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트라이아웃(2)
* * *
강송구의 초구를 던진 순간.
스카우트들의 집중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공이 포수의 미트에 틀어박힌 순간.
스카우트들의 눈빛은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아…. 125km/h?”
“겨울이라고 생각하면 봄이나 여름에 최대로 나와봤자 130 정도겠군. 쯧…. 코리안 비스트도 완전히 끝났어.”
“글렀네.”
“예, 팀장님. 네, 네, 강송구요? 썩 좋지 않습니다. 구속이 많이 떨어졌어요. 120대 중후반입니다. 커브 구속이 그러냐고요? 아뇨. 패스트볼 구속이 120대 중후반입니다.”
“2구째가 슬라이더였지?”
“타자가 이번에 너무 조급했네.”
“다음 타자를 상대로도 비슷하네. 124,126,127…. 예전의 강송구는 찾을 수 없는 구속이야.”
그의 구속을 확인 스카우트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마운드에 있는 선수는 코리안 비스트라 불렸던 강송구가 아닌 그저 120 중후반의 구속을 가진 평범한 우완투수인 강송구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한 사내의 눈만큼은 누구보다 빛났다.
‘구속이 느리지만…. 190 후반의 키에서 내려찍는 패스트볼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구속이 아주 느리지만…. 공의 움직임이나 구위가 나쁜 편은 아니야.’
남자의 이름은 마진구.
5시즌 연속 10위라는 전무후무한 치욕적인 기록을 달성하며 한국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는 팀.
1999년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둔 이후로 단 한 번의 우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의 안습팀.
대전 호크스.
그 팀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는 남자다.
‘고작 두 타자를 상대하는 것을 보고 선수의 모든 부분을 파악했다고 할 수 없지. 더 지켜봐야 해.’
사실, 그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로 활동하던 인물이었는데, 5시즌 연속 꼴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대전 호크스의 모기업이 큰돈을 들여서 데려온 인물이었다.
그는 대전 호크스가 왜 자신에게 큰돈을 쥐여주는지를 입사하자마자 완벽히 증명했는데, 최근 대전 호크스가 ‘능력 좋은 용병을 아주 싸게 잘 데려오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모두 마진구 덕분이었다.
아무튼, 마진구는 조용히 수첩에 강송구의 이름을 적고는 ‘지켜봐야 하는 선수’라고 체크했다.
그사이 1회 초가 끝났는지 강송구가 마운드에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이닝을 종료합니다.]
[세 타자를 모두 잡아냈습니다.]
[이번 이닝에 획득한 포인트는 총 101포인트입니다.]
[현재 1이닝을 소화하셨습니다.]
우효가 홀로그램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고작 아마추어 선수 셋을 잡아내고 101포인트나 쥐여주다니……. 이거 너무 사기 아니야?
브론즈 카드 뽑기가 500포인트인 것을 고려하면 확실히 후한 포인트 산정이었다.
하지만 강송구의 표정에는 미묘한 변화도 없었다.
-생각보다 잘 던지는데?
“운이 좋았을 뿐이야.”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지 않아?
우효의 말에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원래의 실력이었다면 9구 만에 이닝을 끝낼 수 있었어. 이번 이닝에 너무 많은 공을 낭비했어.”
오만할 수 있는 발언.
하지만 우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강송구가 보여준 고교야구 투구영상을 본 적이 있기에 저 말이 거짓이 아님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스카우트들이 조용하군.
“그럴 수밖에 없지. 최소 140대 중반의 공을 던질 줄 알았던 투수가 똥볼 투수가 되어 나타났으니까.”
반응이 뚱한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오히려 크게 실망하고 관심을 접었겠지.
-고교 시절에 얻었던 명성이 안개가 되어서 저 스카우트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뜻이군. 저들은 지금 120대 중후반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우완투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160을 던졌었던 강송구를 보고 있는 거니까.
“그래, 평가가 더 박해질 수밖에 없지.”
-그래.
우효가 짧은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쓸며 ‘좋지 않아.’라는 혼잣말을 하며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강송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다음 이닝에 체인지업을 꺼내야겠어.”
* * *
“이번 트라이아웃은 영 쓸모가 없네.”
“쯧…. 쭉정이들만 있네. 120대 중후반의 패스트볼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타자들이 프로 2군은 물론이고 3군에서 버틸 수 있겠어?”
“역시 청천 야구단은 박진수만 지켜볼 만한 건가? 박진수 출전일이 언제지?”
“2주일 뒤에 서울 더블스타즈 2군이랑 경기할 때 주전으로 출전할 거야.”
“쯧…. 그러면 난 2주 뒤에 와야겠다.”
“나도.”
스카우트들의 눈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몇몇은 이미 짐을 챙겨 떠났고, 남아있던 몇몇도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조용히 앉아서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송구의 제구가 좋다.’
모두가 예전 160대 패스트볼을 던지던 강송구를 지금의 강송구에 투영해 평가절하했지만, 마진구는 지금 현재 강송구가 가진 무기가 프로에서 통할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입에 사탕을 집어넣은 그가 조용히 마운드를 바라봤다.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타석의 타자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지금 강송구가 던지는 패스트볼은 예전 서울 데빌스의 좌완 투수인 유희종의 패스트볼과 비슷하다. 최소한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그런 패스트볼 말이야.’
하지만 패스트볼만으로 살아남기엔 프로라는 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했다.
마진구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어설픈 슬라이더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과연 강송구가 준비한 무기가 뭘까?’
그런 마진구의 기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체 강송구가 다시금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백팀의 4번 타자가 들어섰다.
초구는 우타자 바깥쪽에 걸치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좋은 출발이군.
타자의 무릎 근처에 아슬하게 걸친 코스였다.
타자는 혀를 내둘렀고, 우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바깥으로 빠지는 슬라이더가 날아들었지만, 아까 정확히 걸친 패스트볼이 인상에 남아서였을까?
타자는 성급히 배트를 휘둘렀다.
“아!”
타자가 빙글 돌며 아쉬움이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답답할 것이다.
분명 120대 중후반의 공이었다.
고교 시절에 자주 봤던 130-140대 속구보다 훨씬 느린 공인데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저 똥볼을 공략 못 하는 거야?’
‘큰 키가 문제인가? 왜 공이 더 빠른 것 같지?’
‘저런 공도 못 치면 프로는 접어야지. 내게 기회가 온다면 꼭 친다. 어떻게든 친다.’
더그아웃에 있는 백팀의 타자들이 눈을 찌푸리며 마운드에서 로진백을 들어 올리는 강송구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송구는 이번 이닝을 확실하게 잡을 생각이었다.
그가 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체인지업.’
지금껏 바깥쪽으로만 공을 던지며 얄밉게 공을 던지던 투수가 몸쪽으로 공을 던진다.
그것도 느린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가 자신 있게 몸쪽으로 공을 넣는 것이다.
일반적인 타자라면 몸쪽으로 들어오는 코스의 공을 보고 작은 의심을 해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투수는 120대 중후반의 구속을 가진 투수고, 상대는 프로가 아닌 프로를 꿈꾸는 아마추어에 불과한 타자였다.
몸쪽으로 깊게 들어가는 공.
타자는 있는 힘을 다해 배트를 휘둘렀다.
‘어? 공이…. 좀 늦는데?’
거기다 공이 살짝 가라앉기 시작했다.
딱!
공이 배트에 빗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격수가 공을 잡고 가볍게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열심히 1루로 달리던 백팀의 4번 타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속도를 줄이고 하늘을 올려봤다.
“아오…. 병신.”
그리고 마운드에 있는 투수에게 바보같이 휘둘린 자신을 스스로 욕했다.
* * *
“좋은 체인지업이군.”
한국프로야구에서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투수와 비교해서 꿇릴 것이 없는 체인지업이었다.
청천 야구단의 황태석 감독이 수첩에 적힌 강송구의 이름을 볼펜으로 체크했다.
“그렇네요. 좋은 체인지업이에요.”
그런 황태석 감독의 옆에 붙어서 경기를 지켜보던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던질 수 있는 구종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전부인가? 고교 시절에는 커브도 던졌던 거로 알고 있는데….”
“저는 커브를 던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이유?”
황태석 감독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박진수는 고교 시절 자신에게 포수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던 은사의 얼굴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마법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죠.”
“마법을 이어나간다….?”
그제야 황태석 감독도 뭔가를 이해한듯한 표정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겉과 다르게 누구보다 여우 같은 놈이었군.”
“그러니 저 구속으로 복귀할 생각을 한 거죠. 저런 유형의 친구들은 확신이 없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거든요.”
“저 느린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에 적응했는데, 갑자기 커브가 튀어나오면 타자들이 제법 놀라겠어.”
황태석 감독의 말처럼 2회 초까지 강송구의 공을 지켜보던 하위타선의 타자들은 3회 초부터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종종 커트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커브에 헛스윙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이닝을 종료합니다.]
[세 타자를 모두 잡아냈습니다.]
[이번 이닝에 획득한 포인트는 총 117포인트입니다.]
[현재 3이닝을 소화하셨습니다.]
그렇게 3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한 강송구.
우효는 그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나이스! 죽여주는 피칭이었어. 변화구의 숙련도만 조금 더 오르면 진짜 프로에서도 먹힐 것 같은데?
‘아직 멀었지.’
그가 원하는 것은 고작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존재했다. 아마추어 타자를 좀 잡았다고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강송구가 조용히 욕심을 드러냈다.
“선발로 나온 이상 최소 5이닝은 던진다.”
-당연하지. 네 스펙으로 여기서 5이닝도 책임지지 못한다면 프로는 꿈도 꾸지 말아야지!
우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3회 말이 끝났다.
글러브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송구.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