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호구 잡이(3)
“구속이 올랐다.”
김동식 감독이 마운드에서 내려온 강송구를 보며 짧게나마 감탄사를 내뱉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120대 중후반의 포심 패스트볼이 이제 137km/h까지 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컷 패스트볼은 오늘 142km/h까지 나왔다.
이제 누가 강송구를 보며 똥볼 투수라고 부를까?
‘대단하군.’
정말 짧은 기간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아니, 저건 발전이 아니겠지.
‘선수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능…. 그리고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깨가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
언젠가는 160km/h를 쉽게 던지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그게 강송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이니까.
‘그것보다…. 조금씩 타선이 터질 조짐이 보이는군.’
2회 초.
마운드에 오른 최정원.
그를 상대로 4번 타자 이진모가 8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2루타를 쳐냈다.
따아악!
-쳤습니다!
-외야로 향하는 타구!
-좌익수의 키를 살짝 넘어 떨어지는 공! 이진모 선수가 2루까지 달립니다!
-2루에서…! 세이프!
이게 끝이 아니었다.
5번 타자는 박진수.
뒤를 이어서 대기 타석에 알렌 베이커가 배트를 붕붕 휘두르며 상대 투수의 타이밍을 맞춰보고 있었다.
따아악!
다시금 들려오는 타격음.
박진수가 큰 타구를 때려낸 순간.
호크스의 선수들이 더그아웃 담장에 붙어서 높게 뜬 타구를 함께 바라봤다.
그리고 공이 외야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같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좋았어!”
“나이스 투런!”
마운드에 있던 최정원은 홈런을 맞고 이마에 가득 매달린 땀방울을 훔치며 다음 타자와 승부에 집중했지만.
아쉽게도 홈런을 맞고 흔들리기 시작한 제구 때문에 알렌 베이커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흔들리는 최정원.
언더핸드에서 나오는 그의 변화구는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리 큰 무기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리고 7번 타자인 이호승이 타석에 들어섰다.
최근 장타력을 내뿜으며 지명타자 자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호승이 제구가 흔들리는 최정원을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했다.
빠아악!
-또 넘어갑니다!
-한 이닝에 두 번의 투런포가 터집니다!
-점수는 순식간에 4대0으로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버틸 수 없다고 여긴 더블스타즈의 박태형 감독이 투수교체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미 활활 타는 호크스의 타선을 막을 수 없었다. 롱릴리프를 마운드에 올렸음에도 2회 초가 끝날 때 호크스는 7대0이라는 큰 점수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찾아온 2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 * *
2회 말 첫 타자는 탁성균.
강송구와 악연이 있는 탁성균의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최근 술을 못 마셨는지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우효는 탁성균을 보며 짧은 두 팔을 들고 소리쳤다.
-왔다! 왔다!
지난 청천 야구단 시절에 한 번.
프로 데뷔전에서 한 번.
총 두 번이나 만나서 강송구가 모두 이겼다.
다른 투수를 상대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가진 탁성균에게 있어서 지금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는 천적이었다.
‘천적? 천적은 개뿔…!’
그리고 그런 사실을 탁성균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인터넷 중계의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왔닼ㅋㅋㅋㅋㅋ
-모닥불러한테 무안타 행진! 말로만 ‘천재 타자’인 우리 더블스타즈의 슈퍼스타 탁성규닠ㅋㅋㅋ
-근데 이제 강송구는 흑마구라고 부르기 좀 뭐하지 않나? 벌써 구속이 130대 초중반까지 올라옴.
-그래도 아직 리그 평균보다는 낮으니 흑마구가 맞다.
-ㅋㅋㅋㅋㅋㅋㅋ 탁성균쉑ㅋㅋㅋㅋ 그래도 요즘 클럽에도 안 나타나고 술집에도 출석하지 않더라.
-그거슨 지방 원정때문이였구연ㅋㅋㅋㅋ
-얘 언제 음주운전 걸리려나?
-ㄴㄴ 안 걸림. 대신 차 운전하는 기사님이 있거덩ㅋㅋㅋ 꼴에 금수저라고ㅋㅋㅋㅋ
-더블스타즈의 모기업 이사님 아들이라며?ㅋㅋㅋㅋ 걸려도 몰래 넘어간 게 몇 개 있겠짘ㅋㅋㅋ
-망나니쉑! 흑마구 센세의 참교육을 받아라!
대부분이 조롱 섞인 말이었다.
그만큼 탁성균을 향한 좋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강송구는 좌타석에선 탁성균을 보곤 바로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드디어! 쓰는구나!
우효는 반짝이는 눈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The end of a Month]
-종류: 스킬
-효과: 패스트볼의 구속을 10km/h 증가시킵니다.
-단 1구만 적용됩니다.
-한 달에 1회 사용 가능.
-
[The end of a Innings]
-종류: 스킬
-효과: 패스트볼의 구속을 10km/h 증가시킵니다.
(단 최고구속 155km/h까지만 적용됩니다. 최고구속 155km/h부터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최고구속 155km/h을 달성하면 스킬의 능력이 변화합니다.
-단 '1이닝' 동안 적용됩니다.
-3일에 한 번 사용 가능.
새롭게 재창조된 스킬.
구속이 느린 강송구가 단 1이닝이지만 마법처럼 강속구 투수가 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원래 있던 스킬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쿨타임은 한 달에서 3일로 크게 줄었고.
단 1구만 적용되던 것도 1이닝으로 바뀌었다.
그것만으로 효용성은 대단했다.
‘내가 구속을 되찾기 전까지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이 나왔다.’
이 스킬을 지금 사용할 생각이었다.
허장성세를 이용하는 것이다.
조금씩 구속을 되찾고 있다고.
그리고 언제 이런 구속으로 삼진을 잡아낼지도 모른다고 타자를 압박할 생각이었다.
‘뭐, 4~5회쯤 가면 깨닫겠지. 우연이었다고. 내가 스킬을 핑계로 둘러댄 입스가 아직 다 회복된 게 아니라고.’
물론, 그때까지 타자들이 갑자기 빨라진 강송구의 구속에 신경을 쓰기만 해도 큰 이득이었다.
[플레이어]
-프로 1년 차
-이름: 강송구
-나이: 24세
-최고구속: 147.5km/h (스킬 적용 중)
-평균구속: 143.7km/h (스킬 적용 중)
평균 143km/h.
최고구속 147km/h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중학교 3학년 시절의 구속을 되찾았다.
여기에 배트 브레이커의 특성까지 합치면 컷 패스트볼을 던질 때 강송구가 던질 수 있는 최고구속은 152.5km/h가 된다.
그가 덤덤히 미소를 지었다.
‘단 1이닝이지만 나쁘지 않군.’
아직도 전성기 시절에 던졌던 구속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이 정도라면 쓸만한 수준의 구속은 되었다.
-좋았어! 이제 호구 잡으러 가자!
우효의 외침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진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초구는 몸쪽 컷 패스트볼.
그것도 전력투구였다.
포수가 미트를 내밀기 무섭게 강송구가 공을 던졌다.
몸쪽 코스로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
탁성균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그리고 배트를 내밀지는 않았다.
“스트라이크!”
동시에 전광판을 바라봤다.
-152.3km/h
150km/h를 넘는 강속구.
그것도 컷 패스트볼이 150km/h가 넘게 나왔다.
경기를 지켜보던 선수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동시에 인터넷 중계 채팅창도 터졌다.
-?
-???
-??뭐임???
-뭐냐?
-ㅋㅋㅋㅋㅋㅋㅋ 강송구 모닥불러라며? 152km/h 짜리 컷 패스트볼이 강속구가 아닌 나라가 있다? 뿌슝빠슝!
-어떻게 저런 구속이 나오냐?
-뭐야? 뭐야?
-구속을 되찾았나?
-그럴지도 모르지. 처음 데뷔했을 때랑 다르게 조금씩 구속이 오르는 추세이기는 했으니까.
-그러면 입스를 극복한 거야?
-그건 아닐 수 있음. 묘하게 탁성균을 상대할 때 저런 공을 종종 던지기는 했음.
‘역시 구속의 포텐셜을 예전 그대로야.’
김동식 감독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올해 구속을 제법 되찾을지도 몰랐다.
강송구는 그 정도의 포텐셜이 충분한 투수였으니까.
-아…. 방금 대단히 빠른 공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150km/h대의 컷 패스트볼이었죠?
-듣기로는 이 선수가 입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금씩 구속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저런 공이 가끔 나온다고 하는데…. 정말로 신기합니다.
중계진도 당혹감에 얼었다.
이를 꽉 문 탁성균.
그는 강송구가 던진 저 공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유난히 자신을 상대로 저런 공이 종종 던졌으니까.
그렇기에 침착하기로 했다.
‘130대 초반의 구속을 생각하자. 저런 공은 우연히 나온 것뿐이야. 구속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거야.’
이를 꽉 물고 타격자세를 잡은 탁성균.
그가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무섭게 노려봤다.
2구째.
강송구의 손에서 공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탁성균이 예상하지 못한 구속으로 바깥쪽 코스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움찔.
그가 생각했던 이상의 구속.
145km/h를 넘는 패스트볼이 다시 튀어나왔다.
그제야 탁성균이 당혹감을 드러내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것은 더블스타즈의 더그아웃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입스를 극복한 건가?”
“145km/h라고? 리그 평균을 조금 넘는 구속인데?”
“어떻게 된 거야? 진짜 140대 중반의 포심이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강송구의 피칭.
3구째는 좌타자의 바깥쪽 코스로 빠지는 싱커.
구속이 제법 붙은 강송구의 싱커는 B등급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탁성균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볼!”
빠지는 공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삼진이었다.
‘아니…. 씨팔!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
독기를 가득 머금고 타석에 들어섰던 탁성균은 이제 울분이 들어찬 표정으로 강송구를 노려봤다.
왜 자신을 상대할 때만 이럴까.
창천 야구단에서 붙었을 때 그가 더그아웃에서 내뱉었던 모욕적인 말을 기억해서 그러는 것일까?
탁성균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복잡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는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웃었다.
‘타자가 의욕을 잃었군.’
칠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강송구에게 압도가 되어서.
고작 140대 중반의 포심에 말이다.
130대 초반의 구속으로도 농락을 당하던 탁성균에게 지금의 강송구는 약점이 없는 천적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강송구는 겁을 먹은 타자를 누구보다 손쉽게 요리 할 줄 아는 일류 요리사였다.
4구째.
슈우우욱! 펑!
81km/h의 슬로우 커브가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에 정확히 떨어졌고, 탁성균은 맥없는 스윙을 하며 허무하게 무너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타석에서 물러나는 탁성균.
강송구는 그를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웃었다.
울컥.
‘저 새끼가 진짜….’
순간적으로 탁성균은 화가 났지만…. 마운드로 뛰어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늘따라 마운드에 선 강송구.
그의 우람한 육체가 눈에 크게 들어왔으니까.
결국, 탁성균은 ‘깨갱’ 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이어지는 5번 타자와 승부.
하지만 강송구의 구속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번 이닝에 강송구는 뛰어난 제구력과 압도적인 완급조절 능력을 갖춘 투수가 준수한 구속을 얻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더블스타즈의 선수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5구 승부 만에 삼진을 허용한 더블스타즈의 타자.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강송구는 경기 초반에 상대 타선에 압박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세 타자 연속 탈삼진이 경기 초반에 상대 타선을 압박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
2회 말.
투 아웃의 상황.
타석에 들어선 더블스타즈의 6번 타자.
우익수 정민준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자신을 상대로 150대 초반의 컷 패스트볼을 연이어 던지는 강송구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아오! 왜 하필 오늘 우릴 상대로 그런 강속구를 던지는지 모르겠네. 탁성균 선배한테랑 악연이 있어서 그런가?”
그런 중얼거림에 포수인 박진수가 이죽거렸다.
“너 연좌제를 몰라?”
“...”
입을 꾹 닫은 정민준.
그가 다시 타격에 집중했다.
그는 생각했다.
컷 패스트볼만 조심하자고.
포심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노리자고.
‘컷 패스트볼만 조심하자. 패스트볼은 리그 평균에 조금 빠른 수준밖에 안 돼.’
그리고 강송구는 패스트볼만 노리는 타자를 상대로 누구보다 쉽게 아웃을 잡아낼 수 있는 무기인 체인지업을 꺼내며 깔끔히 삼진을 잡아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깔끔히 끝난 2회 말.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를 더블스타즈의 선수들이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