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22화 (22/198)

#22. 프로 데뷔(2)

5월 1일.

잠실 야구장.

더블스타즈와 호크스의 3연전 첫 번째 경기.

더블스타즈는 지난 시즌부터 공을 들여 키우고 있는 젊은 선발투수인 김대용을 내보냈고.

호크스는 부상으로 빠진 하명진을 대신해서 은퇴할 예정인 서른다섯의 노장인 박철준을 내보냈다.

점점 관중석에 오늘 야구를 보기 위한 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네?

‘경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좀 지나야 관중석이 꽉 찬다. 퇴근한 직장인들이 아직 안 왔거든.’

-그렇군.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더블스타즈의 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김대용이네.”

“지난 시즌에 제법 했지?”

“젊은 투수 중에서는 가장 잘하지.”

지난 시즌에 28경기 13승 11패 ERA 4.52를 기록한 더블스타즈의 기대되는 신인 투수.

김대용이 가볍게 연습 투구를 가져갔다.

슈우우욱! 펑!

“공이 좋네.”

“140대 중후반 정도 나오나?”

“좌완이 저 정도면 언터처블이지.”

대전 호크스의 선수들은 품평회를 하는 것처럼 마운드에 오른 김대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만큼은 파벌 같은 것이 없는 것처럼 대전 호크스의 모든 선수가 마운드의 투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한 그룹의 선수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텍사스 출신이라고?”

“어, 그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

“토리는?”

“난 오클랜드.”

근육질의 흑인과 각다귀 같은 백인. 그리고 팔목에 캐릭터 디자인이 새겨진 팔찌를 한 일본인 한 명까지.

강송구는 지금 팀의 주축이라고 볼 수 있는 외국인 용병들과 함께 신나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그런 강송구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영어도 할 줄 아나 보네?”

“그러게.”

물론, 관심은 그뿐이었다.

선수들의 시선은 다시 마운드로 향했다.

하지만 강송구는 평소와 다르게 옅은 미소까지 지으며 용병들과 친분을 다지는 데 힘을 썼다.

특히, 주전 유격수인 알렌 베이커와 대화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 강송구였다.

“알렌! 대기 타석에 들어가야 해.”

그때 알렌 베이커를 찾는 통역사.

그제야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던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캉! 오늘 경기 끝나고 부대찌개나 먹으러 가자고. 어때? 내가 특별히 쏠게.”

“좋지. 그때 텍사스 관련 이야기도 많이 해줘.”

“하하하! 물론이지.”

그러고는 알렌 베이커가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우효가 물었다.

-도대체 왜 저 친구에게 공을 들이는 거야?

그에 강송구가 가볍게 대답했다.

‘유격수니까.’

-유격수니까?

‘그래, 내야 수비진의 핵심인 유격수와 친해져서 나에게 나쁠 건 없지. 특히 우타자를 상대로 체인지업을 자주 던지는 내게 알렌 베이커의 도움은 필수다.’

-생각보다 너 조금 계산적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남자는 가슴으로 시키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끔은 계산적일 필요가 있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효가 되물었지만, 강송구는 작은 고슴도치를 무시하고 타석에 들어선 알렌 베이커를 바라봤다.

‘작년까지 알렌 베이커는 육성 용병으로 2군에서 실력을 가다듬고 있었어.’

-그래?

‘그리고 올해 용병 타자 자리가 하나 나오자마자 김동식 감독님이 그를 1군으로 올렸지.’

그리고 4월 한 달간 보여준 알렌 베이커의 성적은 2할 7푼대의 타율과 3개의 홈런이었다.

유격수치고는 제법 나쁘지 않은 타격 능력.

하지만 수비에서만큼은 흠결이 하나 없었다.

덕분에 빠르게 주전 유격수로 자리를 잡은 알렌 베이커는 벌써 대전 호크스의 팬들에게 육성 용병으로 싸게 잘 데려온 ‘혜자선수’라는 인식이 박혔다.

아무튼.

그런 알렌 베이커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것도 투 아웃 만루의 상황.

모두의 시선이 투수와 타자의 승부에 집중되었다.

-누가 이길 것 같아?

‘머리는 타자. 가슴은 투수.’

-그게 무슨 논리야?

‘모든 지표가 타자가 이길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이상하리만큼 투수가 이길 것 같군.’

마운드에 선 더블스타즈의 선발투수인 김대용이 흐르는 땀을 소매로 대충 닦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팔을 휘둘렀다.

알렌 베이커는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멀리 나아가는 공.

이윽고 좌측 담장에 맞고 떨어지는 공.

2-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고.

알렌 베이커는 2루에서 멈췄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호크스의 원정 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

1회 초부터 대전 호크스가 더블스타즈의 젊은 투수를 상대로 기분 좋게 2점을 먼저 가져왔다.

그 광경을 보며 우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왜 이렇게 잘해? 여기 7위 팀 맞아?

훌륭한 짜임새를 가진 호크스의 타선.

이런 타선을 가진 팀이 왜 7위일까?

우효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1회 초가 끝나고.

왜 호크스가 이런 타선을 가지고도 리그 7위를 하고 있는지를 우효는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 * *

-아…. 좋지 않습니다!

-또 홈런을 허용하는 박철준!

-3회 말! 점수는 이제 9대5로 더블스타즈가 기어코 이번 이닝에 큰 점수를 만들어냅니다!

“야! 이 X새끼들아! 박철준 내려!”

“저 새끼 새가슴이라 존에 공을 못 넣는다니까!”

“내려! 3이닝을 던져서 9점이나 내주면 강판을 시켜야지! 똥식아! 감독이 왜 이렇게 투수교체 각을 못 잡는 거야?”

“우리가 버스에 불을 좀 태워봐? 어?”

“너희 오늘 끝나고 어디 회식이라도 하러 가봐. 내가 그 순간 바로 찾아가서 술병으로 대가리를 깨버릴 테니까!”

단단히 화가 난 대전 호크스의 팬들.

-와…. 진짜 살벌하네.

‘30년 동안 우승을 못 했는데 당연하지.’

-막 보살이라고 하던 팬덤 아니야?

‘원래 대전 호크스의 80-90년대 팬들은 상당히 거칠었다. 버스 파손부터 시상식 훼방과 심판 집단 구타도 했지.’

-와우!

‘하지만 팬덤도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법. 2010년대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온건한 성격의 젊은 팬들이 많이 늘어났지. 동시에 대전 호크스의 암흑기도 시작되었고.’

-그런데 지금은 왜 저래?

‘그 온건한 팬들이 10년간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에 질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거기다 의외로 많은 팬을 보유한 구단이라서 과격한 팬들의 비율도 금방 늘어나는 편이고.’

그래.

30년을 우승 못 했다.

차라리 플레이오프에 진출이라도 간간이 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질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전 호크스는 끝까지 바닥이었다.

끝이 없는 리빌딩과 부진한 성적.

2020년대 초반까지 보살이라 불리며 온건했던 팬덤이 아수라가 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서울 잠실 야구장의 원정팀 응원석.

거기에 앉아있는 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따악!

다시금 들려오는 타격음.

강송구는 더그아웃까지 들려오는 팬들의 비난을 들으며 슬슬 준비가 필요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날 롱릴리프로 넣겠지.’

-오! 드디어 출전인가?

‘슬슬 준비해야겠어.’

긴 이닝을 소화해줄 투수로 강송구가 제격이었다.

체력도 준수하고 기울어버린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질 강심장을 가졌으니까.

그렇게 불펜으로 움직이려는 강송구.

하지만 김동식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안주민 투입해.”

“주민이를 말입니까?”

“그래.”

“강송구는 어떻게 합니까?”

“오늘은 투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투코가 잘 설명해줘. 이틀 뒤에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다고.”

“원래라면 주민이를 생각하신 것 아닙니까?”

“생각이 바뀌었어.”

“갑자기 말입니까?”

“부탁하지.”

투수 코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소식을 투수 코치를 통해 전해 들은 강송구는 처음으로 무덤덤한 표정에서 ‘놀람’이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이건 예상치 못했군.’

자신을 롱릴리프나 승리조 셋업맨으로 쓰기 위해서 1군으로 올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김동식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내 첫 데뷔전이 선발투수라니.’

-저 감독이 도대체 뭘 보고 널 5선발로 기용한다는 거야? 거기다 보통은 선발로 기용하기 며칠 전에 미리 통보하잖아.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알린다고?

‘나도 모르지. 감독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야.’

따악!

다시금 들려오는 타격음.

마운드에 자신 있게 올라간 안주민.

그가 홈런 한 방을 맞는 장면을 보며 강송구가 조용히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늘 정말로 대단했어.

“그렇지.”

-그래도 어떻게 이기기는 했네?

“하지만 불펜을 많이 소모했지.”

17대16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수가 나온 경기.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어떻게 하면 한 경기에 이런 점수가 나오냐?’라는 조롱이 섞인 욕설도 올라왔다.

-정말로 투수 문제가 큰 것 같아.

“그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야 수비다.”

-뭐? 오늘 수비에서 실책이 나온 건 없었잖아?

“그러면 물어보지 오늘 유니폼에 흙이 잔뜩 묻은 내야수가 몇 명이나 있었지?”

-어?

“내가 보기에 알렌 베이커를 제외하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머지 내야수들의 유니폼은 상당히 깨끗했지.”

-하지만 수비는 나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나쁘지 않았을 뿐이다. 내야수 대부분이 서른이 넘는 베테랑인 것도 있지만 허슬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만 몸을 날리면 잡을 수 있는 공도 쫓는 시늉만 하지.”

-그런데 왜 수비 지표가 좋은 거야?

“확실한 건 누구보다 잘 처리하니까.”

하지만 그건 개인의 스텟에 도움이 될 뿐 팀의 승리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와…. 그렇구나.

“만약에 오늘 내야진이 조금만 몸을 날렸어도 이런 식으로 크게 점수 차이가 나오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내야가 문제인 건가?

“아니, 이 팀은 근본부터가 잘못되었다.”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근본?

“그래.”

-그것보다 내일 경기는 누가 이길 것 같아?“

그 물음에 강송구가 대답했다.

“더블스타즈.”

강송구의 예상처럼 두 번째 경기는 더블스타즈가 호크스를 상대로 12대2라는 큰 차이를 벌리며 승리를 거두었다.

[불을 뿜는 더블스타즈의 타선! 흔들리는 호크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처참한 경기력에 몰래 숨겨온 소주병까지 던지며 난동을 피우는 호크스의 팬들.]

[더블스타즈! 1선발 레이 모건, 홈 3연전의 마지막 경기를 가져오기 위해서 출격준비 완료!]

[호크스의 3차전 선발은 5월 1일에 콜업된 육성선수 강송구? 그의 첫 데뷔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투수진이 무너진 것이 컸다.

하지만 강송구는 이 팀의 문제가 내야 수비와 투수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 아깝네.”

“어쩔 수 없지.”

“확실히 더블스타즈가 잘해.”

졌음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뭔가를 고칠 생각도 없다.

그건 우승을 위해서 노력하는 젊은 선수들도 그랬다. 그들도 분해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얌전했다.

고작 한 경기에서 진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베테랑들은 타성에 젖었고.

젊은 선수들은 ‘패배’라는 것을 쉽게 생각했다.

‘실력 문제가 아니라 마인드가 망가졌어.’

이런 분위기는 절대 좋지 않았다.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우승을 위해서는 상대가 한 경기도 쉽게 가져갈 수 없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노장들은 팀을 위해서 뛰어야 하는 법을 배우고.

젊은 선수들은 한 경기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가을야구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이제 콜업된 신인이니까.

그것도 똥볼을 가진 별것 없는 투수.

‘지금은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성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이 호크스라는 팀에 중요한 선수가 되고 나서 천천히 내부부터 바꾸면 된다.

그러면 이 팀도 언젠가는 우승할 수 있다.

‘가능하다.’

강송구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일 경기가 중요했다.

모든 것을 바꿀 첫발을 디디는 날.

“우선 내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강송구가 두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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