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벌떼 야구
야구는 타이밍이다.
타자는 투수의 공에 타이밍을 맞춰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고, 투수는 그런 타자가 공을 치지 못하게 타이밍을 빼앗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송구는 타이밍을 뺏는다는 야구의 간단한 진리를 너무나 잘 지키는 선수였다.
‘워렌 스판처럼 말이지.’
박진수는 강송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4회 말.
타선이 한 바퀴 돌았다.
선두타자는 1번 타자인 심형권.
그는 굳은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2회 말에 있었던 피칭이 아직도 심형권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에 걸친 패스트볼.
134km/h의 구속을 본 심형권이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깐 타석 밖에 나가서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이어지는 승부.
강송구가 2구째에 던진 것은 스플리터였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은 피칭.
제대로 떨어진 스플리터에 심형권이 허무하게 헛스윙을 하며 투 스트라이크를 헌납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좌타자’를 상대로 강송구는 컷 패스트볼을 꺼내 들며 깔끔히 삼진을 잡아냈다.
빠각!
-투수 앞으로 튀어 오른 공!
-강송구 선수가 침착하게 공을 잡은 뒤에 1루로 송구! 아웃! 아웃입니다!
-깔끔히 4회 말의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강송구 선수입니다. 대단하군요.
심형권의 배트를 부러트리며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깔끔히 잡아낸 강송구가 다음 타자와 승부에 들어갔다.
2번 타자 박무형.
타석에 들어선 박무형을 보며 강송구가 오늘 경기 중에서 가장 높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확실히 대단한 선수야.’
박진수의 사인은 바깥으로 빼는 공.
하지만 강송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설픈 공은 무조건 맞거나 거른다.’
공격적으로 몸쪽 낮은 코스를 공략해야 한다.
홈런을 한 방 맞아도 어쩔 수 없다.
상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괴물.
그런 상대에게 어설픈 공은 절대 금물이다.
‘새롭게 얻은 스킬을 2회 말이 아닌 지금 썼으면 박무형을 잡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
강송구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던진 초구는 우타자의 몸쪽 낮은 코스에 정확히 틀어박히는 날카로운 싱커였다.
“스트라이크!”
그 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박무형.
강송구는 바로 사인을 보낸 뒤에 자세를 잡았다.
슈우우욱! 펑!
“볼!”
바깥쪽으로 많이 빠지는 슬라이더.
박무형은 그런 강송구를 보며 생각했다.
‘재미있는 친구야.’
자신을 상대로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가는 투수.
그가 조금은 바짝 홈플레이트에 붙었다.
이어지는 3구째 승부.
강송구가 던진 공은 우타자 몸쪽에 바짝 붙는 싱커.
슈우우욱! 따악!
박무형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이 그가 원하는 타이밍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빗맞았다.’
급히 1루로 달리는 박무형.
공은 삼루수인 조규환에게 빠르게 굴러갔다.
그렇게 처리하기 어려운 타구가 아니었기에 경기를 보고 있는 모두가 아웃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 조규환 공을 빠트립니다!
-뒤로 흐르는 공!
-그 사이에 박무형 선수가 1루에 안착합니다.
-이번에도 조규환입니다. 오늘 조규환 선수가 두 번이나 수비에서 실수를 저지릅니다.
투수에게는 허탈할 수 있는 상황.
오늘 수비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조규환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강송구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강송구는 그런 조규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강송구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박무형 선배의 스윙이 조금만 빨랐다면….’
저 공은 땅볼이 아니라 삼루수의 키는 물론이고 그대로 좌익수의 키를 넘어서 담장을 때렸겠지.
‘2루타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단타로 막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기분이 불쾌한 상황은 아니야.’
-그거 정신승리 아니야?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답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가끔은 그런 정신승리가 정신건강에 매우 이로울 수 있다고.’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이바론.
주자가 없는 상황과 다르게 박무형이 1루에 있는 상황에서 이바론을 상대하는 것은 강송구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그걸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투수만이 아니었으니까.
타석에 들어선 이바론.
그를 보며 강송구가 사인을 보냈다.
‘몸쪽 승부.’
박진수는 그 사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 공이 나쁘지 않은 강송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강송구 선수의 초구는 컷 패스트볼.
-137km/h의 컷 패스트볼입니다.
-2회 말에 보여줬던 구속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참…. 묘한 투수네요.
-그렇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2구째.
-이번에도 몸쪽 코스.
-볼입니다. 이번 공은 낮게 떨어지는 커브.
-카운트는 1-1입니다.
커터.
그리고 커브.
3구는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패스트볼.
4구는 좌타자 바깥쪽으로 크게 빠지는 싱커.
카운트는 이제 2-2가 되었다.
이바론은 뭔가 답답함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축 처지는 느낌이군.’
늪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보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몸쪽을 노리는 건 확실한데….’
어떤 공일까.
어떤 공을 위닝샷으로 던질까.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 강송구가 몸쪽으로 바짝 붙는 체인지업을 던졌다.
틱!
범타를 유도하는 체인지업.
타이밍이 어긋난 배트에 맞은 공이 투수 앞으로 굴러갔다. 강송구는 그 공을 잡고 슬쩍 박무형의 위치를 살폈다.
‘역시 발이 빠르다.’
어쩔 수 없이 1루로 공을 던진 강송구.
“아웃!”
일단은 이바론을 잡은 것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다음 타석은 탁성균이었다.
‘박무형이 득점권 위치에 있어도 호구를 잡아놓은 탁성균을 상대는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강송구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탁성균.
그는 눈치를 보는 한 마리의 겁먹은 개처럼 강송구를 힐끗 보며 타격자세를 잡았다.
그걸 보면서 우효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쯧쯧…. 비 맞은 개를 보는 것 같네.
그리고 강송구는 그런 처량한 개를 복날의 개장수처럼 신나게 두들길 생각이었다.
* * *
7회 말.
오늘 경기 하나의 안타, 하나의 볼넷, 두 개의 에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완벽한 피칭을 한 투수.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타순은 4-5-6으로 이어지는 상황.
4회 말에 강송구에게 삼진을 허용한 탁성균이 이제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벌써 투구수도 100개가 넘었다. 어쩌면 기회가 올 수 있어. 그걸 노려보자.’
지친 투수가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봐온 탁성균은 마운드에서 단 하나의 표정 변화도 없이 공을 던지는 강송구를 보며 작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단 3구 만에 삼진을 허용하는 탁성균.
131km/h짜리 바깥으로 빠지는 싱커에 헛스윙을 허용한 그가 결국에는 얼굴을 붉히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쯔쯧…! 성균아! 또 속냐?
우효는 그런 탁성균을 보며 혀를 찼다.
선두타자를 가볍게 잡아낸 강송구.
그는 연이어 타석에 들어서는 5번 타자.
그리고 6번 타자를 범타로 잡아내면서 7회 말을 깔끔히 지우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송구. 고생했습니다.”
오늘 경기는 여기까지.
강송구는 타카무라 켄신 투수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팔꿈치의 아이싱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7대0이던 점수는 11대0까지 벌어지며 대전 호크스가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다.
여유로운 상황이었기에 김동식 감독은 필승조 불펜을 아끼며 젊은 투수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9회 말.
언더핸드 투수인 박철구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11대1로 이번 원정 3연전의 위닝시리즈를 확정 지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11대1로 대전 호크스가 서울 더블스타즈를 잡아내면서 이번 잠실 원정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호크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드디어 믿을만한 토종 에이스가 생겼다는 것이겠죠?
-그렇습니다. 오늘 7이닝 무실점으로 더블스타즈의 타선을 꽁꽁 묶은 강송구 선수의 피칭이 정말 돋보였습니다.
-1회 말에 나온 병살타를 시작으로 강송구 선수의 차분한 피칭이 빛을 발한 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위닝시리즈를 가볍게 가져간 호크스.
이어진 잠실 원정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5대4로 승리하며 더블스타즈를 상대로 스윕승을 달성했다.
드디어 가을야구의 가시권에 들어왔다.
5위와 반 경기 차이.
그리고 그 소식을 듣자 조금은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한 호크스의 라커룸을 보며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들떴군. 이러다가 큰코다치기 마련이지.’
강송구의 예상처럼 들뜬 호크스는 다음 부산 원정에서 한국 프로야구 예능팀이라 불리는 부산 티탄즈와 함께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두 팀의 경기 영상이 짤로 등장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개그팀 vs 예능팀의 대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 이거 실화냐?
-토네이도 송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송구가 일루수의 고간을 때리고 고간을 맞은 일루수가 고통을 참고 2루 송구를 던졌는데 그게 이루수의 키를 넘어서 3루에 있던 주자가 홈으로 들어와서 역전이라닠ㅋㅋㅋ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어ㅋㅋㅋ
-진짜…. 웅장한 대결이다.
-저런 팀이 리그 6위와 8위 팀.
-이게 자강두천이구나…. 이해했다.
-2차전은 더 웃김ㅋㅋㅋ 2연속 내야 뜬공 처리 실패로 만루를 만들어서 위기를 알아서 자초했잖아.
-진짜 투수가 내야수들 뚝배기 깨도 이해한다.
-왜 이 둘은 만나면 예능만 찍냐? 야구 안 하냐?
-진짴ㅋㅋㅋㅋ 어떤 의미로는 대단해. 이 경기 전에 호크스는 더블스타즈를 상대로 경기력도 좋았잖아? 그런데 티탄즈만 만나면 광대가 됨ㅋㅋㅋㅋ
-분명히 대전과 부산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암흑기운이 있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이런 경기력은 설명할 수 없음.
묘했다.
이상하게 호크스는 티탄즈를 만나면 늪에 빠진 것처럼 이상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건 티탄즈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력과 상관없는 이상한 상황이 자주 튀어나오며 두 팀 감독의 두통을 심화시켰다.
그렇게 부산 원정에서 다시금 현실을 깨달은 호크스의 선수들이 조금 기가 죽은 상태로 대전으로 올라왔다.
-진짜…. 어떤 의미로 대단한 팀이군.
우효는 그런 팀 분위기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마음은 착하다.’
-그게 더 나쁜 표현이라는 거 알지? 프로라면 착한 게 아니라 야구를 잘해야지.
‘...’
-그것보다 다음 상대는 누구야?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답했다.
‘인천 드래곤즈.’
강력한 불펜진을 중심으로 제2의 벌떼 야구를 구사하는 팀으로 뛰어난 장타력을 중심으로 큰 점수를 벌고 필요하다면 악착같이 불펜들을 쥐어짜 1승을 거머쥐는 팀이다.
그리고 인천 드래곤즈 1차전.
강송구의 상대는 지난 시즌에 유일하게 25승을 거머쥔 좌완 기교파 투수인 엘비 알렉산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