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노히트 노런(2)
노히트 노런.
또는 ‘노 히터’라 불리는 기록.
투수가 상대 팀에게 안타나 실점을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서 게임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달성하기 어렵고, 그만큼 많은 투수가 노히트 노런에 도전을 했다가 마지막에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최근에 한국 프로야구에서 나온 노히트 노런의 기록이 2025년 6월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쉽게 나오는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모든 이들이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의식했다.
‘완벽하다.’
그리고 강송구는 오늘 자신의 피칭에 만점을 줬다.
그만큼 오늘 경기 내용은 훌륭했다.
그가 가진 무기로 할 수 있는 최고의 활약.
그걸 보여준 것이다.
“큭!”
8회 말의 타석.
헌터스의 타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도 구위가 안 떨어지지? 구속이나 구위가 왜 이렇게 일정해? 지치지 않는 건가?’
꾸준한 구위를 보여주고 있는 강송구.
그가 전혀 흔들림이 없이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씨펄….”
저 커터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답이 없었다.
동시에 점점 얼굴이 굳어지는 헌터스의 타자들.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아직 기회가 있어! 적어도 안타 하나만 만들자. 조금만 더 힘내보자!”
누군가 더그아웃에서 파이팅을 외침에도 가라앉은 분위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히려 강송구가 8회 말의 마지막 타자를 잡아내는 모습을 보더니 더욱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게 젊은 팀의 단점이지.’
-너도 고작 24살이야.
‘말이 그렇다는 뜻이다.’
-뭐…. 액면가는 서른처럼 보이지만 말이야. 우효호홋!
‘귤, 일주일.’
-그러니까 내 말은 브래드 피트의 30대 시절처럼 환상적이라는 말이지! 최고야! 멋져!
우효가 필사적으로 굴었다.
하지만 이미 강송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이닝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9회 말.
고척 돔 구장의 마운드에 강송구가 올라섰다.
오늘 경기에서 8이닝 동안에 단 하나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은 투수가 숨을 길게 내뱉었다.
-마운드에 강송구 선수가 오릅니다.
-오늘 경기에서 단 2개의 볼넷을 제외하면 단 한 명의 타자도 1루에 보내지 않은 강송구 선수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비록 구속이 느린 투수이지만, 뛰어난 변화구와 투구 로케이션으로 헌터스의 타선을 완전히 찍어눌러 버렸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타석에는 9번 타자 민재현!
지금만큼은 우효도 그 요망한 입을 다물고 조용히 강송구의 피칭을 감상하고 있었다.
초구 사인.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6회 말부터 슬라이더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서 제법 재미를 본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볼!”
바깥에 아슬하게 걸리는 코스였다.
볼 판정을 내린 주심을 향해서 고척 돔 경기장까지 찾아온 호크스의 원정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주심 너 똑바로 안 봐?”
“우리도 기록의 희생양 말고 기록의 주인공도 해보자! 어? 왜 이렇게 방해하는 사람이 많아!”
“우우우우우!”
2020년대 초반의 보살들은 사라지고 악에 받친 아수라들만이 남은 호크스의 팬덤이 날뛰었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 타석에 선 민재현은 등 뒤로 흐르는 땀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분명히 그들의 홈 경기장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호크스 원정 팬들이 내뱉는 악에 받친 야유와 욕설뿐이었다.
“스트라이크!”
덕분에 민재현은 자신이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 틈을 강송구가 놓치지 않았다.
따악!
“아웃!”
체인지업을 던져 땅볼을 유도.
내야 수비의 도움으로 가볍게 아웃 하나를 잡아내면서 조금은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104구.’
지금까지 던진 투구수.
남은 타자는 2명.
‘120구 이내로 끝낸다.’
강송구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에 타석에는 헌터스의 1번 타자.
조규만이 타석에 들어섰다.
‘시팔…. 살 떨리네.’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느껴지는 압박감.
젊은 타자가 견디기에 쉽지 않은 상황.
거기다 오늘 경기에서 그는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에게 꽁꽁 막혀서 출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거기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쉽게 지치지도 않는지 경기 후반까지 일정한 구속의 패스트볼을 던지고 있었다.
‘구위도 아직 상당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틸 생각으로 배트를 짧게 잡기 무섭게 이번에는 좌타자에게 쥐약인 컷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빠각!
“아오!”
오늘 경기에서 세 번이나 그를 잡아낸 커터에 배트가 부러지며 내야 땅볼로 아웃을 헌납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투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
드디어 오늘 경기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남기고 고척 헌터스의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긴장되는 상황.
하지만 강송구는 여유롭게 초구를 던졌다.
우타자 바깥으로 빠지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이 공 하나로 강송구는 승리를 확신했다. 오늘 경기 내내 잡아주지 않은 코스를 주심이 잡아줬으니까.
타석에 선 타자도 그걸 느꼈다.
“스트라이크!”
2구째.
우타자 바깥쪽 코스로 빠지는 슬라이더.
이번에도 공 한 개가 빠지는 코스.
-주심이 빨리 집에 가고 싶나?
퇴근 본능이 생긴 것은 아닐까.
우효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경기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공.
강송구는 뜸을 들이지 않았다.
‘체인지업.’
마지막은 체인지업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경기 끝났습니다! 대전 호크스의 강송구 선수가 2025년 이후에 나오지 않던 한국 프로야구 역대 16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면서 경기의 승리를 가져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완벽한 피칭이었습니다. 정말로 대단해요!
-거기다 대전 호크스의 4연패를 끊어주면서 연패스토퍼의 역할을 제대로 해줍니다!
마지막 타자를 잡는 순간.
강송구를 향해 선수들이 달려들었다.
“미쳤어! 미쳤다고!”
“으하하하하! 우리도 기록 하나 챙겼다!”
“나이스! 나이스! 나이스!”
그리고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강송구는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왔습니다.]
[9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10개의 삼진을 잡았습니다.]
[추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15,750포인트입니다.]
[승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2,7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18,450포인트입니다.]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루비 카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을 보던 강송구.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끝내주는군.”
* * *
[호크스의 신인 투수! 대기록을 달성하다!]
[4연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호크스! 신인 투수 강송구의 노히트 노런에 힘입어 승리를 얻어내다!]
[강송구 하이라이트 영상! ‘볼넷 두 개를 제외하면 누구도 1루에 보내지 않았다.’ ]
[오늘 피칭의 핵심은 컷 패스트볼! 타자의 배트 4개를 부러트린 강송구의 이유 있는 호투!]
[드래프트를 앞두고 부상으로 무너졌던 파이어볼러 유망주. 다시 마운드에 오르다!]
-최.강.호.크.스!
-캬…. 진짜 소름이 돋았다.
-오늘 강송구의 원맨쇼 지렸다.
-똥볼이라고 인신공격까지 감행하던 그 팬들 어디 감? 오늘 강송구 피칭보고 오줌 지려서 화장실 갔나?
-똥볼 하나 제대로 못 때리는 헌터스 수준ㅋ
-응, 저거 뽀록이야.
-응, 2경기 연속 호투야.
-ㅋㅋㅋㅋㅋ 토쟁이들 사망각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 역배 터져~부렸죠?
드라마틱했다.
드래프트가 있던 날.
갑자기 사라졌던 유망주가 다시금 나타나 재기에 성공한 스토리를 싫어할 대중은 없었다.
구속을 잃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프로에 도전해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스토리.
그게 오늘 경기로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저거 뽀록임.
-진짜 뽀록임. 내가 확신함.
-네가 뭔데 확신을 함? 야구의 신이라도 됨?
-내가 조사한 모든 지표가 강똥볼의 떡락을 가리키고 있다. 이건 팩트다. 강송구는 언젠가 얻어맞게 되어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세상의 야구 전문가들이 고작 야구 커뮤니티 댓글에 잔뜩 모여있음?
강송구를 깎아내리는 부류도 있었다.
“아아아아악! 내 월세!”
문자 중계창에 악플을 달던 토토충.
박종필이 절규했다.
강송구의 노히트 노런에 그의 월세가 날아갔다.
그의 옆에서 망가진 스마트폰이 놓여있었다.
“왜 저런 똥볼 투수를 못 잡는 거야! 어? 어?”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번 시즌에 리그 꼴찌를 하는 헌터스지만, 타선의 존재감 자체는 상당히 뛰어난 팀이었다.
비록 시즌 초반에 조금 흔들리고 있지만, 조금만 폼이 올라오면 바로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는 팀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팀이 강송구 한 명에게 진 것이다.
그것도 고작 130km/h 구속을 가진 투수에게.
박종필이 이를 꽉 물었다.
그러고는 커뮤니티에 댓글을 올렸다.
-저거 뽀록임. 거기다 인성도 안 좋음. 내가 강송구를 봐서 아는데 예전에 유명한 일진이었음.
그리고 곧 그를 조롱하는 댓글이 달렸다.
-응ㅋㅋㅋ 강송구 유명한 일진 킬러였음. 일진은 무슨ㅋㅋㅋ 학교에서 한국산 한마 유지로라고 불렸는뎈ㅋㅋㅋ
-진짜 인간이 그런 육체를 타고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일진들 강송구가 옆에 지나가면 다소곳해졌다궄ㅋㅋ
-너 혹시 강송구보고 오줌 지린 일진이니? ㅋㅋㅋㅋㅋㅋ 왜 이렇게 강송구 기사만 보면 발작하냐?
부들부들.
박종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지금 이 시각 대전 호크스의 프런트가 박종필이 단 악플을 잔뜩 모아서 빠르게 고소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히트 노런을 한 신인 투수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을 가만히 놔둘 구단이 아니었다.
아마도 1주~2주 뒤에 박종필은 월세를 잃은 것보다 더 큰 금액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 *
서울의 한 호텔 방.
강송구는 덤덤한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고민이 상당히 깊은 것 같은 표정.
그 이유는 조금 전에 떠오른 알림창 때문이었다.
[일정 포인트를 충족하셨습니다.]
[포인트를 투자해서 ‘파이어볼러-진(眞)’ 특성의 잠긴 효과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우효효횻! 내가 나설 차례군.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며 좋아하는 우효.
그가 강송구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앉았다.
-게임과 다르게 시스템상의 성장형 특성은 포인트를 투자해서 특성에 경험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처럼 기다리기만 해도 특성이 열리는 건 아니란 건가?”
-뭐…. 개미 코딱지보다 적게 올라서 차라리 포인트를 투자해서 성장형 특성의 경험치를 채우는 게 훨씬 정신건강에 이롭지.
“그렇다면 얼마나 포인트를 투자해야 하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른다.
우효의 단호한 말에 강송구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쓸모가 없군.”
-네가 이상하리만큼 운도 좋고 시스템에 적응도 잘하는 거라니까? 보통은 내가 다 설명해 줘야 하는데 말이야. 네가 이상한 거지 내가 무능한 게 아니다.
“귤, 일주일.”
-아…. 안돼!
“장난이다.”
그러면서 미리 잘라놓은 사과 한 조각을 우효에게 주고는 특성의 정보창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리고 그답지 않게 우효의 눈치를 살짝 봤다.
‘음…. 이걸 말해야 하나?’
사실, 강송구에게는 보였다.
[파이어볼러-진(眞)]
-종류: 성장형 특성
-효과: 구속이 3km/h가 증가합니다.
-잠겨있습니다.
(10만 포인트를 투자하면 두 번째 효과가 열립니다.)
-잠겨있습니다.
(30만 포인트를 투자하면 세 번째 효과가 열립니다.)
-잠겨있습니다.
(50만 포인트를 투자하면 네 번째 효과가 열립니다.)
이 성장형 특성의 잠긴 효과를 풀려면 얼마의 포인트를 투자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일단 보상으로 얻은 루비 카드에서 나오는 스킬이나 특성을 보고 선택한다.”
-찹찹찹…. 좋은 생각이다.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카드를 뽑는 기분이군.”
-오랜만이 맞지.
“그런가?”
-아무튼, 살살 뽑아라. 네가 좋은 카드를 뽑으면 뽑을수록 내게 올 은퇴자금이 줄어든단 말이다.
자포자기한 우효.
작은 고슴도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송구의 손은 자비가 없었다.
[루비 카드를 개봉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강송구.
쫘악 깔리는 50장의 카드.
그의 시선은 영롱한 백금색이 서린 카드에 향했다.
‘아쉽군. 다이아 등급의 카드가 없어.’
그래도 플래티넘 등급의 카드가 하나 있었기에 강송구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고 카드를 선택했다.
빙글빙글.
백금색 빛을 내뿜으며 회전하는 카드.
곧이어 떠오른 카드의 결과물.
강송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사과를 먹던 우효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