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존버다! 존버!
갑자기 등장한 너클 커브.
페가수스의 타자들은 처음에는 크게 당황했으나,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차분히 타석에 들어섰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커브와 너클 커브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강송구의 피칭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패스트볼, 너클 커브, 커브를 꼭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처럼 타자들에게 선택하게 만드니 골이 아플 수밖에 없지.”
“너클 커브를 노리고 타석에 들어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커브를 연이어 던지며 헛스윙을 유도하고, 그렇다고 커브를 기다리면 갑자기 너클 커브나 패스트볼을 던지니 큰 문제네.”
“패스트볼을 노려도 문제야. 너클 커브랑 커브만 던지는 게 아니라 다른 변화구까지 섞어 던지니 더 엿 같거든.”
-7회 말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강송구 선수! 오늘 경기에서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 그리고 에러 하나를 제외하면 별다른 틈이 없는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점수는 아직도 0대0! 박태오 선수와 강송구 선수의 투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8회 초.
아직도 쌩쌩한 박태오가 마운드에 올랐다.
호크스의 타자들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런 박태오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저 녀석은 구위가 떨어지지도 않네.”
“국대 1선발은 뭐가 다르긴 다르네.”
7회 초까지 2개의 안타와 1개의 볼넷을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박태오도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투수전에 어울리는 완벽한 모습.
에이스와 에이스의 대결에 어울리는 두 투수의 모습에 대구 페가수스 파크를 찾은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무리 타격전이 더 화끈하고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뛰어난 투수전은 또 그 나름의 맛이 있는 법이었다.
에이스와 에이스의 대결.
국대 1선발과 전반기 최고 투수의 대결.
팬들이 시선이 절로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벌써 오늘 경기 13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박태오.
그야말로 에이스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이닝을 끝낸 그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러다가 너 10회 말에도 마운드에 오르겠는데?
우효가 혀를 차며 고갤 흔들었다.
항상 예언처럼 확신에 찬 말을 내뱉던 강송구도 이번만큼은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메이저리그의 대단함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런 투수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메이저리그인가? 미국으로 꼭 향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끌어 오르는 승부욕을 위해서.
강송구는 미국행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경기 9회 말까지 증명을 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어울리는 선수인지 말이다.
* * *
[페가수스 0 vs 0 호스크]
-9회 말.
-투수: 강송구
-타자: 1번 타자 이운호.
-와…. 쌉 명경기네;
-ㅋㅋㅋㅋㅋ 투수들 발레 하이라이트 보는 줄 알았다. 커브와 커브의 대결이었네.
-좌완 정통파와 우완 기교파의 대결이라니…. 진짜 오랜만에 한국에서 볼만한 투수전이 나왔네.
-아무리 한국야구가 레저 스포츠라고 욕을 오지게 먹어도 이런 경기가 가끔 나와서 그나마 프로로 인정받는 게 아닌가 싶다. 진짜 수준 낮은 경기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는 경기네.
-진짜 강송구의 흑마구는 이해가 안 되네;
-130대 초반의 공을 아무도 공략 못 함.
-ㅋㅋㅋㅋㅋ 저러다가 100km/h짜리 커브 던지다가 70km/h짜리 슬로우 커브를 던지고, 갑자기 124km/h 짜리 너클 커브를 던진 다음에 134km/h짜리 컷 패스트볼을 던지는데…. 내가 타자였으면 마운드로 달려갔음.
-강송구: 휴먼…. 불만 있으면 마운드로 올라오십시오. 그대로 툼스톤 드라이버를 꽂아주겠습니다.
-ㅋㅋㅋㅋ 한마 유지로 같은 몸을 보고 누가 마운드로 뛰어 올라가겠냐곸ㅋㅋㅋ 무서워서 오줌 지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9회 말.
첫 타자는 이운호.
오늘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
마지막으로 에러 하나를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강송구가 천천히 자신의 손에 로진백을 고루고루 바르며 타자를 바라봤다.
-야! 박태오 아이싱 안 하는데?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덤덤히 고갤 끄덕였다.
승부욕의 화신인 박태오라면 10회 초에도 마운드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페가수스의 김주영 감독이라면 10회 초에 박태오가 아닌 불펜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겠지.’
그리고 김동식 감독도 강송구를 10회 말의 마운드에 올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즉, 오늘 경기의 승부는 무승부였다.
에이스vs에이스의 대결.
그 대결의 승자가 없다는 뜻이었다.
‘미션이 조금 아쉽군.’
완봉승이나 완투패.
두 개의 미션이 모두 날아갔다.
그래도 퀄리티 스타트와 삼진 10개.
마지막으로 범타 유도도로 아웃을 5번이나 잡으면서 남은 미션을 모두 클리어했다.
나쁘지 않게 포인트를 쏠쏠히 챙길 수 있었다.
‘오늘 경기의 마지막 이닝.’
아마 이번 마운드가 그의 마지막 이닝이 될 것이다. 호크스의 불펜에서 두 명의 투수가 몸을 풀고 있었다.
그건 페가수스도 똑같았다.
강송구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자 했다.
그리고 모든 무기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까지 아끼던 스킬까지 말이다.
-‘The end of a Innings’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페가수스의 1번 타자 이운호를 향해서 146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갑자기 달라진 구속.
이운호가 당혹감을 드러내며 마운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 갑자기 내 타석부터 왜 이러냐?”
이게 끝이 아니었다.
138km/h의 너클 커브가 연이어 이운호가 쉽게 노릴 수 없는 바깥쪽 코스에 걸쳤다.
‘스나이퍼’스킬로 완벽한 코스에 공을 꽂아 넣은 것이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허용한 이운호가 정신없이 공을 던지는 강송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타…. 타임!”
급히 타석 밖으로 빠지는 이운호.
하지만 다시금 타석에 들어선 이운호에게 강송구는 ‘배트 브레이커’로 강화된 151km/h의 컷 패스트볼을 던졌다.
빠각!
배트가 부러진 순간.
알렌 베이커가 달려가 공을 잡고 1루로 송구했다.
“아웃!”
그리고 깔끔히 아웃을 잡아냈다.
와아아아아!
호크스의 원정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
페가수스의 더그아웃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갑자기 140대 구속이라니?”
“어떻게 된 일이야?”
“130대 공도 쉬이 칠 수 없었는데…. 여기서 140대 공이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혼란스러운 표정의 타자들.
반대로 박태오는 어깨가 식지 않게 덮고 있던 점퍼까지 벗으며 페가수스의 김주영 감독에게 다가갔다.
“10회 초에도 올려주십시오. 올라가겠습니다. 제가 어떤 투수인지를 보여주겠습니다.”
하지만 김주영 감독은 단호히 고갤 흔들었다.
“불가. 이제 3위 싸움에 접어들게 되는데 고작 페넌트레이스 한 경기에서 네 어깨를 소모할 생각은 없다.”
“...”
“태오야. 아직 시즌은 길고, 호크스를 만날 경기도 제법 많이 남아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알겠습니다.”
결국에는 고개를 숙인 박태오.
그가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마운드를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에 강송구가 9회 말의 두 번째 아웃도 깔끔히 잡아내며 박태오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9회 말의 마지막 타자.
강송구는 카운트를 쌓고 송강혁을 상대로 컷 패스트볼을 던져 배트를 부러트렸다.
공은 투수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공을 잡아서 1루로 던진 강송구.
“아웃!”
9회 말의 마지막 타자도 깔끔히 잡아낸 그가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9이닝 무실점의 호투.
하지만 오늘 경기 박태오와 강송구.
두 투수가 승리를 가져가지는 못했다.
* * *
[11회 초에 나온 결승타! 이호승의 1타점 적시타에 승리를 가져온 호크스!]
[에이스vs에이스! 박태오와 강송구의 명품 투수전! 대구 페가수스 파크가 후끈 달아오르다!]
[좌완 정통파 vs 우완 기교파의 환상적인 투수전! 승자는 강송구의 판정승!]
[오랜만에 본 토종 투수들의 투수전! 야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에이스들의 대결!]
-끝내주는 경기였다. 역시 야구는 화끈한 타격전도 좋지만, 이런 투수들의 호투가 빛나는 투수전도 좋다.
-진짜 우직한 정통파 vs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기교파의 대결이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번 시리즈의 승패가 다음 경기에서 정해지겠네. 누가 위닝시리즈를 가져갈까?
-페가수스가 승리가 더 절박한 것은 사실임. 1경기만 잡으면 2위에 있는 데빌스와 2경기 차이로 줄거든.
-진짜 이번 전반기는 꿀잼이야.
-ㅇㅈ합니다.
-양 팀의 타선은 너무 답이 없었다. 특히 호크스는 주전 상위 타선이 셋이나 빠지니 너무 무게감이 없더라.
-김효곤 돌아와ㅠㅠㅠㅠㅠ
이어진 대구 페가수스 3차전.
2차전의 좋은 분위기를 끌고 가고 싶은 호크스와 어떻게든 위닝시리즈를 가져가서 리그 2위인 서울 데빌스와 차이를 줄이고 싶은 페가수스의 제법 중요한 경기.
승자는 의외로 수비 실책이 많았던 호크스였다.
호크스의 외인 투수인 기무라 켄스케의 싱커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페가수스의 타자들이 병살타를 허용하며 알아서 무너진 것이 3차전 결과의 행방을 갈랐다.
“이겼다!”
“위닝시리즈야!”
그리고 오랜만의 위닝시리즈를 가져온 호크스.
다시금 좋은 기세를 찾은 덕에 호크스의 라커룸 내 분위기는 더욱 밝아졌다.
-좋은 분위기군…!
우효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찹찹찹 귤을 한 조각 먹으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저기…. 내가 잘못했으니. 샤인 머스캣은 바라지도 않으니 사과 한 조각의 자비를!
그 우효의 간절한 부탁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특별히 오늘 저녁에 딸기를 주도록 하지.’
-앗! 아아! 감사합니다! 행님!
조폭처럼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우효.
감격에 빠진 작은 고슴도치가 씰룩쌜룩 춤을 춘다.
작은 고슴도치가 사람처럼 두 다리로 서서 춤을 추는 모습이 조금은 묘한 느낌을 줬다.
강송구의 시선이 다시 상태창으로 향했다.
제법 많은 특성과 스킬로 가득한 상태창.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가장 부족한 부분은 역시 구속이군.’
최고 구속은 아직도 137km/h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강송구의 시선은 ‘파이어볼러-진(眞)’ 스킬로 향했다.
[파이어볼러-진(眞)]
-종류: 성장형 특성
-효과: 구속이 3km/h가 증가합니다.
-두 번째 효과: 구속이 3km/h가 증가합니다.
-잠겨있습니다.
(30만 포인트를 투자하면 세 번째 효과가 열립니다.)
-잠겨있습니다.
(50만 포인트를 투자하면 네 번째 효과가 열립니다.)
‘포인트는 대략 12만 포인트를 조금 넘는다.’
약 18만 포인트를 모아야 세 번째 효과의 잠금을 풀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고민이 많았다.
‘전반기가 끝나기 전까지 카드를 사지 않는다면…. 충분히 20만 포인트까지는 모을 수 있다.’
남은 10만 포인트가 문제지만.
지금은 포인트를 모으며 구속과 관련된 이 성장형 특성을 해금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오늘 경기를 하며 느낀 것이 많았다.
‘고작 130대 구속으로는 절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완벽한 공을 던졌음에도 안타를 맞았다.
공이 느리고, 구위가 조금 떨어져서 생긴 문제였다.
만약에 강송구가 130대가 아닌 140대 초반의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면, 아마 그는 오늘 다시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에 3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투수가 되었을 수 있었다.
강송구가 결정했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일단, 전반기 동안 지금의 스펙으로 버티자.’
역사적으로 가장 흥행한 메타.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남자는 존버다.”
강송구가 ‘존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