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에이스vs에이스
강송구의 기록은 11타자에서 멈췄다.
9번 타자를 상대로 범타를 유도했고.
다음 1번 타자를 상대로도 내야 땅볼로 아웃을 잡아내며 6회 초를 깔끔히 막아냈다.
다음 이닝도 다를 것은 없었다.
새로운 무기인 A등급의 커브는 드래곤즈의 타자들이 처음 보는 미증유의 무기였다.
부우웅!
“스트라이크 아웃!”
분명히 무릎까지 떨어지던 커브가 똑같은 높이에서 그것보다 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것이었다.
커브로 유명한 페가수스의 박태오가 컨디션이 좋으면 이런 커브를 잘 던지기는 했지만, 그건 박태오가 제법 많은 경험을 쌓은 국대 1선발이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강송구는 이번 시즌에 데뷔한 파릇파릇한 신인이었다.
7회 초도 깔끔히 끝났다.
이어지는 8회 초.
강송구는 이번 이닝이 자신의 마지막 이닝이 되리라 판단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스킬을 남용한 것이 크게 다가오는군.’
이번 이닝은 최대한 조심해서 끝내자.
그렇게 다짐하고 공을 던졌다.
따악!
“아웃!”
첫 타자는 범타.
두 번째 타자도 내야 뜬공으로 아웃.
마지막 타자도 깔끔히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강송구가 소화한 이닝은 총 8이닝.
삼진보다는 최대한 수비의 도움을 받는 형식으로 체력을 아끼고 이닝을 소화했다.
그리고 1대0이라는 점수는 그대로 이어져 9회 초.
호크스의 마무리 투수.
곽민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150대 초반의 포심과 140대 중후반의 컷 패스트볼을 주력으로 던지는 젊은 투수.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그가 마지막 삼진으로 이닝을 끝내는 순간.
호크스의 환호성으로 관중석이 들썩였다.
“끝까지 공략하지 못하다니….”
임성균 감독이 눈을 찌푸렸다.
이건 뼈아픈 실책이었다.
1점 차이를 따라잡으려고 쏟아 넣은 불펜만 4명이었다.
거기다 걱정인 것은 다음 경기였다.
불펜이 쌩쌩한 호크스와 반대로 오늘 경기에서 불펜의 체력소모가 많은 드래곤즈.
‘차라리 이번 경기를 시원하게 내주고 2, 3차전을 잡아서 위닝시리즈를 가져가야 했다. 속이 쓰릴 지경이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경기는 끝났고 결과는 나왔다.
덤덤한 표정으로 선수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강송구를 보며 임성균 감독이 조용히 턱을 쓸었다.
“후반기에도 우리의 발목을 잡을 녀석이야. 뭔가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어.”
* * *
[강송구 8이닝 무실점 호투! 한 경기 11타자 연속 탈삼진의 대기록까지 세우다!]
[8이닝 무실점 15탈삼진의 활약! 강송구의 탈삼진 능력에 놀란 드래곤즈의 타자들!]
[6월에도 이어지는 뜨거운 활약! 강송구를 영입한 호크스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무서울 것이 없는 호크스! 리그 4위에 올라서다!]
[호크스 3위까지 단 1경기만 남았다.]
[호어강. 호크스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드래곤즈 호크스 원정에서 뼈아픈 패배! 1차전에서 마운드에 올린 불펜투수만 4명.]
-ㄷㄷㄷㄷ 역시 재능은 남다르다.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를 오늘 경기를 보고 깨달았다.
-구속 빼고는 약점이 없네;
-그 약점인 구속도 점점 올라오는 중.
-딱 140대 초반만 구속이 나와도 한국에서는 언터처블임. 내가 장담한다.
-진짜…. 호크스도 한국시리즈 가는 거야?
-제발 저 호어강은 좀 쓰지 마라. 부두술에 걸릴 것 같아서 너무나 두렵다.
-ㅋㅋㅋㅋㅋㅋ 마법의 단엌ㅋㅋㅋ 호어강ㅋㅋㅋ
1차전의 승리.
이어진 2차전에서 의외로 호크스는 드래곤즈를 압도하며 16대1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3차전에선 투수전이 되었지만, 박진수가 때려낸 만루포로 승리를 거두며 힘들 거라 여기던 드래곤즈 3연전에서 스윕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원정길에 올랐다.
고척돔으로 향하는 버스 안.
강송구는 이번 경기에서 얻은 보상을 바라봤다.
‘지금 카드는 다이아 카드 하나가 있고, 포인트는 대략 6만 포인트 정도가 있다.’
최고의 결과였다.
경기에서 승리도 했고, 새로운 대기록까지 달성하면서 보상까지 화끈하게 얻었다.
물론, 강송구의 어깨에 앉아서 좌절하고 있는 작은 고슴도치에게는 재앙과 같은 일이겠지만.
강송구가 고개를 돌렸다.
버스 안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은 훈훈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팀 분위기가 좋군.’
경기가 끝난 후.
드디어 김효곤이 주장직을 내려놨다.
그리고 그가 주장직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들이 조금은 어색해하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두 집단이 올린 벽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금방 분위기가 올라갈 것이다.
‘그것보다 오랜만의 휴식이군.’
강송구에게 다음 등판은 없었다.
김동식 감독은 강송구에게 콜업이 되고 나서 많은 이닝을 소화했으니 다음 등판은 쉬고, 6월 중순에 있는 대구 페가수스와 경기를 준비하라고 일러뒀다.
그리고 이어진 고척 헌터스 원정 3연전의 1차전은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호크스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연승을 이어나가는 호크스.
선수단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이러다가 진짜 1위까지 올라가는 거 아니야?”
“요즘 뭔가 된다는 느낌이 있다.”
“캬! 이게 야구구나!”
“이게 ‘호어강’이지!”
호크스의 팬들도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팀의 선전에 큰 기대감과 환호를 보내줬다.
하지만 ‘호어강’이라는 말을 너무 일찍 꺼낸 것일까?
고천 헌터스 원정 3연전의 두 번째 경기부터 호크스가 조금 이상한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그 시작은 김효곤.
팀의 주장직을 내려놓았던 그가 발목을 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부상의 망령이 호크스에 들러붙었다.
* * *
4연승.
그리고 그 뒤에 내리 8연패.
3위까지 넘보던 호크스의 순위가 다시 6위까지 떨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으잌ㅋㅋㅋ 호어강이요? 호어강은 무슨ㅋㅋㅋㅋ 치킨쉑들 수준이 그게 그거짘ㅋㅋㅋ
-이제 좀 달리려니깤ㅋㅋ 주전 타자 3명이 모두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리넼ㅋㅋㅋㅋ
-진짜 마성의 팀이다. 진짜 국내 야구에서 호크스가 없다면 야구는 무슨 재미로 봤을까?
-호크스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
-ㅋㅋㅋㅋㅋㅋㅋ 아! 설레발 좀 그만하라구! 어떻게 내야진 절반이 부상으로 사라지냐ㅋㅋㅋㅋㅋ
-김효곤, 이진모, 조규환 전반기 아웃에 필승조인 박균이랑 롱 릴리버인 박철구는 그나마 7월 초에 돌아오니…. 그게 그나마 위안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팀이냐?ㅋㅋㅋㅋㅋ
-3위? 응ㅋㅋㅋㅋ 현실은 6위야.
-DTD! DTD!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본다아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박신 당신이 옳았어! 떨어질 팀은 떨어진다구우우우우!
이틀 뒤에 있을 대구 페가수스 3연전.
그 3연전의 두 번째 경기에 등판이 예정된 강송구.
그가 라커룸을 둘러봤다.
부진한 팀의 성적.
하지만 성적과 다르게 호크스의 라커룸은 의외로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위기가 찾아오니…. 똘똘 뭉친 느낌이군.’
찹찹찹.
그리고 그런 강송구의 발아래에는 샤인 머스캣과 얼린 망고를 신나게 음미하고 있는 우효가 있었다.
-노후는 무슨…. 이제 대세는 욜로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강송구에게서 뜯어낸 과일을 신나게 입에 쑤셔 넣는 작은 고슴도치.
강송구는 아까 한 송이 가득했던 샤인 머스캣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고갤 흔들었다.
‘다음에는 블루베리랑 딸기를 줄까?’
-그것도 좋지! 감귤만 아니라면…!
‘도대체 왜 감귤은 싫어해?’
강송구의 물음에 우효가 입에 넣던 샤인 머스캣을 내려놓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명절마다 감귤 농삿집에 몸을 의탁한 내 고슴도치 친척들이 무수한 감귤을 보내오지…. 분명히 귤은 좋은 과일이야. 그래…. 좋은 과일인데…! 너무 많아! 너무 많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귤.
사람도 며칠을 라면만 먹으면 질리는데, 우효는 감귤만 3개월을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귤을 싫어하는 거였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그때 우효가 두 눈을 번뜩였다.
-아! 깜빡하고 이걸 말하지 않았다.
“뭔데?”
-곧 시스템에 업데이트가 있을 것이다! 네가 워낙 시스템을 잘 사용해서 어느 정도 조절이 있을 거라고 연락이 왔다.
‘언제?’
-내일
‘내일? 언제 연락을 받았는데?’
-일주일 전에?
그 말에 강송구가 눈을 찌푸렸다.
일주일이나 그런 중요한 소식을 잊고 있었다니. 역시 뒤룩뒤룩 살찐 게으른 짐승은 먹을 것으로 길들여야 한다.
강송구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귤 일주일.”
강송구의 통보에 우효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아아아아악!
* * *
대구 페가수스.
2010년대 초반에 페가수스 왕조를 세운 전통의 강팀이자, 2020년대 중반부터 리빌딩을 끝내고 다시금 대권에 도전하기 시작한 가을야구 명문 팀.
국대 1선발인 박태오를 중심으로 새롭게 편성한 투수진도 어느덧 자리를 잡았고.
타선도 작년에 1군으로 콜업된 신인 두 명이 이번 시즌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구 페가수스는 무엇인가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가을야구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경기의 기복이 큰 것도 큰 단점이었다.
아무튼.
그런 대구 페가수스 원정 3연전의 두 번째 경기.
강송구의 상대는 바로 국대 1선발인 박태오였다.
‘이번에도 피가 말리는 투수전이 되겠군.’
아니.
어쩌면 강송구만 고생하는 경기가 될 수 있었다.
튼튼한 내야진을 부상으로 다 잃은 상황이기에 조금만 땅볼로 흔드는 타구가 나오면 백업 내야수들이 실수하며 빠르게 무너질 수 있었다.
‘이번 경기는 최대한 인플레이 되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 드래곤즈전처럼 삼진 최대한 많이 잡는 플레이가 필요해.’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강송구는 아직 안 쓴 다이아 카드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왜 눈을 감아?
‘기도하는 거다.’
-뭐야? 너 무신론자잖아.
‘가끔은 신에게 기도해야 운이 좋거든.’
-...
우효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송구는 드래곤즈전에서 얻은 다이아 카드를 개봉했다. 순식간에 떠오르는 50장의 카드들.
강송구의 눈에 조금의 실망감이 서렸다.
‘검은빛의 카드는 없군.’
다이아 등급을 넘어선 HoF급의 등급이 나오지 않아서 조금은 실망했다.
그래도 무지갯빛은 3개나 나왔다.
고심하고 또 고심한 강송구.
그가 자신 있게 카드 하나를 선택했다.
이윽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카드.
곧이어 카드의 앞면이 드러나고 강송구와 우효의 표정이 갑자기 크게 굳어졌다.
-이건….
우효는 작은 탄식을 내뱉었고.
그리고 얼굴이 굳어졌던 강송구는 아무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피우며 미소를 지었다.
“끝내주는군.”
['A등급 구종카드'를 획득하셨습니다.]
[구종카드를 사용하셨습니다.]
['너클 커브 A등급'을 습득하셨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이아 카드를 뽑는 순간 또 다른 알림이 떠올랐다.
-띠링!
[업데이트 완료!]
[포인트와 미션 시스템이 새롭게 개편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닝을 소화하며 얻는 포인트가 대폭 감소합니다. 하지만 매 경기 다양한 미션이 주어지며 그 미션을 달성할 때마다 일정량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미션은 매 경기 랜덤하게 바뀝니다.]
‘미션이라...’
이제야 조금은 게임 같아졌다고 강송구가 생각했다.
이윽고 눈앞에 떠오른 미션창.
강송구가 조용히 미션을 바라봤다.
[오늘의 미션]
-완봉승 (2,000포인트)
-삼진 5개 (500포인트)
-삼진 10개 (1,000포인트)
-퀄리티 스타트 (1,000포인트)
-병살타 유도 2번 (600포인트)
아무래도 이번 페가수스전.
강송구는 새롭게 얻은 무기를 어떻게 활용할지 조금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