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27화 (27/198)

#27. 연패스토퍼(2)

고척 헌터스.

구단에 대한 모기업의 투자금은 리그 최하위지만, 매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팀.

하지만 동시에 구단 내 스타 선수들을 FA 시장에서 잡지 못하고 놔줘서 자주 성적이 휘청거리는 팀.

어떻게든 트레이드와 드래프트로 젊은 선수들을 구성해서 이득을 보는 것이 이 팀의 색깔이었다.

이 팀의 키워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젊은 타선.

선수단의 평균 나이도 낮은 편이지만, 특히나 젊은 타자들이 배치된 타선은 경기 내내 그 젊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상대 투수에게 큰 압박을 줬다.

두 번째는 선수들의 가성비.

고척 헌터스의 단장.

김시하는 그 누구보다 가성비가 끝내주는 선수를 선호했는데, 덕분에 스타성이 있고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수 있는 선수들을 자주 팔아치우기는 했지만, 값싸고 어린 선수들을 매년 1군으로 올리며 부족한 구단 재정을 커버했다.

하지만 지금은 리그 꼴찌인 약팀이다.

그리고 강송구는 오늘 이 팀을 상대로 등판한다.

등판하기 전.

우효가 쒸익쒸익 화를 냈다.

-귤? 귤이라고? 이 위대한 우효님에게 고작 귤? 하하하! 우리 송구가 정신이 나간 것 같군. 감히 귤이라니.

‘정신이 나간 건 너 같은데?’

-닥쳐라! 어디서 나에게 귤을 들이미는 주제에!

우효와 투닥거리는 사이에 어느덧 국민의례가 끝나고 아이돌의 시구가 시작되었다.

오늘 마운드를 찾은 아이돌은 ‘헬코즈믹위치’의 최은서라는 여자 아이돌이었다.

-요즘 세상이 미쳐가나 봐. 저런 괴상한 이름의 아이돌도 다 나오고 말이야. 말세야…. 말세.

와아아아!

시구자가 마운드에 올라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온 것은 패대기 시구.

그걸 보더니 우효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쯧쯧쯧…. 시구 전에 선수한테 투구 좀 배운 거 아니야? 왜 저런 식으로 공을 던진 거야? 요즘은 아이돌 문화는 이게 문제야! 어! 영화를 찍는다고 아주 사람도 깔보고! 뮤직비디오 찍는다고 천연기념물도 엉망으로 만들고!

‘생각보다 잘 알고 있군.’

-큼…. 큼…. 절대 아이돌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TV를 좀 보니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강송구는 패대기 시구를 한 아이돌보다는 오늘 경기에서 선발로 올라올 투수를 신경 쓰고 있었다.

아담 산체스.

외국인 용병인 그는 긴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패스트볼로 타자를 찍어누르는 스타일의 투수였다.

평균 155km/h의 패스트볼과 147km/h의 고속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며 필요하면 타자의 타이밍을 뒤흔들 체인지업까지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정통파 우완 파이어볼러.

하지만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극단적인 오버스로우에서 나오는 구위는 굉장했지만, 반대로 불안한 제구는 그의 발목을 계속 잡았다.

거기다 긴 이닝을 소화할 체력도 부족했다.

‘자주 흔들리는 제구,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없는 체력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는 외면을 받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저 구위에 슬라이더?

그냥 존 한가운데로 계속 공을 던져도 5이닝을 빠르게 가져가며 승리투수의 요건을 갖출 것이다.

그래서 고척 헌터스가 아담 산체스를 데려온 것이다.

다른 부분이 부족해도 구속이 빠르면 먹힌다.

구속이라는 재능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게 야구였다.

강송구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고교 시절의 그도 ‘구속’이라는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1회 초.

마운드에 오른 아담 산체스가 초구를 던졌다.

슈우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찍힌 157km/h의 구속.

오늘 컨디션이 좋은지 공이 제대로 뻗는다.

타석에 선 호크스의 1번 타자.

김국도는 혀를 내둘렀다.

오늘 투수의 컨디션이 너무 좋다는 것을 공 하나만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는 어떻게든 공을 길게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투수는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5구 만에 끝난 승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김국도는 호크스의 선수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 흔들며 말했다.

“야. 오늘 공 절대 못 쳐. 저거 2년 전에 우리 팀을 상대로 노 히터 할 때 보여줬던 공이야.”

그 말에 베테랑들이 눈을 찌푸렸다.

그 시절에 있던 그들은 아담 산체스의 제물이었다. 그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젊은 선수들은 호크스에서 가장 선구안이 좋고 타격 능력도 준수한 김국도의 말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2번 타자 조규환도 4구 만에 아웃.

호크스에서 가장 타격 능력이 뛰어난 게으른 천재인 김효곤도 내야 뜬공으로 아웃을 헌납했다.

그제야 대전 호크스의 더그아웃이 조용해졌다.

김국도의 말은 진실이었다.

상대 투수의 컨디션이 절정이라는 사실 말이다.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아담 산체스.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공을 던진 자리로 강송구가 올라갔다.

뒤를 슬쩍 보니 야수들의 표정이 굳었다.

‘좋은 수비를 기대할 수 없겠군.’

글렀다.

그나마 베테랑들은 기본은 해주겠지만, 그들이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운드를 단단히 발로 몇 번 다지던 강송구는 생각보다 아담 산체스가 무른 마운드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홈에서 아담 산체스를 상대하게 된다면 그때는 마운드를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어달라고 해야겠어.’

이윽고 그가 준비를 끝내기 무섭게 고척 헌터스의 1번 타자인 조규만이 좌타석에 들어섰다.

* * *

[헌터스 0 vs 0 호크스]

-1회 말

-선발투수 [강송구]

-1번 타자 [조규만]

[문자 중계 댓글]

-나왔다아아아아아 모닥불러어어어어

-제발 져라! 송구야! 형이 헌터스에 월세를 걸었어.

-제발 1회 말에 6점 내주고 무너져라. 팔병신아!

-ㅋㅋㅋㅋㅋ 진짜 악질 새끼들 많네.

-토토충 쉑들 제정신임? 와…. 진짜 소름 돋네.

-야갤 출신들 개 많자너. 너희 고소가 안 두렵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건 선 넘었짘ㅋㅋㅋㅋㅋ

-이러니 포털사이트 댓글란을 다 없애지.ㅉㅉㅉㅉ

-내가 다 캡쳐했다.

-나만 아니면되에에에에에에!ㅋㅋㅋㅋㅋ

한 남자가 작은 원룸에서 긴장 어린 표정으로 포털사이트의 야구 문자 중계창과 TV 중계를 보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박종필.

그는 문자 중계창 댓글로 강송구에 대한 악플을 달며 헌터스가 이기길 하늘에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규만아! 하나만 때리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불법 토토에 넣은 금액의 출처는 지금 사는 원룸의 다음 달 월세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몰랐다.

대전 호크스의 운영팀이 최근 이런 인신공격에 가까운 글이나 댓글로 선수를 모욕하는 이들을 고소하기 위해서 빠르게 증거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조만간 제대로 응징을 당할 것이다.

아무튼.

그는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를 저주했다.

“똥볼이 되었으면 제발 1회 말에 무너져라!”

하지만 그의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그가 했던 말은 마치 펠레의 저주처럼 반대로 이루어지며 헌터스의 선두타자인 조규만이 삼진아웃으로 물러났다.

“그래, 경기 초반은 그럴 수 있지.”

[문자 중계 댓글]

-솔직히 개 뽀록이다. 131짜리 직구 봄? 내가 타석에 서면 저거 바로 각도 조절해서 강송구 어깨에 직빵할 수 있음. ㅋㅋㅋ

그의 과한 댓글에 다른 사용자들의 질책은 더 커졌다.

[문자 중계 댓글]

-이 새끼 계속 선넘네?

-야, 아무리 강송구가 싫어도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게 있는 거다.

-진짜 안타까운 일로 어깨를 다쳐서 이제 겨우 프로로서 성과를 만들고 있는 친구한테 저런 말을 하고 싶을까?

-저게 딱 불법 토토충 새끼의 수준임.

-어휴…. 수준 낮네. 진짜 사탄도 널 보면 지옥에 처넣으라고 예수에게 기도할 거다.

“어쩌라고. 난 다음 달 월세가 걸렸다고!”

박종필이 이를 꽉 물었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헌터스의 젊은 타자들이라면 강송구의 느린 똥볼을 상대로 금방 점수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경기는 그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아! 내야 뜬공! 김효곤 선수가 가볍게 잡아내면서 1회 말을 깔끔하게 잡아내는 강송구 선수입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대단해요!

“아…. 제발! 뭐 하냐! 저런 똥볼 하나 못 잡고!”

박종필이 이를 꽉 물고 다시 기도했다.

“제발! 헌터스가 이기게 해주세요. 야구의 신님!”

* * *

-신은 죽었다.

우효가 우울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샤인머스캣을 먹은 뒤에 뭘 먹어도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사과도 아닌 귤을 준다니.

작은 고슴도치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송구는 2회 말의 마운드에 올랐다.

선두타자는 고척 헌터스의 4번 타자.

삼루수 이명석이었다.

지난 시즌에 2할 7푼의 타율과 1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썩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던 그는 이번 시즌에는 초반부터 8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한껏 물오른 역량을 자랑했다.

강송구는 덤덤한 표정으로 바깥쪽 코스를 요구하는 박진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슈우우욱! 펑!

“볼!”

초구는 볼.

의욕이 넘치는 상대 투수의 눈을 본 강송구는 로진백을 들어 올리며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

‘오늘 바깥쪽 존이 아주 좁다.’

특히나 우타자를 상대할 때 바깥쪽 존이 좁아지는 것이 더 두드러졌다.

의욕이 넘치는 타자를 상대로 강송구는 자신 있게 몸쪽 승부를 가져가며 상대 타자에게 불을 붙였다.

‘어쭈? 구속도 느린 주제에 몸쪽 승부해?’

아마, 타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카운트가 쌓이면 스플리터를 꺼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날카로운 스플리터가 몸쪽에 제대로 걸쳤습니다!

-진짜 좋은 공이었습니다. 이명석 선수의 배트 아래를 그대로 지나치는 좋은 스플리터였어요.

-오늘 경기, 팀의 연패를 끊어야 하는 강송구 선수의 어깨가 무거울 텐데…. 정말로 좋은 피칭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음 좌타자를 상대로는 몸쪽 커터를 꺼내 들며 배트를 그대로 쪼개버렸다.

빠각!

“아오!”

부러진 배트를 보며 눈을 질끈 감는 타자.

강송구가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을 잡아서 가볍게 일루수의 미트에 정확히 송구했다.

“아웃!”

순식간에 투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

그는 초반의 호투에도 덤덤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호크스의 내야수들이 혀를 내둘렀다.

‘진짜…. 저 포커페이스는 배우고 싶을 정도야.’

‘쟤랑 포커하면 다 잃을 자신 있다.’

‘타석에서 저 얼굴을 보면 짜증이 나지 않을까?’

그리고 2회 말의 마지막 타자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여유롭게 이닝을 끝낸 강송구.

그의 시선은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알렌 베이커에게 잠깐 향했다가 거두어졌다.

-저 친구가 오늘 뭔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

‘호크스의 전략분석팀에게 오늘 상대의 자료를 받아서 직접 영상자료를 보고 노림수를 하나 만들었다면 가능하다.’

호크스의 전략분석팀은 리그에서 제법 뛰어난 편에 속한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모기업의 회장이 정말 많은 돈을 투자해줬으니까.

하지만 그걸 활용하는 선수는 없었다.

그냥, ‘아! 이런 선수구나.’라는 식으로 대충 상대의 자료만 훑어볼 뿐이었다.

리그 최상위권에 속하는 전력분석팀이 만든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는 선수들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코치진이 그 자료를 활용해서 선수를 기용하는데 잘 활용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선수들이 직접 그 자료를 보고 생각을 해야만 그 효과가 더 커진다.

그걸 알기에 아쉬운 것이다.

-그렇구나.

‘지금 상황이 화력이 뛰어난 기관총을 쇠몽둥이처럼 휘두르기만 하는 거다.’

그렇기에 기대하는 것이다.

기관총을 쇠몽둥이로 사용하던 원시인이 그 총을 제대로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웃!”

강송구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했다.

3회 초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볼넷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아담 산체스의 패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모오오온!”

-저 친구가 저렇게 날뛰는 이유는 나에게 사과가 아닌 귤을 사준다고 해서 야구의 신이 벌을 내린 거야!

“아까 신이 죽었다며?”

-그래서 저런 투수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어? 오늘 제대로 된 안타도 하나 안 줄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귤이 아니라 사과를 주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야구의 신에게 기도를 해보지.

하지만 강송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딱히 상대의 호투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기회 뒤에는 큰 위기가 찾아오고, 더 큰 기회 뒤에는 나락이 기다리고 있다고.”

-뭐?

강송구는 그러면서 아담 산체스가 3회 초까지 던진 공의 개수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는 온다.‘

큰 기회 뒤에 찾아오는 거대한 리스크.

상대 투수는 곧 흔들릴 것이다.

강송구는 자신이 몰래 깔아놓은 알렌 베이커라는 함정 하나 때문에 마운드에서 무너질 아담 산체스를 조용히 바라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