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레코드 브레이커(4)
한 시즌에 두 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수 있는 투수가 과연 한국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아쉽게도 한국에는 한 시즌에 두 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투수가 아무도 없었다.
미국으로 그 범위를 늘리면 제법 존재한다.
버질 트럭스.
조니 반더 미어.
앨리 레이놀즈.
놀란 라이언.
로이 할러데이.
그리고 2015년에 MLB 통산 6번째로 한 시즌에 2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맥스 슈어져까지.
아무튼, 한 시즌에 2번의 노히트 노런은 MLB에서도 그 수가 적을 정도로 힘든 기록이다.
그리고 찾아온 8회 초.
몸이 차갑게 식는 시간대.
분명히 5월 말임에도 이상하리만큼 심장과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강송구.
그가 모자를 고쳐 쓴 뒤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보며 박진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6개.’
그는 ‘7-8-9’의 하위 타선부터 시작하는 이번 이닝이 어쩌면 가장 힘든 이닝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꾸우욱.
‘아직 손아귀의 힘은 괜찮아.’
구위가 조금 떨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제구가 아예 안 될 만큼 손아귀의 힘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오늘 제구도 나쁘지 않았다.’
경기 초반에 바깥쪽 존을 가늠하느라 볼넷을 제법 내준 것을 생각하면 준수한 수준의 제구였다.
타석에는 스왈로스의 선두 타자가 들어섰다.
-대타네. 좌타자를 넣었어.
그리고 번트 자세를 잡는 타자를 보며 박진수와 강송구가 조용히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흔들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우우우우우우!
야유가 쏟아지는 대전 호크스 파크.
하지만 타자는 번트 자세를 풀지 않았다.
박진수가 사인을 보냈다.
‘몸쪽 컷 패스트볼.’
강송구는 그 사인을 보고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박진수 선배는 페이크 번트-슬래시를 생각하는군.’
번트 수비를 위해서 앞으로 나온 내야수들.
강송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두 타자가 무슨 생각으로 페이크 번트까지 하면서 투수를 흔들려고 하는지 이해했다.
‘내가 아니라 야수진을 흔들려는 속셈이군.’
조금이라도 내야진에서 실수가 나오길 바라는 것이다. 아마도 교체로 투입된 이호승을 노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번 이닝.
강송구는 범타를 유도할 생각이 없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몸쪽으로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
타자는 번트 자세를 풀며 움찔 몸을 떨었다.
‘무슨 공이 이렇게 살벌해?’
-초구는 몸쪽 컷 패스트볼입니다.
-아직도 구위가 제법 살아있습니다. 이제 100구를 조금 넘은 상황에서 강송구 선수가 좋은 공을 보여줍니다.
-대단한 체력이네요. 예전에 저는 100구만 넘어가면 손아귀에 힘을 주기도 힘들어했는데 말이죠.
-말씀드리는 순간 2구째 승부.
-좌타자 바깥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네요.
-카운트는 1-1입니다.
‘쉽지 않겠지.’
타석에 선 타자가 더그아웃을 바라본다.
강송구는 그 모습을 관찰하듯이 노려봤다.
‘몸쪽 커브.’
이번에는 강송구가 사인을 보냈다.
오늘 딱 5번밖에 던지질 않은 커브를 요구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박진수.
그가 자신 있게 미트를 내밀었다.
‘슬라이더의 비중도 올려서 커터와 섞어 던진다.’
어느 정도 강송구의 구종이 타자들의 눈에 익은 상황이기에 그는 구사 비율이 낮은 커브나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섞어서 타자에게 혼란을 주기 시작했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빠지는 커브에 헛스윙!
-방금은 버스터였죠? 페이크 번트-슬래시.
-맞습니다. 하지만 강송구 선수가 던진 커브에 헛스윙하면서 아쉽게도 타자에게 불리한 카운트가 되었습니다.
투 스트라이크를 만든 상황.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에 헛스윙한 스왈로스의 타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뭐라 중얼거렸다.
‘아마도 욕설이겠지.’
강송구는 덤덤히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골고루 손에 송진을 바른 그는 ‘후!’하고 손에 묻은 가루를 털고서 박진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체인지업.’
그의 사인에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이어지는 피칭.
타석에 있는 타자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차갑게 식기 시작하는 자신의 등줄기를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뭘 노려야 하지?’
컷 패스트볼과 싱커는 어느 정도 눈에 익었다.
하지만 강송구는 그 사이에 슬라이더와 커브를 섞고 필요하면 떨어지는 공인 스플리터를 던졌다.
‘바깥쪽 코스로 던질 거다.’
그건 예상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강송구가 좌타자를 상대로 바깥으로 던질 수 있는 구종이 제법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커브일까?’
방금 보여준 커브라면 노려볼 만했다.
‘아니야….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추자.’
어차피 빨라도 130대 초반의 구속이다.
상황에 맞춰서 배트를 휘두르면 그만이다.
타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서 타격에 임하는 그에게 강송구는 바깥쪽 체인지업을 던졌다.
슈우우욱! 부우우웅!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깔끔한 타이밍에 떨어진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한 타자가 혀를 내두르며 타석에서 벗어났다.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은 그런 강송구를 보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날카로운 피칭이었다.
주심에게 공을 바꿔 달라고 한 뒤에 강송구에게 던져주는 박진수가 오늘 그의 피칭을 평가했다.
‘오늘 제대로 날이 선 것 같네.’
아무래도 컨디션이 정말 좋아 보였다. 그렇다고 대기록을 앞두고 시야가 좁아진 것도 아니었다.
저 어린 투수는 베테랑처럼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고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갈지 판단한다.
‘정말 24살의 투수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야.’
뭐, 얼굴 때문에 더 베테랑처럼 보이기는 한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강송구의 등을 바라보는 호크스의 내야수들.
그들의 눈에는 점점 경외감이 생기고 있었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5개.
강송구는 이번 이닝이 끝나고 8회 말이 조금은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조금은 지치는군.’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더그아웃에 호크스의 승리조 불펜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풀고 있겠군.’
아마도 기록이 깨지면 바로 그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급하게 몸을 푸는 느낌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번 이닝은 나에게 온전히 맡기겠다는 뜻이겠지. 뭐…. 난 다음 이닝에도 내려갈 생각이 없지만.’
따악!
“아웃!”
강송구가 낮게 제구한 싱커를 던져서 깔끔하게 범타로 아웃을 하나 잡아냈다.
8번 타자가 타석을 빠져나가며 하늘을 올려본다.
아무래도 조금씩 심적 부담이 될 것이다.
기록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부담감.
그게 타자들의 배트를 무겁게 만들고 있다.
‘그건 우리 쪽도 마찬가지겠지.’
슬쩍 몸을 돌려 내야진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부담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나한테만 오지 마라.’ 같은 생각으로 꽉 들어차서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강송구는 빠르게 피칭을 가져갔다.
따악!
내야로 높게 뜬 공.
강송구가 8회 초도 깔끔히 막아냈다.
이제 남은 이닝은 1이닝.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3개.
8회 말의 공격.
조금은 지친 강송구를 위해서 호크스의 타자들이 최대한 공을 오래 보면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이제야 뭔가 팀 같은 구석이 만들어진 느낌이네.’
-그런가?
‘대기록이라는 압박감 앞에서 결국에 믿을 수 있는 건 같은 필드를 공유하는 팀 동료들뿐이니까.’
아마도 오늘이 끝나면 다시금 파벌이 나뉘겠지만, 오늘만큼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따악!
“아웃!”
호크스의 마지막 타자가 아웃을 당했다.
제법 긴 시간을 쉴 수 있었던 강송구.
그가 이제 마지막 이닝을 끝내기 위해서 천천히 마운드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거대한 육체가 움직이는 것을 스왈로스의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지독한 녀석.”
* * *
“...”
잠깐의 침묵.
김명진 사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TV를 봤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에게 새로운 기록을 여러 번 만들면 소원도 여러 개 들어주실 거냐고 물어본 당돌한 투수.
그가 지금 대기록을 앞두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한 시즌에 2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투수’라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단 3개의 아웃 카운트를 남겨놓고 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서 저런 투수가 나타난 거지?”
동시에 그런 위대한 기록에 도전하는 투수를 향한 큰 기대감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초라하게 만든 야구에 대한 알 수 없는 증오와 질투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이 몰려왔다.
김명진 사장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TV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사랑하던 야구단을 할아버지에게 물려받기 위해서 그는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욕보였다.
그래서 야구를 싫어했다.
아니, 야구를 미워했다.
이게 다 야구 탓이라고.
“아니…. 사실은 그게 아니지.”
그래, 사실은 떼를 쓰는 것이다.
조금은 차가운 사람이지만, 사실은 그의 할아버지인 2대 회장도 그의 어머니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그도 슬퍼했다.
그저 김명진 사장이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을 뿐.
그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의 액정을 보니 백동혁 단장에게서 온 전화다.
“미치겠군.”
김명진 사장이 눈을 찌푸렸다.
아마도 지금 화면을 그도 보고 있는 것이겠지.
그가 전화를 받으니 스마트폰 너머로 백동혁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있습니까?
“네,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해주신 것을 모두 들어주시겠죠?
김명진 사장은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백동혁 단장의 말이 얄밉게 느껴졌다.
치이익!
그가 조용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우.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그러지.”
-그러면 있다 뵙겠습니다.
끊어진 통화.
김명진 사장은 조용히 스마트폰 액정을 바라보다가 다시 TV로 시선을 고정했다.
TV 화면 안에는 강송구가 선두 타자를 상대로 풀 카운트에 가까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
* * *
오늘 경기의 시작을 알린 타자.
김형필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조금은 초조한 표정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렇게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풀 카운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타를 만들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히 지쳤는데…. 왜?’
지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송구의 구위는 떨어지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플리터가 떨어졌고.
초조한 김형필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는 이를 꽉 물고 괴성을 내질렀다.
“아오오오오!”
원래는 2번 타자 김태용의 타석.
하지만 스왈로스는 이번에도 대타를 기용했다.
‘또 좌타자군.’
하지만 강송구는 개의치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애매한 좌타자를 상대로 몸쪽 컷 패스트볼을 던져서 깔끔히 삼진을 잡아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경기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남겨두고 3번 타자 한동혁이 조용히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는 우타자 몸쪽 싱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한동혁은 120구가 넘게 던진 강송구가 아직도 이런 구위를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1회보다는 조금 구위가 떨어지기는 했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경기 초반과 다르게 구위가 조금은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문제는 완급조절이다.’
그는 설마 했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가 구속을 조절해서 오늘 자신들을 이렇게 깔끔히 요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그는 억지로 배트를 비틀어 커트했다.
‘쯧….’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공은 어떤 공일까.
긴장 어린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보는 한동혁.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공이 강송구의 손을 빠져나와 홈플레이트로 날아들었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낮은 코스를 노리던 한동혁의 헛스윙을 끌어낸 마지막 공은 몸쪽 높은 코스로 날아든 128km/h의 패스트볼이었다.
“으아아아아아!”
강송구에게 집중하던 관중들.
그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더그아웃을 뛰쳐나오는 호크스의 선수들.
곧이어 강송구의 몸이 스포츠음료로 적셔졌고 선수들이 그의 등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런 강송구의 귓가에 시스템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잠깐 홀로그램을 꺼두고 이번 시즌의 두 번째 노히트 노런에 기쁨을 만끽했다.
강송구.
그가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한 시즌에 2번의 노히트 노런에 성공하며 대기록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