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9화 (9/198)

#9. 마운드에 오르다.(3)

“이거였나?”

대전 호크스의 스카우트.

마진구의 두 눈이 번뜩였다.

다시 프로의 꿈을 꾼다기에 뭔가 준비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런 무서운 맹독을 꼭꼭 숨기고 있을 줄은 마진구도 예상 못했다.

‘아까 보여준 것은 슬라이더를 생각하면 두 종류의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보면 되나?’

나쁘지 않은 카드였다.

그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마지막 카운트를 잡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강송구를 바라봤다.

이어지는 2회 말.

대전 호크스 2군의 선발투수는 5번 타선에 배치된 박진수에게 그대로 홈런을 허용했다.

스카우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어나더 레벨이군.”

“2년을 쉰 선수처럼 보이질 않아.”

“단 한 번의 타격으로 클래스를 보여주는군.”

“드래곤즈가 속이 아주 쓰리겠어.”

하지만 박진수의 홈런을 제외하면 청천 야구단의 타자들은 상대 투수에게 완벽히 막히고 있었다.

점수는 7-1인 상황.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나쁘지 않은 카드가 될 것 같아.”

“강송구라….”

“저 정도로 공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뜻은 지금보다 더 구속이 오를 가능성도 있겠어.”

스카우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예전에 100마일을 던지던 괴물은 없지만, 지금의 강송구가 보여주는 모습도 제법 흥미로웠다.

대전 호크스의 마진구는 그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점점 다른 스카우트들도 강송구의 가능성을 조금씩 높혀가고 있다. 우리가 다른 팀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해.’

하지만 대전 호크스는 먼저 집중하고 있는 선수의 영입을 완벽히 끝내야 강송구에 제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띠리리리.

때마침 들려오는 전화벨.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마진구가 전화를 받았다.

잠깐 이야기를 듣던 그는 곧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통화를 끊었다.

“좋아. 드디어 지루한 줄다리기가 끝났군.”

그러고는 노트북을 열어 지금까지 그가 모아온 강송구의 자료를 대전 호크스의 단장에게 보냈다.

* * *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강송구가 3회 초의 첫 번째 삼진을 잡았다.

7-9번으로 이어지는 대전 호크스 2군의 하위타선은 강송구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저 슬라이더를 어떻게 공략하지?’

‘분명히 구속은 느린데…. 공을 쉽게 치지 못하겠어.’

두 번의 삼진을 만들어낸 강송구의 슬라이더에 상대 타자들의 시선이 쏠려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강송구는 커브로 잘 잡아냈다.

C등급의 커브는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닥터K가 적용되자 2군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발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박진수는 묘한 눈빛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좋은 슬라이더는 미끼군. 이번 이닝에서는 적극적으로 커브를 활용해서 아웃 카운트를 쌓고 있어.’

모두가 마운드의 투수를 의식할 때.

강송구는 덤덤한 표정으로 포인트가 쌓이는 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었다.

‘짜다.’

그 모습에 우효가 혀를 내둘렀다.

-짜다고? 이닝마다 140포인트씩 쭉쭉 쌓이는데?

‘그래, 짜다.’

-허….

‘골드 카드가 아닌 그 상위에 있는 카드를 사기엔 포인트 수급이 너무 더뎌.’

우효가 콧구멍을 크게 벌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건 당연한 거지! 상대는 2군이잖아!

강송구는 우효의 말을 무시하고 마지막 남은 9번 타자까지 깔끔히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그렇게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강송구.

그때 그의 옆에 박진수가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 공이 정말 좋은데?”

“감사합니다.”

강송구는 박진수의 칭찬에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물었다.

“그것보다 혹시 다음 이닝에 볼 배합을 어떻게 가져가실 생각입니까?”

“음?”

강송구의 말에 박진수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타고난 투수다. 그것도 타고난 선발투수. 설마 경기 전체의 볼 배합을 생각할 줄이야.’

이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포수 혼자 생각해서 짜는 볼 배합보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와 함께 맞추는 볼 배합이 더 치밀한 법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머리 하나보다 둘이 더 좋지 않겠는가?

어차피 황태석 감독이 자주 사인을 내는 편도 아니었기에 박진수는 조금 더 강송구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으로 상위 타선을 상대하는 4회 초부터 체인지업의 비중을 늘릴 생각이야. 대전 호크스의 2군 타선은 1번부터 6번까지 좌타자가 넷이나 되니까.”

박진수의 말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중간에 제 임의대로 사인을 내도 되겠습니까? 불쾌하시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야. 필요하다면 사인을 내도 돼.”

“감사합니다.”

강송구의 옆에 있던 우효는 그 모습을 보며 짧게나마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주 관대한 녀석이군. 후배 투수가 저런 말을 하면 얼굴부터 찌푸리는 포수가 제법 있는데 말이야.

‘그렇지.’

강송구도 설마 박진수가 자신의 의견을 들어줄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것보다 오늘은 몇 이닝을 던질 것 같아?

‘짧으면 3이닝에서 길면 5이닝.’

-나쁘지 않군.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2군을 상대로 나쁘지 않지.”

* * *

4이닝 1피안타 2볼넷 5삼진 무실점.

강송구가 지금까지 기록한 성적이다.

이제 한 타자만 더 잡으면 6회 초를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호크스 2군의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어느 정도 강송구의 공이 눈에 익은 상황.

박진수는 이번 승부가 가장 큰 위기라 생각했다.

‘구속이 느린 투수의 비애지.’

공이 금방 눈에 익는다.

타자들이 금방 공에 배트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슬슬 바꿔야 한다.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썼다.’

박진수가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

‘대단하군. 표정을 읽을 수 없어.’

그때 강송구가 그에게 사인을 먼저 보냈다.

그것도 몸쪽 깊게 들어가는 패스트볼.

배짱이 두둑한 강송구의 선택에 박진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타석에 선 호크스의 3번 타자인 이한우가 길게 숨을 내뱉고는 자세를 잡았다.

‘때려낼 수 있다.’

그는 마운드의 강송구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렇게 이어지는 승부.

강송구의 1구가 팔에서 쏘아져 나갔다.

좌타자인 이한우의 몸쪽에 꽉 차게 들어가는 공.

순간 이한우가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빠악!

높게 치솟는 공.

하지만 공은 파울 지역으로 떨어졌다.

큰 궤적의 파울 홈런.

하지만 강송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번에는 커브 그립을 쥔 강송구가 조금 빠른 인터벌을 가져가며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낮은 존에 걸치는 커브.

이한우의 배트가 움찔했다.

참은 것이다.

‘이상하다…. 분명히 느린 공인데, 왜 이렇게 내가 늪에 빠진 것처럼 치질 못하겠지?’

평소의 그였다면 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러 강송구가 던진 낮은 커브를 퍼 올렸을 거다.

그리고 신나게 베이스를 돌겠지.

‘집중하자. 상대는 아마추어야.’

이를 꽉 문 이한우.

그런 타자를 주시하던 강송구가 은근슬쩍 박진수에게 사인을 내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따악!

“파울!”

“으…! 이걸 놓치다니!”

3구째는 밋밋한 슬라이더.

배트를 휘두른 이한우가 대놓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드러낼 만큼 치기 좋은 공이었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

마운드에 선 강송구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이한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웃어?’

짜증이 치솟았다.

경기 내내 무표정이던 타자가 투 스트라이크 상황을 만들고 자신을 보며 웃었다.

‘날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지?’

아까 놓친 밋밋한 슬라이더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며 갑자기 머리 뒷골에 화가 올라왔다.

짜증이 치민 것이다.

‘어떤 공이든 박살을 내주지.’

이한우가 이를 꽉 물었다.

그런 타자를 보며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제대로 미끼를 물었다고.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를 준비가 된 타자.

그런 타자를 상대로 강송구가 커브 그립을 쥐었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버닝 스트라이크.”

-‘버닝 스트라이크’가 적용됩니다.

C등급의 커브가 A등급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제법 많은 체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차피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기에 문제는 없었다.

이윽고 강송구의 손을 떠난 공이 붕 떠올랐다.

그 순간 이한우는 자신 있게 배트를 휘둘렀다.

아까 보았던 커브의 궤적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커브가 떨어지는 타이밍과 궤적이 이한우가 생각하는 것과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였다.

“어?‘

부웅!

그 차이를 파악한 것은 배트가 어느 정도 나온 상황이었기에 멈출 수 없었다.

더 낮게 떨어진 공을 미트로 잡아낸 박진수.

주심은 주저 없이 큰 목소리를 내질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우효가 얼이 빠진 이한우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여기에 흑우 한 마리가 있었네.

* * *

이닝을 끝낸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마진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강송구의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마진구는 그를 확실히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보여준 커브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위험하다. 인천 드래곤즈는 물론이고, 서울 데빌즈까지 강송구를 탐내기 시작했다.’

저들도 강송구를 제법 당첨확률이 올라간 복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오늘 경기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마진구가 마른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거기다 지금까지 지켜본 강송구의 모습을 보면 4-5이닝을 소화하는데 여유가 있었다.

선발투수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조금만 가다듬으면 5선발급은 충분하다. 매 경기에서 5이닝을 소화해줄 수 있는 그런 준수한 선발자원이 말이야.’

물론, 아직 몇 경기 더 지켜볼 필요는 있었다.

이제 한 경기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런 퍼포먼스를 꾸준히 보여준다면 강송구의 프로 입성은 청천 야구단의 그 어떤 선수보다 확실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진구는 떠들썩한 청천 야구단의 선수들 사이에서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강송구를 지긋이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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