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32화 (32/198)

#32. 땅의 요정 송구!(3)

이호승.

부산 티탄즈에 입단한 그는 작년에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어 2군 생활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 스프링캠프에서 뛰어난 수비능력을 인정받아서 1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1군이야!’

그는 4월에 있는 개막전에 출전해서 4타석 1안타 1득점을 기록하면서 준수한 출발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게 이호승이 출전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경기였다.

어쩔 수 없었다.

“애매하죠.”

“김효곤을 밀어낼 실력이 아니고, 그렇다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조규환보다 더 가치가 있는 선수도 아니고.”

“둘 중 하나만 없었어도 무조건 이호승이 주전을 거머쥐었을 거야. 수비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는 선수니까.”

주전 이루수인 김효곤을 밀어낼 만큼의 타격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렇다고 주전 삼루수 경쟁에서도 그가 조규환보다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조규환은 대전 호크스의 성골이었고.

그는 이제 팀에 합류한 1년 차 프로였으니까.

하지만 강송구는 이호승의 가치를 높게 봤다.

‘한국 내에서 그보다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 이루수와 삼루수는 열 손가락밖에 되지 않을 거다.’

타고난 능력이었다.

거기다 절망적인 타격 능력에서도 ‘파워’라는 툴 하나만큼은 기대할 만큼 훌륭한 선수였다.

차라리 유격수라면 알렌 베이커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선수였겠지만….

아쉽게도 이호승은 유격수 자리에 적응을 못 했다.

아무튼, 짧으면 1주에서 길면 2주 동안 이호승이 주전 삼루수로 경기를 뛰게 되었다.

“후우….”

그리고 이호승은 지금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

코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건 베테랑들과 코치진의 힘 싸움 때문에 힘들었다.

그는 박진수와 젊은 선수들의 파벌에 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김효곤과 베테랑들의 파벌에 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야말로 깍두기와 같은 상태였다.

수원 나이츠와 경기 며칠 전.

그런 이호승의 앞에 강송구가 나타났다.

자신보다 두 살이나 많은 투수.

신인 드래프트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노히트 노런까지 기록한 불사조가 말이다.

그가 건네준 것은 데이터였다.

그것도 수원 나이츠가 4월간 기록한 타구 방향이 제법 상세히 적혀있는 데이터 말이다.

“전력분석관을 찾아가 봐. 베테랑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는 코치진들보다 훨씬 도움이 많이 될 테니까.”

의문이었다.

왜 강송구는 자신을 도와줄까.

딱히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궁금증이 생긴 이호승이 물었다.

“왜 절 도와주는 겁니까?”

그 물음에 강송구가 대답했다.

“우승하고 싶어서.”

* * *

대전 호크스는 참 골 아픈 팀이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의 갈등.

그리고 베테랑과 코치진의 대립.

꼰대에 가까운 호크스 순혈 코치진과 외부에서 유입된 젊은 코치진의 파벌싸움까지.

그런 가운데 그럭저럭 좋은 선수들을 1군으로 올려보내며 유망주들의 포텐을 터트리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튼.

이런 팀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강송구는 그 시작을 이호승으로 봤다.

‘오늘 주전 삼루수로 뛰게 된 이호승이 플래툰으로라도 자리를 잡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솔직히 김효곤과 경쟁은 힘들었다.

김효곤의 타격 능력은 수비가 좀 부족하더라도 이호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선수였으니까.

하지만 조규환은 다르다.

주전 삼루수이면서 이루수로도 뛸 수 있는 조규환은 어떻게 보면 이호승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다.

준수한 수비.

조금 아쉬운 타격을 가진 선수.

몇 가지 다른 점이라면 작전 수행 능력이 준수하고 선구안이 좋아서 출루율이 좋은 타자라는 점이다. 거기다 호크스의 성골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했다.

클러치 능력이 떨어지고 장타력이 많이 부족하다.

좌투수에게 약하다는 것도 약점이다.

그렇기에 이호승이 살아남으려면 장타력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한 방을 때려낼 수 있는 생산성이 있는 공갈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좌투수에 강한 좌타자.

‘가능성은 충분하지.’

강송구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따악!

“흡!”

삼루수 앞으로 튀는 강습타구.

조금만 수비력이 떨어져도 뒤로 놓칠 타구다.

하지만 이호승은 긴장하고 있음에도 무척이나 부드럽게 공을 글러브로 잡아내고는 바로 1루로 송구했다.

어깨도 강하면서 송구도 안정적이다.

슈우우욱! 펑!

“아웃!”

베이스를 밟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나이츠의 3번 타자 안우준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강송구는 멋진 수비를 보여준 이호승에게 엄지를 척 들었다.

‘이런 수비를 보고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야구 코치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지.’

고개를 돌려 서브 타격 코치인 나성균을 바라보니 그가 얼굴을 굳히고는 이호승을 바라보고 있었고.

반대로 강주철 타격 코치는 환히 웃으며 이호승과 하이파이브까지 나누었다.

더그아웃에 들어가니 베테랑들 근처에서 투덜거리는 나성균 코치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쟤는 안돼. 규환이나 효곤이보다 수비가 더 뛰어난 것도 아닌데 타격이 너무 약해.”

몇몇 선수들의 귀에 들릴 만큼 노골적인 대화.

-이러니 분위기가 계속 죽어버리는 건가?

‘그렇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 조규환이나 김효곤보다 저 이호승이라는 친구가 수비력은 더 뛰어난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의 선수단, 코치진과 대립하고 있는 호크스 출신 코치들과 베테랑들만 정신을 차린다면 가을야구에 도전할 충분한 능력이 되는 것이 지금의 호크스였다.

‘문제는 저 순혈들의 대가리가 누구냐는 거지.’

아마도 백동혁 단장이 어쩔 수 없는 사람.

모기업에서 온 사장이 저들의 머리일 것이다.

이내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잡생각은 여기까지.’

복잡한 정치질을 머리에서 지워냈다.

마운드를 바라보니 수원 나이츠의 1선발.

저메인 쇼메이커가 올라와 있었다.

‘일단, 오늘 경기에 집중한다.’

* * *

저메인 쇼메이커.

평균 150대 초반의 포심 패스트볼과 플러스 급에 가까운 스플리터를 가진 투수로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면 준수한 하위 선발이나 중요한 불펜 자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버티지 못했다.

아무래도 불펜으로 뛰기에는 부족한 내구성과 상당히 잦은 부상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서른이라는 나이.

마지막으로는 투 피치 투수라는 한계에서 못 벗어난 것이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이 그를 포기한 이유였다.

아무튼, 단점이 가득한 저메인 쇼메이커는 우습게도 한국에서는 투 피치로도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는데.

빠른 공과 스플리터만으로 작년에 20승의 위엄을 달성하면서 수원 나이츠의 1선발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였다.

‘빠른 공, 떨어지는 폭은 적지만 패스트볼과 비슷한 구속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와 포크볼처럼 크게 떨어지는 스플리터만으로 거둔 대단한 승수지.’

그런 투수가 오늘 강송구의 상대였다.

당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대단합니다!

-저메인! 이번에도 삼진! 또 삼진입니다!

-정말…. 저 스플리터는 대단합니다.

압도적인 피칭.

투 피치 투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피칭을 저메인 쇼메이커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B등급의 싱커가 나오지 않았다면…. 오늘 경기는 조금 힘들었을 수도 있겠어.’

1회 말.

3명의 타자를 상대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저메인의 모습에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도대체 왜 저런 능력을 갖추고도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하는 거야? 이해를 할 수 없네.”

“와…. 스플리터를 그냥 가지고 논다 놀아!”

“오늘 1점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다행이겠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강송구가 누구보다 빠르게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저벅저벅.

대전 호크스의 타자들이 저메인 쇼메이커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처럼, 수원 나이츠의 타선도 ‘싱커’라는 깜짝 상자를 가지고 온 강송구를 껄끄럽게 생각했다.

2회 초.

선두 타자는 4번 타자 김성기.

지난 시즌에 2할 5푼이라는 낮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그만큼 수많은 장타를 생산하면서 4번에 완전히 적응한 젊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뜸 덜이지 말고 빨리 하입시더.”

그냥 타석에 쑥 들어와서 자세를 잡은 김성기.

박진수는 그런 타자를 보며 속으로 ‘킥킥’ 웃었다.

‘진짜 성질 급한 녀석이네. 그렇게 원한다면 빨리 더그아웃으로 보내줘야지.’

초구는 우타자의 바깥에 걸치는 컷 패스트볼.

따악!

시원하게 돌아가는 배트에 맞고 강송구의 초구가 그대로 휘면서 1루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파울!”

잠깐의 쉴 틈도 없었다.

타석의 김성기는 타석 밖으로 침을 뱉은 뒤에 다시 자세를 잡고 타격에 집중했다.

별다른 루틴이 없었다.

-와…. 뭐 저런 타자가 다 있지?

우효는 그런 타자를 보면서 느꼈다.

저게 상남자구나.

고개를 슬쩍 돌려서 가짜 상남자를 힐끔 바라봤다.

하지만 강송구는 그런 우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번 승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몸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싱커.

사인이 나오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인 강송구.

그가 싱커 그립을 쥐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슈우우욱! 따악!

몸쪽 코스로 오는 공에 시원하게 배트를 휘두른 김성기는 빗맞는 타격음과 함께 기계처럼 1루로 뛰었다.

하지만 삼유간으로 튄 공을 알렌 베이커가 가볍게 잡아서 1루로 송구를 해 깔끔히 잡아냈다.

단 2구 만에 아웃을 헌납한 김성기. 하지만 그는 아쉬움이라는 감정도 없는 것처럼 단숨에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역시…. 여기에 있는 가짜 상남자와는 차원이 다르게 모든 행동이 시원시원하군!

우효의 그 말에 강송구가 답했다.

‘샤인머스캣.’

그리고 샤인머스캣 앞에서 우효가 굴복했다.

-차원이 다른 단순함이야. 역시 남자라면 머리도 굴릴 줄 알고 졸렬하게 게임을 풀어나갈 줄도 알아야지.

이어서 5번 타자 김정범이 타석에 들어섰다.

계속되는 우타자의 향연.

강송구는 덤덤히 싱커 그립을 쥐었다.

이 싱커에 포심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를 섞고 중간중간 체인지업을 던지니 수원 나이츠의 우타자들이 정말 행복해서 죽을 것처럼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따악!

이번에도 유격수 앞으로 굴러가는 공.

“아웃!”

포기한 표정으로 1루로 달리던 김정범이 깔끔히 아웃을 처리한 호크스의 내야진을 보면서 울부짖었다.

“아오!”

수원 나이츠의 더그아웃이 시끄러워졌다.

“어떻게 된 거야? 저런 싱커는 없었잖아.”

“저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싱커를 주 무기로 사용했던 대투수들이랑 비교해도 부족할 게 없는 공인데?”

“좌타자에겐 커터, 우타자에겐 싱커? 지랄 맞네.”

선수들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건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코. 저 친구가 저런 공을 던졌었나?”

수원 나이츠의 김범기 감독의 물음에 김지원 수석코치가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아니요. 저도 처음 봅니다.”

“느낌이 좋지 않군.”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완벽히 받아치는 듯한 싱커의 등장에 김범기 감독은 잠깐 ‘구단 내부에 스파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해봤다.

“어떻게 할까요?”

수석코치의 물음에 김범기 감독이 대답했다.

“일단은 이대로 간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경기는 이제 시작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러는 사이에 강송구가 2회 초를 끝냈다.

이번에는 싱커를 던진 뒤에 스플리터를 던져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김범기 감독이 침음을 삼켰다.

오늘 경기.

수원 나이츠에겐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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