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완벽하군(2)
“...”
마진구는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봤다.
141km/h라는 숫자가 준 충격.
그건 다른 스카우트들도 같이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141km/h란 숫자는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 프로야구 평균 구속에 조금 부족한 구속이니까.
분명히 자주 볼 수 있는 구속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 141km/h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경쟁이 붙을 수 있겠군.”
“확정입니다. 좋지 않습니다.”
“그래, 정말 좋지 않아.”
백동혁 단장이 굳은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당연했다.
저 숫자가 뜻하는 것은 강송구의 구속회복 가능성에 파란불을 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최고 130km/h의 패스트볼만 던지던 투수가 갑자기 141km/h의 공을 던졌다.
그렇다는 뜻은 구속을 회복한다면 최소 140대 초반의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른 구단도 그걸 모를 리 없다.
구단에 전화부터 돌리는 가증스러운 스카우트들을 보며 백동혁 단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면 강송구 선수의 영입은 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협상이 될 것 같군.”
당혹스러워하는 더블스타즈의 선수들 사이로 탁성균이 굳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분노했다.
‘쇼케이스의 희생양으로 날 삼았다는 뜻이지? 다음 타석에서 고개도 못 들게 때려주마.’
그러고는 마운드에서 오르는 강송구를 노려봤다.
-야, 저 녀석이 너 노려보는데?
‘예전에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지. 똥개가 짖는다고 겁먹는 사냥꾼은 없다고.’
-도대체 그 시리즈는 언제 끝나냐?
‘아직도 476가지의 명언이 남아있지.’
-그것보다 저 녀석 재활이 다 끝나고 2군 경기 테스트 보는 거 아니었나?
‘너도 느꼈나 보군.’
-당연하지. 묘한 코스로 넣은 애매한 커브에 배트가 나오다 멈춘 것을 보면…. 아직 무릎이 시린가 봐?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고 상관없다. 어차피 다음 타석부터는 상대할 필요가 없는 놈이니까.’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송구의 말처럼 굳이 탁성균과 승부를 낼 필요가 없었다.
따악!
“아웃!”
2회 말의 첫 번째 타자를 내야 땅볼로 잡아낸 강송구는 이어진 승부에서 삼진으로 상대 타자를 깔끔히 잡아냈다.
스카우트들은 다시금 120대 후반의 패스트볼로 상대 타선을 압도하는 투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사이에 끝난 2회 말.
강송구가 이번 이닝도 무실점으로 깔끔히 막으며 다시금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 *
4회 말.
투 아웃 상황.
탁성균이 다시금 타석에 들어섰다.
앞선 타석에서 꼴사납게 삼진을 당한 그는 이번 타석에서 마운드에 있는 녀석을 짓뭉개 줄 생각이었다.
‘와라!’
그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강송구를 노려봤다. 하지만 강송구의 공은 그가 원하는 코스로 날아들지 않았다.
모두가 바깥으로 빠지는 공.
-큭큭…. 저 녀석 얼이 빠졌는데?
‘그럴만하지.’
마지막 공까지 바깥으로 공을 던졌다.
“베이스 온 볼스!”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1루에 나가게 된 탁성균.
하지만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우효는 그런 탁성균을 보며 웃었다.
-우효횻! 오늘 경기 내내 상대 안 해줄 거지?
‘물론.’
어차피 앞선 타석에서 보여줄 건 모두 보여줬다.
이제부터 굳이 힘을 들여서 잡을 필요가 없었다.
따악!
“아웃!”
다음 타석의 타자를 상대로 아웃을 잡는 게 더 빠르고 투구수도 절약할 수 있다.
탁성균은 모를 것이다.
강송구가 자신의 밑천을 다 드러내고 그를 잡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오늘 경기 내내 타석에 들어선 그를 거를 것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나이스 피칭이었다.”
박진수가 씩 웃으며 강송구에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그것보다 5회 말부터는 어떻게 할래? 아직 슬라이더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지 않아.”
“오늘 패스트볼은 좋은데, 변화구가 모두 밋밋합니다. 최대한 변화구로 카운트를 쌓고 패스트볼로 승부 보고 싶습니다. 중간에 체인지업을 섞는 것도 좋고요.”
“오케이. 그러면 5회 말부터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요구할게. 그런데 그 140대 패스트볼은 못 던지지?”
“네, 그게 입스 같은 거라…. 1회 말에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강한 타자를 상대한다는 마음에 그런 구속의 공이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강송구의 대답에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7회 말.
점수는 2대0으로 청천 야구단이 앞서는 상황.
이번 이닝의 첫 번째 타자인 탁성균이 굳은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야…! 오늘 경기 볼넷을 얻어내며 팀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위대한 타자! 탁.성.균 선수잖아!”
“...”
박진수의 트래쉬 토크에도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두 눈에는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만 담겨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강송구는 탁성균을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이번에도 바깥으로 빠지는 공.
“씨팔! 작작 좀 하십시오.”
“왜? 저 친구가 너 부담스럽다고 거른다는데?”
능글맞은 박진수의 말에 탁성균이 이를 꽉 물었다.
오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베이스 온 볼스!”
이번에도 볼넷으로 탁성균을 거른 강송구.
그가 다음 타자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7회 말까지 오면서 던진 공은 81구.
하지만 그의 어깨는 아직도 쌩쌩했다.
-체력 하나는 끝내주네.
우효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갤 흔들었다. 아무래도 오늘 강송구는 완봉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따악!
“아웃!”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가 유격수의 글러브에 걸쳤다.
선수의 머리 위로 빠지는 듯한 빠른 타구였기에 놓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침착하게 잡은 것이다.
“나이스 플레이!”
“좋다! 원 아웃! 원 아웃!”
청천 야구단 선수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만큼 강송구의 호투와 방금 있던 호수비 덕분에 제대로 탄력을 받은 것이다.
‘무서운 투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천 야구단의 황태석 감독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타자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어떤 코스와 구종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사실, 경기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 타순이 한 바퀴 도는 순간.
강송구는 더블스타즈의 2군 타선을 대략이나마 파악했고, 그에 맞춰서 깔끔한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따악!
“안타다!”
“아! 아깝네.”
“저 친구 노 히터였잖아?”
“대단하군.”
7회 말의 마지막 타자에게 오늘 첫 안타를 내주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자의 심리를 잘 읽는다. 그리고 승부에 들어갈 때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늘 경기에서 두 번이나 거른 탁성균과 승부를 보면 마냥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투수도 아니었다.
오늘 탁성균을 잡은 첫 타석을 빼고는 강송구는 계속해서 그를 거르며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계산적인 부분도 있다. 자신이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선 그 어떤 투수보다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투수라는 포지션이 가져야 할 정신적인 부분을 모두 갖춘 강송구의 모습을 보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저기서 만약 구속까지 회복한다면?’
많이도 아니다.
딱 5km/h만 회복한다면….
프로라는 무대가 멀지 않은 것 같았다.
* * *
9회 말.
점수는 아직도 2대0이었다.
그리고 마운드에 오른 투수도 강송구였다.
타선은 2-3-4로 이어지는 상황.
앞선 두 타자를 깔끔이 잡아낸 강송구의 앞에 오늘 경기에서 3번 모두 물을 먹은 미친개가 나타났다.
“씨팔…. 이번에도 거르면 저 새끼에게 달려가서 주먹을 휘두를 생각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이길 수는 있겠냐?”
박진수의 빈정거림.
그 말에 탁성균이 이를 꽉 물었다. 그가 마운드에서 거목처럼 서 있는 강송구를 무섭게 노려봤다.
미친개가 상대를 가리는 것을 보았는가?
이번에도 자신을 거른다면 진짜로 달려들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박진수는 사인을 보냈다.
‘이번에는 잡아내자.’
그 사인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쯧…. 감정을 숨기고 타석에 서도 안타를 때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아주, 미친개가 되어서 타석에 들어섰군.
우효의 말처럼 타석에 들어선 탁성균의 눈은 주변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좁아진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1회 말에 겪은 도발과 꼴사나운 삼진.
그리고 자신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연이어 두 번이나 걸렀다.
일반적인 타자도 기분이 나쁠 만한 상황.
그런데 성격이 거지 같으면서 프라이드가 높은 탁성균은 어떻겠는가?
당연히 눈이 뒤집힐 것이다.
‘앞뒤 구분도 못 하는 미친개를 잡기 좋은 타이밍이군.’
9회 말.
투 아웃의 상황.
점수 차이는 2점이기에 탁성균에게 홈런을 맞아도 역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강송구도 이번에는 탁성균과 승부에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었다.
초구 사인은 바깥쪽 체인지업.
좌타석에 선 탁성균은 강송구가 던진 초구부터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파울!”
하지만 바깥으로 크게 빠지던 공이 제대로 된 타구가 될 이유는 없었다.
-뭐…. 메이저리그의 괴물들이라면 저렇게 빠지는 공을 타격 자세가 무너지면서도 홈런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저 미친개가 메이저리그의 수준은 아니지.’
그렇기에 다음 공도 자신 있게 넣었다.
몸쪽에 걸치는 커브.
틱!
“파울!”
이번에도 파울.
탁성균은 이를 꽉 물었다.
‘날 거르지도 못하게 모든 공을 커트해주마!’
이어지는 승부.
6구째까지 모든 공을 커트한 탁성균을 보며 박진수가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다시금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엔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흥분해서 타격 자세가 무너졌다. 지금이 기회다.’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패스트볼.
강송구가 요구한 것은 정면승부였다.
이윽고 그의 팔에서 뻗어 나가는 패스트볼.
그 공을 보기 무섭게 탁성균이 배트를 내밀었다.
따악!
하지만 타격음이 들리기 무섭게 탁성균은 얼굴을 찌푸리고,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강송구의 패스트볼에 배트가 밀린 것이다.
“시팔!”
화를 내는 탁성균.
그리고 외야 뜬공을 처리하는 중견수.
“아웃!”
9이닝 1피안타 3볼넷 무실점.
완벽한 피칭이었다.
그리고 완벽한 피칭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9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11개의 삼진을 잡았습니다.]
[추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7,155포인트입니다.]
[첫 완봉승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루비 카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을 보며 강송구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완벽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