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8화 (8/198)

#8. 마운드에 오르다.(2)

이동진.

청천 야구단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투수로, 130대 중후반의 패스트볼과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러브, 마지막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원래라면 대졸자인 그는 2차 지명으로 충분히 여러 구단에서 탐낼만한 선수였지만, 성추문과 관련된 좋지 않은 사건으로 그 어느 팀도 그를 뽑지 않았다.

그나마 그가 청천 야구단에서 프로를 꿈꿀 수 있는 것은 그의 집안이 제법 짱짱해서였는데, 그와 관련된 성추문이 가라앉은 것도 집안에서 언론에 입김을 불어서라는 말이 돌았다.

아무튼, 그는 이번 교류전이 기회라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1군은 몰라도 프로 2군을 상대로 제법 준수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 호크스? 리그 하위권이잖아. 2군도 비슷하겠지. 거기다 오늘 공을 받아주는 포수가 박진수 선배님인데…. 별일이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마운드에 올랐다.

홈플레이트에는 박진수가 있었다.

그리고 상대는 지난 시즌에 리그 9위를 기록한 대전 호크스의 2군이었다.

‘오늘 제대로 눈도장을 찍는다.’

그러고는 불펜을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투수들.

그들을 보며 이동진이 남몰래 피식 웃었다.

‘떨거지 새끼들.’

재능도 없는 녀석들이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그에겐 정말로 같잖아 보였다.

‘난 너희와 달라.’

재능이 좀 부족할 수 있다.

그가 재능이 넘쳤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동진에겐 배경이 있었다.

부족한 재능과 인성을 억지로 채워줄 배경.

‘특히, 저 퇴물은 왜 저렇게 노력하는 거야?’

그의 시선은 강송구에게 닿았다.

재능이야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닌 선수.

그런 주제에 배경도 없는 선수.

그에겐 퇴물에 불과한 선수였다.

이상하게 다른 투수들보다 더 강송구를 업신여기는 이동진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모르는 열등감 때문일 수 있었다.

“괜히 짜증이 나게 말이야.”

투덜거리며 로진백을 들어 올린 이동진.

그가 연습 투구를 끝내자 대전 호크스의 2군 타자가 타석에 천천히 들어섰다.

박진수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 저 스카우트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는다.’

무실점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긴 이닝을 소화하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실점하더라도 가능성만 보여준다면 분명히 저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후우….”

손에 묻은 송진을 털어낸 이동진.

그가 자세를 잡고 초구를 던졌다.

* * *

-왜 저 투수가 얻어맞을 것 같다는 거야?

1회 초.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 강송구를 보며 우효가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지.’

-세 가지 이유?

‘그래.’

불펜 포수에게 공을 던진 뒤.

강송구가 슬쩍 마운드를 바라왔다.

대전 호크스의 선두타자를 상대로 금방 2개의 스트라이크를 잡으며 기분 기세를 탄 이동진.

바깥쪽은 물론이고 몸쪽 제구도 훌륭히 이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강판당할 것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맞을 것 같지 않은데?

‘아니, 곧 하나 맞는다.’

-뭐?

그 순간.

따악!

“쳤다!”

“나이스! 나이스!”

“크다! 2루타야!”

좌익수 키를 넘은 공이 담장에 맞고 떨어졌다.

빠르게 달리는 대전 호크스 2군의 선두타자.

마운드에 있던 이동진이 얼굴을 굳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떻긴…. 정보를 우습게 본 거지.’

-정보?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첫 번째 원인이야.’

얼굴을 찌푸리며 공을 건네받은 이동진.

그가 잠깐 2루를 본 뒤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송구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청천 야구단에 와서 놀란 부분이 뭔 줄 알아? 독립 야구단인 주제에 전력분석관이 있다는 거야. 뭐…. 애들 장난 수준이지만 말이야.’

-으음…. 확실히 없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 나도 덕분에 경기 전에 대전 호크스 2군에 대한 참고할만한 자료를 볼 수 있었지.’

-그게 왜?

‘저 머저리는 그걸 보지도 않았어. 결과는? 몸쪽 낮은 코스에 강한 선두타자에게 위닝샷으로 몸쪽 코스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던지면서 얻어맞았지. 그것도 박진수 선배가 요구한 사인을 거부한 뒤에 말이야.’

-쓸데없이 자존심 때문인가?

‘자존심이 강한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한 거야.’

자신이라면 집요하게 바깥쪽 승부를 가져갔을 것이다. 상대는 바깥쪽 코스에 약한 타자라고 자료에 나왔으니까.

아마도 포수인 박진수도 바깥쪽 코스를 요구했겠지.

‘2이닝 7실점.’

-그게 뭔데?

‘저 머저리의 오늘 성적.’

강송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불펜까지 큰 타격음이 들려왔다.

-그래서 두 번째 실수는 뭔데?

‘저 머저리의 두 번째 실수?’

그건 ‘프로 2군’을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몇몇 야구팬은 보통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프로 2군 별거 아닌 것 아니야?

하지만 ‘프로 2군’도 정말 대단한 이들이다.

상당히 좁은 프로의 길을 뚫어낸 이들이니까.

아마추어와 프로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심지어 재활군에 가까운 프로 3군도 아마추어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런 프로를 상대하려면 가벼운 마음으로는 안된다. 그것도 아마추어가 말이다.

글러브를 가리고 강송구가 혀를 찼다.

“쯧…. 너무 상대를 얕봤어. 도전자인 주제에 챔피언처럼 굴었으니까. 응징을 당하는 거지.”

-그러면 마지막은?

마지막.

이동진이 범한 마지막 실수.

그건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는 거다.

평균 130대 중후반의 패스트볼.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러브.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

투수로서 제법 구색을 갖췄다.

충분히 프로에 도달할 수 있는 재능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프로에 도달한 어느 타자든 공략할 수 있는 흔한 재능이었다.

압도적인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구속이 빠르지도 않아. 구종도 크게 다양하지 않아. 구질이 특별하지도 않아. 로케이션이 뛰어난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제구가 4분할까지 나눠서 던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머리가 좋아서 상대를 완벽히 분석한 것도 아니지.”

-그렇군.

우효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어떻게 보면 전체적으로 강송구보다 뛰어난 투수지만, 깊게 들여보면 강점이 없는 투수였다.

“장담하지. 저 머저리는 2회 초에 강판당할 거야.‘

* * *

따악!

2회 초.

이동진은 강송구의 말처럼 흔들렸다.

1회에 안타 2개와 볼넷 하나를 허용하며 1점을 내준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2회 초에도 시작부터 안타를 맞았다.

다행히 다음 8번 타자를 아웃으로 잡아냈지만, 9번 타자의 보내기 번트 뒤에 1회 초에 안타를 내어준 1번 타자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크게 흔들렸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만 잡으면 넘어갈 수 있는 위기였지만, 이동진은 2-3번 타자에게 연이어 안타를 내주고 기어코 4번 타자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크게 넘어가는 홈런을 보며 청천 야구단의 황태석 감독이 투수 코치를 찾았다.

“불펜에 지금 준비된 녀석이 누가 있지?”

“아직 다들 준비가 안 됐습니다.”

“좋지 않군.”

그때 불펜 코치가 대답했다.

“1회 초에 강송구가 몸을 좀 풀었습니다. 지금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아마 다른 투수들보다는 준비가 되었을 겁니다.”

“강송구?”

황태석 감독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민했다.

‘어차피 완전히 넘어간 경기. 경험이라 생각하고 올려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청천 야구단은 성적을 얻기 위한 구단이 아닌 선수들을 키워 프로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들려는 구단이니까.

지금 강송구를 올려도 나쁠 것은 없었다.

따악!

다시금 들려오는 큰 타격음.

높게 뜬 타구를 보며 황태석 감독이 입을 열었다.

“강송구. 바로 준비시키지.”

“알겠습니다.‘

* * *

-얼추 비슷하네? 2이닝 7실점에 말이야.

‘1⅔이닝 7실점이면 비슷하긴 하군.’

화장실에 갔다 오니 올라갈 준비를 하라는 불펜 코치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마운드.

2회 초도 제대로 못 넘기고 7실점을 허용한 이동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있었다.

“고생했다. 동진아.”

“...”

“내려가자.”

“알겠습니다.”

강송구의 손에 거칠게 공을 건넨 이동진.

투수 코치의 격려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가는 이동진의 눈빛에 강송구를 향한 질시와 짜증이 가득했다.

-저거 완전 또라인데? 자기 스스로 무너진 거 아니야! 갑자기 너한테 짜증을 부리냐?

‘모르지.’

강송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운드를 밟은 그는 이제부터 승부하게 될 대전 호크스 2군 타자의 정보를 머리에서 떠올렸다.

“컨디션은 어때?”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 볼 배합에서 신경 써줄 부분 있어?”

박진수의 물음에 강송구가 잠깐 고민했다.

그러고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상대를 잡으러 들어가는 피칭을 하고 싶습니다. 우타자를 상대로는 슬라이더, 좌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으로 확실하게요.”

“공격적으로?”

“네.”

“알겠어. 그 부분 참고할게.”

그렇게 마운드를 내려가는 박진수.

홀로 남게 된 강송구가 조용히 로진백을 들어 올리며 상대하게 될 타자의 정보를 떠올렸다.

‘낮은 코스로 들어가는 공에 강한 타자.’

강송구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러나 이 작은 정보만으로도 강송구가 가져갈 수 있는 이득은 제법 많았다.

거기다 이동진이 신나게 두들겨 맞으며 대전 호크스 2군의 타순을 모두 상대했다. 덕분에 감송구는 그들의 타격을 어느 정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우효횻! 구원 등판은 처음이지?

‘그렇지. 고교 시절엔 선발로만 뛰었으니까. 그것도 관리를 받으면서 말이야.’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구원 투수입니다.]

[이닝당 보너스로 포인트 획득량이 5퍼센트 증가합니다. 소화하는 이닝이 늘어날수록 보너스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의 획득량이 소폭 상승합니다.]

‘선발과 다르게 구원은 이닝당 증가하는 포인트 획득량이 좀 적은 편이군.’

아무래도 시스템은 선발을 좋아하는 것 같다.

“후우….”

아무튼, 잡생각을 정리한 강송구.

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호크스 2군의 6번 타자.

임재윤이 타격 자세를 잡았다.

초구는 패스트볼이었다.

“스트라이크!”

그대로 강송구의 첫 공을 지켜본 그는 묘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바라봤다.

‘아까 그 친구보다 좀 느린데? 덩치가 어마어마해서 강속구라도 던지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는 처음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오를 때만 해도 제법 긴장을 하며 타석에 들어섰었다.

거대한 덩치에 압도당한 것이다.

저 몸에서 나오는 공은 얼마나 빠를까.

그런 생각이 임재윤의 머릿속에 남아있었기에 그는 초구를 가만히 지켜봤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도 문제없다.

‘할만하다.’

임재윤이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잡았다.

이어지는 2구째.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휘둘러지는 그의 오른팔.

‘이건 칠 수 있다.’

아까와 같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

임재윤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빠르게 회전하는 배트.

하지만 그의 배트가 홈플레이트의 절반까지 나온 순간에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체인지업!’

틱!

“파울!”

다행히 배트에 빗맞은 타구가 파울 지역으로 굴러갔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타자.

포수 박진수가 두 눈을 반짝였다.

‘투 스트라이크에 공격적으로 해달라고 했지?’

유인구를 하나 던져도 충분하지만,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치는 슬라이더라면 더 완벽할 것 같았다.

싹 사인을 보내니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숨을 내뱉는 임재윤.

그가 경계 어린 시선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조심해야겠어.’

조금은 긴장감을 끌어올린 그가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쉽게 아웃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타자에게 강송구가 숨겨진 독니를 꺼냈다.

‘버닝 스트라이크.’

-버닝 스트라이크가 적용됩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

지금 ‘닥터K’ 특성이 적용된 상태에서 강송구가 ‘버닝 스트라이크’ 스킬까지 사용했다.

‘닥터K가 적용된 B등급의 슬라이더의 위력이 어떨지 조금은 궁금하군.’

그렇게 시작된 3구째 피칭.

와인드업 후에 강송구가 힘껏 팔을 휘둘렀다.

바깥쪽 코스로 나아가는 공.

임재윤이 두 눈을 번뜩였다.

‘충분히 칠 수 있는 코스다!’

궤적에 맞게 배트를 휘두른 임재윤은 깔끔한 안타나 홈런을 확신했다.

부웅!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공이 어느 순간 빠르게 휘면서 배트를 깔끔하게 스쳤다.

‘슬라이더?’

발레를 하듯이 배트가 헛돈 임재윤은 급격한 변화를 보인 강송구의 슬라이더의 궤적에 경악했다.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잠깐 멈춰서 멍하니 포수의 미트를 바라본 임재윤.

하지만 놀란 것은 임재윤만이 아니었다.

공을 받은 박진수도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훌륭한 슬라이더였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슬라이더로 이름을 날렸던 투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슬라이더였어. 완벽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슬라이더?”

“미쳤군. 완벽한 타이밍의 슬라이더야.”

“슬라이더의 휘는 각도와 변화하는 타이밍이 절묘해.”

“소름이 돋는군.”

스카우트들도 바삐 움직였다.

그런 가운데 오직 강송구만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이 정도 슬라이더를 던지는 것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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