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땅의 요정 송구!
“아니…. 당연하죠. 저희도 인터뷰하고 싶죠. 그런데 우리 강송구 선수의 컨디션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네, 안상철 기자님. 물론이죠. 그런데 지금 저희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힘든 부분이 많아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인터뷰는 나중에….”
“팀장님! 우주일보의 손은서 기자님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인터뷰는 나중에 따로 몰아서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우주일보의 손은서? 예전에 우리 김효곤 선수 관련해서 이상한 루머 퍼트렸던 또라이잖아! 그 미친년은 슬쩍 잘라! 잘라!”
쏟아지는 인터뷰 의뢰.
그만큼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강송구를 향한 관심은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대전 호크스의 홍보팀은 쏟아지는 전화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그와 반대로 대전 호크스의 단장실은 조용했다.
아니, 그렇게 보일 뿐.
‘미쳤어! 노히트 노런이라니!’
호크스의 단장인 백동혁은 시원한 냉수를 들이켠 뒤에 TV에서 흘러나오는 이번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바라봤다.
-멋진 삼지이이인!
-대단합니다! 강송구 선수! 이걸로 7회 말도 깔끔이 넘기면서 대기록까지 이제 2이닝을 남겨놨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피칭입니다!
타자를 정말 쉽게 잡아낸 뒤.
그 누구보다 쿨하게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
백동혁 단장은 확신했다.
‘드디어 이 팀에도 토종 에이스가 하나 나타나는구나!’
물론, 아직 토종 에이스라고 하기에는 증명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백동혁 단장은 직감했다.
강송구는 절대 반짝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그저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대전 호크스가 원하던 토종 에이스.
그 정도의 잠재력이 충분히 있는 투수였다.
‘강송구를 중심으로 투수진을 개편한다. 올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을 맛보고 내년에 본격적으로 대권에 도전하면 한국시리즈 우승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야.’
대전 호크스의 영원할 것 같은 암흑기의 끝이 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리빌딩도 끝이야.”
비록 지금은 리그 8위에 걸쳐있지만.
리그 5위와 고작 5경기 차이였다.
시즌은 아직 많이 남았다.
“올해는 꼭….”
백동혁 단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시선이 달력으로 향했다.
‘강송구 선수의 일정이 어떻게 되지?’
이번 원정 3연전이 끝나고 홈으로 온다.
홈에서 창원 스왈로스와 3연전.
그리고 이어서 수원 나이츠와 홈 3연전.
그중에서 강송구는 수원 나이츠 3연전의 첫 번째 경기에 등판이 잡혔다.
그리고 수원 나이츠전에서 강송구와 같이 마운드에 오르는 상대 투수는 나이츠의 1선발인 투수였다.
‘저메인 쇼메이커.’
다른 공은 몰라도 ‘스플리터’라는 구종.
그것 하나는 끝내주는 투수
2020년 초반에 탬파베이 레이스와 같은 스몰마켓 팀에서 라인 스태닉, 요니 치리노스와 같은 스플리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투수들을 많이 기용했는데, 저메인 쇼메이커도 탬파베이에서 스플리터를 장착한 투수였다.
그는 스플리터를 장착한 뒤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서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통산 31승 17패 ERA 4.74를 기록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에 10승을 한 번은 기록해봤던 전적이 있는 투수였다.
많은 투수가 한 달도 못 버티고 다시 마이너로 강등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을 온전히 치러본 경험이 있다는 것은 그 투수가 정말로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대단한 투수와 강송구의 맞대결이 대전 호크스의 홈경기장에서 이뤄진다.
“두 선수 모두 뛰어난 스플리터를 던지지.”
돈 냄새가 풀풀 난다.
강송구라는 투수의 이름값을 올리고 호크스의 마케팅으로 활용하기에도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어차피 강송구를 향한 기대치는 최대가 3선발급에서 최소가 롱 릴리프였으니 이번 경기에서 져도 문제는 없다.”
강송구가 큰 점수로 무너지지 않는 이상 리스크도 없었다.
오히려 강송구가 호투라도 해서 팀에게 승리를 가져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
백동혁 단장의 두 눈이 반짝였다.
* * *
고척 헌터스 원정 3연전의 마지막 경기.
두 팀은 마지막 경기를 잡고 위닝시리즈를 가져가기 위해서 총력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극한의 투수전이 이어졌다.
특히, 타격감이 좋던 헌터스의 타선이 완전히 식었다.
“아…. 왜 이렇게 빠른 것 같지?”
“타이밍을 잡기가 너무 어려워.”
헌터스의 타자들은 130대 초반의 구속을 가진 강송구를 상대한 뒤에 나오는 토리 파커의 140대 중후반의 포심 패스트볼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반대로 호크스의 타자들은 달랐다.
조금씩 기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을 찍은 것은 6회 초에 나온 빅이닝이었다.
-쳤습니다!
-김효곤 선수의 환상적인 쓰리런!
-어떻게든 꾸역꾸역 마운드를 지켜오던 오덕길 투수가 결국에는 마운드에서 무너집니다.
-아…. 정말로 좋지 않은 코스로 들어가는 슬라이더였습니다. 김효곤 선수가 상대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어요.
6회 초에 얻은 3점.
그리고 7회 초에 2점을 더 얻은 호크스는 깔끔히 그 점수를 지켜내면서 결국에는 위닝시리즈를 가져올 수 있었다.
라커룸 내 분위기는 당연히 좋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좋았어! 위닝시리즈! 최고야!”
“캬아아아! 불꽃 남자 김효곤이 한턱낸다! 야! 대전에 내려가서 가볍게 룸이나 잡고 놀자. 내가 쏜다!”
“역시 김효곤 선배님입니다!”
“김효곤! 김효곤! 김효곤!”
베테랑들의 기세가 올랐다.
젊은 선수들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들도 이번 원정 3연전에서 팀이 위닝시리즈를 가져가며 다시 리그 7위까지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기뻐했다.
‘분위기가 정말로 죽여주는군.’
-리그 꼴찌팀을 잡고 좋아서 술을 마시러 간다고? 1위 팀이 아니라 꼴찌팀을? 환상적이네!
우효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강송구는 그런 라커룸의 분위기를 보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했다.
패배에서 배우는 것도 없고, 뭔가 발전하는 것도 없이 그저 승리만 하길 바라는 젊은 선수들.
달콤한 고액연봉을 받으며 타성에 젖어서 조금씩 위닝 멘탈리티를 잊어가는 베테랑 선수들.
-와우…! 정말 끝내주는 팀이군.
‘그래, 정말 끝내주는 팀이야.’
강송구가 노히트 노런을 했음에도.
그리고 팀이 위닝시리즈를 가져갔음에도.
이 팀은 크게 바뀌는 것이 없었다.
‘아니, 조금은 바뀌었지.’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타자.
알렌 베이커가 환히 웃으며 강송구에게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선수가 붙어있었다.
바로 용병 투수인 토리 파커와 기무라 켄스케.
강송구는 여기서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내야 수비의 핵심인 유격수.
그리고 투수진의 중심인 1~2선발 투수.
이 세 명의 선수부터 바꿀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한 명씩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줄 생각이었다.
‘난 7년에 걸쳐서 미국에 갈 생각이 없으니까.’
무조건 3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강송구의 두 눈이 투지로 반짝였다.
* * *
드디어 기나긴 원정이 끝났다.
자신들의 홈으로 돌아온 독수리들.
그들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창원 스왈로스를 그들의 홈으로 불러들였다.
대전 호크스 파크.
수많은 야구팬들이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나 호크스의 홈팬들이 평소보다 많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유는 당연히 헌터스 원정 3연전에서 보여준 강송구의 노히트 노런과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준 좋은 경기력 때문이었다.
기대감이 가득한 호크스의 팬들.
최.강.호.크.스!
가자! 호크스! 오늘 꼭 이기자!
할 수 있다! 아직 시즌은 초반일 뿐이야!
웃고 있는 치타처럼 호크스도 금방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서 우승경쟁을 할 수 있어! 화이팅!
열심히 응원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오늘 경기의 선발인 기무라 켄스케가 멋진 호투를 보여줬다.
-대단합니다! 기무라 켄스케!
-7이닝 1실점! 더 무서운 것은 이 선수가 잡아낸 삼진이 14개라는 겁니다!
-오늘 정말로 무시무시한 페이스입니다!
-다시금 지난 시즌의 기무라 켄스케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꾸준하게 많은 이닝을 먹어주는 그 기무라 켄스케가 말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타선은 침묵했다.
고척 헌터스와 창원 스왈로스.
두 팀의 수준은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올해 우승을 노리는 팀은 무엇인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선수들은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기무라 켄스케가 내려가기 무섭게 점수는 2대1에서 순식간에 14대2라는 점수로 변해버렸다.
실책이 하나 나오면서 불펜이 크게 흔들린 것이 원인이었다. 우효는 그 원인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어제 신나게 클럽에서 빵댕이나 흔들면서 술이나 처먹던 한심한 베테랑이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네.
평소보다 몸이 더 무거워 보이는 김효곤.
그를 보며 강송구가 눈을 찌푸렸다.
‘불펜은 나쁘지 않았어.’
오늘 불펜의 컨디션은 좋았다.
공의 위력도 준수했고, 제구가 흔들려도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밀어 넣을 줄 알았다.
그걸 단 하나의 실책이 엉망으로 만들었다.
충분히 가져갈 수 있는 경기였다.
모처럼 나온 좋은 기회였었다.
리그 1위를 잡을 수 있는 경기말이다.
‘수비 범위도 넓지 않고, 슈퍼플레이는 나오지 않지만…. 자기 자리에서만큼은 꾸준한 수비력이 자랑이던 김효곤 선배가 어이없는 실책을 범했다?’
강송구의 시선이 김동식 감독에게 향했다.
‘내가 감독이라면 오늘 경기가 끝나고 한 번쯤은 선수들의 머릿속에 경각심을 심어줄 거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리고 강송구의 예측을 제대로 들어맞았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서 별말이 없었던 김동식 감독.
하지만 다음날 갑작스럽게 김효곤이 1군에서 제외되어서 2군으로 내려갔다.
이유는 가벼운 발가락부상.
그 순간 라커룸의 긴장감이 팽팽히 당겨졌다.
“효곤 선배가 2군으로?”
“설마…. 어제 경기에서 실책 하나를 했다고?”
“아이씨…. 하필이면 단체로 술 좀 마신 다음 날에 효곤 선배가 거기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범하냐…. 앞으로 회식은 글렀다고 봐야겠네.”
“조금만 사리자. 적어도 김효곤 선배가 1군으로 올라올 때까지는 술을 좀 줄이자고.”
베테랑들은 알아서 몸을 사렸다.
그들도 알고 있다.
그들이 한 행동이 ‘프로야구선수’로서 절대로 옳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김동식 감독의 대응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조금은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이다.
징계에 가깝게 2군으로 내려간 김효곤이 다시 1군으로 올라오면 풀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강송구는 지금이 기회라고 봤다.
‘적어도 한 선수 정도는 정신을 차리게 만들 기회.’
강송구의 시선은 호크스의 한 선수에게 향했다.
내야 백업 선수.
주로 보는 수비 위치는 2루와 3루.
주전인 조규환이나 김효곤보다 뛰어난 수비 능력을 갖췄음에도 타격 능력이 부족해서 치고 못 올라가는 유망주.
순혈 호크스 선수가 아니라서 프랜차이즈 스타인 조규환을 밀어낼 수 없고, 스타성이나 타격에서도 김효곤보다 떨어지는 조금은 아쉬운 위치에 있는 선수.
‘조금씩 선수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선수들의 생각이 바뀌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이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발언권이 생기고 라커룸을 휘어잡을 수 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카리스마는 그저 허세일 뿐이다.
지금은 계속된 활약이 필요했다.
'다음 등판에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강송구는 이번에 새롭게 뽑은 무기를 활용해서 자신의 등판일에 좋은 활약을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우효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외쳤다.
-땅의 요정 강송구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