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35화 (35/198)

#35. 레코드 브레이커

“무슨 생각입니까?”

백동혁 단장이 물었다.

그 물음에 김명진 사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테스트입니다.”

“테스트?”

“한 시즌에 다른 팀을 압도할 수준의 선수가 없이 어떻게 가을야구에 진출하겠습니까? 이번에 제가 선수들에게 내건 내기는 그걸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입니다.”

“....”

“전반기 동안…. 단장님이 부탁한 것처럼 도와드리겠습니다. 선수단의 파벌 다툼은 몰라도 코치진이 갈라져서 싸우는 일은 이제부터 없을 겁니다.”

그러고는 잠깐 창밖을 보던 김명진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에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 제가 내건 내기를 달성하는 선수가 없으면…. 후반기가 시작하기 무섭게 팀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게 만들 생각입니다.”

“...”

“후반기가 시작되고 당신을 시작으로 감독과 코치 등등…. 모든 이들을 자를 겁니다. 그리고 팀에서 중요히 여기는 선수들을 몇 년에 걸쳐서 트레이드하면서 팀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겁니다.”

“2대 회장님이 허락하겠습니까?”

“할아버지는 야구를 사랑하지만…. 야구는 모릅니다. 제가 옆에서 ‘팀을 위해서 그랬다. 감수해야 할 일이다.’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반박할 수 없군요.”

확실히 호크스의 모기업.

정화그룹의 2대 회장은 야알못이니까.

“그래도 전반기에 제가 내건 조건을 달성하는 선수가 있다면…. 약속드리죠. 후반기의 호크스는 윈나우(Win now)로 방향을 돌려서 단장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조용히 김명진 사장을 바라보던 백동혁 단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사장님이 말씀하신…. 압도적인 기록이나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을 달성한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커트라인이 뭡니까?”

“국내 최고와 최초.”

“...”

“선동렬 전 감독의 49.2이닝 무실점 기록이나, 강형준 투수의 9이닝 개인 최다 탈삼진 18개, 이대진 전 코치의 한 경기 최다 연속 탈삼진 기록 10개 등등…. 국내 최고의 기록을 달성하면 됩니다. 아니면 전반기 최고의 활약을 보여줘도 충분하겠죠.”

“그렇다면 최초는 뭡니까?”

“당연히 아직도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은 퍼펙트게임이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런 기록들을 기록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호크스에는 없는 역사를 만드는 선수.

그런 선수가 있다면 해볼 만했다.

호크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말이다.

“아무튼…. 전반기가 끝나는 올스타전까지 제가 정한 목표를 이룩하는 선수가 나온다면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백동혁 단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지켜보면서 선수단 중에서 미치는 선수가 하나 나오길 기도해야 할 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백동혁 단장의 머릿속에는 지난번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만든 한 선수가 떠올랐다.

‘우습군…. 분명히 구속이 130대 초반밖에 나오지 않는 그저 그런 투수일 뿐인데.’

그저 그런 선수일 뿐이다. 그런데 왜 백동혁 단장의 머릿속에서는 강송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그가 덤덤히 웃었다.

“제발 내 감이 옳았으면 좋겠군.”

* * *

우효는 두 눈을 번쩍였다.

-이거 완전 기회 아니냐?

“기회?”

-그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도 않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아니냐고?

“음….”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퍼펙트게임만 하나 만들자. 그리고 내년에 우승이랑 상관없이 메이저리그에 보내달라고 소원이나 하나 빌자.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

-왜? 카드 좀 긁으면서 좋은 스킬이랑 특성만 좀 모으면 어마어마한 기록 하나쯤 나온다니까! 어? 내 생각에 이 팀은 답이 없어. 속을 보면 확실히 기본적인 내실이 있지만, 근본이 문제라서 과육은 먹을만하지만, 지독한 냄새가 나서 문제인 두리안과 비슷한 팀이라고!

“그래도 불가.”

강송구의 단호한 대답에 우효가 짧은 팔로 콩콩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왜애애애앵!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또 아버지! 아버지!

“남자는 스스로를 속이면 안 된다고.”

-뭐?

“구속이 느린 내가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최소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 한다.”

-너 그러다가 영원히 한국에서만 뛴다니까?

“그렇다면 그게 내 한계겠지.”

-허…. 미친놈!

“미치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도 않겠지.”

그래.

괴물들이 가득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면, 그리고 그 위대한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미칠 필요가 있다.

덤덤히 아이패드에 담긴 자료를 살피던 강송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소원을 한 가지만 들어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여러 기록을 달성할 때마다 소원을 계속 들어준다고 했지.”

-설마….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야?

“남자는 가끔 돈 많은 졸부의 등골을 좀 빼먹어도 된다고. 그렇게 해서 꿈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뻔뻔해지라고.”

-그거 완전 쓰레기 발언 아니야?

“지금 탈룰라를 한 건가?”

-아…. 아니! 그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조언이잖아! 남의 등골을 빼먹고 성공하라는 조언이잖아?

우효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그래서 조건이 달렸잖아. ‘졸부’의 등골을 빼먹으라고.”

-허…. 이거 완전 양아치잖아.

“약속하나 하지.”

-갑자기 무슨 약속?

“정화그룹이 소유한 호텔에는 세계 모든 과일이 가득한 특별한 디저트 바가 있다고 들었다.

-세계…. 모든 과일?

꿀꺽.

우효가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전 세계의 과일이 가득한 디저트 바?

그런 천국이 있단 말이야?

-그…. 그게 왜?

“내가 얻어낸 소원 중에서 하나를 써서 네가 정화그룹이 소유한 호텔에 있는 디저트 바에서 온종일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어때?”

그 말을 듣자마자 우효가 태도를 바꿨다.

-믿겠습니다! 행님! 남자라면 역시 꿈을 위해서 졸부들의 등골을 빼먹어야죠! 당연한 말씀입죠. 헤헤헤!

* * *

5월 말.

강송구는 지금까지 5경기에 출전해서 37.1이닝 동안 단 2실점에 그치는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평균자책점은 당연히 0점대를 기록하고 있었고, 중간에 노히트 노런까지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5월이라는 한 달간 강송구가 보여준 활약은 어마어마한 기록이었다.

당연히 호크스의 팬들은 새롭게 등장한 토종 에이스의 모습에 환호하며 강송구의 활약을 즐겼다.

-크크…. 서울 데빌스 녀석들이 평균 구속이 130km/h도 겨우 나오는 유희종을 왜 쓰나 했더니…. 이런 맛이 있구나!

-이 좋은 모닥불러를 데빌스만 쓴 거야? 어?

-캬! 호크스 싼다요! 싼다요!

-아아…. 진다는 게 무엇이지?

-내 순위 6위…. 만족할 수 없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심.전.력을 내보실까? 후훗.

-와 미친놈들.

-또또또 호크스 놈들 설레발은 오지게 치네.

-ㅋㅋㅋㅋ 놔둬라. 즐기시게.

거기다 5월 중순부터 코치진들의 파벌 다툼이 사라지자 성적도 생각보다 조금씩 올라서 5월 말에 호크스의 순위는 수원 나이츠와 함께 공동 6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팬들의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호크스 내부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선수단의 갈등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이야! 좋아! 좋아!”

제법 긴 유배를 끝내고 돌아온 김효곤.

그가 1군에 돌아오기 무섭게 다시 선수단은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들이 무리를 지어서 나뉘었다.

-아오…. 저 콩가루 같은 녀석들. 저 녀석들은 더운 여름에 콩국수를 먹을 필요 없이 물이랑 면만 먹으면 될 거야. 자기 몸이 콩가루로 되어있으니까!

우효가 화를 내며 선수단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디저트 바를 온종일 이용하게 해주겠다던 강송구의 약속에 완전히 마음이 빼앗긴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강송구의 등판일이 잡혔다.

5월 마지막 등판이 될 경기.

상대는 리그 1위인 창원 스왈로스였다.

‘쉽지 않은 상대군.’

스프링캠프에서 상대해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1군과 2군이 섞여서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옥의 클린업 트리오가 5월에 조금 헤매고 있으니까.’

그래도 스왈로스의 팀 성적은 좋았다.

워낙 팀 스쿼드의 뎁스가 두텁고 투수진도 필요할 때는 듬직하게 마운드를 지켜준다.

‘이런 팀이 강팀이라고 불리는 팀이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팀.

서로서로 실수나 슬럼프를 지탱해주는 팀.

창원 스왈로스는 그런 팀이다.

그렇기에 이번 경기가 더 중요했다.

‘그 지옥의 클린업 트리오를 상대로 호구를 잡아놓을 좋은 기회다. 최근에 폼이 올라오는 느낌이 있었지만, 완전히 폼이 올라오려면 6월 중순까지는 가야 할 거야.’

문제는 없었다.

최대한 많은 준비를 했으니까.

거기다 오늘까지 모아놓은 포인트를 활용하면 루비 카드를 하나 뽑을 수 있었다.

[루비 카드를 구매하셨습니다.]

강송구는 망설임 없이 카드를 구매했다.

‘정말 포인트가 들어갈 구석이 너무 많군.’

카드도 사야 하고, 성장 스킬의 잠겨있는 효과를 풀기 위해서 포인트를 투자해야 했다.

물론, 우효가 듣는다면 발작을 할 발언이지만….

저 작은 고슴도치는 호텔 디저트 바에 한 눈이 팔려있기에 강송구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루비 카드를 개봉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강송구.

촤르르륵!

50장의 카드가 깔리기 시작했다.

-화이팅! 나만의 과일이 가득한 디저트 바를 위해서 무조건 다이아 카드를 뽑아라!

우효가 응원하는 가운데.

강송구의 시선이 빠르게 50장의 카드를 살폈다.

그리고 보이는 하나의 카드.

그 어떤 카드보다 환하게 빛나는 무지갯빛이 강송구의 눈을 사로잡았다.

‘나왔군.’

다이아몬드 등급의 카드.

과연 어떤 능력이 들어있을까?

강송구가 조심스럽게 카드를 선택했다.

‘처음 나온 다이아 카드에서는 구종 전용 특성이 나왔었지.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스킬이나 특성이 나온다면 좋겠는데….’

빙글빙글.

회전을 천천히 멈추는 카드.

곧 카드의 앞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음….”

우효는 의아함이 담긴 표정이었고.

강송구는 묘한 웃음기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 * *

박진수.

그는 호크스에 온 뒤로 4~5월까지 돈값에 어울리는 활약을 하면서 호크스가 오랜만에 먹튀가 아닌 성공한 FA 선수를 데려왔다는 평가를 받게 하고 있었다.

거기다 김동식 감독의 부탁으로 젊은 선수들의 구심점이 돼서 주장에 가까운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런 박진수는 항상 경기 전에 선발투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어주려 하거나, 그 날의 컨디션을 파악해서 미리 코치진에게 말을 해놓기도 하는 편이다.

하지만 단 한 선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분명히 젊은 선수인데, 이상하리만큼 베테랑처럼 보이는 이 투수는 오늘도 여유롭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도 리그 1위를 차지한 창원 스왈로스의 타선을 상대하게 되었음에도 말이다.

‘베테랑도 저런 침착함은 유지할 수 없을 거야.’

그래서 강송구가 등판하는 날에는 경기의 준비를 조금 편하게 할 수 있는 편이었다.

“오늘 등판은 어때?”

박진수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라커룸에 들어섰다.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강송구를 바라봤다.

표정을 보니 오늘도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강송구가 뜬금없는 것을 물어봤다.

“선배님, 어제 스왈로스의 일루수인 한동혁 선배가 안타를 몇 개나 기록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인천 드래곤즈와 경기였지? 4타수 1안타 1볼넷이었나? 안타는 장타 코스였고.”

“오늘 한동혁 선배를 상대로 수비 시프트를 지시할 때, 라이트 시프트로 수비 시프트를 가져가실 생각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동혁이는 장타를 의식하면 지독하게 당겨치는 타자니까. 수비 시프트를 가져가면 땅볼을 유도해서 손쉽게 아웃 카운트를 잡아낼 수 있을 거야.”

“그렇군요.”

“그런데 갑자기 왜?”

“굳이 한동혁 선배를 상대할 때 수비 시프트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뭐?”

순간 박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근에 너무 성적이 좋아서 자만심이 깃든 것일까?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강송구가 입을 열었다.

“오늘 기록을 세울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것도 압도적인 기록을 말입니다.”

그가 강송구의 살벌한 눈빛을 보고 움찔 몸을 떨었다.

그래, 저건 자만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하게 상대를 잡을 수 있는 자신감.

그게 강송구의 두 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진수는 그런 강송구를 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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