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돌직구(2)
돌직구.
말 그대로 돌 같은 직구라는 뜻이다.
패스트볼의 구위가 좋아서 타격해도 제대로 밀어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직구를 말한다.
사실, ‘직구’라는 말이 일본에서 들여온 말로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자주 썼던 말이었다.
하지만 점점 미국에서 지도자 교육을 한 사람들이 현장에 많이 투입되면서 한국에서 ‘직구’라는 표현보다는 ‘속구’나 ‘패스트볼’이란 표현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 ‘돌직구’란 표현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좋은 구위를 가진 패스트볼을 보면 자주 튀어나올 정도로 자주 쓰이는 용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마운드에 강송구가 ‘돌직구’에 어울리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고 있었다.
“손이 얼얼할 정도로 구위가 굉장해.”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봤어? 배트가 밀리는 거?”
“컷 패스트볼은 또 어떻고.”
“갑자기 공의 회전수가 증가하기라도 한 거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구속도 평소보다 계속 4-5km/h가 빠르게 나오고 있는데….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혼란스러워하는 유니콘즈의 타자들.
2회 초.
마운드에 오른 로이 슈미츠가 던지는 슬러브가 그 어느 경기보다 소름 돋을 정도로 존을 잘 공략하고 있음에도 두 팀 선수단의 시선은 강송구에게 향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로이 슈미츠는 그 부분이 싫었다.
마운드에 오르는 모두의 시선은 타자와 투수에게 쏠린다. 특히나 선발 투수에게 더 많은 시선이 쏠리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가 마운드에 올랐음에도 선수들의 시선은 더그아웃에 앉아있는 강송구에게 쏠리지 않았는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슈우우웅! 따악!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호크스의 타자들이 어떻게 알아채고 자신의 슬러브를 조금씩 때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오늘 그가 던지는 슬러브는 최고였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도 이렇게 변화구의 각도나 제구가 잘되는 날은 몇 없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호크스의 3번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뒤부터…. 이상하리만큼 호크스의 타자들이 내 슬러브에 배트를 내밀기 시작했다.’
혹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버릇이 생긴 것일까.
로이 슈미츠가 굳은 얼굴로 고갤 흔들었다.
그는 억지로 자신감을 채워 슬러브를 던졌다.
하지만 타석에 있는 타자는 박진수였다.
김효곤이 돌아오면서 다시 6번 타순으로 돌아간 그는 이번 2회 초의 두 번째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따아악!
그리고 깔끔한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그것도 아까 로이 슈미츠가 얻어맞은 그 코스를 제대로 공략하면서 말이다.
“터졌다! 좋았어!”
“나이스! 나이스!”
호크스의 더그아웃이 후끈 달아올랐다.
전반기 초반과 다르게 베테랑들과 젊은 선수들 사이에 벽이 사라지니 선수단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강송구는 그런 선수단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그 덕분에 지금 이 팀이 리그 6위를 유지하고 있는 거겠지. 이제 필요한 것은 가을야구를 가기 위한 한 발자국뿐이다. 위닝 멘탈리티가 아직 많이 부족해.’
이윽고 힘겹게 이닝을 끝내고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있는 로이 슈미츠를 보며 강송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호크스의 체질을 바꿀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번뜩이는 강송구의 두 눈.
우효가 그런 강송구를 보며 고갤 절레 흔들었다.
* * *
야구에는 많은 전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전문가 중 대다수가 아마추어로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야구를 분석하고, 그 선수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를 증명한다.
이제는 익숙한 OPS나 BABIP 같은 지표는 물론이고, 언젠가 새롭게 야구에 적용될 새로운 방식의 지표와 공식도 이런 열정이 넘치는 아마추어 전문가들을 양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일부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서 진짜 프로구단에서 모셔가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선수의 기록을 그들의 이상한 공식과 자료에 끼워 맞추는 선무당과 같은 아마추어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선무당과 같은 아마추어는 미국만이 아닌 한국에도 제법 존재했다.
오늘 경기.
TV 앞에서 조용히 맥주를 들어 올리는 한 남자.
한병수가 눈을 찌푸렸다.
그의 앞에서 2개의 모니터가 있었는데.
하나는 불법 스포츠 토토와 야구 인터넷 중계란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그가 만든 공식에 대입한 강송구의 예상 성적과 광주 유니콘즈 타자들의 예상 성적이 나와 있었다.
“생각보다 제법 하네.”
툴툴거리며 눈을 찌푸린 한병수.
그는 강송구가 이번 경기에서 크게 질 거라 평가하며 광주 유니콘즈의 승리에 이번 달 방세의 절반을 걸었다.
“그래도 이번 이닝에 무너지겠지.”
그가 직접 만든 공식에 대입한 광주 유니콘즈의 좌타라인은 강송구의 공을 70% 확률로 공략할 것이라 적혀있었다.
한병수는 이것저것 제법 공부한 티는 났지만, 결국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였다.
그가 만든 공식도 이것저것 전문가들의 공식을 짜 맞추고 이상한 계산을 넣은 것일 뿐이었다.
그만 모를 뿐이지.
이번 타순은 4-5-6으로 이어진다.
TV에 나오는 호크스의 유격수인 알렌 베이커가 평소보다 더 긴장 어린 표정으로 글러브를 움켜쥐고 있는 것도 이번 타순이 4-5-6으로 이어져서였다.
공포의 좌타라인.
지난 시즌에 4-5-6타순에 배치된 3명의 좌타자가 만들어낸 홈런만 ‘63’개.
여기에 작년 홈런왕인 김율우의 홈런인 47개를 더하면 팀 홈런이 110개를 넘고.
팀 전체로 보면 231개를 기록하며 2017시즌에 한 시즌 팀 최다 홈런의 주인공인 인천 드래곤즈의 234개에 딱 3개 부족한 수준의 기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타선이 아무리 활약을 해도 부진한 투수진 때문에 작년 유니콘즈는 가을야구를 구경할 수 없었고, 이번 시즌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 작년보다 타선의 힘도 많이 떨어졌지.’
작년과 다르게 타자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작년 홈런왕이었던 김율우를 제외하면 전반기에 기록하고 있는 홈런의 개수가 약 40%가 줄었다.
‘그래도 이 타선을 우습게 볼 수 없지.’
한병수가 만든 공식에 따르면 그들은 강송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타자들이었다. 그리고 언제 불처럼 타오를지 모르는 것이 홈런 타자들이었다.
확신에 찬 표정의 한병수.
그가 맥주캔을 쥐며 소리쳤다.
“광주 유니콘즈! 떡상! 가즈아아아!”
* * *
이번 이닝의 첫 타자는 테디 프린스.
용병 타자이자 유니콘즈의 주전 우익수로 작년에 23개의 홈런을 때려낸 강타자.
그가 타석에 들어서니 그의 큰 덩치만큼 타석이 꽉 들어찬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와 너처럼 온몸이 단단하네?
‘마운드의 투수가 확실히 위축될 정도로 몸이 좋은 타자기는 하지. 그래도 약점이 없는 타자는 없다. 저 대단한 타자가 그 덩치만큼 대단한 실력을 갖췄다면,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었겠지.’
-그건 맞지.
그때 강송구가 상태창을 열어서 무언갈 살폈다.
[배트 브레이커]
-종류: 전용 특성
-효과: 컷 패스트볼의 구속이 5km/h 증가하고, 구위와 무브먼트가 크게 상승합니다.
-반대 손 타자의 배트를 부러트릴 확률이 매우 증가합니다.
[특성 퀘스트 목록]
-한 이닝에 3연속 배트 부러트리기. (3/3) <클리어>
-한 시즌에 50개의 배트를 부러트리기. (21/50)
-컷 패스트볼로 한 시즌에 100개의 삼진 잡기. (41/100)
[특성 퀘스트 보상]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
‘특성 퀘스트 중, 하나를 깰 좋은 찬스가 찾아온 것 같군. 3타자 연속 좌타자를 상대로 컷 패스트볼을 잘 던지면 연이어 배트를 박살낼 수 있겠어.’
그래서 이번 이닝을 제대로 불태울 생각이었다.
-‘The end of a Innings’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제 강송구가 던질 수 있는 최고 구속은 151km/h. 거기다 평균 147km/h의 포심도 던질 수 있다.
이번 이닝만큼은 이제 강송구도 파이어볼러가 된 것이다. 거기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배트 브레이커의 특성까지 살린다면….’
최고 156km/h의 컷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다.
강송구가 박진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초구는 좌타자 몸쪽 컷 패스트볼.
그것도 전력투구로.
고갤 끄덕인 박진수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미트를 내민 것을 확인하자마자 강송구의 오른팔이 휘둘러졌다.
슈우우욱! 뻐엉!
155km/h의 컷 패스트볼이 튀어나온 순간.
테디 프린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What the fuck?"
당혹감에 나온 욕이었다.
주심도 그걸 알기에 딱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야 고2 시절의 구속이 나오는군.’
단 1이닝이지만.
이제 강송구는 고교 시절의 자신이 최고 컨디션에서 80% 정도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물론, 그때는 컷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았지만, 그가 가진 재능을 생각하면 이런 공을 금방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피칭.
153km/h의 컷 패스트볼을 던진 뒤.
강송구가 던진 것은 77km/h의 슬로우 커브였다.
“스트라이크!”
배트를 내밀 생각도 못 한 테디 프린스가 환장할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갤 흔들었다.
“sipal”
이번엔 어설픈 한국 욕이 나왔다.
주심은 그런 테디 프린스에게 가벼운 구두 경고를 한 뒤에 다시 경기를 속행했다.
강송구가 다시 3구째에 던진 공은 컷 패스트볼.
-루킹 스트라이크으으으 아웃!
-와! 미쳤습니다! 강송구 선수! 155km/h의 컷 패스트볼로 루킹 삼진을 잡아냅니다!
-진짜….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 예전 코리안 비스트 시절의 그 강송구로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배트를 부러트릴 작정으로 스킬을 사용했지만, 타자는 배트를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압도당하며 삼진을 허용했다.
-푸하하하하핫! 실패했데요! 실패했데요!
우효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좋아했다.
이어지는 5번 타자는 주전 좌익수인 양석현.
매 시즌 15-20개의 홈런을 때려는 중장거리형 타자이자 필요한 순간에는 큰 것을 하나 때려주는 클러치 히터였다.
그런 타자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양석현도 알고 있다.
저런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현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강송구가 덤덤히 컷 패스트볼 그립을 쥐었다.
‘나도 매 이닝에 이런 공을 계속 던지고 싶지만….’
아쉽게도 마법은 이번 이닝뿐이다.
빠각!
초구에 배트가 부러졌다.
그리고 공은 뒤로 넘어가면서 파울.
그 모습을 본 우효가 당황했다.
-어…?
‘한 이닝에 배트를 3연속으로 부러트리라고 했지. 3타자 연속으로 부러트리란 말은 없었지.’
-어…. 어?
‘이번 미션을 성공시키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조생귤 10kg을 사다 주지.’
우효가 너무 좋아(?) 넋을 놓는 순간.
강송구가 다시금 컷 패스트볼을 던졌다.
빠각!
-아! 이번에도 배트가 부러집니다. 하하하! 양석현 선수가 기분이 좀 나쁘겠습니다.
-그렇죠. 아무리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라도 제법 돈이 들어가는 야구 배트가 연속으로 부러진다면 조금 속이 쓰리죠.
-아 이번에도 컷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와! 이건 정말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하하하! 양석현 선수가 다른 타자에게 빌려온 배트까지 부러트려 먹었습니다.
-오늘 강송구 선수가 정말 신기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한 타자를 상대로 배트를 3개 연속으로 부러트리다니…. 그만큼 오늘 강송구 선수가 던지는 컷 패스트볼의 구위가 굉장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은 것 같아요.
-말씀드리는 순간 강송구 선수의 체인지업이 제대로 들어가면서 스윙! 삼진 아우우우웃!
-2회 말에도 강송구 선수의 피칭을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빛나는 것 같습니다.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무덤덤한 표정 아래에 깔린 만족감.
[특성 퀘스트 목록]
-한 이닝에 3연속 배트 부러트리기. (3/3) <클리어>
-한 시즌에 50개의 배트를 부러트리기. (24/50)
-컷 패스트볼로 한 시즌에 100개의 삼진 잡기. (43/100)
[특성 퀘스트 보상]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
특성 퀘스트를 하나를 깬 강송구가 2회 말의 마지막 타자도 깔끔히 잡아낸 뒤에 마운드를 내려왔다. 물론, 내려오는 길에 우효를 보며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생귤 10kg”
그 말 한마디에 우효가 행복(?)한 울음을 내뱉었다.
-우…. 우효오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