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트라이아웃
2030년이 밝았다.
-제발 올해는 운수대통하게 해주세요!
욕쟁이 고슴도치는 운수대통을 빌었고.
“...”
강송구는 소원을 빌지 않고, 자신이 목표한 것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며칠 뒤.
수원에 있는 청천 야구단의 겨울 트라이아웃.
대체로 가을이나 봄에 트라이아웃을 진행하는 여타 다른 독립구단과 다르게 청천 야구단은 여름과 겨울에 트라이아웃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도 청천 야구단의 그라운드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땀을 흘리며 러닝을 하고 있었다.
청천 야구단에 입단하기 위한 지원자들.
그리고 그런 지원자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여러 훈련 장비를 꺼내고 있는 코치진들.
마지막으로 저 멀리서 따뜻한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서 마시며 자리를 잡은 10개 구단의 스카우트까지.
“청천 야구단의 겨울 트라이아웃은 매년 인재풀이 썩 좋지 않아서 오기 싫은데….”
“팀장에게 욕먹기 싫으면 사무실에서 도망쳐야죠. 솔직히 강 선배도 잔소리 듣기 싫어서 오셨잖아요.”
“그것보다 어때? 좋은 선수가 있는 것 같아?”
“그런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하긴…. 그런 선수가 있었으면 진즉 육성선수로 다른 구단에서 데려갔겠지.”
“그렇죠.”
의욕 없는 표정의 스카우트들은 그래도 자신의 본업이라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여러 장비를 꺼냈다.
“트라이아웃보다는…. 역시 청천 야구단의 그 친구를 보러온 녀석들이 더 많아 보이네.”
“대단한 선수죠. 포수 박진수라고 하면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국가대표 포수라고 알아주던 선수였으니까요.”
“군대도 해결되어있고, 확실한 성적도 보여줬고, FA로 나온 시즌에 그 사건만 터지지 않았으면…. 은퇴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선수였지.”
“망할 음주운전 뺑소니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면서요?”
“쯧…. 안됐어.”
“덕분에 27살에 FA에 나왔는데도 계약은 흐지부지되고 1년을 통으로 날리면서 은퇴를 발표했었죠.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어떻게 계약에 집중하고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겠냐면서….”
“그렇지.”
“그런데 왜 다시 은퇴를 번복한 거래요?”
“이제 3살 된 딸 아이 때문이지. 그래도 다행이야. 아직 29살이니 충분히 복귀할 능력은 될 거야.”
“22년도에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9년에서 8년으로 줄어든 데다 저 친구는 국가대표로 뛰면서 FA 자격에 필요한 기간을 1년이나 깎았었죠? 국제대회에서 포인트 많이 쌓았다고 대단하다고 하던 팀장님 말씀이 기억나네요.”
그렇게 말을 끝낸 젊은 스카우트가 미묘한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그것보다 인천 드래곤즈는 배 아프겠어요. 드래곤즈가 임의탈퇴가 아닌 방출을 해준 덕분에 박진수 선수가 10구단 모두와 계약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잖아요. 그것도 전성기에 가까운 29살에 말이죠.”
“아무리 2년을 쉰 상태라도 군침이 흐르지.”
“그렇죠.”
“솔직히 지금 같은 포수 기근에 저런 선수는 얼마를 주든 데려와야지. 그 어떤 선수를 보상선수로 내주는 한이 있어도 박진수를 데려오는 게 더 싸게 먹힐 거야.”
“선배님은 박진수 선수가 얼마까지 받을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이면계약까지 생각하면…. 총액 4년 80억.”
“그렇게나 많이요?”
“오히려 많이 깎인 편이지. 예전 서울 데빌스 소속 포수인 양의찬이 창원 스왈로스로 이적할 때 4년 125억이었잖아. 그와 비슷한 타격 능력과 수비능력을 갖춘 포수가 매 시즌 홈런을 40개 이상 때릴 수 있다? 게임 끝이지.”
“와…. 장난 아니네요.”
“2년을 통으로 쉬지만 않았다면 80억이 아니라 진짜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았을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라운드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제야 스카우트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과거 인천 드래곤즈의 사령관.
20살에 바로 1군에 콜업되서 지명 타자로 뛰다가 22살부터 백업 포수로 오가더니, 23살에 팀의 주전 포수로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 선수.
커리어 하이 시즌에 0.344의 타율과 47개의 홈런을 때리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까지 불러들인 선수.
어쩌면 한국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포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역사를 쓸 수 있었던 선수.
박진수.
그가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그 모습에 이번 트라이아웃 지원자들의 눈에 강한 동경심과 경외감이 깃들었다.
“꿀꺽….”
“진짜 박진수다!”
“와…. 내가 살아생전 박진수를 눈앞에서 볼 줄이야.”
아마 박진수는 2월이 되기 전에 한국프로야구의 10구단과 협상을 한 뒤에 팀을 정할 것이다.
“다 모이세요. 이제 트라이아웃 진행하겠습니다.”
그때 더그아웃에 있던 청천 야구단의 황태석 감독이 지원자들을 불러모았다.
그의 앞으로 모인 선수들.
“그러면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김유식 씨?”
“네!”
그렇게 지원자를 확인하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 조금 늦게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고 황태석 감독의 옆에 있던 수석코치가 눈을 찌푸렸다.
“그쪽도 지원자입니까?”
“죄송합니다. 잠깐 화장실에 갔다 왔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강송구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듣고 의자에 앉아있던 황태식 감독이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강송구를 바라봤다.
“설마 진짜 강송구?”
강송구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제가 강송구입니다.”
* * *
야구인이라면 강송구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19살에 최고 104마일을 던진 괴물 투수를 기억하지 못할 야구인은 없었다.
그만큼 강송구는 대단한 고교야구선수였다.
프로 데뷔가 확정된 로열로더인 선수.
그런 그가 지금 수원에 있는 청천 야구단의 트라이아웃 현장에 그가 나타났다.
“강송구? 진짜 강송구?”
“진짜다! 진짜 강송구다!”
“전화 돌려! 단장에게 연락해! 강송구다! 강송구가 청천 야구단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고!”
“스피드건! 스피드건 가져와!”
그리고 가장 격렬히 반응한 것은 박진수를 보기 위해 모여든 10구단의 스카우트들이었다.
“진짜다. 진짜 강송구…!”
“미쳤군. 미쳤어!”
“박진수를 보러왔다가 대어를 낚게 생겼군! 강송구라니! 그 코리안 비스트인 강송구라니!”
그들은 급히 어디론가 연락하거나, 카메라를 새롭게 꺼내서 설치하며 청팀의 조끼를 입는 강송구를 살폈다.
“구속은 얼마나 회복됐을까?”
“모르지…. 은퇴를 했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으니까. 아마 어느 정도의 구속 하락은 예상해야지.”
“그래도 군대는 다녀왔잖아? 그러면 적어도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라는 뜻 아니야?”
“모르지. 어떤 상태인지 말이야.”
“그래도 복귀했다는 뜻은…. 구속이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뜻이겠지? 후우…. 미치겠군.”
“140대 초반만 나와도 관심을 보낼만하지.”
“충분하지. 큰 키와 긴 팔 덕분에 140대 초반의 공도 거의 140대 중반의 공처럼 느껴질 테니까.”
“예전에 던졌던 구종이 커브랑 스플리터였던가?”
“슬라이더.”
“청백전 시작한다.”
“청팀부터 수비지? 그러면 강송구가 먼저 올라오나? 빨리 봤으면 좋겠는데.”
“올라온다. 강송구다!”
마운드에 올라선 강송구.
그를 보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우효는 그런 강송구의 옆에 앉았다.
-제일 먼저 올라가겠다고 손을 들다니…. 역시 넌 천생 투수가 맞는 것 같군.
“음….”
-오랜만에 오른 진짜 마운드는 어때?
“최고지.”
-우효횻! 내가 조언했던 것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지? 넌 예전의 그 파이어볼러가 아니야. 흔한 쓰리쿼터 폼을 가진 우완 모닥불러인 허접한 투수야.
“알고 있어.”
우효의 잔소리에 알겠다 대답한 강송구는 조용히 로진백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살폈다.
[플레이어]
-이름: 강송구
-나이: 24세
-최고구속: 131.5km/h
-평균구속: 127.7km/h
[능력]
-스터프: 66
-무브먼트: 137
-컨트롤: 140
[구종]
-패스트볼:E
-커브:C
-슬라이더:D
-체인지업:C
구속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아마도 특성이나 스킬이 아니면 그의 구속이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부분은 훈련으로 충분히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구위와 관련된 부분에 집중했다.
덕분에 구위와 구속에 관련된 스터프 능력치가 단기간에 제법 많은 상승을 이뤄냈다.
-구속이 느리다면 공의 회전율을 높여야지. 맞더라도 최대한 범타 처리가 될 수 있게!
거기다 ‘손재주’ 특성 덕분에 구종의 등급과 숙련도도 제법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결과를 확인하는 것.
오늘 트라이아웃에서 모두에게 보여준다.
강송구라는 투수가 어떤 투수인지를 말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네가 어떤 투수인지 기억해.
“그래.”
강송구는 자신의 주제를 알았다.
평균 120대 후반의 구속을 가진 느린 패스트볼과 카운트 잡는 용도로도 쓰이지 못할 슬라이더를 가진 투수.
그것도 흔한 쓰리쿼터 폼을 가진 우완투수였다.
그나마 쓸만한 것은 커브와 체인지업.
그리고 체력을 소모해서 압도적인 변화구를 던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킬이 있었다.
그걸 이제 잘 활용해서 보여줘야 한다.
그가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선발 투수입니다.]
[이닝당 보너스로 포인트 획득량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소화하는 이닝이 늘어날수록 보너스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의 획득량이 소폭 상승합니다.]
공을 건네받은 강송구.
그가 자리를 잡은 포수를 보며 사인을 보냈다.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패스트볼을 말이다.
* * *
‘강송구라고? 그 강송구?’
백팀의 선두타자인 이태민.
그는 작은 키를 가졌지만 민첩한 몸놀림과 빠른 발을 활용하는 타자로서, 이번 트라이아웃에 합격해서 다시금 프로에 도전하는 것이 꿈인 대졸 선수였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라는 뜻이다.
당연히 그는 떠들썩했던 강송구를 알고 있었다.
‘괴물이라 했지.’
하지만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예전과 같은 구속도 아닐 테고…. 아까 몸을 풀 때 봤는데 그렇게 구속이 빠르지도 않았어.’
해볼 만했다.
괴물도 괴물 나름이다.
발톱과 이빨이 모두 빠진 야수를 이유 없이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이태민은 생각했다.
거기다 스카우트도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이 자리까지 찾아온 스카우트들에게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볼넷이라도 받아서 출루한다.’
최대한 많은 공을 보겠다.
그게 1번 타자가 해줘야 할 일이니까.
그가 그런 다짐을 하고 배트를 꽉 쥐었다.
‘일단은 지켜본다.’
길게 승부를 끌고 간다.
그게 이태민의 목표였다.
그런 그를 상대로 강송구는 과감하게 초구부터 가운데에 들어가는 패스트볼을 던졌다.
슈우욱! 펑!
“스트라이크!”
치라고 주는 코스에 들어간 패스트볼이었다.
그것도 주심이 바로 스트라이크 콜을 외칠 정도로 너무나 완벽하게 가운데로 들어가는 공이었다.
이태민은 순간 얼굴을 찌푸리며 이를 꽉 물었다.
‘이 새끼가…. 지금 날 깔봐?’
구속도 크게 느려진 퇴물이 자신을 농락했다.
이태민은 강송구의 초구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는 같은 코스로 패스트볼이 들어왔을 때,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러 홈런을 때리겠다 다짐했다.
‘복귀? 꿈도 꾸지 마! 아주 곤죽을 만들어주지.’
이를 꽉 문 이태민.
마운드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은 강송구가 이어서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아까와 똑같이 가운데로 향하는 공.
이태민은 확신했다.
‘패스트볼이다!’
그리고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배트에 공이 닿는 순간.
‘어?’
그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가운데로 가다가 살짝 좌타자의 몸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슬라이더에 속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따악!
내야로 높게 떠오르는 공.
-저 녀석은 끝났군.
그런 이태민을 보며 우효는 확신했다. 저 방만한 리드오프의 트라이아웃이 끝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웃!”
이루수가 처리한 내야뜬공. 1루까지 있는 힘을 다해 뛰던 이태민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X!"
그리고 그 모습을 마운드에 보던 강송구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금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마치 이제 시작이라는 것처럼.