었습니다.”

“그래.”

천천히 고개를 돌려 호크스의 더그아웃을 살피니 선수들의 얼굴에 강한 승부욕이 드러나고 있었다.

‘5월에는 볼 수 없던 얼굴이군.’

그때는 타성에 젖은 선수들의 얼굴만 가득했는데, 이제는 진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같은 방향을 보는 진정한 팀원이 된 것 같아서 강송구가 만족스럽게 고갤 끄덕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강송구를 더욱 만족스럽게 만든 상황이 만들어졌다.

따아악!

-쳤습니다!

-이호스으으응! 올해 호크스의 내야진의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주고 있는 젊은 내야수가 드디어 한 건을 만들었습니다!

-수비가 굉장히 좋은 친구인데……. 이제는 타격까지 점점 물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5회 초.

마운드에 오른 황규찬을 상대로 이호승이 때려낸 투런 홈런이 터진 것이다.

시원한 배트 플립과 함께 빠르게 베이스를 돈 이호승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나이스!”

“이호승 나이스 홈런!”

“요즘 호승이가 물이 올랐네!”

투런을 때린 이호승.

그를 보며 이번에는 강송구가 따봉을 돌려주었다.

-진짜……. 이제야 팀처럼 보이네.

5월의 호크스를 기억하는 우효가 그 광경을 보며 묘하게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슬쩍 강송구의 가방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을 작은 손으로 조작해서 몰래 주문한 호크스 야구 잠바가 언제 강송구의 집으로 배송되는지 확인했다.

* * *

6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이제 선동열 전 감독의 49.1 연속이닝 무실점까지 단 2.1이닝이 남아 있는 상황.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그렇지.’

대기록까지 남은 이닝은 2.1이닝.

8월에 접어든 날씨라 온몸이 땀으로 끈적했다.

하지만 강송구의 집중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6회 말은 4-5-6으로 이어지는 타순이다.

벌써 두 번씩이나 강송구의 공을 본 타자들이기에 이제는 고집스럽게 바깥쪽만 고집할 수 없다.

‘그래도 바깥쪽의 넓어진 존은 잘 활용해야지.’

4번 타자 강두일.

오늘 경기 강송구에게 두 번이나 당한 타자가 두 눈을 번뜩이며 타석에 들어섰다.

‘제대로 이를 갈고 왔군.’

배트를 꽉 쥔 손이 눈에 들어왔다.

박진수와 사인을 교환한 강송구.

그가 바깥쪽 낮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아까보다 훨씬 더 넓어진 바깥쪽 코스는 강두일의 속을 답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오……. 저 새끼 진짜……. 공 X같이 던지네!’

타자에게 최고의 칭찬을 들은 강송구.

그가 연이어 바깥쪽 공을 던졌다.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이번에 던진 공은 좌타자 바깥으로 빠지는 싱커였다.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

평소라면 휘두르지 않은 공이었다.

상당히 빠지는 싱커였으니까.

하지만 아까부터 주심이 먼 코스에도 스트라이크를 잡아주면서 파블로프의 개처럼 절로 배트를 휘두른 것이다.

순식간에 카운트가 몰린 강두일.

그리고 그런 강두일을 상대로 강송구가 아웃을 잡아낼 가장 완벽한 위닝샷을 던졌다.

슈우우욱! 따악!

-아! 몸쪽 컷 패스트볼!

-투수의 옆을 지나서 이루수 앞으로 굴러가는 타구를 김효곤 선수가 가볍게 잡아서 1루로!

-그대로 아웃! 강송구 선수가 강두일 선수를 상대로 범타 처리를 하며 6회 말에도 기분 좋은 출발을 보여줍니다!

힘겹게 1루까지 달리다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강두일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더러운 바깥쪽 좀 그만 던졌으면 좋겠네.”

그 말을 들은 호크스의 1루수 이진모가 강송구에게 공을 던져주며 적당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깥양반! 티탄즈 애들이 제발 안으로 공 좀 던지라는데? 조금만 살살 던져!”

그 말을 듣고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 것과 다르게 다음 타석에 들어선 짐 카터를 상대로 초구부터 바깥쪽 코스로 던졌다.

엿이라도 먹으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초구를 지켜본 짐 카터가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바라보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F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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