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36화 (36/198)

#36. 레코드 브레이커(2)

경기시각이 가까워진다.

대전 호크스의 홈인 ‘대전 호크스 파크’가 조금씩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관중들이 하나둘씩 들어차고 있다.

창원 스왈로스는 앞선 3연전의 첫 번째 경기에서 1선발 김진수를 내보내 4대3으로 승리를 거머쥔 상태.

그 뒤를 이어서 2선발인 데니스 카밀을 내보내며 가볍게 위닝시리즈를 가져갈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호크스는 5월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강송구를 마운드로 올렸다.

창원 스왈로스의 유정길 감독은 타자들은 모아놓고 차가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려는 놈은 그저 그런 5선발 투수가 아니라 이제 호크스의 토종 에이스가 된 준수한 선발이다.”

“네!”

“메이저리그에서도 먹힐 컷 패스트볼, 스플리터, 싱커를 가진 투수를 상대로 어수룩한 마음을 먹고 타석에 들어설 거라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바꿔주지.”

타자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잘 훈련받은 군인처럼.

“좋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해라. 상대가 마운드를 내려가기 전까지 악착같이 물어뜯고 괴롭혀라!”

“네!”

유정길 감독은 그런 선수들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저 치킨 녀석들에게 리그 1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 주자!”

1회 초.

때마침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

그가 슬쩍 창원 스왈로스의 더그아웃을 살폈다.

-분위기가 아주 살벌한데?

‘바짝 군기가 든 군인 같군.’

가벼운 연습 투구가 끝나자 창원 스왈로스의 1번 타자인 김형필이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시프트를 가져가는 대전 호크스의 야수들을 보며 조용히 배트를 들어 올렸다.

‘삼유간이 텅 비었어.’

리드오프지만 누구보다 강타자처럼 극단적인 당겨치기를 즐기는 김형필에 맞춘 수비 시프트.

초구.

좌타자의 바깥쪽에 걸친 포심 패스트볼.

“볼!”

조금 빠지는 코스였다.

‘생각보다 공의 움직임은 좋다.’

확실히 강송구의 패스트볼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 타석에서 직접 보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이윽고 제2구를 던지는 강송구.

슈우우욱! 펑!

아까보다 조금 더 들어오는 코스.

선구안이 좋은 김형필이 이번에도 배트를 내밀지 않고 조용히 강송구가 던지는 공을 지켜봤다.

“볼!”

이번에도 주심은 잡아주지 않았다.

‘바깥쪽부터 천천히 존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공을 하나만 더 볼까?’

제3구.

김형필은 이번에는 몸쪽으로 공이 들어오지 않을지 궁금해하며 다시금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바깥쪽에 날아드는 강송구의 공.

이번에는 컷 패스트볼이었다.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존에 완벽히 걸치는 공이었다.

그리고 김형필은 강송구의 컷 패스트볼을 보고 바로 머릿속에서 그 공을 지워버렸다.

‘이건 내가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다.’

차라리 다른 공을 노리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것보다 오늘따라 강송구의 피칭이 많이 이상한 것 같았다.

바깥쪽으로 던진 공만 3개.

계속해서 바깥쪽만 던질 생각일까?

‘그건 아니겠지.’

김형필이 두 눈을 번뜩였다.

슬슬 공 하나를 노려도 될 것 같았다.

조금은 허술한 코스로 들어오는 공을 말이다.

그리고 4구째 이어지는 투구.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몸쪽 낮은 코스로 정확히 파고든 커터에 김형필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만 공을 더 지켜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투수가 내 생각을 읽은 건가?’

강송구의 패스트볼 타이밍을 떠올린 김형필.

그가 다음 공에는 무조건 배트를 휘둘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시금 타석에 들어섰다.

볼 카운트는 2-2의 상황.

이윽고 강송구의 5구째가 이어졌다.

슈우우욱!

‘패스트볼이다!’

김형필은 몸쪽으로 파고드는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서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

그가 예상했던 패스트볼 타이밍과 완전히 다른 속도의 공이 날아든 것이었다.

틱!

빗맞은 공이 투수 정면으로 굴렀다.

강송구는 침착하게 공을 잡아내고 바로 일루수의 미트로 공을 던지며 침착하게 첫 번째 아웃을 잡아냈다.

“선배님 마지막 공은 뭐였습니까?”

2번 타자 김태용의 물음에 김형필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분명히 속구였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선 김태용이 자세를 잡고 다시 타자와 투수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빠르게 사인을 보내는 강송구.

고개를 끄덕인 박진수가 바깥쪽으로 미트를 옮겼다.

* * *

“뭐지?”

“우리가 뭐에 홀린 건가?”

“어떻게 3회 초까지 얻어낸 기록이 볼넷 하나뿐인 거야? 오늘 상대 투수의 컨디션은 나빠 보였다고!”

“구속이 전보다 느린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지?”

3회 초가 끝나고.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창원 스왈로스의 타자들은 더그아웃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강송구의 최고 구속은 고작 131km/h였다.

평소보다도 2~3km/h는 느린 공.

하지만 그 누구도 시원한 타격을 하지 못했다.

꽉 막힌 변기처럼 막힌 타선.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이 모두가 강송구에게 허무하게 아웃을 헌납했다.

하지만 창원 스왈로스의 유정길 감독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을 보여 주고 있는 상대 투수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

소름이 돋을 정도의 피칭이었다.

분명히 상대는 이번에 데뷔한 신인이었다.

‘꼭 그렉 매덕스처럼 공을 던지는군.’

그래, 느린 구속을 제외하면 모든 게 완벽했던 투수.

그렉 매덕스처럼 던지고 있었다.

‘살벌한 무브먼트와 송곳 같은 제구력, 그리고 압도적인 투심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피칭을 했던 매덕스와 다르게 강송구는 뛰어난 컷 패스트볼을 활용하고 있다.’

거기다 더 소름이 돋는 것은 필요하면 중간중간 톰 글래빈처럼 바깥쪽 코스를 집요하게 노리기도 했다.

특히 선구안이 좋지 않은 좌타자를 상대로 집요하게 바깥쪽으로 빠지는 스플리터나 체인지업만 던져서 삼진을 잡았을 때는 등에 소름이 돋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못 잡을 투수는 아니다.’

아무리 강송구가 그렉 매덕스와 톰 글래빈의 피칭을 오마주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강송구는 그렉 매덕스처럼 소름이 돋는 투심 패스트볼을 갖춘 것도 아니며, 톰 글래빈처럼 바깥쪽을 섬세히 찌를 제구력을 갖춘 투수도 아니니까.’

그렇기에 흔들리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유정길 감독은 그렇게 생각했다.

4회 초.

유정길 감독의 예상과 달리 강송구는 4회 초에도 깔끔한 피칭을 선보이며 선두타자인 2번 타자 김태용을 상대로 깔끔히 삼진을 잡아냈다.

첫 아웃 카운트를 깔끔히 잡아낸 강송구.

그리고 창원 스왈로스의 3번 타자.

지옥의 클린업 트리오 중에서 최근 가장 타격감이 뜨거운 한동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한동혁을 상대하기 전.

강송구는 바깥쪽 코스의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공 반 개를 더 잡아준다.’

주심이 드디어 속은 것이다.

앞선 타자인 김태용과 승부에서 바깥으로 공 반 개가 빠지는 코스를 주심이 잡아주었다.

이제 바깥쪽 코스로 들어가는 공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타자들을 골려주면 된다.

“스트라이크!”

초구.

127km/h의 싱커.

조금 바깥쪽으로 빠졌음에도 주심이 시원하게 스트라이크 콜을 외치며 잡아주었다.

타석에 들어선 한동혁이 조금은 당황한 것 같았다.

‘뭐야? 1회 초에는 안 잡아주던 코스였는데?’

타자가 동요하는 것을 확인한 박진수.

그가 바로 강송구에게 사인을 보냈다.

이번에도 바깥쪽으로 걸치는 스플리터.

따악!

“파울!”

아까보다 조금 더 빠지는 공이었음에도 한동혁은 급히 배트를 내밀었고 파울이 되었다.

뭔가 타격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한동혁.

그가 급히 타임을 걸고 잠깐 타석 밖으로 나왔다.

‘쯧…. 조금 더 허우적거리지.’

박진수가 포수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며 혀를 찼다.

이래서 베테랑들이 성가시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오늘 강송구의 피칭은 다른 투수처럼 구속으로 압도하는 느낌은 없지만, 보는 이들에게 등 뒤가 저릿하게 만드는 송곳 같은 피칭을 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타석에 들어선 한동혁.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다시 여유를 찾았다.

‘스플리터를 노리자.’

아까 강송구가 던진 스플리터에 배트가 힘겹게 따라가기는 했지만,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다른 공은 철저히 커트한다.’

컷 패스트볼은 최대한 거르고 다른 공을 커트하면서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받아칠 생각이었다.

이어지는 강송구의 피칭.

슈우우욱! 펑!

“볼!”

몸쪽 깊게 들어간 커터.

한동혁은 순간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저 컷 패스트볼은 거르자.’

도저히 좌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한동혁이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잡았다.

‘스플리터.’

그는 오직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만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강송구의 손에서 바깥쪽에 걸치는 스플리터가 튀어나왔다.

‘왔다!’

공이 오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한동혁이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는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홈런이라고.

절대로 헛스윙을 할 수 없다고.

스플리터의 구속과 떨어지는 타이밍, 그리고 공의 궤적까지 생각해서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뭔가 조금 이상했다.

아까 던진 스플리터와 뭔가 차기가 있었다.

그리고 한동혁은 그 차이를 금방 깨달았다.

‘공이 조금 늦는다!’

배트가 조금 빠르게 나온 것처럼 보이는 상황.

조금 더 늦게 홈플레이트를 통과한 공이 그대로 한 번 튀어서 포수의 미트에 정확히 안착했다.

박진수가 가볍게 한동혁의 엉덩이에 미트를 가져가면서 이번 이닝의 두 번째 아웃도 잡아냈다.

허무하게 아웃을 당한 한동혁.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아까와 같은 코스에 같은 궤적이었다.

거기다 떨어지는 타이밍까지 같았다.

그런데 배트는 헛돌았다.

“허….”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한동혁을 보면서 작은 고슴도치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왔네.

우효는 아까와 지금 던진 스플리터의 차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25km/h의 스플리터랑 117km/h의 스플리터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우효의 말을 들은 강송구가 슬쩍 새롭게 추가된 특성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완급조절]

-종류: 특성

-효과: 모든 구종의 구속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심플한 설명.

하지만 강송구는 이 특성이 가진 대단함을 효과를 보자마자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왜 다이아 등급인지 알 수 있는 특성이다.’

모든 구종의 구속을 자유롭게 조절한다.

이건 공이 느린 강송구에게 날개를 하나 달아준 것이나 다름이 없는 특성이었다.

던질 수 있는 구종이 갑자기 수십 개가 늘어난 느낌이라고 봐도 충분했다.

이 특성 덕분에 타자와 승부에서 더욱 수월하게 심리적인 이점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투 아웃의 상황에서 4번 타자와 승부.

올해는 조금 시원치 않은 출발을 보여 주고 있지만, 시즌마다 3할 이상의 타율과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강타자인 최재빈이 타석에 들어섰다.

지금의 구위로는 찍어누를 수 없는 강타자.

그렇기에 강송구는 생각했다.

타자의 타이밍을 뒤흔들자고.

느린 공, 더 느린 공으로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