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스프링캠프(3)
컷 패스트볼.
구속 자체는 포심 패스트볼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투수의 팔 반대 방향으로 휘는 변화를 보이는 구종.
‘더 빠르게’를 외치는 현대 야구에서 컷 패스트볼이란 구종은 빠르면서 무브먼트까지 챙긴 훌륭한 구종이다.
그렇기에 2000년대에 들어와서 써클 체인지업과 함께 컷 패스트볼이 유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컷 패스트볼’로 한국에서 유명한 선수는 부산 티탄즈의 마무리인 김승혁과 용병 투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으로 리턴한 강현준이 뛰어난 커터를 던지며 한국에서도 재미를 봤었다.
“뭐야? 배트가 왜 부러져?”
“구위가 좋은가?”
처음에 강송구의 공을 본 이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두 번째 타자에게 던진 커터로 삼진을 잡는 것을 보자마자 저 공이 ‘컷 패스트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커터?”
“슬라이더랑 궤적이 상당히 비슷한데? 구속이 느려서 변화에 더 집중한 건가?”
“와…. 저 느린 구속으로 배트가 쪼개질 정도면 얼마나 구위가 좋다는 거야?”
“저 느린 구속으로 마운드에 오른 이유가 있었네.”
스왈로스의 타자들이 감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커터만 조심하면 그만이잖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송구의 무기는 커터일 뿐이라고.
따악!
“아웃!”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강송구는 커터라는 날카로운 송곳니 뒤에 체인지업이라는 독니를 숨겨놨다.
“아! 아깝다. 체인지업을 생각 못 했네.”
“저 체인지업만 좀 조심하면 금방 공략하겠네.”
“자! 조금만 집중하자! 집중해!”
스왈로스의 타자들은 강송구가 꺼내든 컷 패스트볼에 집중하고 체인지업이라는 무기는 무시했다.
언제든지 칠 수 있는 구종이라 생각했으니까.
4회 말.
마운드에 오르는 스왈로스의 새로운 투수를 강송구는 더그아웃에 앉아서 조용히 바라봤다.
‘새가슴이군.’
-그걸 어떻게 보자마자 알아?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뭐? 너 무슨 초능력자야?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확신을 해?
‘딱히 설명을 못 하겠군. 하지만 보면 알 수 있다. 저 선수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타석이나 마운드에 오르는지.’
-그래서 저 투수는 얼마만큼 버틸 것 같아?
‘이번 이닝까지는 막을 거다. 문제는 지금까지 스왈로스의 타선이 벌어둔 득점을 모두 소모하겠지만.’
-그 뜻은?
‘7대7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다는 뜻이지.’
우효는 ‘설마?’ 하는 눈으로 마운드를 봤다.
그때 들려오는 타격음.
빠악!
제대로 맞았음을 느낄 수 있는 타구음에 모두의 시선이 외야 너머로 날아가는 공을 바라봤다.
“홈런이다!”
“이야! 저 녀석 제법인데?”
“이제 3점 차이네? 연습경기라도 역전승 한번 만들어보자! 할 수 있겠어.”
우효가 고개를 돌려 강송구를 바라봤다. 하지만 강송구의 시선은 마운드에서 떨어지질 않고 있었다.
‘분명히 저 선수는 끝내주는 선수일 거야.’
-아까는 새가슴이라며?
‘아무리 새가슴이라도 그 선수가 가진 능력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지. 저 커브가 제구만 제대로 됐어도 타자는 홈런이 아니라 삼진으로 물러났을 거야.’
-그 정도야?
‘그래.’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프로라는 세계에 발을 디딘 선수 중에서 하나라도 장점이 없는 선수가 어디에 있겠는가?
프로가 되었다는 뜻은 고교야구나 대학에서 최고에 가까운 재능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드래프트로 뽑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무대체질이 아닌 거야.’
-무대체질? 배우도 아니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저 투수도 불펜에서는 그 어떤 투수보다 굉장할 거야. 아마 코리안 샌디 쿠팩스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
-너무 과한 평가 아니야?
‘아니야. 그런 선수들이 많아. 진짜 대단한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한국, 일본, 미국에 널렸어.’
-그런데 왜 모두 프로가 못 되는 건데?
‘내가 말했잖아. 무대체질이 아니라고. 프로라는 무대의 중압감과 특수성을 못 이긴 거야.’
그래.
불펜에서는 최고의 공을 던지지만, 실전에서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공을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프로가 될 수 없다.
왕이 되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헨리 4세’를 꼬집고자 그의 희곡에서 한 말이다.
이 말처럼 그들은 프로의 무게를 못 견뎠다.
따악!
“또 맞았다!”
“돌아! 돌아!”
다시금 안타를 맞은 투수.
우효는 어느덧 7대6으로 따라잡은 점수를 보며 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제대로 얻어맞네.
‘그렇지.’
-그런데 넌 어때? 무대체질은 이미 갖춰진 것 같은데…. 주인공이나 조연 정도는 되려나?
그 물음에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난 주인공이나 조연이 싫어.”
-뭐?
“빌런이 최고지.”
그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광판에는 7대7이라는 점수가 적혀있었다.
* * *
5회 초의 선두타자.
선발투수인 안주민을 상대로 2개의 홈런을 뽑아낸 김이윤이 실실 웃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재미있는 공을 가진 녀석이네.’
그는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보며 씩 웃었다.
모든 부분이 언벨런스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갖췄으면서 누구보다 느린 공을 던지고, 동시에 누구보다 압도적인 커터를 던졌다.
‘커터의 구속이 아까 133km/h였나?’
그런 주제에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컷 패스트볼의 구속보다 4~5km/h 정도 느렸다.
그런 구속으로 배트를 쪼갰으니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위는 대단할 것이다.
그렇기에 재미있었다.
저런 약점이 극명한 투수가 마운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악하는 것이 그의 눈에는 재미있어 보였다.
동시에 즐거웠다.
저렇게 발악하는 투수를 짓밟는 것이 말이다.
‘나도 참…. 성격이 안 좋다니까?’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어떻게 요리할까.
김이윤은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였다.
마운드에 있던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슈우우욱!
‘음?’
우타자의 몸에 바짝 붙어 들어오는 공.
김이윤이 놀라 몸을 슬쩍 뒤로 빼는 순간 공이 휘며 그대로 스트라이크 존에 걸쳤다.
“스트라이크!”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 김이윤의 시선은 마운드로 향했다.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투수.
강송구를 보며 김이윤이 미소를 지었다.
아까와 다른 살짝 굳은 미소를 말이다.
‘좀…. 선 넘네?’
아까보다 반 발자국 홈플레이트에 붙은 김이윤이 제대로 자세를 잡고 투수를 노려봤다.
김이윤의 미소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상대가 대단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응징해줄게.’
그런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강송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어지는 2구째 승부.
따악!
김이윤은 강송구의 커터를 때려내며 그를 영입한 스왈로스에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큰 타구는 파울라인을 넘어갔다.
“아까비! 파울 홈런이네.”
“천천히! 하나씩 만들자!”
그 큰 타구가 나오자마자 스왈로스의 더그아웃이 다시금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하…. 진짜 대단한 타자야! 타석이 꽉 찬 느낌이군. 왜 거액의 연봉을 받는지 알 것 같다.
우효가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김이윤이라는 타자는 대단했다.
하지만 강송구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리고 기계처럼 단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사인을 교환하고 바로 3구째 공을 집어 던졌다.
슈우욱! 펑!
“볼!”
이번에는 낮게 떨어지는 커브.
김이윤이 배트를 내밀다 급히 멈췄고, 일루심은 그의 배트가 돌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체크 스윙이 나왔군.’
강송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타석에 있는 타자는 떨어지는 공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설픈 공은 모두 때려내겠지.’
그렇기에 준비했다.
타자가 속을 수밖에 없는 위닝샷.
그 공을 던지기 위해서 말이다.
따악!
“파울!”
4구째 승부에서 우타자의 바깥으로 빠지는 커터를 던진 강송구의 공을 김이윤의 배트가 따라가 파울을 때려냈다.
타석에 선 김이윤의 얼굴에 아쉬움이 생겼다 사라졌다. 반대로 계속해서 큰 타구를 허용하는 강송구의 표정은 처음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언제 승부할 거야?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대답했다.
‘풀 카운트까지 설계하고.’
-평소에 상남자처럼 윽박지르는 피칭을 할 것 같은 놈이 이럴 땐 무슨 계집애처럼 던져?
우효의 불만에 강송구가 대답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남자는 가끔 졸렬하게….’
-그거 저번에 했던 말이잖아?
‘...하는 척하면서 남의 뒤통수를 때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지.’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강송구는 그런 우효를 무시하고 피칭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바깥에 걸치는 커터였다.
“볼!”
2-2의 상황.
볼 하나가 더 나오면 풀 카운트가 된다.
강송구는 그런 상황에도 차분히 준비했다.
계속해서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의식하게 하면서 타자의 머리에 몸쪽 코스를 생각하게 했다.
‘계속해서 바깥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타자는 아마 몸쪽 코스를 떠올리겠지. 투수가 뭔가 노리는 게 있다면 몸쪽으로 들어가는 공을 생각할 거다.’
문제는 어떤 구종을 준비하냐는 것이다.
‘체인지업이다.’
이어진 피칭에서 볼이 나오면서 승부는 풀 카운트까지 이어지게 된 순간 김이윤은 확신했다.
체인지업이라고.
다른 공은 모두 던졌지만, 지금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체인지업만큼은 감추고 또 감추고 있었다.
‘땅볼 타구를 노리겠지.’
삼루수나 유격수가 있는 방향으로 땅볼 타구를 유도해서 깔끔히 아웃을 잡으려 할 것이다.
김이윤이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상대의 노림수를 알았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맛있게 해치우는 것뿐.
하지만 강송구는 다른 카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체인지업을 생각하는 타자에게 강송구는 자신의 포심 패스트볼을 당당히 꺼내 들었다.
그것도 몸쪽 높은 코스로 말이다.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강송구.
이어서 그의 오른손 끝에서 공이 떠나갔다.
몸쪽으로 향하는 공.
김이윤은 체인지업을 확신하며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은 그의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공이 좀 빠른데?’
체인지업처럼 멈추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그대로 쭉 들어온다.
배트를 반쯤 내밀었을 때 그는 깨달았다.
자기가 저 투수에게 속았음을 말이다.
김이윤은 커터라는 송곳니와 체인지업이라는 독니의 뒤에 은밀히 숨겨진 포심 패스트볼이란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게 되었다.
따악!
공 아래를 때린 배트.
당연히 공은 높게 떠올랐다.
“포수!”
포수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미트를 위로 들어 올리면서 떨어지는 공을 잡아냈다.
“아웃!”
그렇게 끝이 난 풀 카운트의 승부.
타석에서 물러나는 김이윤의 얼굴에서 오늘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하지만 강송구의 얼굴은 덤덤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다음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이어나갔다.
우효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감정의 동요가 없어? 저런 타자를 잡으면 기뻐 좀 하라고!
강송구가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답했다.
“고작 하나의 아웃 카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